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 시대의 종언…버라이즌이 공식 새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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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시대의 종언…버라이즌이 공식 새 주인

‘시대가 바뀌면 역사도 바뀐다?’

1990년대에 ‘인터넷의 시작’으로 통했던 야후가 23년 만에 종말을 맞았다. 인터넷이 세상에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야후!를 알게 됐다. 그 야후!가 30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인터넷 그 자체’로 불리던 야후(Yahoo)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미국 언론들이 지난 6월 13일 전했다. 이날 자로 미국 최대 통신사업자 버라이즌(Verizon)이 야후의 인수를 공식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버라이즌은 몇 개월간의 불확실한 협상 끝에 야후의 핵심 자산을 44억 8천만 달러(한화 5조 556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완료했다고 버라이즌과 야후 양사가 이날 동시에 발표했다. IT 매체 더 버지는 “오늘부터 야후의 공식 새 주인은 버라이즌”이라고 전했다.
<김현(취재부기자)>

02야후의 머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는 CEO 자리에서 사임했다. 그녀는 2천 300만 달러(259억 원)에 달하는 퇴직급여 패키지를 받게 된다고 CNN 머니는 전했다. 야후는 성명을 통해 “버라이즌 은 메이어가 앞으로도 (회사를 위해) 노력해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버라이즌에 인수된 야후와 AOL은 ‘오스(Oath)’라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 ‘오스’는 허프포스트, 야후 스포츠, 테크크런치 등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알토, 브라이트롤 등과 같은 서비스도 자신의 우산 아래 거느리게 됐다.

버라이즌의 목표는 야후의 방대한 기존 네트워크를 통해 페이스북, 구글과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본격으로 경쟁을 펼치는 것이라고 CNN 머니는 예상했다. 버라이즌은 야후 인수합병 이후 약 2천100명의 직원을 감원할 계획이다. 전체 직원의 약 15%에 해당한다.

방대한 기존 네트워크 통해 본격적 경쟁 예고

야후에 남게 되는 조직은 알타바로 다시 명명된다. 알타바는 중국 전자상거래 거대 기업 알리바바 의 야후 지분을 관리하는 일종의 지주회사(홀딩 컴퍼니)로 기능하게 될 전망이다.
버라이즌의 야후 인수는 애초 지난해 인수 발표 이후 약 1년 만에 마무리됐다.

한때 야후는 IT 기업이자 인터넷 유저를 이끄는 가이드로서 야후는 닷컴 버블 직전 시장가치가 1천억 달러 (한화 약 112조 원)에 달할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 하기도 했다. 야후는 IT 버블 붕괴 이후 모바일 중심 기업들의 춘추전국 시대가 도래한 이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변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5년간 야후를 이끌어온 메이어 CEO는 유명 TV 앵커인 케이티 쿠릭과 같은 미디어 업계 거물을 영입하고 젊은 세대에 어필하기 위해 텀블러 인수 등 사업 다변화를 꾀했으나 결국 버라이즌에 인수되면서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해 7월 24일 야후 이사회는 핵심인 인터넷 사업과 부동산을 미국의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즌에 48억 달러(약 5조 5천억 원)에 팔기로 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여러 언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NYT에 따르면 매각 이후 야후에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 야후 재팬의 지분, 소량 의 특허 등 410억 달러의 자산만 남게 된다.

1994년 설립된 야후는 월드와이드웹의 초창기에 웹사이트를 분류한 디렉터리 서비스로 시작했다. 이후 검색과 이메일, 쇼핑, 뉴스 등의 기능을 늘려갔다. 서비스는 무료였으며 페이지에 보이는 광고로 수입을 올렸다. 한때는 이 모델이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야후는 지속적 혁신을 추구한 후발 주자 구글(google)과 페이스북(facebook)에 밀리고 말았다.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에 밀려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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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후를 인수하게 된 Verizon 사

원래 야후는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 등 2명의 스탠퍼드 대학원생이 창업했다. 이보다 몇 년 뒤에 나온 구글은 웹에서 뛰어난 검색 결과를 보여줬다. 야후는 첫 CEO인 티머시 구글이 있을 때인 2000년 6월 구글의 검색엔진을 4년간 야후 웹사이트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도록 계약했다. 야후는 구글을 사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자체 검색 도구를 개발하는 길을 택했다.

야후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고전했다. 웹 포털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구글은 검색엔진과 고수익의 검색광고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 인터넷 기업이 됐다.

2007년 세멜은 주주들의 압력 끝에 물러났고 공동창업자인 양이 CEO로 취임했다. 양 CEO는 이듬해 마이크로소프트의 446억 달러짜리 인수 제안을 거절해 많은 주주를 들끓게 했다.

야후는 이후에도 3년간 2명의 CEO와 직무 대행을 거쳐 구글의 검색 분야 임원으로 IT 계의 유명 인사였던 마이어를 2012년 7월에 기용했다. 마이어는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지 못한 야후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야후의 검색엔진을 혁신하겠다면서 1천 명을 배치했고 오리지널 비디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유명 TV 앵커인 케이티 쿠릭도 고용했다. 음식, 여행, 기술 같은 주제의 ‘디지털 매거진’도 열었다. 마이어는 지금으로서는 실패로 판명된 텀블러를 포함한 수십 개 기업을 인수했다.
야후는 2005년 알리바바의 주식 40%를 현금 40억 달러와 야후의 중국 인터넷 사업 자산으로 샀다. 그나마 투자자들을 달랜 성공 케이스다.

야후의 시대는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2014년 알리바바가 상장했을 때 야후는 지분을 많이 처분했지만, 여전히 알리바바 지분 15%, 310억 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마이어는 알리바바 지분을 별도의 회사로 분사하려는 시도도 했지만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좌절됐다. 이와 함께 야후의 매출과 순이익은 지속해서 감소했다.

헤지펀드인 스타보드 밸류는 야후의 핵심 사업을 매각하라고 압박했다. 야후 이사회는 결국 지난 2월에 인수 제안을 하기로 했다.

야후의 시대는 끝났지만 ‘야후의 사람들’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슬랙, 왓앱스, 링크 트인 등과 같은 모바일 기업이 번창하는 데 ‘야후맨’들이 모두 주춧돌을 놓았다.
야후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인 댄 로젠스빅은 “야후맨들은 실리콘밸리와 전 세계 도처에 남아 디지털 라이프 스타일의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야후의 전직 임원이었던 댄 피니건은 지나고 보니 야후는 성공하기 어려운 너무 많은 분야에서 경쟁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코카콜라나 펩시가 돼야지 RC 콜라여서는 안 된다. (야후 경영진은) 많은 영역에서 RC 콜라가 되도록 했다”면서 “야후에서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일했던 사람들에게는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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