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주한미포럼 ‘소녀상 철거 거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 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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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거짓말…
위안부 이면합의 있었다”

가주한미포럼(사무국장 김현정)은 지난 30일 오전 11시 최근 별세한 송신도 할머니를 비롯해 이기정, 김군자, 이순덕 할머니 등 13명의 위안부 할머니들 영정을 소녀상 앞에 놓고 추모제를 올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2015년 위안부 한일 합의 과정의 부당성을 규탄했다. 이들은 미주 여러 지역에서 참석한 한인과 현지 미국인들은 할머니들 영정 앞에 헌화한 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온전한 위안부 재협상을 촉구했다.

다음은 2015년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하기 위한 외교부 산하 특별 태스크포스가 그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한 내용이다. 조사 보고서는 30쪽 분량의 문건으로 발표되었으며, 강경화 장관과 오태규 태스크포스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설명을 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 과정 검증 보고서

2014년 말부터 한일 정부는 외교부 국장급 협의 외에 고위급 협의를 병행 추진키로 했으며 이때부터 협상의 중심이 고위급 비공개 협의로 옮겨갔다. 일본은 NSC 사무국장 야치 쇼타로, 한국은 이병기 국정원장이 대표였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고위급 협의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고 고위급 협의의 결과를 청와대로부터 전달받은 뒤 이를 검토하고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구조가 되었다. 외교부는 조연에 불과했다.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2015년 1월 제6차 국장급 협의에서 한국 쪽이 ‘사죄의 불가역성’ 즉, 되돌리지 않는 사죄를 주장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합의에서는 일본의 주장대로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맥락이 바뀌었다. 외교부는 이 표현의 삭제가 필요하다는 검토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였으나 청와대는 ‘불가역적’의 효과는 책임 통감 및 사죄 표명을 한 일본 쪽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위안부 합의에는 외교장관 공동 기자 회소녀상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 부분이 존재했다. 이런 방식은 일본 측 희망에 따라 고위급 협의에서 결정되었다. 비공개 부분은 1. 외교장관 회담 비공개 언급 내용, 2. 재단 설립에 관한 조치 내용, 3. 재단 설립에 관한 논의 기록, 4. 발표 내용에 관한 언론 질문에 대한 응답 요령 등이다.

일본은 정대협이 합의에 반대할 경우 한국 정부가 설득해줄 것, 해외 기림 비 건립을 정부가 지지하지 말 것, 성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 등을 요구했음. 이에 대해 정부는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 ‘석비(石碑)․상(像)의 설치 문제는 한국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발표에 따라 한국 정부도 이러한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 향후 한일관계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함’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공식 명칭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 임을 재차 확인함’이라고 대응함으로써 사실상 일본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외교부는 협상을 진행 과정에서 피해자 쪽에 때때로 관련 내용을 설명했으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 으로 알려주지 않았다. 돈의 액수에 관해서도 피해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
위안부 TF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가 주도, 외교부는 조연

첫째, 전시 여성 인권에 관해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위안부 협상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일반적인 외교 현안처럼 주고받기 협상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는 동안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협의에 임하였다. 그러나 협의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정부 입장을 위주로 합의를 매듭지었다. 이번의 경우처럼 피해자들이 수용하지 않는 한, 정부 사이에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였더라도, 문제는 재연될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 문제는 단기적으로 외교 협상이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장기적으로 가치와 인식의 확산, 미래세대 역사교육을 병행하여 추진하여야 한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 진전 없는 정상회담 불가’를 강조하는 등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 전반과 연계해 풀려다가 오히려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 또 국제 환경이 바뀌면서 ‘2015년 내 협상 종결’ 방침으로 선회하며 정책 혼추모제선을 불러 왔다. 위안부 등 역사문제가 한일관계 뿐 아니라 대외관계 전반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균형 있는 외교 전략을 마련하여야 한다.

셋째, 오늘날의 외교는 국민과 함께하여야 한다. 위안부 문제처럼 국민의 관심이 큰 사안일수록 국민과 같이 호흡하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더욱 중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위급 협의는 시종 일관 비밀협상으로 진행되었고, 알려진 합의 내용 이외에 한국 쪽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도 공개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대통령과 협상 책임자, 외교부 사이의 소통이 부족하였다. 이 결과 정책 방향이 환경 변화에 따라 수정 또는 보완되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이번 위안부 합의는 정책 결정 과정 에서 폭넓은 의견 수렴과 유기적 소통, 관련 부처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애초에 세웠던 목표나 기준, 검토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의견을 모두 반영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 협상의 특성과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위안부 티에프는 위와 같은 네 가지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로써 지난 2015년 한일간 졸속 합의는 한국에 생존한 피해자들과 국민, 전 세계 각국의 피해자 들과 그 지원단체들을 속인 엉터리 합의였다는 것이 만방에 드러났다.
사실 이 합의는 한일 외교장관들의 공동 기자회견이 있은 바로 다음날, 피해자 할머니들이 반발하면서 이미 그 정당성을 잃어버렸다. 피해자들이 국제 기준에 맞추어 확립해 놓은 7가지 요구 사항이 단 한 가지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은 합의를 발표한 직후 유엔 등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책임을 부정하고, 위안부들이 매춘부였다는 등 망언을 쏟아냈다.
위안부 문제는 양자협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하루빨리 10여 개국 출신의 모든 피해자들을 상대로 7가지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한 재협상을 시작해야 하며, 앞으로 다시는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독일처럼, 위안부 역사를 부정하는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또한 쌍방 과실의 교통사고처럼 책임 인정, 법적 배상, 공식 사죄 등이, 한국 정부의 침묵이나 소녀상 철거와 맞교환되는 거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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