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도] 탈북소녀 지구를 반바퀴 돌아 미국에서 극적으로 부모 만나다

이 뉴스를 공유하기

중국에서 헤어진 딸아이가 10년만에 보내온 카톡문자

‘엄마, 나 진양이예요’

10년전 당시 8세로 중국 땅에서 부모와 생이별을 했던 한 탈북 소녀가 미국에서 극적으로 부모를 만나 자유 대한민국으로 돌아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스토리는 007작전보다 더 멋지게 최근 중국-미국-한국으로 이어지면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부모를 찾아 페이스북과 카톡을 통해 부모에게 생사 소식을 전하고 10년만에 재회한 애달았던 사연을 따라가 보았다.
(성진 취재부 기자)

메인지난 2008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무사히 귀환한 탈북자 최진철씨(가명)와 부인 김향순씨(가명)는 가슴 속에 멍에를 질머진 채 살고 있었다. 중국 땅에 어린 딸 진양(가명)을 잃어 버리고 왔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가족 모두가 10여년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을 때 최씨 부부는 조만간 한국으로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의 삶은 매일매일이 긴장속에 살아야 했다. 중국 공안원에 체포되면 강제북송 당하기 일쑤이고, 비밀로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보위부 요원들에 들키면 역시 북송 당하기 때문이다. 한곳에 오래 있지 못하고 수시로 옮겨 다녀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쫓기는 몸이 되어 황급히 피해 다니던 중 졸지에 어린 딸 진양(가명)을 길 거리에서 잃어버리는 처지가 되었다. 여러 날을 수소문하고 찾아보았으나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최씨 부부는 할 수 없이 계획대로 중국내 한국 공관에 들어가 2008년에 대한민국으로 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정착을 하면서도 최씨 부부는 중국 땅에서 버려진 어린 딸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어지곤 했다. 그럴때면 함께 찍은 가족 사진에서 딸의 모습을 보며 한없이 울곤 했다.
중국 땅에서 딸과 헤어진지 어언 10년이 다가오는 지난 이른 봄, 부인 김진순씨의 핸드폰 페북에 이상한 문자가 떴다.
‘엄마! 나 진양이에요!’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딸이 보낸 카톡 문자였다.

기적처럼 나타난 카톡 문자

모녀는 휴대폰 카톡을 통해 10년만에 재회했다. 아기때부터 똑똑하다는 소문을 들은 진양은 페북에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친한 친구의 이름으로 만들어 ‘친구를 찾는다’고 페북에 올렸다. 이 글이 아머니 김진순씨의 친구가 우연히 보고 이상했지만 연락을 했다. 그래서 딸과 어머니는 극적으로 연결됐으며 휴대폰을 통해 카톡으로 소통하기에 이르렀다.
김진순씨는 딸이 어떻게 미국에 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10여년전 졸지에 중국 땅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탈북 소녀 진양은 무서움과 두려움에서 길거리에 고아로 버려져 울고 있었다. 마침 순찰을 하던 공안원이 울고 있는 진양을 중국 소녀로 알고 근처 보호소에 위탁시켰다.
보호소에서는 이 소녀를 지방 공연단에 다시 위탁시켰다. 공연단에서 재능과 재주가 많은 진양을 훈련시켰다. 10년이 지나면서 진양은 공연단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인이 되었다.

지난해 이 공연단은 미중 문화교류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 순회 공연단에 선정됐다. 진양에게도 중국 여권이 발급됐다. 북한 탈북 소녀 ‘진양’이 중국 공연단 소속 중국 공민이 된 것이다.
미국으로 향하는 여객기에서 진양은 미국에 가면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부모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슴이 벅찼다. 자유의 나라 아메리카에서 부모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생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에 도착한 진양은 우선 휴대폰으로 외부와 전화 통화나 일반적 연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대로 외부 출입은 못하고 단장의 허가가 있으면 할 수 있었다. 또 호텔내에서는 자유롭게 지낼 수가 있었다.
페북을 통해 극적으로 어머니와 연결된 딸 진양은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미국에 와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했다. 부모인 최수철씨와 김진순씨는 생판 가보지도 않은 미국에 가서 어떻게 딸을 구할지 처음 막막했다. 이같은 일은 남이 모르게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인권단체에 도움을 청하기로 정했다.

지난 6월에 LA에 있는 인권단체와 연결이 되었다. LA인권단체 T관계자는 다시 미 동부 지역의 인권단체 본부에 연결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탈북소녀 탈출작전’이 시작됐다. 동부지역 인권단체 D는 만약을 위해 관련 기관들과 협의를 진행시켰다.

만약 탈출작전이 잘못되면 미국 중국 한국 3국간에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관계자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보안을 철저히 유지시켰다. 중간에 탈출작전이 실패로 돌아 갈 경우, 뉴욕타임스와 LA타임스 등 미주류 언론을 통한 인도적 구명작전도 세웠다.

‘외교적 문제가 골치’

7월중으로 D-Day를 정했다.
D-Day 3일전, 진양이의 아버지 최수철씨가 미국 행 여객기에 탑승했다. 동부지역 공항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인권단체 관계자가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관계자를 만난 최수철씨는 곧 서울에 있는 부인에게 미국 도착을 알렸고, 부인은 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날 밤 딸과 아버지도 극적으로 통화가 이뤄졌다. 곧이어 ‘탈출작전’에 대한 숙의가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북한동포들이 중국으로 탈북해 지역 한국 공관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가는 방법과, 제3국을 통해 멕시코나 캐나다를 통해 미국에 들어와서 정치망명이나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진양’이의 경우는 본래 북한 국적자이나, 현실적으로 중국 여권으로 미국에 왔기에 중국인이 한국으로 망명을 하는 경우가 된 것이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적, 딸은 중국 국적으로 국제법상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지금까지 이 같은 예는 알려진 경우가 없다.

운명의 D-Day. 공연을 마치고 밤에 호텔로 돌아온 진양의 핸드폰에 문자가 떴다.
“보고 싶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진양은 재빨리 호텔문을 빠져 나와 아버지가 타고 있는 택시로 달려 갔다.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난다음 LA인권단체 관계자는 휴대폰에 뜬 문자를 읽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탈북 소녀 대한민국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보안상 기사 내용의 일부분은 가명과 가제를 사용했습니다]

————————————————————————————————————————————————————

‘남한 사회 탈북자라는 선입견이 가장 문제’

북한을 탈북해 한국에 살고있는 탈북자들은 어떻게 돈을 벌고 또 보통 얼마를 받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 왔다고 해서 무조건 다 잘 사는 건 절대 아니다. 당연히 일을 해야만 소득이 생기는 것이다. RFA방송이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나영이라는 8년차 탈북자는 “저는 한국에 와서 꾸준히 일을 했어요. 집을 받은 바로 다음 날부터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하다가 중간에 대학교도 다니고, 지금은 1년 넘게 또 회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직업소개소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구할 수도 있는데 저는 대부분 지인 소개로 직장을 구해서 취업했어요.” 라고 말했다.

탈북자또 그녀는 직업을 구할 때 어려움에 대해서 “지인을 통해서 직업을 구하면 회사측에서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걸 알고 그런 부분을 다 이해하고 받아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에 인터넷이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을 구한다면 아예 모르는 사람이니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쓰면 북한출신이라는 것을 밝혀야 되는데, 회사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편견을 가지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이 되죠.”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북한사람이라고 하면 보통 사회적인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그런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나영씨는 “기존에 탈북민을 채용했던 회사라면 이미 아니까, 그 탈북민이 일을 열심히 했으면 이미지가 좋아요.

그래서 취업이 쉽죠. 그런데 탈북민 채용이 처음이거나, 그전에 일했던 사람이 일을 잘 하지 않고 문제가 있었으면 북한사람에 대한 이미지, 안상이 좋지 않으면 잘 안 받으려고 하죠. 그래서 뒷 사람을 생각해서 더 열심히 해줘야 됩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나영씨는 “처음엔 식당에서 서빙 일을 했는데요. 식당 서빙은 식당에 손님들이 오면 자리를 안내하고, 음식 주문 받고 또 음식 값 계산하는 일을 했었어요.
그리고 사무직 일도 많이 했는데, 화장품 회사에서 3년넘게 경리 일을 한적도 있어요.”라면서 “컴퓨터학원에 6개월 다니면서 기본적인 것은 배웠어요. 그래서 직장에 들어가서 컴퓨터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나영씨는 화장품회사를 3년정도 다녔다. 한마디로 인내심으로 버텼다고 했다. 어떤 경우는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취업 전에 회사를 알아 볼 때도 선입견 때문에 탈북민 채용을 꺼려하고, 일을 하면서도 언어나, 말투 때문에 동료들간의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직장에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해요. 사업주는 일을 잘하는 사람을 고용하고 자 하니까 일 잘하고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직장에서 설 자리가 있죠.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잘해야 돼요.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고 배워야 되요. 그 일에 능력이 있다면 회사에서 인정을 해줘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일을 하면 한 달에 월급은 보통 백 사십 만원을 받았다. 중국 돈으로 계산하면 8천 위안 정도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