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 大기자의 뉴욕發 사건] 부동산 브로커 토니 박 형제의 귀신도 울고 갈 ‘투자사기’백태

■ 2001년 ATM 사고 숨기고 2005년 5백만달러 투자유치

■ ‘리만브라더스가 거액투자…7-8배 이익 보장한다’ 유혹

■ 백악관경호국, 911때 토니박측에 ATM사기경고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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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

그들이 토니 박 형제
악행에 피눈물을 흘리는 사연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부동산브로커 토니박형제의 지난 2005-2006년 ATM투자 유치사건은 사실상 사기사건으로 밝혀졌다. 백악관 비밀경호국은 지난 2001년 911테러발생 당시 이미 이들 형제가 운영하는 ATM 사업과 관련된 사람의 신용카드사기를 수사 중이었으며 같은 해 11월 신용카드정보를 이용, 210만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들 형제는 911테러당시에 이미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부터 수사사실통보를 받았음을 데포지션을 통해 시인했고, 이로 인해 피해은행인 시티뱅크가 2003년 이들 형제 등에게 소송을 제기, 190만 달러 승소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토니박 형제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기고 2005년 초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이던 자신들의 ATM업체를 리만 브라더스가 투자할 업체라고 포장, 한인들에게 투자를 권유, 5백만달러상당을 가로 챈 혐의로 소송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 토니 박 조선일보 사진

▲ 토니 박 조선일보 사진

일부 한인은 홈에퀴터론을 받아 투자했다가 한 푼도 건지지 못했고 일부는 피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병을 앓기도 했고, 일부 한인은 시력을 잃어 보험회사로 부터 받은 보상금 전액을 투자했다 피해를 입은 뒤 가정까지 깨지는 아픔을 겪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이들 토니박 형제는 ATM신용 정보유출사건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언론에는 이 같은 투자사기의혹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들은 ATM사업이 망했음을 알고도 고의적으로 한인들을 속여 5백만 달러 상당을 갈취한 ATM 투자유치 사기범이라는 의혹이 짙은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의심스런 행각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백악관 비밀경호국, 델라노 형제는 위험인물 경고

맨해튼의 상징 세계무역센터가 오사바 빈 라덴의 여객기 테러로 무참히 무너져 내리던 날, 워싱턴DC의 미 국방부청사 펜타곤이 테러에 짓밟히던 날, 미국 본토가 사상 처음으로 공격당하던 날, 그날은 바로 2001년 9월 11일, 전 세계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911테러가 발생한 날이다.

▲ 시티뱅크는 2003년 9월 머니마케팅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에릭 박등에 대한 데포지션을 통해 이들이 2001년 9월 11일께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 부터 델라노형제가 ATM사기혐의로 연방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음을 시인했고, 이같은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델라노형제에게 계속 ATM에 접근토록 허용했다고 밝혔다.

▲ 시티뱅크는 2003년 9월 머니마케팅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에릭 박등에 대한 데포지션을 통해 이들이 2001년 9월 11일께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 부터 델라노형제가 ATM사기혐의로 연방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았음을 시인했고, 이같은 통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델라노형제에게 계속 ATM에 접근토록 허용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로 이날은 ATM사업을 운영하던 토니박형제에게는 ‘여객기 테러’가 아닌 또 다른 이유로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1999년 4월 설립된 ATM 사업체 ‘머니마케팅’에서 COO로 근무하던 토니 박의 형, 에릭 박[한국명 박항용, 미국명 에릭 박, 에탄 파워, 에탄 파월, 에드몬드 파월등]이 대통령경호를 맡고 있는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백악관 비밀경호국은 재무부산하기관으로 대통령경호뿐 아니라 금융범죄사기수사를 맡고 있다. 백악관 비밀경호국은 2001년 9월 11일께 에릭 박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들과 거래하려는 안토니 델라노와 마이크 델라노 형제가 ATM 사기와 관련, 연방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통보했다.

그리고 백악관 비밀경호국은 수일 뒤 다시 에릭 박에게 전화를 걸어 ‘델라노형제가 ATM 사기와 관련, 수사를 받고 있음’을 다시한번 알리고 이를 거래은행인 팜 데저트내셔널뱅크와 신용카드전산망운영업체 스타네트워크에 지체 없이 통보했는지 여부를 재차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백악관 비밀경호국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토니박 형제는 델라노형제에게 맨해튼지역 21개 ATM의 설치 및 관리권을 맡겼다. 2001년 9월 17일, 10월 1일, 10월 29일 계속 델라노 형제에게 추가로 ATM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ATM 사기혐의로 연방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ATM을 팔았으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나 다름없었다. 델라노형제는 백악관 비밀경호국의 통보로부터 2개월 뒤인 2001년 베테랑스데이연휴를 맞아 사법당국과 은행 측이 발빠른 대응을 할 수 없는 틈을 타, 자신들이 ATM에 설치한 불법 장비를 통해 미리 알아냈던 신용카드정보와 핀(Pin)넘버 등을 이용해, 시티뱅크 고객들의 계좌에 접근해 210만 달러를 몰래 빼내서 달아났다.

델라노형제 중 1명은 사건발생 2개월만인 2002년 1월 16일 체포됐고, 다른 1명은 도주했다가 2년여뒤인 2003년 12월 3일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백악관 비밀경호국에 체포됐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에 대해 ATM신용카드사기범에게 ATM단말기를 판매한 미국 내 최초의 사건이라고 2003년 9월 보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 토니 박형제의 ATM업체에 투자한뒤 가장 먼저 소송을 제기한 이모씨의 소송장[상], 토니 박측은 답변서를 통해 이씨가 투자한 사실만 인정했을뿐 대부분의 주장을 부인했다. [하]

▲ 토니 박형제의 ATM업체에 투자한뒤 가장 먼저 소송을 제기한 이모씨의 소송장[상], 토니 박측은 답변서를 통해 이씨가 투자한 사실만 인정했을뿐 대부분의 주장을 부인했다. [하]

데포지션서 ‘SS서 사전경고 받았다’ 실토

토니 박-에릭 박 형제가 백악관 비밀경호국의 통보를 받았음은 자신들의 진술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ATM사기사건 피해자인 시티뱅크는 2003년 9월 뉴욕남부연방법원에 머니마케팅 등을 상대로 ATM신용카드사기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과정에서 수사기록과 데포지션 녹취록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토니 박은 2004년 10월 8일, 에릭 박은 2004년 11월 10일 각각 데포지션을 받을 때, 2001년 9월 11일께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부터 델라노형제에 대한 수사사실을 통보받았다고 시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라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고도 진술했다. 신용카드 전산망운영업체 스타네트 워크와 거래은행 팜데저트내셔널뱅크, 그리고 머니마케팅은 1999년 5월 ATM운영계약을 체결하면서 머니마케팅이 이 사업에 제3자를 개입시킬 경우. 제3자가 업무를 시작하기 5일전까지 모든 정보를 은행 등에 통보하고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으며, 신용카드 안전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정보가 있을 경우 지체 없이 이를 통보토록 했다. 그러나 머니마케팅은 백악관 비밀경호국의 통보를 받고도 이 같은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음이 드러났고 결국 데포지션 3개월만인 2005년 3월 4일 머니마케팅과 팜데저트뱅크 등이 190만 달러상당을 시티뱅크에 배상하는데 합의함으로써 소송이 종결됐다.

이처럼 토니박-에릭박형제는 이미 2001년 9월 11일께 자신들이 ATM을 판매하려던 델라노형제가 연방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음을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부터 통보받았음으로 신용카드사기발생가능성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크고, 2001년 11월께 210만 달러 사기사건이 발생, 스타네트웍스 등이 수사를 의뢰하고 머니마케팅에 대한 자체조사에도 나섰으므로, 이때는 확실하게 사기사건이 발생했음을 알았으며, 2002년 1월 16일 범인 중 1명이 체포됨으로써, 이때는 더욱 명확히 자신들의 ATM에서 신용카드정보가 유출됐음을 알았고, 이에 따라 자신들의 사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손배소를 당한 것은 2003년 9월이요, 자신들이 210만달러 배상에 합의한 것도 2005년 3월이다.

그러나 토니박형제는 이처럼 자신들의 ATM회사가 신용카드사기사건으로 거액의 배상하게 돼 회사존망이 위태로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때부터 자신들의 ATM사업이 유망하다며 한인언론에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한인들을 상대로 투자유치에 나서게 된다. ‘리만브라더스가 투자하는 업체이며 상장되면 큰돈을 번다’는 것이 이들의 마케팅 포인트였다. 2005년봄 투자설명회에는 백명정도가 참석했고 이중 약 30명정도가 토니형제가 설립한 넥스트란과 아이넥스트넷 등에 투자를 했고, 투자규모는 약 5백만 달러에 달했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3년여가 지나도 단 한 푼의 투자수익도 얻지 못했고 투자금을 반환하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자 뒤늦게 사기라는 사실을 알고 2008년 말 투자자 1명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2009년부터 줄 소송이 이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ATM 190만 달러 배상합의 후에도 투자 계속 받아

가장 먼저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맨해튼의 한인델리업자 이모씨, 이씨는 2008년 8월 27일 뉴저지주 연방법원에 토니박과 그의 형 에릭 박, 그의 어머니 양영숙씨, 머니마케팅, 넥스트란, 아이넥스트넷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소송장에서 토니박 형제가 ATM사업이 유망하다고 말해 2005년 9월 30일 자신이 10만 달러, 자신의 권유로 절친한 친구가 10만 달러 등 20만 달러를 넥스트란에 투자했다. 이씨가 투자를 결정한 것은 토니박형제가 리만브라더스가 이 업체에 거액을 투자해 최대주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큰 이유였다고 소송장에서 밝혔다.

▲ 40만달러를 투자한 박모씨가 토니박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장[상], 박씨는 아이넥스트넷에 매니징멤버인 토니박, 에릭박, 양영숙씨가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고 지분 87.5%를 차지했다고 주장했으나, 토니박측은 답변서[하]를 통해 투자사실만 인정한채 지분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 40만달러를 투자한 박모씨가 토니박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장[상], 박씨는 아이넥스트넷에 매니징멤버인 토니박, 에릭박, 양영숙씨가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고 지분 87.5%를 차지했다고 주장했으나, 토니박측은 답변서[하]를 통해 투자사실만 인정한채 지분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토니박형제가 이씨에게 리만브라더스투자등을 언급한 시기는 이미 ATM 신용카드사기사건으로 190만 달러 배상합의가 이뤄진 이후였고, 이씨에게 투자를 받은 시기도 그 이후이다. 토니박형제는 ATM 신용카드사기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한인투자자들을 감언이설로 속인 셈이다. 이씨는 투자 1년 뒤인 2006년까지 단 한 푼의 투자수익도 얻지 못했고 2006년 12월 9일 주주총회에서 토니 박 등이 주주들에게 ‘2007년 8월까지 투자금을 반환하겠다’고 했으나, 2007년 10월 6일 주주총회에서 또 다시 기다려달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2008년 2월 16일 주주총회는 또 연기되고 같은 해 4월 토니 박은 모든 직원을 해고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소송장에서 모든 것이 사기인 만큼 투자금을 배상하라고 요구했고, 토니 박 측은 합의를 요청, 소송은 불과 7개월만인 2009년 3월 24일 합의로 종결됐다. 소송당시 토니 박 측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이들의 투자사실만 인정하고, 투자자가 20-30명에 달한다는 것. 2006년 12월 9일 투자금을 반환하겠다는 약속, 리먼브라더스가 투자한다고 말한 점 등을 부인하는 등 투자사실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가장 먼저 소송을 해서 그나마 합의를 통해 보상을 받았지만 보상액은 투자액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돈이 한 푼도 없다고 우기는 통에 절반도 못되는 돈에 합의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전체 지분의 87.5% 소유

또 다른 주주 박모씨는 이씨가 소송한지 1년 2개월여가 지난 2009년 10월 28일 뉴저지 연방법원에 역시 토니박[도널드 박]과 에릭박, 양영숙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박모씨의 소송장은 더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박모씨는 소송장에서 2014년 12월 11일 25만 달러, 2005년 9월 1일 15만 달러 등 40만 달러를 아이넥스트넷에 투자했다고 밝혔고 토니 박 측도 재판과정에서 박씨가 아이넥스트넷에 25만 달러, 넥스트란에 15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인정했다. 투자액수는 일치했지만, 투자법인은 서로 주장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토니 박이 박씨의 투자를 받은 시기도 역시 ATM신용카드사기사건으로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린 이후였다. 박씨는 자신이 투자한 회사인 아이넥스트넷은 매니징멤버가 토니박과 그의 형 에릭 박, 그의 어머니 양영숙씨등 3명으로 이들 3명은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고 전체 지분의 87.5%를 소유하고 비매니징멤버는 7명으로 전체 자금을 모두 부담했으나 지분은 12.5%였다고 밝혔다.

매니징멤버 3명은 토니 박과 에릭 박이 각각 26.5%, 양영숙이 35%였다는 것이다. 투자자가 돈을 투자하고 얼마의 지분을 받느냐는 당사자 간 합의의 문제로, 서로가 이같은 비율에 합의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특히 토니 박 측은 재판과정에서 ‘주주들은 투자를 한 것이며, 투자는 사업이 잘 안되면 돈을 모두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리스크가 크다’며 주주에게 투자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 투자사기에 걸려 가정까지 파탄
■ 돈 잃은 충격에 정신병증세까지

한국서 더 먹히는 토니박, 2009년 이후도 사기의혹 많아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잡식성 괴물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토니 박 측은 주주들에게 곧 커미션을 주겠다. 투자금을 반환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마지막에는 사업이 망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투자받은 돈에서 자신의 어머니 양영숙씨에게 50만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소송장에서 밝혔다. 특히 2003년 9월 시티뱅크가 손배소를 제의하고 2005년 4월 190만 달러를 배상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고 투자를 받았으므로 사기라고 주장했다.

박씨도 토니 박 측이 투자유치과정에서 리만브라더스가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토니박측은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박씨가 40만달러를 투자했다는 사실외에는 거의 모든 원고주장을 부인했다. 이 소송은 2011년 11월 14일 합의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박씨는 투자금 전체를 되돌려 받지 못했고 그나마 한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토니 박측이 제시한 10%선에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번째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그나마 절반에 못미치는 돈을 되찾았지만 그 이후는 그마저도 돌려받지 못했고, 소송에 승소해도 돈을 못받을 것이라는 우려로 몇만달러라도 받고 합의해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 소송해봤자 건질 금액 거의 없어 망연자실

강모씨부부도 박씨와 같은 날인 지난 2009년 10월 28일 뉴저지 연방법원에 역시 토니박과 에릭박, 양영숙씨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강씨와 박씨등은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고 망연자실하다.
이씨가 2008년 소송을 제기해 얼마라도 되찾았다는 사실을 알고 힘을 얻어 소송을 제기했다. 강씨는 소송장에서 2004년 12월 28일 25만달러, 2005년 3월 29일 25만 달러등 50만 달러를 아이넥스트넷에, 2005년 9월 30일 15만 달러를 넥스트란에 투자하는 등 모두 65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 65만달러를 투자한 강모씨가 토니박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장[상], 강씨는 토니박 형제가 세계최대투자회사중 하나인 리만브라더스가 넥스트란에 투자하므로 투자자는 수배의 투자수익을 거둘수 있고 매달 투자에 대한 배당도 받을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니박측은 답변서[하]를 통해 투자사실만 인정한뒤 리만브라더스투자, 수배의 이익, 매달 배당등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 65만달러를 투자한 강모씨가 토니박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장[상], 강씨는 토니박 형제가 세계최대투자회사중 하나인 리만브라더스가 넥스트란에 투자하므로 투자자는 수배의 투자수익을 거둘수 있고 매달 투자에 대한 배당도 받을 수 있다며 투자를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니박측은 답변서[하]를 통해 투자사실만 인정한뒤 리만브라더스투자, 수배의 이익, 매달 배당등에 대해 모두 부인했다.

강씨는 토니 박 측이 모두 5백만 달러이상의 투자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토니 박측은 강씨가 65만 달러를 투자한 사실만 인정하고 전체 투자받은 금액이 5백만 달러이상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또 토니박, 에릭박, 양영숙씨등 3명이 한 푼도 출자하지 않고 지분의 87.5%를 차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시티뱅크소송 과 관련해서는 소송사실을 인정하고, 190만 달러 배상합의에 대해서도 합의사실만 인정했다.

또 리만브러더스가 거액을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강씨 주장에 대해 토니 박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어머니인 양영숙씨에게 50만 달러를 줬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토니 박 측은 투자는 리스크가 크며, 사업이 안 되면 돈을 날릴 수도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이 소송역시 2011년 11월 14일 합의로 종결됐지만 합의금은 투자액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부부는 토니 박 측에 65만 달러를 투자한 것 외에도 15만 달러를 더 빌려줬다가 돈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2009년 8월 6일 뉴저지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1월 10일 토니 박 측으로부터 합의 제안을 받고 5월 11일 합의로 사건이 종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씨는 박씨측에 15만 달러를 빌려준 것은 2006년 6월 23일이며, 결국 강씨는 65만 달러 투자, 15만달러 대여로, 토니 박 측에 80만 달러를 건네줬다가 큰 피해를 입은 것이다. 토니 박측은 15만 달러를 빌렸다는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했다. 특히 강씨는 시력을 갑자기 잃게 돼서 생명보험회사에서 받은 장애보상금 80만 달러를 토니 박씨측에 투자하고 대여해줬다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일로 단란했던 강씨의 가정은 불화가 잦아지면서 결국 이혼으로 이어지고 말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토니 측에 대한 투자로 가정까지 파탄이 난 것이다.

7~8배 고액 수익 보장 미끼에 홀랑 넘어가

연방법원외에도 뉴저지주법원에도 토니 박 측의 ATM투자와 관련해 소송이 제기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09년 3월 9일 최모씨와 강모씨와 김모씨, 황모씨부부, 또 다른 김모씨등 모두 6명은 토니 박과 에릭 박, 양영숙씨, 머니마케팅, 넥스트란그룹, 아이넥스트넷, 욜라토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장에 따르면 동업자인 강모씨와 김모씨는 2014년 12월 피고들로 부터 리만브라더스가 자신들의 업체에 리드인베스터로 투자한다며 실사가 이미 모두 끝났다는 말을 듣고 2004년 12월 28일 12만5천 달러, 2005년 9월 27일 10만 달러, 2006년 8월 30일 5만 달러등 모두 27만5천 달러를 투자했으나 투자수익이나 배당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황모씨부부는 2005년 토니 박으로 부터 ‘우리 회사 지분 85%를 리만브라더스가 투자하며, 15%의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7배에서 8배 수익을 보장하니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모두 50만 달러를 투자했다.

최모씨도 2005년 12월 21일 뉴저지 엣지워터의 스타벅스에서 토니 박을 만났으며 리만브러더스가 리드투자가라는 말을 듣고 30만 달러를 투자했다. 토니 박은 ‘회사를 6개월 내에 상장해서 투자원금을 돌려줄 것이며, 수익은 주식으로 계속 남아있게 된다’고 말했고 최씨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홈에쿼티론을 얻어서 30만 달러를 투자했다. 김모씨도 2014년 12월과 2015년 8월 각각 12만5천 달러씩 25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들의 투자금은 모두 132만5천 달러, 모든 투자는 토니 박 측이 시티뱅크와 190만 달러 배상합의시점과 합의이후에 이뤄졌다. 토니 박 측은 190만 달러를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투자자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지만, 자신들은 이 같은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아 회사가 상장은 고사하고 존폐위기에 놓였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 투자를 받기 시작한 것이어서 정황상 사기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들 투자자들은 그러나 단 한 푼의 투자수익, 단 한 푼의 배당도 받지 못했다. 이 소송에서 피고 측은 ‘투자금이며 투자는 위험성이 높다’며 배상책임이 없다는 논리의 주장을 폈다.

리만브라더스가 리딩투자회사라는 말만 믿었다가

이처럼 현재 소송사실이 확인된 투자액만 약 3백만 달러 정도이고, 뉴저지주법원에서 미처 소송서류를 확보하지 못한 소송이 더 있고, 아예 소송을 하지 않은 투자자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피해규모는 더 크고 투자자의 소송장등에 의하면 5백만 달러에 육박하는 것이다. 한인사회에 잘 알려진 성공한 사업가인 A씨는 지난 6일 전화통화를 통해 토니 박형제가 지난 2001년 911테러당시 백악관 비밀경호국으로부터 ATM사기관련 경고전화를 이미 받았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A씨는 ‘나도 토니 박 형제에게 ATM사업과 관련, 2005년 중반 20만 달러를 투자했다.

▲ 1999년 6월 ATM 사업을 위해 머니마케팅이 팜데저트내셔널뱅크에 제출한 사업신청서 - 이 서류에서 토니 박의 이름은 ‘JAE HEGNG PARK’ 로, 토니 박의 형 에락 박의 이름은 ‘ERIK PARK HANG YOUNG’ 로 기재돼 있다. 토니 박의 한국이름은 박재형이며, 다른 공문서확인결과 영어로는 PARK JAE HEONG 로 표기하고 에릭 박의 한국이름은 박항용이며, 다른 공문서확인결과 영어로는 ‘PARK HANG YONG’로 표기한다. ATM 사업신청서에 기재한 이름은 토니는 HEONG를 HEGNG, 에릭은 자신이 늘 사용하는 ERIC의 표기를 ‘ERIK’로, YONG을 ‘YOUNG’으로 기재했다. 토니박은 도널드 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고, 에릭 박은 뉴저지주정부에 제출한 넥스트란 법인서류에는 ‘ETHAN PARK’를 사용하는등 이들은 여러개의 사용하고 있다.

▲ 1999년 6월 ATM 사업을 위해 머니마케팅이 팜데저트내셔널뱅크에 제출한 사업신청서 – 이 서류에서 토니 박의 이름은 ‘JAE HEGNG PARK’ 로, 토니 박의 형 에락 박의 이름은 ‘ERIK PARK HANG YOUNG’ 로 기재돼 있다. 토니 박의 한국이름은 박재형이며, 다른 공문서확인결과 영어로는 PARK JAE HEONG 로 표기하고 에릭 박의 한국이름은 박항용이며, 다른 공문서확인결과 영어로는 ‘PARK HANG YONG’로 표기한다. ATM 사업신청서에 기재한 이름은 토니는 HEONG를 HEGNG, 에릭은 자신이 늘 사용하는 ERIC의 표기를 ‘ERIK’로, YONG을 ‘YOUNG’으로 기재했다. 토니박은 도널드 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고, 에릭 박은 뉴저지주정부에 제출한 넥스트란 법인서류에는 ‘ETHAN PARK’를 사용하는등 이들은 여러개의 사용하고 있다.

리만브라더스에서 투자한 업체이므로 믿을 수 있다는 말에 투자했지만 모든 것이 거짓말임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돈이 빼돌려진 상태였다. 소송을 하려 했지만 이미 소송한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투자금의 10% 정도의 합의금만 받았다는 말을 듣고 소송에서 이겨도 변호사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아 소송을 안 했다. 뉴욕한인 회장을 지낸 모 인사도 40만 달러 상당을 투자했지만 소송을 하지 않았다.

투자자중 절반정도는 소송을 하고 절반정도는 소송을 안했다. 델리업자들이 많은 것은 토니박형제의 부탁으로 ATM기계를 가게에 설치토록 허용해줬던 것이 인연이 된 때문이다. ATM 기계를 설치했을 때도 토니 박 형제들이 매달 지급해야 할 수수료를 제때 주지 않아 일부 델리업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들 형제는 아주 젊은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는 지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으로는 한인사회가 이토록 무기력한가? 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인 B씨는 6일 전화통화에서 ‘솔직히 말하면 투자금 날려도 밥 먹고 살 수는 있을 정도의 형편이다. 하지만 내가 소송을 한 것은 돈을 돌려받으려는 목적보다도 젊은 친구들의 죄질이 너무나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아는 몇 분은 40-50만 달러씩 투자했다. 피해자들 중 14명 정도는 별도로 모임을 갖고 대책마련에 나서기도 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 소송을 하지 않고 내 돈을 내고서라도 신문광고를 통해서 토니박 형제의 사기의혹을 밝히고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으려고 했었다. 다른 주주들이 말렸기 때문에 광고는 내지 못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혼자서 소송을 제기했다. 주주총회도 했었지만 주주총회장에 갔더니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주주라며 참석, 토니 박편을 들어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었다’고 밝혔다.

투자금의 5%도 안 되는 돈으로 합의하기도

투자자 C씨도 4일 전화통화에서 ‘제가 아는 분은 소송중 디스커버리를 통해 토니 박측이 시티뱅크와 우리은행 등 4개 은행에 개설한 투자법인의 계좌입출금내역, 즉 뱅크스테이트먼트를 모두 받았다. 그 서류의 복사비용으로만 4천 달러가 들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고, 이를 통해 돈이 다른 데로 빠져나갔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우리가 투자한 돈에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토니박의 어머니 양영숙씨에게 50만 달러가 지급된 사실도 이 은행거래내역을 통해 밝혀졌다. 토니 박측이 데포지션을 받기로 예정된 날, 원고변호사가 뱅크스테이트가 든 큰 박스를 들고 데포지션장에 들어가려다 토니 박측과 마주쳤다. 피고측이 박스에 무엇이 들었느냐고 물었고, 당신들 뱅크스테이트먼트라는 답변을 들은뒤, 토니박측은 그날 데포지션을 받지 않고 사라진뒤 곧바로 합의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 뱅크스테이트 먼트를 증거로 제시하고 추궁하려 했으나, 이를 알고 도망간 것이며 그 문서의 비밀이 드러날 경우 파장을 우려, 곧바로 합의하려 한 것이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했던 투자자 D씨는 한사코 통화를 거부했고, 다른 지인을 통해 ‘다시 떠 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이라며 ‘소송을 해서 합의를 했지만 돌려받은 돈은 2-3만달러정도로 사실상 5%도 안됐다’고 4일 알려왔다.
또 다른 투자자 E씨는 3일 전화통화에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날리게 되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생각해보라.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그냥 마음을 추슬렀지만 내 친구 1명은 그 일로 조울증증세를 보여 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면서 사업이 망가졌다. 한번 잘 살펴보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순경 열 명이 도둑 한명을 막아내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알려달라’고 말했다.

‘마당쇠관련 세금보고서 몰래 제출만 내 잘못’시인

한편 토니박은 마당쇠리스관련의혹에 대해, 복수의 주변사람들에게 ‘나는 마당쇠의 세금보고 3년 치를 마당쇠 몰래 뉴뱅크에 제출한 것 외에는 죄가 없다. 세금보고 3년 치를 해당법인 몰래 은행에 제출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고 밝히고 ‘나머지는 억울하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토니 박은 ‘마당쇠측이 건물주에게 렌트비가 몇 달 밀렸고, CO도 받는다는 계약조건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건물주는 마당쇠를 내보내고, 돈을 많이 주겠다는 테넌트에게 리스를 주려고 한 것이다. 지난해 8월 건물주가 리스를 연장하려 한 것도 실제 계약하려는 것이 아니라 밀린 렌트비를 받으려는 의도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확인결과 이 건물은 뉴욕시 건물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마당쇠뿐 아니라 건물의 다른 일부도 CO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법원에 제출된 증거에 따르면 랜로드는 지난해 8월 정식으로 마당쇠 측에 리스연장을 통보하고, 계약서까지 보냈음이 사실로 밝혀졌다. 또 렌트비에 대해 마당쇠측은 ‘나는 다 냈지만, 내 계약이전 다른 업주와 서브리스로 몇달 있을때 낸 돈에 대해 랜로드가 이의제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니박은 ‘자신의 아내가 캐더린 왕’이라고 밝히고 ‘아내가 새 테넌트계약서에 코사인한 것은 아내가 맨해튼보석상에서 일하면서 연봉 백만달러이상을 받기 때문에 크레딧이 좋다. 그래서 새 테넌트를 위해 코사인을 해준 것이지 절대 내가 렌트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는 지난 기사에서 ‘토니 박의 아내로 추정되는 캐더린 왕이 코사인했다고 소송장에 기록돼 있다’고 보도했다. 소송장에 토니 박의 아내로 추정된다고 기록돼 있었고, 토니 박 관련 부동산 서류중 두 사람 모두가 관계된 서류를 검토했으나 ‘남편과 아내’등 부부관계가 명시된 경우가 없었으므로 부부관계로 단정할 수 없어 소송장대로 ‘아내로 추정된다’고 보도한 것이다. 토니 박 주장대로라면 ‘세금보고서 은행 불법제출’외에는 랜로드와 새 테넌트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부동산브로커인 셈이다.

끝없는 사기행각과 먹이사냥에 피해자 급증

그렇다면 토니 박일가의 의심스런 행각은 2005년- 2006년 ATM 투자사기의혹으로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2008년과 2009년 ATM투자에 따른 소송이 제기된 이후부터 사기의혹을 받을 수 있는 또다른 일들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ATM 사기사건으로 거액배상합의를 하자 곧바로 ATM 투자유치를 통해 만회에 들어갔고, ATM 투자사기의혹으로 소송을 당하자,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먹이사냥에 나선 셈이다. 주로 가까운 사람이 그 대상이다. 심지어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사건마저 존재한다. 그리고 2010년대이후 지금까지 부동산 브로커로 일하면서 그가 중개한 매매나 리스중 일부는 소송으로 이어졌다.

마당쇠리스 관련의혹을 제외하고도 최근에도 그가 중개한 건물들이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하지만 롯데뉴욕팰리스호텔은 토니 박을 호텔 내 매장을 입점 시키는 사업을 전담하는 브로커로 선정했고, KTB금융그룹도 그를 에이전트로 선정하는 등 한국에서는 유능한 브로커로 인정받고 있다. 희안하게 한국기업들에는 토니가 먹혀들어가는 것이다. 토니 박 일가의 스토리는 극히 일부분만 살펴봐도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과연 토니 박의 참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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