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인 이민자들의 표상 ‘인간 김진형’, LA 코리아타운의 전설 ‘인간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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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있었기에 오늘의 K 타운이 있다’

김진형고향 땅 코리아를 떠나서 해외 최대 한인촌 LA코리아타운에서 추석잔치로 벌어지는 LA한인축제가 다가오면 김진형 축제재단 명예회장(사진)은 공연히 가슴이 설레곤 한다. 내년이면 그의 미국 생활 반백년 50년이 된다. 그는 1968년 미국 유학의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그 당시는 국내나 미국 이민사회나 모두 가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올림픽가에 한글간판 달기운동 전개

제2의 이민자로 LA에 정착한 그는 불과 4년 만에 지금의 코리아타운 한복판인 올림픽 거리에 ‘한글서적센터’를 차렸다. 그리고 한글간판 달기운동을 벌였다. 지금은 번영의 코리아타운이지만 당시 LA일원에는 한인동포가 고작 5천명 정도였다. 그리고 한인 상점도 별반 없었다.

그 척박한 땅에 한글이란 우리글을 심은 것이다. 우리 상점도 없는데 한글간판을 달기 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아메리카 땅에 미국인들이 개척정신으로 오늘의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든 원동력을 그는 꿰뚫어 본 것이다. 우리 한인도 할 수 있다라는 그의 집념을 불살랐다.

그 집념은 한국인 정체성을 살리자는 것이다.
1972년에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코리아타운 번영회를 조직했다. 바로 코리아타운을 만들기 위한 활동 단체인 셈이다. 당시 이민 온 한인동포들은 2세 교육이 중요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2세 교육을 시키려면 1세대가 알아야 공부를 시키는 것인데, 영어도 못하고 노동만 하니까 2세 교육이 안됐다. 그래서 김진형은 1세대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1세대들을 공부시키려고 하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책방이었다. 그래서 72년도에 현재 한인 축제 코리안 퍼레이드를 하는 중간지점에 <한국서적센터>라는 책방(서점)을 냈다. 당시 시사영어사 대표를 만나 돈이 없으니 후불로 내고 1세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미국생활에서 바로 영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펴고 있던 그는 다시 1974년, 미국에 온지 6년만에 ‘코리안 퍼레이드’라는 엄청난 역사를 창조했다. 지금은 코리안 퍼레이드가 전세계에 알려진 “해외한인축제 1번지” 이지만 1970년대 초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한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상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편 것도 차이나타운과 리틀도쿄를 가보고 그곳에 자기들 글자를 간판으로 한 것을 보고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글을 세우고 우리의 문화를 전파해야만 진정한 코리아타운이 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코리안 퍼레이드를 통해서 우리의 소리(Voice)를 내는 것이다. 그 한인의 울림소리를 문화를 통해서 미국 땅에 전파시키자는 것이다.

다민족과 함께하는 퍼레이드 창시

72년 첫 코리안 퍼레이드를 하려고 하니 반대하는 한인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한인 언론계가 반대를 많이 했다. 당시 퍼레이드 한다고 하니 의아하게 생각했다. 퍼레이드를 하려면 보기 좋은 행진대가 지나가야 하는데, 행진대도 없는데 왜 굳이 하려고 하느냐면서 반대 의견이었다. 반대한 사람들은 퍼레이드를 해서 한국을 망신이나 시키지 말라고 까지 했다.

▲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진형 축제재단 명예회장.

▲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김진형 축제재단 명예회장.

당시 일본타운에서 실시한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일본 무예 ‘가라데’를 하는 사람들이 100명이 지나가는 데 모두 일본사람들이 아니고 흑인, 백인 등 미국인은 물론 다른 인종들도 끼어 있었다. 복장만 일본 가라데 도복이었다. 퍼레이드 참가자도 일본 여자 무용단과 북치는 일본 사람들이 있지만 그 다음에 전부 찬조 출연으로 멕시칸 행진, 백인, 흑인 등이 나왔다.

김진형은 이를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다민족 사회이기에 타인종들과 어우러져야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며 우리 퍼레이드를 반대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식으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강행을 했다. 그가 번 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LA한인축제가 시작됐다.

처음 74년 퍼레이드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와 손으로 흔든 태극기를 2000개를 샀다. 2000명 정도 관객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퍼레이드를 하는 데 순식간에 태극기가 다 없어졌다. 경찰 집계로도 3만 명이 구경 나왔다고 했다.

3천명 예상인원에 3만명 태극기 들고 운집

당시 LA경찰국에서 퍼레이드 신청 도로허가를 받을 때, 경찰이 ‘관중들이 몇 명 정도 참관할 것 같은가’라고 문의해 많이 부풀려 3000명 정도 온다고 했다. 첫 퍼레이드 날짜가 74년 11월 3일이 일요일인데, 일요일을 선택한 이유는 이민자들이 갈 때가 없으니 생활 정보라도 얻으려고 일요일에 다 교회로 모인다. 미국사람들이 오전에 예배를 보면 오후에 한인들이 교회를 빌려 그곳에서 모였다. 예배가 끝나면 오후 3시쯤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오후 3시에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지금도 코라안 퍼레이드는 오후 3시에 시작한다.

당시 오후 2시가 됐는데도 올림픽 거리에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초초해 망신당하겠구나 생각했는데, 2시 40분정도 되니 모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구름 때처럼 모였다. 3만 명이 모인 것이다. 대형 태극기를 5~6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나가니 한인들이 태극기를 보고 엉엉 울었다. 고향이 그리워서다.

그가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시작하는 도중 영세한 한인 8명을 모아, ‘코리아타운 번영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상인들의 활동단체인 상인번영회를 생각해 번영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앞에 코리아타운이라는 말을 부첬다. ‘코리아타운’(Korea Town) 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 했다.
그의 추억담을 소개한다.

“당시 영어로만 돼 있는 미국 사회에 한글 간판을 붙이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 미국 상점에가 한글간판을 달면 한국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설득해 올림픽가와 버몬트와 웨스턴가에 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글간판이 세워지니 한국 사람들이 찾게 돼 장사도 잘 됐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늘게 돼, 자연스레 한국 사람들을 모이게 되고 한인 타운 형성에 발판을 마련했다.”

1981년에 미주한인이민사에 새로운 역사가 이뤄졌다. LA에 ‘코리아타운’이 법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미국은 지방자치제가 제도화 돼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의 시의원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미국인들처럼 공개적으로 정치헌금을 내고 지역 시의원들과 교류를 텄다.
72년 당시 현재의 LA 코리아타운지역구 10지구 시의원 데이비드 커닝햄(David Cunningham)에게 선거자금, 정치자금 등을 기부하면서 친해졌다. 78년에 커닝햄 시의원에게 지금 한인타운에 한글 간판도 많이 달렸는데, ‘코리아타운’이라는 행정경계를 설치해 달라고 신청했다. 3년동안 줄기 차게 요구했다.

코리아타운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

그 결과로 데이비드 커닝햄 시의원이 솔선해서 81년도에 LA시의회에서 ‘Koreatown-코리아타운’ 행정경계를 발의해 역사적인 통과를 하게 됐다.

지난 2013년 9월18일 오전10시 마침 제41회 LA 한인축제가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 LA 시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코리아 타운’의 허브 지역인 올림픽 불러버드와 버몬트 애비뉴 교착점에 ‘김진형 박사 광장, Dr. Gene Kim Square’이라는 표지판을 세우는 현판식이 열렸다. 이 현판식은 김진형 회장의 40년 이민생활에서 코리아타운의 개척자로서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그가 정열을 바처 가꾼 ‘코리아타운’에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 김진형의 전설이 창조됐다.

김진형 명예회장은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를 졸업했고, LA근교 말리브의 페퍼다인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1년을 수료했다. 2006년 한국의 한서대학교에서 행정학 명예박사를 받았다. LA 코리아타운 번영회 초대 회장, 퍼레이드 초대 회장, 재미 대한체육회 후원회장, 남가주 호남향우회 명예고문, LA 경찰국 경찰허가 심사위원회 커미셔너 등을 역임했다.
지난달 29일 코리아타운 가등 스윗 호텔에서 ‘LA코리아타운과 한국의 날 축제-인간 김진형의 꿈’(저자: 민병용)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올드타이머들이 많이 찾아와 축하잔치를 벌였다.


제44회 LA한인축제 12일부터 4일간 개막

‘한류의 힘과 다양성’ 주제

풍성한 ‘볼거리, 먹거리’ 역대 최대 축제

▲ LA한인축제는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체험의 축제장이다.

▲ LA한인축제는 볼거리, 먹거리 그리고 체험의 축제장이다.

미주 최대 한인축제인 제44회 LA 한국의 날 축제가 10월12일(목)부터 15일까지 코리아타운내 서울국제공원 일원에서 화려하게 열린다. 축제 기간중인 14일(토) 오후 3시에는 ‘코리안 퍼레이드’가 올림픽 불러버드에서 팡파르를 울리며 힘차게 행진하게 된다.

올해 코리안 퍼레이드 그랜드마셜은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강원도의 최문순 지사로 선정 됐다. 최 지사는 14일 LA 시청을 방문해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도 펼칠 예정이다.
올해 축제는 ‘한류의 힘과 다양성’(Hallyu, Power of Diversity)이라는 주제로 열리는데 특히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대회를 기념하는 홍보 부스가 설치되어 미리 가보는 동계올림픽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강원도가 LA 한인축제에 참가, 축제장을 찾는 한인 및 다양한 인종들에게 대대적인 동계 올림픽 홍보를 펼칠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축제에 총 265개의 부스가 설치돼 장터를 찾는 한인들에게 풍성한 먹거리, 볼거리, 기념품, 향토 특산품 등이 제공될 예정이다. 축제 기간동안 음식의 축제, 공연의 축제, 살거리의 축제, 체험의 축제로 동포들과 이웃 커뮤니티에 즐거움을 주게 된다.

이번 제44회 LA 한인축제에서는 다음과 같이 한층 더 새로워진 행사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날 수 있다고 축제재단은 밝혔다.
LA한인축제의 볼거리의 다양성과 아티스트의 홍보를 위해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이 축제장의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할 화랑공간이 마련된다. LA 지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오는 예술인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축제장에는 특히 어린이 놀이 공간이 들어선다. 남녀노소 모두가 다 같이 즐기자는 취지에 따라 특별히 이번 축제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서울공원 옆에 ‘키즈 액티비티 존’과 마술쇼 및 버블쇼의 볼거리를 더해 어린이들도 축제를 같이 즐길 수 있게 됐다.
올해 축제에서 처음 시도되는 노래자랑대회가14일 토요일 오후 7시30분에 열린다. 축제재단 측은 사전 신청자 50명 중에서 12명의 참가자들을 선정했다고 전했다. 1등부터 3등까지 한국 여행권, 동부 여행권 등 푸짐한 상품이 지급될 예정이다.

LA 한인축제를 미주 한인뿐만 아니라 다민족이 함께 즐기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인 2세 및 3세와 타민족을 중심으로 홍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ABC와 KTLA, 폭스 등 지역 방송을 포함한 주류사회 미디어들도 LA 한인축제의 현장을 생생히 보도할 계획이라고 재단 측은 밝혔다.
축제 참가자들을 위해 총 3,00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윌셔 블러버드(3450, 3550 Wilshire Blvd)에 마련됐으며 10분마다 운행하는 셔틀도 제공된다고 재단 측은 밝혔다.


[인터뷰] 44회 한인축제 주인공 ‘지미 이’ LA한인축제재단 회장

“한인축제의 성공적 지휘자가 되겠다”

▲ 지미이 LA한인축제재단 회장

▲ 지미이 LA한인축제재단 회장

제44회 LA한인축제의 사령탑, 지미이 회장은 LA 한인 뿐 아니라 타커뮤니티와 주류사회까지 아우르는 축제로 발돋움 하고 있는 LA한인축제의 새로운 리더이며 연출자로서 대축제를 12일 개봉시킨다.
연인원 40만 관객을 끌어 모을 올해 축제는 한류라는 우리 문화의 창조력과 원동력을 기반으로 그가 지닌 감독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3박4일의 축제 대장정을 이끌어 나간다. 제44회 한인축제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지휘봉을 마음껏 흔들게 된다.
그래서 올해 처음으로 신나는 LA축제 노래자랑 대회도 창안했다. 누구나 끼만 있으면 무대에 노를 수 있다. 내년 평창 올림픽대회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제도 이번 한인축제 마당에서 펼치게 된다.
그는 10여년전 LA한인축제 창시자인 김진형 명예회장의 지원 요청에 한인축제재단에 이사로서 참여해 올해 축제의 선장이 된 지미 이 회장은 영화감독 겸 작가라는 그의 전문직 답게 이번 44회 한인축제의 큰 그림을 오래전부터 그려왔다.
‘한류의 힘과 다양성’이란 타이틀이 성공적인 44회 축제의 상표가 되는 것이 그의 일차 목표이다.
그는 처음 이사로서 참가하여 활동에서는 단순한 조력자였지만, 지난동안 재단에 위기가 닥치고, 축제가 적자를 내는 등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는 달라졌다. 이젠 그에겐 축제재단의 앞길 을 위한 개혁의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지나온 축제재단의 한 병폐인 부조리와도 싸워야 하고, 축제재단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도 새로운 발판을 깔아야 한다.
그는 축제재단이 한인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바라보고 있다. 해외 최대 한인사회인 LA에서 한국인의 ‘얼’을 주류사회에 전하고 보여줄 수 있으며, 재정적 자생력을 갖추고, 오로지 축제 하나에만 매달리는 비영리단체이기 때문에 그 가치에 대해선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에게는 축제재단의 내실강화를 통한 흑자경영이 그의 주 목표. 흑자를 통한 수익금으로 타 한인 봉사단체도 돕는 등 더욱 의미 있는 한인축제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리적으로 문화 예술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열정, 인간관계 및 친화력 등 그의 주무기를 적극 활용해 올해 제 44회LA한인축제를 성공적으로 개최 하는게 그의 최대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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