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어느 라티노 청년의 감동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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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개의 ‘종이학’이 저를 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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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을 올린 빌리와 미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실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잊을 때가 있다. 남이 어려울 때 할 수 있는 한 도와주는 일이다. 무엇보다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일처럼 사랑스러운 일은 없다. 지난 20일 토요일 오후 2시. 코리아타운 윌셔 가와 킹슬리에 자리 잡은 웅장한 성 바실 가톨릭 성전에서 장엄한 결혼 행진곡이 파이프 오르간 연주로 울려 퍼졌다. 얼굴에 미소를 띤 백인 여성 신부 미셀(Michelle)이 라티노 신랑 빌리(Billy)의 팔짱을 끼고 약 100명의 한인들과 라티노들 하객들의 축하 박수를 받으며 새 출발을 했다.
이를 바라본 앞자리에 중년 여성 애나 리베라의 눈가에 기쁨의 이슬이 맺혔다. 그녀에게는 하나뿐인 아들 빌리가 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유럽의 왕자들처럼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날의 화려한 결혼식은 주위 한인들의 축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날 애나의 아들 결혼식에는 멀리 뉴욕과 오리건 주 등에서 친척들이 와주었다. 친척들은 약 1시간 동안 대성전에서 진행되는 결혼 미사를 보면서 ‘우리 친척들 중에서 이처럼 멋진 결혼식은 처음이다’면서 부러워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애나(Ana)는 코리아타운 우리종합병원(원장 로리 & 알버트 안)의 간호사이다. 그녀는 우리 병원에서 벌써 26년째 일하고 있다.

이날 결혼식을 올린 청년 빌리는 우리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원인 어머니 ‘애나’씨의 아들로 평소 어머니를 도와 우리병원의 빌링 업무를 파트타임으로 도와왔다. 빌리는 평소 주위에서 도움을 청하면 무슨 일이든 말없이 도와주는 고마운 청년이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어느 날 빌리는 갑자기 만성백혈병 진단을 받아 항암 치료를 받게 됐다. 라티노 청년의 백혈병 소식을 들은 한 한인 여성은 빌리의 쾌유를 기원하며 만든 ‘1천 마리 종이학’을 선물해 모녀를 감동하게 만들었다.
평소 의료 관련 관계로 이 청년을 알고 지내던 이 한인 여성은 20대 청년이 갑자기 백혈병이라는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서 “마음으로나마 위로를 주기 위해 힘을 내라고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다” 면서 “평소 한인들을 위해 말없이 도와주던 라티노 청년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되기를 바란다.”라는 뜻에서 종이학을 만들었다고 했다.

‘종이학’을 선물 받은 빌리는 “내 병이 금방 나을 것만 같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에게 종이학이 전달된 날 간호사인 어머니 애나는 “서양에는 이런 미담이 없는데 동양에서의 종이학이 소원을 풀어주는 의미라고 처음 들었다”면서 “아들의 병이 확실히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라며 눈물을 흘리며 크게 반가워했다.

빌리의 라티노 친구들의 우정도 깊다. 빌리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보통 머리털이 빠지게 된다. 이를 본 그의 친구 3명이 친구의 투병의지를 높이고, 쾌유를 빌기 위해 동시 삭발을 하고서 주위에 골수기증 캠페인도 벌여 주위에 감동을 주었다. 동시 삭발을 한 주인공들은 빌리의 친구들인 조셉 에스코바 (Joseph Escobar), 웨너 고메즈( Werner Gomez), 에드왈도 카데나스 (Edwardo Cardena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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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가 투병중일 때 동시 삭발을 하고서 주위에 골수기증 캠페인도 벌인 친구들

당시 이를 보고 우리병원의 원장 로리 안 박사는 “친구들의 우정이 깊다고 들었으나, 친구들이 함께 삭발을 할 정도로 우정이 돈독함에 놀랐다”면서 “라티노들의 우정에 대해 새삼 부럽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원장인 알버트 안 박사도 “빌리라는 청년은 절대로 ‘노우’라는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남달랐다”면서 “평소 남을 돕는 성격이기에 친구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아왔지만 솔직히 친구들이 삭발까지 할지는 몰랐다”라며 놀라워했다.

이 같은 빌리는 천성이 너무나 착해 여자 친구 미셀도 남자친구 간호에 지극 정성이었다. 지난 2013년 빌리가 처음 백혈병 진단을 받는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남자 친구가 온 밤을 지내는데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여자 친구 미셀은 차가운 응급실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함께 밤을 새웠다.

빌리의 친척들도 남달랐다. 친척들이 서로 골수기증 검사에 나서기까지 했으며, 나아가 롱비치 공원에서 빌리를 위한 ‘골수기증 캠페인’도 벌여 친족 간의 연대감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주위의 각별한 사랑으로 빌리의 만성백혈병은 극적으로 호전되어 지난해 드디어 여자친구 미셀과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이 같은 소식을 들은 우리병원에 드나드는 한인들은 ‘빌리의 결혼식을 행복하게 치러주자’고 마음을 정했다. 지난해부터 결혼식을 올릴 성당을 예약하고, 피로연 계획도 세웠다. 결혼 미사에 아름다움을 주기 위한 파이프 오르가니스트와 미사 예절을 부르는 연주자도 물색했다. 결혼 축의금도 미리 걷어 어머니 애나에게 주었다.
아들 빌리의 결혼식을 치른 애나는 “한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코 이처럼 훌륭한 결혼식을 올릴 수가 없었다”면서 “우리 친척들로부터 처음 본 멋진 결혼식이라고 많은 부러움을 받았다”라며 흐뭇해하였다.

‘종이학’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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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여성이 만든 종이학을 들고 라티노 청년이 흐뭇해 하고 있다.

우리병원의 간호사 애나는 중남미에 위치한 엘살바도르에서 1979년에 미국에 이민 온 여성으로 지난 1991년 6월부터 우리종합병원 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에는 한인 간호사들과 갈등이 있었으나 그녀 특유의 친화력으로 한인 간호사들도 따르게 됐다고 한다.

항상 말이 적은 대신 살풋한 미소로 환자들을 대해 어떤 환자는 “딱딱하지 않아 편안한 기분을 준다”라고 말한다.
지난 26여 년 동안 수많은 한인 환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제는 한인들의 표정만 봐도 감을 잡을 정도이고, 우리말도 곧잘 알아듣는다. 무엇보다 한인 환자들의 마음을 꿰뚫을 정도로 간호사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우리병원의 원장 알버트 안 박사와 로리 안 박사는 “간호사 애나는 여러 번 오는 한인 환자들의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면서 “우리병원에 오는 한인 환자들도 애나의 간호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녀는 우리병원에 오는 환자들에 대해 보험 환자인지, 캐시(cash) 환자인지 메디칼 환자인지도 구분하여 기억할 정도로 세밀한 면을 보이고 있다.

애나는 “처음 우리병원에 일하기 시작할 때 이처럼 오래 일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벌써 26년이 지났다”면서 “한인들의 정이 남달라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어떤 환자들은 우리 병원에 올 때 과일이나 떡을 가지고 와서 애나에게 건네준다. 보통 미국인들은 떡을 좋아하지 않지만 애나는 떡을 좋아할 정도로 한인들을 닮았다. 그녀는 “처음 떡이 생소했으나 그 맛의 진가를 이해하고 나니 맛도 더했다”라고 말했다.

간호사 애나는 특히 한인 환자들 사이에서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간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한인 환자들은 애나로부터 주사를 맞고 나오면서 “언제 주사를 놓았는지 모를 정도”라면서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 환자는 “왼쪽 팔 어깨 부분에 주사를 놓는 것 같은데 손으로 약간 꼬집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제 주사를 놓는가 보다 했는데 어느 틈엔가 주사를 놓았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병원의 안승록 원장이나 로리 안 박사도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의사로 알려졌지만 애나의 솜씨는 확실히 다르다고 했다. 로리 안 박사는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다는 소문 때문에 어떤 때는 다른 병원의 환자들까지 일부러 우리 간호사 애나한테 주사를 맞기 위해 우리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녀는 간호사로서 주치의와 함께 환자를 돌보고 있는데, 그 이외에도 우리병원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할 정도로 부지런하다. 주치의가 기록한 환자 차트 정리는 물론 보험 관계나 실험실에 보내는 각종 서류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
어떤 날은 애나가 집에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 와서 우리병원 식구들의 점심을 대접하기도 한다. 카레라이스는 그녀의 특기이기도 하다. 환자로 왔던 B 씨도 카레라이스를 대접받기도 했는데 “자기 나라 음식도 아닌데 일품이었다”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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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병원 로리 안 박사(오른쪽)와 간호사 애나

응급환자가 생겼을 경우, 집에서 쉬는 애나에게 주치의가 연락을 하면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불평 없이 즉각 달려 나온다. 어떤 때는 마켓을 보다가도 주치의의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병원을 달려 나올 때도 여러 번 있었다. 애나는 ‘환자들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라는 의료인의 사명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실천하고 있다.
한때 우리병원의 사정이 좋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낌새를 미리 눈치챈 애나는 월급에 대해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병원의 로리 안 박사와 알버트 안 원장은 “우리에게 애나 같은 간호사가 있어 정말 복을 받은 기분이다”면서 “애나가 이 병원을 위해 헌신하는 만큼 우리가 더 많이 해주지 못하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라고 애나에 대한 신뢰와 고마움을 밝혔다.
이날 행복한 결혼식을 마친 빌리와 미셀은 2주간 자동차로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 여러 곳을 돌아보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빌리는 떠나면서 이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저에게는 백혈병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신 가장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분들을 존중하고 보답하는 길은 제가 백혈병이란 병을 완전히 이겨 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곁에서 우정을 보여주는 친구들, 나를 믿고 이해해 줄 좋은 사람 아내 미셀이 제 곁에 있으므로 저는 백혈병 환우가 아닌 건강한 남성으로 성장해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분은 제 곁에서 백혈병이라는 병을 이길 수 있게 나를 두 번 탄생하게 해준 어머님, 그리고 1천 개 종이학으로 나에게 용기를 돋우게 해준 한인 여성분 그리고 우리병원 원장님들과 도와준 많은 한인들에게 남은 일생 동안 감사의 말을 계속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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