[와이드 진상 특집] 4.29폭동 25년 만에 드러나는 진상과 사실들 (2), 그들은 조직적으로 한인들을 제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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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과 활동가들에 농락당했던 4.29 폭동 25년

‘우리는 그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거나 무시당했다’

4.29폭동 25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이 4월 30일로 대부분 끝났다. 올해는 4.29폭동 25주년이라 미 주류 사회나 한인사회가 특별한 관심을 갖고 대규모로 행사를 치렀다. UCLA, LMU(로욜라 매리 마운트 대학), CSUN 등에서는 LA 폭동 25주년을 학문적으로 다루는 세미나와 보고서를 내놨다. 특히 4.29폭동 25주년이 되는 29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걸쳐 LA에서는 상징적인 행사들이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흑인 커뮤니티의 상징인 First AME 교회 알렌 하우스 가든에서는 ‘4/29 UNITY’라는 슬로건에 “4.29화합-무명의 영웅들을 기리며”라는 주제로 LA 한인회(회장 로라 전)와 공동 주최로 LA 에릭 가세티 시장 등 약 150여 명의 한, 미 인사들이 참석해 ‘화해, 화합, 평화’를 기원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에는 한인 단체 KCCD(대표 임혜빈)가 주축이 되어 구성한 4.29 기념 사업회 주관 행사에 약 300명의 한, 미 인사들이 참석해 ‘미래를 위한 꿈의 실현’을 다짐했다. 이날 오전 오후로 나눠진 4.29행사는 거의 내용이 비슷하고 참석자들도 같은데 왜 둘로 나뉘어 했는지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이번 4.29폭동 25주년 행사에도 1992년 LA 폭동 때 한인사회가 ‘왜 피해자가 되어야 했는지’와 ‘우리가 당한 피해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에 대한 목소리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1LA 한인회가 ‘4.29 화합’을 외치며 공동 행사를 담당한 흑인 커뮤니티의 최대 교회의 하나인 First AME 교회는 애초 4.29 폭동 당시 ‘LA를 불질러라’고 외친 곳이다. 말하자면 폭동을 부추긴 의혹도 받고 있는 교회다. 25년이 지나면서 변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코리아타운에 대해 진정한 사과는 없었다. 사과가 있어야 용서가 따르는 법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지난 29일 오전 11시 30분 한인회와 흑인 교회 합동 4.29폭동 25주년 행사는 스티브 강 (마크 리들리-토마스 LA 카운티 슈퍼바이저 보좌관)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기념행사는 한국의 북소리팀 고르예술단(미주 단장 이서령)의 우렁찬 북소리로 막을 열었다.

‘4/29 UNITY’ 라는 대형 배너가 세워진 기념식장에서 로라 전 LA 한인 회장은 “25년 전 코리아타운은 폭동으로 잿더미가 되었다” 면서 “4.29폭동은 미주한인 이민 사회에서 최대 수난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과 같은 소통의 기회가 25년 전에 있었다면 4.29폭동이라는 수난은 없었을 것”이라 하면서 “오늘의 행사는 흑인 커뮤니티와 한인 커뮤니티가 처음으로 하나가 되어 열렸다”라고 선언했다.

이날 양 커뮤니티가 주최한 행사에는 LA시 에릭 가세티 시장을 포함해 시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했다. 가세티 시장은 기념사에서 “우리는 폭동 이후 일부에서 개선되고 강해졌으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면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도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알맹이 없는 겉치레에 불과한 25주년 행사

한편 이날 오후 3시 코리아타운 동양선교교회 대성전에서 개막된 ‘4.29 기념 사업회(SAIGU Campaign Comemorative Service) 주관의 행사는 KCCD 임혜빈 대표의 소개로 러브인뮤직(Love in Music)의 ‘You raise me up’의 화음으로 막을 열었다.

이날 행사를 총괄한 임혜빈 KCCD 대표는 ‘25주년을 계기로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제 ‘언어와 문화의 벽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져야 한다.“라며 ‘4.29는 화합의 장이고 이 화합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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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 폭동 25주년 기념식에 <러브인 뮤직>이 개막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날 양대 행사에서 LA 시 정치인들과 LA 검찰, 경찰, 소방국 관계자들과 흑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인사들이 4.29 폭동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어느 누구도 코리아타운을 불바다로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밝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이 자리에 한인사회 인사 누구도 목소리를 낸 사람은 없었다.

한심스러운 점은 이날 양대 행사에 그 많은 한인 단체장들 중에서 극소수만 참석했을 뿐 대다수 단체장들이나 소위 유지급이라는 인사는 거의 없었다. LA 한인회 역사상 최초로 흑인 커뮤니티와의 연합행사에 양 커뮤니티에서 고작 150여 명이 모였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그리고 LA 한인회와 KCCD 측이 따로따로 4.29행사를 펼친 것도 문제였다. 사전에 하나의 행사로 하자는 대화도 가졌으나 서로의 명분만을 고집하면서 화합하지 못했고, 결국 한 행사는 오전에, 또 한 행사는 오후에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발상으로 4.29를 기념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이에 앞서 28일에는 LA 시청에서는 4.29폭동 25주년을 기념해 LA 시의회가 ‘공동 화합 성명서’를 채택한 뒤 허브 웨슨 시의장, 데이비드 류, 길 세디요 시의원 등 시 관계자들과 로라 전 LA 한인 회장 등 한인사회 인사, 그리고 흑인 커뮤니티 관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서로 손잡고 화합을 다지는 ‘핸즈 크로스’ 행사도 펼쳐졌다.

데이비드 류 시의원은 “4.29폭동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라며 “특히 자라나는 한인 2, 3세들에게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교육과 함께 폭동 의 교훈을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다인종들이 함께 모여 화합을 다짐하는 핸즈 크로스 행사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또 이날 UCLA에서 열린 ‘4.29 25주년 행사’에서 전국 한인 위원회(Council of Korean Americans· CKA)가 주최하고 UCLA, SPARK, 타이거 우즈 파운데이션, LA 한인회, 한미 연합회 등이 함께한 대규모 연합 행사가 열려 폭동 재발 방지책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펼쳤다.

이 자리에 한인과 흑인 등 다인종으로 구성된 약 30여 명의 패널 및 연설자 등이 참석한 행사에서는 4.29경험을 비롯해 폭동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배경, 현 상황과 이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토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같은 자리에서도 “인종화합”, “폭동 재발방지”라는 문제에만 토론이 이어졌을 뿐, 4.29폭동의 최대 피해자인 한인사회의 아픔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4.29 폭동 성금까지 챙긴 한인사회 역적들

한마디로 4.29폭동에서 코리아타운의 수난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폭동에서 피해자는 코리아타운이 분명한데, 가해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의가 실현되려면 미국 정부는 가해자를 정의의 심판에 세워야 한다.
도대체 1992년 4월 29일에 무슨 일이 코리아타운에서 일어났는가?

LA 코리아타운의 웨스턴 애비뉴와 6가의 2층짜리 한인 상가는 지금은 새 모습으로 잘 단장되어 있지만 25년 전 그날 시뻘건 불기둥이 올라가면서 건물 전체가 잿더미가 됐다. 당시 불타버린 잔해에서 한인 아낙네들은 서럽게 울었다. “왜 이런 일이 우리 코리안에게 일어나야 하는가?”

지금의 코리아타운의 6가 거리는 밤이면 한인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타 인종 젊은이들까지 함께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젊은이들 중 대부분이 ‘4.29’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 무엇보다 4.29 LA 폭동의 피해를 당했던 한인들도 그때의 일을 말하기 싫어하고,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4.29는 미주한인 역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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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9 폭동 당시 10만여 명의 한인들이 코리아타운에서 <평화의 행진>을 벌이고 있다.

4.29 LA 폭동에서 왜 한인들만이 최대 수난을 당해야 했는지 그 진상을 파헤칠 과제가 한인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특히 폭동으로 실추된 한인들의 명예를 회복해야만 하고 이에 따르는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 물론 1,200만 달러에 이르는 폭동 구호성금 진상도 규명해야 한다.

하지만 2012년 4.29폭동 25주년을 맞이하는 한인사회는 이 같은 가장 중요한 과제를 회피하며 하나로 단합하지도 못하고, 뿔뿔이 자신들만의 4.29행사를 추진하고 있어 뜻있는 사람들은 ‘4.29정신의 실종’이라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난 2012년 4.29폭동 20주년 때도 그랬다.

1965년 LA 남부 지역 ‘왓츠 폭동’ 후 미국정부는 흑인 커뮤니티에 엄청난 복구자금을 지원했다.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백인들에게 약탈과 수탈을 당한 인디언들에게 보상과 배상이 이루어졌다. 2차 대전 당시 수용소로 강제 수용됐던 미국 내 일본인들에게도 명예 회복과 보상이 40년 만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왜 4.29폭동에서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피해를 최대로 당한 한인사회에 대해서는 말이 없는가. 그것은 우리 한인사회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정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25년 전 코리아타운은 3일 동안 화염에 덮이고 폐허가 되었다. 한인 수만 명이 생명의 위험을 당하고 4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산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미국정부는 가해자를 찾지 않고, 공권력의 책임과 처벌도 묻지 않았던 기이한 현상이 인권국가인 미국에서 발생했다. 4.29폭동 후엔 희생양으로 피해를 당한 한인 커뮤니티에게 어떠한 배상이나 보상도 없었고 복구대책도 없었다.

약 2천3백 개의 한인 업소가 파괴되고, 수만 명의 한인 이민자들이 생존에 위협을 당했다. 한인들의 재산 피해만도 LA 시 전체 피해 액수인 10억 달러의 절반 수준인 4억 달러 이상에 달했다. 그러나 25년이 흘러간 지금은 4.29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의심할 정도로 잊혀 가고 있다.

해마다 다가오는 4월 29일을 기념할 때면 한인 커뮤니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4.29의 비극을 잊지 말자”라고 외치고 있으나, 기념식장 밖으로 나서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가?’라는 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

정치력에 이용당하는 4.29 비극적 종말

미국 제2대 도시인 LA가 불에 타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고 한인 등 피해자는 거리에서 울부짖었지만 경찰은 폭도들을 바라만 보고, 사법부는 처벌이 없는 기이한 현상이 자유민주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폭동 후엔 어떠한 배상이나 보상도 없었고 복구 대책도 없었다. 폭도로 변한 가해자인 흑인과 라틴계는 흑인 사회의 정치력을 활용하여 언제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는가?-하는 식으로 적반하장으로 처벌받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을 한인들이 목격한 것이다. 한인들은 흑인들의 정치력을 보고 왜 우리는 이런 정치력이 없는가에 처음으로 한인 공동체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교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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