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연방하원 39지구 출마선언 ‘수지 박 레게트’전 하원의장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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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게이트’ 당시 미 의회 흔든 “드래곤 레이디”의 도전장

시대 역행 트럼프 정책 ‘너무 답답해서 나왔다’

친한파 미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인 에드 로이스 의원의 전격적인 재선 불출마 발표로 그의 선거구 하원 39지구는 지금 공화, 민주 양당을 포함해 소수당 후보자들의 뜨거운 격전지로 타오르고 있다. 우선 로이스 의원의 오랜 보좌관인 공화당의 영 김(공, Young Kim) 전 주하원 의원이 로이스의 선거구 39지구에 출마해 미주 한인사회에 관심을 받고 있는데, 동일한 39지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또 다른 한인계가 해당 지구에서 하원의원에 도전해 주목이 되고 있다. 주인공은 1970년대 소위 ‘코리아게이트(Koreagate)’ 당시 미의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한인계 수지 박 레게트 (Suzi Park Leggett) 전 하원의장 비서관이었다. 이제 은퇴할 나이에 아랑곳 않고 미정치계에 도전하는 수지 박 레게트 여사는 최근 본보 기자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정부의 DACA 정책을 포함한 불합리한 차별적인 이민정책을 포함해 소셜 시큐리티와 은퇴제도,어린이 복지보험, 고령화 복지 정책 등의 개선을 위해 다시 정치에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성진 (취재부 기자)

수지박수지 박 레게트 여사는 “미국과 한국에서 ‘코리아게이트’ 당시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은 피해를 당했으나, 오직 모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를 이겨냈다”라고 말문을 열면서 “당시 한국과 미국의 많은 언론들이 팩트(Fact)를 중요시 않고 선정적으로 다루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앞으로 ‘코리아게이트’의 진실을 밝힐 저서도 발간할 계획이다”라면서 자신의 연방하원의원 출마에 한인사회의 후원을 당부하는 수지 박 레게트 여사는 20일 본보 기자와 인터뷰를 통해서 “과거 의회 하원의장 보좌관으로 미국에 충성하고, 모국과 미국을 잇는 한미동맹을 증진시키는 열정을 마지막으로 쏟고 싶어 출마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트럼프 정부가 소수민족 정책을 평등하게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의원이 많이 나와서 균형있는 정책을 펴도록 정치 분위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코리아타운 내 데니스 식당에서 처음 본보 기자와 만난 수지 박 레게트 여사는 “최근 에드 로이스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바로 그 39지구에 민주당 소속으로 예선 후보에 나섰다”면서 “지금 한인사회가 공화당의 영 김 후보에게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민주당으로 출마하는 나에게도 주목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차별적 이민정책과 불합리한 사회복지제도 개선

수지 박 레게트 여사는 “인간은 모두 평등한데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칸 등 남미 국가인들에게 제제를 가하는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면서 “미국 헌법 정신에도 인종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번에 공화당 로이스 외교위원장의 불출마로 39지구는 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정치 분석가들이 전망하고 있다”면서 한인사회의 후원을 호소했다.

한편 LA동포사회 초청으로 강연 차 코리아타운에 온 이동복 선생은 19일 수지 박 여사의 하원 출마 소식을 전해 듣고 “한때 미 의회에서 활약하던 수지 박 씨가 미정치계로 나선다는 소식에 놀랐다”고 말했다.
70년대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이동복 선생은 “수지 박씨는 70년대 소위 ‘코리아케이트’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당시 한미관계를 정리하는 데 영향을 준 당사자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 측은 ‘코리아게이트’의 주역 박동선씨의 증언을 한국에 와서 청취하는 조건으로 이 사건을 종결지었다. 당시 이동복 기자가 수지 박 여사에게 ‘코리아게이트’를 푸는 방법의 한 단계 역할을 미국 정부 측에 전달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리아게이트 피해 ‘한국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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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지 박 레게트 후보의 하원의장 보좌관 시절(중앙)에 한미 정계 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다.

수지 박 레게트 여사는 지난 70년 대 미국 하원에서 활동할 당시의 이름은 수지 박 톰슨이었다. 지금은 미연방의회에도 많은 한인 보좌관이 있지만 수지 박 여사는 60-70년대 당시 미 의회에 진출해 나중 연방하원의 칼 알버트 의장의 비서 겸 보좌관으로 활동해 한미 관계에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한국의 정치인들은 수지 박 여사를 통해서 미 의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주미대사관에서도 수지 박 여사는 VIP중의 VVIP였다.
아마도 그녀는 60년대 한국인으로는 미 연방하원에서 처음으로 보좌관을 지낸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1965년 핏시 민크 의원부터, 허버트 텐저 의원, 윌리엄 헌 케이트 의원, 레스터 울프 의원 (나중 외교위원장까지 역임)을 거쳐 1971년부터 당시 칼 알버트 하원의장 비서로 1977년까지 활동했다.

‘시크릿 오브 코리아’의 대표이며 본보 안치용 객원기자가 펴낸 ‘박정희의 대미 로비 X 파일’에 보면 “수지 박 톰슨 의회 보좌관은 한국인으로 가장 먼저 미 의회 보좌관 이었으며, 10년 이상 중 6년을 당시 연방 하원의장인 칼 알버트 의원의 보좌관이었다”고 소개하였다. 수지 박 여사가 미 의회에서 활동한 시기인 70년대는 한국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시기로 한미 관계가 격변하던 시기였다.
당시 닉슨 미대통령은 69년 말에 아시아의 방위를 1차적으로 아시아 인에게 맡긴다는 새로운 미국의 외교기조인 ‘닉슨 독트린’을 선언한 이래 72년에 중공의 모택동과 전격적으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데이탕트 시대를 열고, 한국에서 6만의 주한미군 에서 일부를 철수하기 시작한 때였다.

“미 의회 최초 한인 여 보좌관” 중추적 역할

한국으로서는 다급한 시기였다. 한국의 안보를 미국이 책임진다는 논리가 약화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목표로 미정부에 국군 현대화를 위한 종합 목록을 제시하고 추가 군사원조 2억 달러 증액 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1972년 10월17일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미국도 사건이 터졌다. 72년 6월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이 일어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에 관여했던 닉슨은 74년 8월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가 이뤄지면서 사임하게 된다. 사상 최대의 정치공작 스캔들에 미국은 들끓었다. 당시 미군과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 전선도 수렁에 빠져 반전 여론이 거세어졌다.

닉슨이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사임한 후, 새로 들어선 민주당의 카터 대통령은 도덕과 인권을 기조로 한국의 박 대통령과는 여러 면으로 부닥쳤다. 이 바람에 미국에서는 한국에 대한 여론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카터는 주한미국을 철수시키겠다고 하고, 한국은 이를 막으려고 하고 있어 양국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한국 안보와 미국산 쌀 등 경제원조를 위한 대미 로비가 등장하면서 이런 와중에 김형욱 전중앙정보부장을 포함해 한국 외교관들의 정치망명이 이어지면서 소위 ‘코리아 케이트’ 사건이 터지게 된다.

미국에서 ‘코리아게이트’는 미 언론의 폭로기사로 한국정부 KCIA(중앙정보부)가 불법적으로 미 정계를 상대로 공작을 한다는 것을 두고 박동선씨를 포함한 재미한인들의 행위와 통일교의 재미활동 등을 스캔들로 이뤄진 것이다. KCIA의 대미 공작설은 당시 미 의회의 칼 알버트 하원의장의 보좌관으로 활동하는 수지 박 여사에게 이어졌다. 그녀는 통영 출신으로 1954년 유학차 도미해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만난 미국인 윌리엄 톰슨과 결혼한 후 1965년 부터 워싱턴으로 진출했다.

연방 의회에서 여러 의원의 비서로 활동하면서 미 정계에서 인맥을 쌓았다. 그리고 1971년 1월, 연방 하원의장에 취임한 칼 알버트 의원의 비서가 되면서 영향력이 커졌다. 평소 미 의원들 사이에 그녀의 인기는 좋았다. 특히 미 권력서열 3위이자 하원을 이끄는 칼 알버트 의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그녀에게는 자연 파워가 실렸다.
당시 한국에서는 미 의원 초청외교가 있었다. 연방 의원들이 방한할 때 그녀도 수 차례 함께 한국을 방문했으며, 앨버트 하원의장도 의원단을 이끌고 71년 8월 방한했다.

미국을 움직이는 하원의장의 비서인 그녀에게 당연히 한국 정부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지 박 여사에게 주목한 건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대사관에서 미 의원들을 만나고 싶을 때 그녀를 통하면 만사 오케이였기 때문이다. 수지 박 여사는 파티도 가끔 열었다. 미 정가에 눈독을 들이는 로비스트들은 물론 당시 주미대사였던 김동조 주미대사도 그 파티에 참석 하곤 했다. 그래서 미 일부 언론들은 그녀를 ‘한국의 마타하리’라 불리기도 했다.

“한국판 마타하리”부정적 이미지에 충격

수지 박 여사는 나중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이 한국정부의 정보원이 아니며 결코 박동선씨나 한국중앙정보부로부터 자금이나 지시를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1977년 7월8일자에서 보도했다.
‘코리아게이트’ 스캔들과 관련해 당시 미 하원윤리위원회와 연방 대배심원에서 그녀를 소환해 조사 했지만 아무런 혐의를 찾아 내지 못했다.

최근 본보 기자와 만난 수지 박 여사는 “코리아게이트로 돈 받은 사람들은 있으나 나는 절대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당시에 나는 어려운 모국을 돕는다는 마음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국이 가난했기 때문에 미국 쌀을 원조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주었다”면서 “당시 남편과 한국을 방문하여 박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철수 시킨다는 사실을 전하는 의원 말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를 안했다”고 당시 사정을 회고했다.

그녀는 당시 미국을 방문했던 일부 한국 정치인들이 워싱턴에 와서 한국을 헐뜯는 말들을 할 때 자신은 “나쁜 말 하려거든 한국에 가서 하고 미국에서는 한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행동하시라”고 당시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그 당시 나는 중앙정보부니 하는 기관에 대해서 전혀 이해를 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했다”면서 “한인들의 운전면허시험을 도와주던가, 소셜 시큐리티 혜택을 찾아주는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기쁨으로 생각했던 순진한 동포였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사실 ‘코리아게이트’ 때문에 나는 억울하게 많은 피해를 당했다”면서 “좋은 마음으로 모국을 도왔는데 부정적 이미지로 나를 묘사해 상당한 충격을 받고 살았다”고 말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진실이 찾아 오더라

그녀는 “앞으로 때가 되면 나의 진실을 전할 수 있는 글을 남기려고 한다”면서 “세월이 지나고 보니 진실은 저절로 찾아오게 된다”고 밝혔다.
그녀는 “내가 미국에 충성하고 모국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면서 “내 아버지는 애국자이셨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김구 선생과도 함께 일한 독립운동가였다”고 전했다.
은퇴를 거두고 정계 진출을 꿈꾸는 동기에 대하여 질문을 하자, 수지 박 여사는 “지금 트럼프 대통령 정책이 소수인종들의 평등권리를 해치고 있다”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마침 로이스 의원이 불출마를 한다는 발표를 듣고 용기를 내었다”고 음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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