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선고만 남은 ‘세기의 이재용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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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12년 구형한 이재용을
법원이 과연 어떤 이유로 풀어줄까?

 ‘증거부족? 국가경제?’

이재용‘세기의 재판’으로 관심을 모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1심 심리가 지난 7일 다섯달에 걸친 대장정 끝에 마무리됐다.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5명에 대한 구형과 함께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삼성 측의 치열했던 공방도 종료됐다. 재판부는 오는 25일 오후 2시30분에 선고기일을 열고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이에 특검 측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12년형을 구형하며 유죄를 확신하고 있고, 삼성 측은 무죄를 자신하고 있다. 한국 법조계에서도 유무죄를 놓고 의견이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과연 법원은 이재용 전 부회장의 혐의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사건의 핵심 쟁점을 <선데이저널>이 짚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 3월 9일 첫 공판준비기일로 시작된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은 지난 7일까지 152일 동안 3회의 준비기일과 53회의 정식 공판기일로 진행됐다. 뇌물수수자로 지목된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과 맞물려 있고 삼성 측이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양측 공방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3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수사기록이 검토됐고 총 59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다. 전날 시작한 재판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밤샘 재판도 속출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이 진행될수록 특검은 ‘차고 넘친다던 증거’를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특검이 신청해 증언대에 세운 주요 증인들에게서도 혐의 입증에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의 ‘부정한 청탁’을 입증해줄 거라 기대를 모은 특검 측 신청 증인들은 대부분 삼성의 경영현안에 청와대의 개입이나 지시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청와대 각 수석실의 실무진부터 고위관계자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외압이 없었다고 증언해 재판부가 고심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의 ‘심복’이자 대통령의 말을 일일이 수첩에 받아적었다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조차 “삼성물산 합병 등과 관련해 대통령의 지시나 언급이 없었다”며 “사석에서조차 없었다”고 증언했다. 1박2일간 증인신문이 계속됐지만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이 삼성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 60권이 넘는 ‘안종범 수첩’ 어디에도 정유라나 삼성 합병에 대한 기재가 없다는 사실은 삼성 측에 유리한 정황이다.

특검, 청 문건으로 마지막 승부수

특검이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비밀작전으로 증언대에 세운 정유라조차 “엄마가 말을 ‘내 말처럼’ 타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말의 소유권이 삼성에 있었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에 부합하는 증언이다. 다만 정유라는 최순실이 삼성 모르게 말 교환계약을 시도했다는 삼성 측 주장과 달리 “삼성이 말교환계약을 몰랐을 리 없다”고 증언해 특검 주장에도 힘을 실었다. 정유라는 대부분의 질문에 “엄마가 알 지 나는 모른다”, “엄마에게 물어보라”, “나는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등의 답으로 일관했다. 이후 핵심 증인이었던 최순실은 증언을 거부하며 딸인 정유라를 새벽2시에 차에 태운 특검을 비판하는 데만 주력, 의미있는 증언이 나오지 못했다.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은 세차례 불출석해 증인신문이 불발됐다.

53차례의 공판동안 유죄를 끌어낼 만한 결정적 증거는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평가다. 직접 증거가 나오기 힘든 뇌물죄의 성격을 고려할 때 정황 등 간접증거가 강력해야 하지만 안 전 수석이 대통령의 말을 받아적었다는 ‘안종범 수첩’에조차 특검의 손을 들어줄 ‘합병’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았다. 안종범 수첩은 키워드 형태의 단어만 나열돼 있어 정황을 유추하기에도 모호하다는 법조계의 지적이 계속됐다. 재판부 역시 간접증거로만 채택했다.

마지막 특검의 승부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된 ‘청와대 문건’ 이었다. 청와대가 특별 생방송까지 감행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삼성 측의 긴장감 역시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증인으로 나온 일명 ‘청와대 문건’의 작성자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 이영상 검사(대검찰청 범죄정보1담당관)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 지시로 작성한 일명 ‘삼성 리포트’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쓴 것으로 국가경제 관련 리서치 차원이었다”고 증언했다.

삼성을 도우라는 지시도 받지 못했으며, 언론 보도를 보고 작성한 메모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당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부터 ‘삼성에 대해 검토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이어 “정부에서 삼성에 어떠한 도움을 주더라도 당연히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에서 검토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문건에서도 핵심쟁점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메모는 발견되지 않았다.
삼성 측도 결심공판 최종변론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삼성 측 송우철 태평양 변호사는 “특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했지만 특검의 추측만 난무했고 승계작업에 대해 특검은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삼성 측 “차고넘친다는 증거 어딨냐”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출신인 송 변호사는 변호인을 떠나 한 사람의 법률가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는 점을 먼저 밝혔다. 그러면서 “특검의 주장이 법률가로서 당연히 치열하게 고민했어야 할 법적 논증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rgumentum ad populum)를 범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때”라고 운을 뗐다.

▲박영수 특검은 피고인들의 혐의 부인 등 태도에 괘씸죄를 물었고, 재판부에도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박영수 특검은 피고인들의 혐의 부인 등 태도에 괘씸죄를 물었고, 재판부에도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삼성 측은 형사소송법 제307조가 선언하고 있는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꺼내들었다.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공격한 것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나 볼 법한 공소장이라고도 강하게 비난했다. 송 변호사는 “증거재판주의 원칙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우려가 된다”며 “증거 없는 사실인정이나 법리에 반하는 판단이 이뤄지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이어 “이 사건 공소장을 보면 막상 핵심이 되는 범죄사실 부분에 이르러서는 ‘~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공소장 26쪽), ‘~을 이해하고 있었다’(26쪽), ‘~라고 마음먹고 ~을 수락함으로써’(27쪽, 28쪽, 30쪽, 36쪽, 38쪽), ‘~하기로 마음먹었다’(42쪽, 45쪽)는 등 특검의 일방적인 추측만이 난무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본 변호인의 기억에 이런 방식으로 작성된 공소장은 특검이 되새김질하는 에버랜드 사건이 일어나기도 더 전에, 바로 이 건물에서 적지 않게 읽어 보았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꼬집었다.
또한 “지난 공방기일에서 재판장님께서 3차 독대의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냐고 물으시자, 특검은 ‘정확한 워딩에 대한 증거는 없고 취지를 그렇게 표시한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며 “아무리 공소장이 논문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기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공소장 부실을 거듭 지적했다.

박영수 특검 “정의 살아있음을 보여달라”

마이크를 잡은 박영수 특별검사는 A4용지 12장 분량의 논고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렸다. 박 특검은 피고인들의 혐의 부인 등 태도에 괘씸죄를 물었고, 재판부에도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박 특검은 “피고인들의 재판 태도를 보며 우리나라 1등 기업 삼성이 국가와 국민보다 그룹 총수만을 위하는 기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피고인들은 ‘이 부회장은 관여한 사실이 없다’며 실체적 진실을 왜곡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피고인들은 승계 작업이라는 것은 특검이 만든 가공의 틀이라거나 피고인이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강변하는 등 사실과 증거에 관한 근거 없는 주장이나 변명으로 디테일의 늪에 빠지게 해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헌법적 가치’,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역사적 상처’, ‘정의’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사건의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

논고를 마친 박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기업인들(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에게 검찰이 구형한 최대 형량은 징역 4년이었다. 검찰이 뇌물공여 혐의자에게 징역 10년 이상을 구형한 것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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