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재단 한우성 이사장 2018년 신년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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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를 위한 재단인만큼
동반 성장 위해 ‘윈-윈’ 체제 구축하겠다

재외동포재단(이하 재단) 창을 열면 “이민으로 해지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 그 힘은 740만 재외 동포입니다.”라는 구호가 뜬다.
지난해 10월 LA동포로서 최초로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한우성(61) 이사장이 10일 LA 용수산 식당 에서 언론 간담회를 통해 새해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가를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듯이 ‘재외동포를 위해 존재하는 재단’이라는 신념으로, 정책에서 소외되는 동포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재외동포들에게 모국을 위한 역할을 논하기에 앞서 그들의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지원과 사업을 펼쳐 모국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재외동포재단이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뜻을 같이하여 한인 차세대 정체성을 강화하고, 거주국에서의 지위향상, 한민족 네트워크 강화를 위해 더욱 힘 쓰겠다고 강조했다.
성진 (취재부기자)

한우성 재단 이사장은 “내 삶은 30년을 해외에서, 30년을 고국에서 살아왔다”면서 “이제 공직자로 대한민국과 해외동포사회를 위한 봉사자로서 영예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재외동포 사회의 목소리를한우성 한국정부에 성의있게 전달하는 역할도 충실히 하고 싶다”면서 “그런 사명중의 하나로 가능하면 금년 중에 제주도에 재외동포연수원을 설립하는 것을 중요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외동포연수원을 목표로 하기에 종래 계획하고 논의되어 왔던 재외동포센터는 그동안 여러모로 검토 평가한 결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보류 내지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임기가 3년이기에 현실 가능한 사업에 중점을 두겠다면서 “해외의 청소년과 교사들을 위한 초청 연수 프로그람을 확대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한국학교가 1800여교에 학생수가 10만명이 넘고, 교장과 교사들이 15,000명 정도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연간 청소년 초청 1,000명과 교장 교사 초청 250명은 현실적으로도 효율적이 아니라 내실을 다지기 위해 현재의 청소년 년간 1,000명선의 초청을 5,000명 정도로 증대시키고, 교사와 교장 초청 프로그램도 연 250명에서 1,000명 정도로 확대 하기로 하여 실질적 효과를 다지는 프로그램으로 육성시키겠다고 의욕을 밝혔다.

한우성 이사장은 “현재 우리 헌법이 법통적 기원으로 인정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재미동포‧재중동포‧재러시아동포의 합작품이고 임시정부 첫해 예산의 50%가 재미동포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강조하고, “임정이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위해 미국에 세웠던 비행학교, 비행대는 오늘날 공군의 역사적 법통적 기원인데 그 인적 물적 자원도 100% 재미동포 사회로부터 나왔다.”고 재미동포 사회의 업적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거주국에서 모범적인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동포사회의 역량은 대한민국 발전의 한 축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며 “동포사회가 일방적 수혜자가 아니라 모국과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동포재단을 이끌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재단 이사장으로서 우리 국민이나 정부가 재외동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현실을 일깨워주고, 재외동포사회도 고국을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 바를 함께 도우도록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30년 미국에 살면서 우리 국민(내국인)이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10번째가 ‘해외 체류 국민 보호 강화 및 재외동포 지원 확대’이다.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장관 등 새 정부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외동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책적 뒷받침을 천명한다.”고 전했다.

30년 LA생활한 언론인 출신

재외동포 출신으로는 첫 재단의 수장이 된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동포사회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바람직한 동포의 역할을 정립할 것이며, 아울러 사각지대에 놓여 소외됐던 동포들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정책을 펼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는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재외동포 출신 첫 이사장이라는 계기에 대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면서 “재외동포인 나를 이사장으로 선임한 것은 동포사회를 더 잘 아는 사람으로서 정책을 펼쳐 나가라는 주문이라 생각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동포 입장에서 바라본 모국 또는 동포재단과 실제로 그 기관의 책임자로서 업무를 보는 것에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이 부분을 잘 조율해서 재외동포에 대한 서비스가 한층 나아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단 운영 계획이나 방침에 대하여 “한인 차세대의 정체성 강화, 재외동포의 거주국에서 지위향상, 한민족 네트워크 강화 등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겠다”면서 “재단 정책에서 소외되는 동포가 없도록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또한 “동포사회의 변화와 현장의 요구를 수시로 파악해 재단 사업에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차세대의 정체성 교육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동포사회에서도 센터 건립에 힘을 보태려고 5천500만 원의 기금을 모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외됐던 재외동포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하여 “해방 후 일본 정부가 행정 편의상 분류했던 조선적을 지금까지 유지하는 3만여 명의 재일동포, 20만 명에 이르는 해외 한인 입양인과 가족, 해외에서 국제 결혼한 다문화 가정, 국내체류 조선족과 고려인 등은 동포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차세대 모국연수’ 확대 실시

동포사회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최근 국내 다문화가정에서 베트남 등 아시아 등에서 온 부인이 이혼 후 자녀와 함께 출신국으로 귀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자녀의 경우 국적이 한국이다 보니 거주국에서 복지의 대상이 안 돼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고 있다. 혈통상 분명히 재외동포이므로 이들이 올바르게 이중 정체성을 가진 인재로 성장하도록 신경을 쓰는 것도 재단의 역할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재단이 차세대의 정체성 육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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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특한 이력의 한우성 제9대 재외동포이사장은 누구?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대령’을 써낸 미주 언론인 출신
‘사회운동가로 위안부 소송 이끈 장본인’

지금은 미국의 한인사회나 한국에서 “김영옥 대령”(Colonel Kim)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2005년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저자 한우성)이 출간되기 전에는 우리 이민 사회는 극 소수의 사람들만이 ‘김영옥 대령’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옥 대령은 이미 미주류사회나 리틀도교 일본인 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영웅 김영옥 대령”으로 잘 알려져 왔다. 미국 포털사이트 엠에스앤닷컴(msn.com)은 수년 전 미국 현충일을 맞아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명을 발표했는데 김영옥 대령이 유색인종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이 16명 중에는 미국 독립 전쟁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 으로 북군을 승리로 이끈 뒤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즈 그랜트,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으로 34대 대통령이 돼 6‧25전쟁의 포성을 멈추게 한 아이젠하워,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이 포함됐다. 김영옥 대령은 한마디로 미국 역사에서 쟁쟁한 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비 백인이다.

‘위안부 문제’나 독도를 두고 우리 한인사회에 핏대를 올리는 일본인 1세나 2세들도 “김영옥 대령” 이라면 거수경례로 존경을 표한다. 리틀도교에 있는 ‘일미박물관’에 가면 김영옥 대령은 일본사회가 존경하는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 한인 이민 사회는 도산 안창호, 우남 이승만 등을 절대적 지도자 상으로 존경해왔다.

‘김영옥대령은 우리시대의 참 봉사자’ 역창

그런 사회에서 ‘김영옥 대령’은 한국과 미국을 연결하는 ‘참 봉사적 인물’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우리 시대에 걸맞는 봉사자의 롤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옥’이란 책이 나오면서 새로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9년9월 9일, LA코리아타운 버몬트와 6가 인근에 한인 이름을 학교명으로 한 김영옥 중학교(Young Oak Kim Academy)가 탄생했다. 미국 역사에서 최초로 한국인 이름으로 설립된 학교는 아직까지 유일하다. 이듬해 2010년9월에는 UC리버사이드(UCR)대학교 에 미국 내에서 처음으로 한인 이름을 딴 김영옥 재미 동포연구소(Young Oak Kim Center for Korean American Studies)가 문을 열었다.

미국 대학교 내 한국학 연구소는 많으나, 한국인 이름의 미주 한인연구소 창립은 UCR이 최초였으며, 여기에도 한우성은 연구소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11년 한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2차세계대전과 6.25전쟁 의 영웅 미주한인 고 김영옥 대령 이야기가 수록됐다. 미주 한인 이민 2세가 한국의 교과서에 소개되기는 김영옥 대령이 최초다. 또 국내에 김영옥 대령의 정신을 기리는 김영옥 평화센터 설립에도 주도했다.

이처럼 ‘김영옥’ 책의 영향으로 미주 한인의 위대함이 미국사회와 한국사회가 알아주기 시작한 것 이다.
한우성은 ‘김영옥’ 집필 중에 잠시 사회운동에 뛰어든다.
1999년 캘리포니아 주가 미국 법정에서 일제 강점기 징용 및 성노예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했다. 당시 홀로코스트 소송이 합의되던 시기라 분위기가 일제 강점기까지 번졌다.

결국 그가 직접 나서서 변호인단을 조직하고 강제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까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자료가 하나도 없어 싸울 수 없었다. 결국 2006년까지 계속된 소송에서 졌다. 많은 것이 부족했고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송을 거치면서 수 많은 벗과 동지를 만났고 이 소송 은 UCR의 재미동포연구소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강제 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日 상대 소송

‘김영옥’이란 이민사에 기록으로만 적힌 인물을 새롭게 우리 앞에 롤 모델로 제시한 주인공이 바로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대령’을 써낸 미주 언론인 한우성이며, 지금은 우리 앞에 재외 동포재단 이사장이란 공직자로 금의환양 했다.

재외동포재단의 제 9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한우성 이사장은 재외동포(LA) 출신으로 재단 수장 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재단 이사장은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외교부는 한 이사장이 재외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고 김영옥 대령 등 모범적인 재외동포를 찾아 널리 알리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추천 이유로 “재외동포로서 직접 현장에서 재외동포의 권익 신장에 기여해온 한우성 이사장의 경험과 식견을 바탕으로 재외동포사회의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는 김영옥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과 1920, 대한민국 하늘을 열다 등의 저서가 있다.

1987년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한우성은 1988년 미주 한국일보에 공채로 입사해 기자가 되면서 그의 인생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는 계기를 마련한다. 기자시절 4‧3 사태로 피살된 희생자의 유족을 만나게 됐다. 당시 이 독자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데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사람을 통해 진심이 느껴졌다.

그때 한우성 기자는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껴야 할 수 있는 직업이 기자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열정과 정성을 담아 혼신을 다해 취재했다. 그 결과 2001년 지면에 한국 군경의 양민학살을 다룬 20여 회의 시리즈 기사로 세상에 알려졌고, 이를 본 AP와 AFP 그리고 로이터 통신등이 이 기사를 영어로 전 세계에 알렸다.

보도 후 한국에서는 진상규명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미주한인 커뮤니티 에서도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한우성은 “기자로서 최고의 기쁨이었다.”라고 후에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특집시리즈 기사로, 해외로 나간 한국기자상 1호 수상을 비롯 유일한 비영어권 기사로 AP통신 기자상, 미국 내 한국 언론사 소속 기자로는 최초 미국 소수계 기자상을 받았고, 비영어권 언론으로 퓰리처상 1호 후보가 되기도 했다. 그는 또 2003년에는 소수계 언론 소속 기자 1호로 스탠포드대학 Knight Fellow가 되기도 했다.

김영옥 대령은 우리시대 최고의 멘토

그가 펴낸 ‘김영옥’으로 그 자신도 저널리스트(언론인)에서 액티비스트(사회운동가)로 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에게는 김영옥 대령이 최고의 멘토이자 스승이었다. 이제 그의 목표는 한인들의 정체성을 키워 주류 사회에서 위상이 강화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미래가 어떤 시대로 전개되든 한인 커뮤니티와 조국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 하겠다는 것이다.
재외동포재단도 김영옥 대령의 이상과 정신으로 이끌어 간다면 재외동포사회도 더 큰 발전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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