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워싱턴 의사당에 도전장 내민 ‘코리언 영 파워 4명’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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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발발한 그들의 매서운 ‘무한질주본능’이 시작되다

올해 연방하원의원 선거에 30대 40대 패기발발한 한인 3명을 포함해 총 6명의 한인들이 도전장을 냈다. 3세가 1명, 2세가 2명, 1.5세가 2 명, 1세가 1명 등 총 6명이다. 1992년 4.29 폭동을 이겨낸 한인 사회가 그 해 11월 선거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의원을 탄생시킨 후, 올 해 미전국적으로 6명이 동시에 출사표를 내기는 이민 사상 최초이다. 캘리포니아 영 김(공화), 수지 박 레거트(민주) 데이브 민(민주), 뉴저지 앤드류 김(민주), 조지아 데이빗 김(민주) , 보스턴의 댄 고(민주) 등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의 염원인 한인 연방의원 탄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정치인들이다. 또한 공교롭게도 동부에서 출마한 한인 젊은 후보들은 공화당 현역 의원과 맞붙는 민주당 후보들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한국인 최초 단체 노동이민자가 도착한 때가 1903년 1월 13일이다. 미 이민사의 최대의 수난인 ‘4.29 폭동’이 발생한 그 해 한인 1세가 역사상 최초로 미 연방의사당에 입성했다. 우리가 정치적 힘이 없기에 4.29 폭동을 당한터라 당시 1세 김창준(제이 김) 하원의원의 탄생은 미주한인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당시 오리건주 주의회에 입성한 임용근씨, 워싱턴주 주의회에 입성한 신호범씨/ OC카든그로브 시의원 정호영씨 등은 모두 1세로 미주류 정치계에 입성해 연방하원에 진출한 김창준씨와 함께 미국에서 “정치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들 1세 동포 정치인들은 한국인의 미 이민 역사의 새장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초 연바의원인 김창준씨가 3선을 마치고 의사당을 떠난후 다시 20년이 흘렀다. 2018년 올해 미 중간선거에 한인 30대 40대 한인 젊은 세대 4명이 미연방하원의원에 도전했다. 40대 초반과 30대 후반인 4명의 한인 후보의 공통점은 미주류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상당한 성공을 거둔 전문가들이라는 점이다.
캘리포니아의 6월 예선투표는 민주⋅공화 소속정당과 상관없이 투표수가 많은 상위 2명의 후보가 11월 본선거에 나가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다른 주는 공화⋅민주 양당 대표가 한 명씩 맞붙는 선거다. 올해 연방하원에 도전하는 한인 영 파워 4명을 집중 소개한다

데이브 민(Dave Min,민주)후보 : 캘리포니아주

데이브민

▲ 데이브 민 후보

데이브 민(41, 한국명 민건기)(사진) UC어바인 법대 교수가 캘리포니아 주 45지구에서 연방하원의원에 도전한다. 현재 캘리포니아 연방의원인 주디 추 의원과 주하원 샤론 큌 실바 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 주류언론으로부터 당선이 유력한 후보로 선정됐다.
뉴욕타임스는 오는 11월 실시될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 후보자 6명을 최근 꼽았는데 이 중 한 사람이 한인인 데이브 민 교수다.

데이브 민 후보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정책통으로, 현재 UC어바인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2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증권거래위원회 변호사를 거쳤다. 민 교수는 “트럼프 정부의 7개국 이슬람 국가 국민에 대한 입국 금지 명령을 보고 출마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민의 아들로서 무엇이 부모님을 미국에 오게 했는지 자주 생각한다”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정신이야말로 미국의 핵심적 가치인데 트럼프 정부는 이런 가치를 공격했다(assault)”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한국 국민의 생명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관심한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무모하고 깊이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과 미국의 대립에 대해 “두 명의 미친 남자(madmen)가 서로에 맞서고 있는 불행한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부모는 1972년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브라운대에서 유학 후 결혼했다. 아버지인 민병곤 박사는 기계공학을, 어머니인 민혜경 박사도 화학을 전공하고 76년에 동시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버지는 록히드 마틴에서 근무했으며, 어머니는 반도체회사 디렉터를 지냈다. 데이브 민은 이런 부모로부터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배웠다.

그의 선거 캠페인 구호는 ‘아빠의 목표’ (Dad Agenda)다. 그는 “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일할 것”이라며 “환경 오염 감소, 교육 시스템과 대학의 질 향상, 미래를 위한 일자리 창출, 과학 연구에 대한 투자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출마한 45지구는 한인 6 %, 아시안 20%, 라티노가 15%이다. 다행히 이 지역 민주당 후보 중 유일한 아시안이다. 민 후보에게 중국이나 베트남 등 아⋅태계주민들의 지지가 늘고 있다.
여기에 전 어바인 의회 마리 앤 가이도 의원과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이 지지를 표명했다.
후원 문의 www.DaveMin.com / 949
-415-4536 / [email protected]

데이빗 김(David Kim,민주) 후보: 조지아주

데이빗 김(38) 후보(사진)는 조지아주 제7지역구 연방하원 선거에 출마한다. 김 후보는 오는 5월 열리는 민주당 경선(프라이머리)에서 캐스린 알렌, 이썬 팸 등의 후보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경우 11월 중간 선거에서 현역의원인 롭 우달(공화) 의원과 대결을 펼치게 된다. 그는 지난해 LA를 포함해 주요 도시에서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김 후보는 한인과 타인종에게 널리 알려진 ̒C2 에듀케이션̓의 설립자이자 작년까지 최고경영자 직을 맡다가 출마를 결심했다. 그는 “C2는 미 전국에 220개의 지점과 2,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고, 매년 1만여명 이상을 대학에 보내고 있다”며 “그간 학부모와 학생에게 도움을 준 중요한 경험들이 쌓이게 됐다”며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출마’라는 큰 그림을

그리게 됐음을 설명했다.

또한 김 후보는 “비즈니스에 성공하려면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면에서 지난 18년 동안 C2를 운영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해 왔고, 정치에서도 이 경험을 살려 주민들의 말을 경청하고 원하는

▲ 데이빗 김 후보

▲ 데이빗 김 후보

부분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의 선거 준비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눠보며 필요사항 및 애로사항 등을 파악하고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는 노력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이기에 교육에 관심이 많다. 지금 교육환경이 지난10여년 만에 대학교 학비는 2배 이상 치솟았다. 모든 학생들이 좋은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하는데 이조차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또 아이들 데이케어, 프리스쿨 등의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아 누구나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연방의원들이 공립 Pre-K 학교 추가설립, 학자금 대출이자 일부 지원 등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서에 대한 그의 입장은 미국은 40여년간 이민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그에 따른 많은 발전도 이룩했지만 요즘은 반이민 정서가 만연해 유럽인이 아닌 이민자들을 대부분 규제하고자 하는 듯한 분위기라 이러한 반이민법들은 규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종차별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좀 더 서로를 이해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연방하원의원석에는 한인이 한 명도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한인 이민자들을 포함한 소수계 미국인을 대표할 수 있는 연방하원의원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후보는 지난 해 6월 7일부터 본격적인 캠페인을 시작했고 선거 캠프에 12명을 두고 있다. 현재 각 주의 여러 한인 인구 밀집 도시를 돌며 자신을 알리고 있다.
김 후보가 출마하는 7지역구에서는 민주당 출신 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예비선거는 물론 본선거에서도 자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7지역구는 소수계의 비중이 5년전 40%에서 현재 아시안 16.5%를 포함해 51%에 달할 정도”라며 “지난 6월 열린 조지아주 6지구 연방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48%를 차지해 공화당 후보에 2.5% 가량 뒤지는 선전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텃밭인 조지아주에서 이같은 변화가 민주당인 자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선의 원동력에 대해 김 후보는 “한인들의 지지, 후원금, 투표참여 등 3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김 후보는 7지역구 내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 통털어 후원금 1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아직은 초기여서 곧 주류사회 정치인들의 반격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 후보는 “한인을 비롯한 소수계들이 노력만 하면 아메리칸 드림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한인사회의 지원을 부탁했다.
후원은 데이빗 김 후보의 웹사이트 (www.davidkim2018.com)에서 할 수있다.

앤디 김(Andy Kim,민주) 후보: 뉴저지

앤디 김(34)후보(사진)는 연방하원 뉴저지 3선거구에서 출마했다. 특히 그는 미 유력 언론들의 관심 을 모으고 있다. 3지구에서 민주당 후보로는 그가 유일하다.
지난 해 뉴욕타임스⋅AP통신을 비롯해 CBS방송, 의회전문지 더힐, 뉴저지주 최대 일간지 스타레저 등은 출마를 공식 선언한 김 후보의 소식을 일제히 전했다. 김 후보가 정치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 같은 관심은 김 후보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이라크 담당 디렉터로 활동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갖췄고, 김 후보가 출마하는 뉴저지 3선거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심판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선거구의 현역인 공화당 톰 맥아더 의원은 트럼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오바마케어를 폐지⋅대체하는 이른바 ‘트럼프케어’의 설계자 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맥아더 의원과 오바마 행정부 시절 NSC에서 활약 한 김 후

▲ 앤디 김 후보

▲ 앤디 김 후보

보의 대결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민심을 확인할 수 있는 풍향계 역할을 하는 셈이다.
김 후보는 세계적 권위의 로즈장학생 출신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이 거쳐간 로즈장학생은 엘리트 코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김 후보는 시카고대 재학 중이던 지난 2004년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옥스퍼드대에서는 국제관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무부에서 외교 전략 오피서로 일했다. 특히 2011년부

터 2013년까지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군 사령관 참모를, 2013~2015년에는 NSC 이라크 담당 디렉터로 활동했다.
뉴저지 3선거구는 남부 뉴저지 벌링턴⋅오션카운티의 총 53개 타운으로 이뤄져 있는데 백인이 85.6%로 대다수다. 지난 2016년 대선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겼지만 2008년과 2012년 대선 에서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승리했다.

한편 CBS방송은 “트럼프케어 설계자인 맥아더 의원이 오바마 행정부에서 활동한 김 후보의 도전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미국이 가고 있는 길이 우려된다. 그래서 출마했다”는 김 후보의 입장과 함께 오바마케어 폐지 시 오는 2026년까지 2300만 명이 건강보험을 상실할 수 있다는 의회독립예산국(CBO)의 전망을 소개했다. 온라인 정치 후원금 모금 웹사이트 ‘크라우드팩’에 따르면 김 후보의 경우 225명이 지지 의사를 밝힌 반면 맥아더 의원은 6명에 불과하다. 김 후보는 유전공학 박사인 김정한 교수와 장재순씨의 1남1녀 중 차남이다. 김 후보 측은 “당선을 위해서는 한인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앤디 김 후보 사이트: AndyKimforCongress.com

댄 아릭 고(Dan Koh,민주) 후보 : 보스턴

한인 3세 댄 아릭 고(32)후보(사진) 가 2018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매사추세츠 제3선거 지구의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한다. 그는 미주한인사회의 명문 가정의 후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의 장면 총리 당시 정부에서 주미 전권공사를 지낸 고 고광림 박사이고, 할머니는 전혜성 전 예일대 교수다. 그의 아버지는 고경주 전 연방 보건복지부 차관보를 지냈다. 부친과 함께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차관보급으로 일한 고홍주 전 예일대 법대학장은 작은 아버지다. 또 외증조 부모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하버드 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비즈니스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대학 시절 에드워드 M. 케네디 상원의원의 인턴으로 일했고, 하버드

▲ 댄 아릭고 후보

▲ 댄 아릭 고 후보

경영대학원 리더십 연구원 프로그램을 통해 토머스 M. 메니노 전 보스턴 시장의 일을 도우며 현실 정치를 배웠다.

고씨는 니키 송가스(민주당) 현 하원의원이 내년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일찌 감치 출사표를 던졌다. 현재 ‘예비선거준비위원회’와 ‘자금모금위원회’를 꾸리고, 선거 캠페인 사이트(koh2018.com)도 문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8월 말 마틴 월시 보스턴 시장의 비서실장직을 사퇴했다. 월시 시장으로부터는 100% 출마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고씨는 웹사이트에서 “저는 ‘아메리칸 드림’의 힘을 깊이 믿고 있지만 지금 그 꿈은 공격받고 있다”며 “이를 회복하기 위해 의회에 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균등한 경제적 혜택, 양성평등 등의 진정한 미국의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초 선거준비위원회를 꾸린지 한달 만에 $806,000 모금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자 상대방들이 그에 대한 견제가 시작됐다. 보스톤글로브는 대니얼 고가 강력한 선거자금 모금으로 선두 주자 후보로 자리매김했지만 선거 지역구인 제 3지역구 내에서는 약 3만불이 넘는 금액만 모금했고 나머지는 대부분 보스톤 등 다른 지역에서 기부한 금액이라고 밝혔다.
대니얼 고의 후원자 명단에는 전 미 상원이자 현재 GE의 임원인 윌리엄 코완, 전 매사추세츠 주 주지사 윌리엄 웰드, 보스톤메디컬센터 회장 케이트 월시, 전 보스톤2024 대표 리차드 다비, 레드삭스 구단주 래리 루키노와 탐 워너 등이 있다.
www.koh2018.com
Committee to Elect Dan Koh
P.O. Box 723 Andover, MA 01810


미 이민사 최초 연방하원 의원 김창준

‘그가 있었기에 오늘의 그들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던 코리아를 떠나 빈털터리로 낯설은 이역만리 미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지 꼭 32년. 미국 연방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미 합중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관광 객이 아닌 연방의원의 자격으로 의사당을 향해 걸어가는 내 마음속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 전 의원이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후 1993년 1월 4일 워싱턴DC 의사당에 입성하던 때 일기장 에 적은 글이다. 1992년 ‘4.29 폭동’으로 한인사회가 불바다가 된 것은 우리의 정치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11월 미국 선거에서 한국인 1세 김창준씨의 연방하원 당선은 ‘미주한인 정치력 신장’의 또 다른 원동력이 되었다. 한국인으로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사람은 역사상 김창준(Jay Kim) 씨 단 한 사람뿐이다.

고학 유학생 출신의 불굴의 의지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동포 2세도 아니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한인 1.5세도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까지 다니고 육군에 입대해 제대한 뒤 단돈 500달러를 들고 혈혈단신, 당시 세계에서 열 손가락에 꽃힐 정도로 가난했던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와 접시를 닦으며 고생했던 1960년대 초의 전형적인 1세였다.
한국인 고학생에서 연방하원의원이 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창준 전 의원(사진)은 미의회 역사상 초선의원에게 발언권을 주는 관례도 만들었다. 1993년 1월 4일 신임 의원 취임

▲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

▲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

선서가 끝나고, 공화당 원내대표의 권고로 103차 회기 개원 첫 발언을 김 전 의원이 맡았다.
그는 취임선서를 한 지 40분 만에 발언권을 얻어 단상 앞으로 나갔다. 개회식 첫날 초선의원이 제일 먼저 발언을 한다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가 새로운 의회 기록을 세운 것이다. 그 이후로는 개회식에서 초선의원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다.

그는 초창기 유학시절 캘리포니아의 단칸방에 살면서 낮에는 Chaffey College에 다니고 밤에는 식당에서 밤늦도록 일하며 서툰 영어에, 모든 게 색다른 이역만리에서 고독과 향수병으로 견디기 어려웠다.
지금 기억으로는 거의 매일 저녁, 조국에 두고 온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미국행을 후회한 적도 많았다. 나중에 USC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공과대학에 편입하면서 다행히 온타리오 시의 신문사(The Daily Report)에서 배달 책임자 일을 맡게 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경험을 살려 미정계 진출하는 후배들에 격려

그는 대학 졸업 후 토목기사로 경험을 쌓은 뒤 39살에 설립한 제이킴엔지니어링(Jay Kim Engineering)이란 설계회사를 세웠다. 그때부터 그의 삶이 바뀌었다. 회사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사회활동도 많아지고 아시아 기업인협회 (Asian Business Association) 의 첫 한국계 회장이 됐다. 이후 기업활동을 하면서 중소기업청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으로 부터 ‘자랑스런 기업인 상’ 등을 수상하면서 김창준이란 이름이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다이아몬드바 시의회 의원과 시장을 거쳐 1992년에 미 역사상 최초의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연달아 3선에 성공하게 된다.

지난 2009년에 발간된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책에는 1993년 감격적인 미 연방의회 하원 의원 선서식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이날 32년 전 미국 땅에 도착할 당시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단다.
“귀하는 미 합중국 헌법을 지지하고 국내외의 모든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것이며, 이를 위해 충성과 신념을 다할 것이며, 어떠한 정신적인 유보나 회피할 생각 없이 자유스럽게 이 의무를 맡으며, 지금부터 귀하가 시작하는 직무를 충실하게 집행할 것을 엄숙하게 맹세합니까?” “네” “하나님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
김창준 전 의원은 최근 한국 박근혜 정부하에 국민경제 자문회의에서 활동했다. 현재 전경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김창준 전 의원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미의회에 진출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권유한다. 특히 김창준 전 의원은 한인 2세들은 더 큰 정치력이 발휘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한인들은 결국 백인 지역구에서 출마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흑인 지역구에서는 당선 되기가 어렵다. 한국 사람은 히스패닉 지역도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하기 전에는 힘들고 중국 지역도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한인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구가 이상적인데 그런 지역구는 없다.
한인타운이 여기저기 있지만, 그곳에서는 비지니스만하지 살기는 대개 학군이 좋다는 백인 지역 구에 거주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제가 2세 정치 지망생에게 주는 말은 이 것이다” <한인타운보다는 백인 지역구를 선택하라! >

김창준 전의원은…
1939년생 보성고 졸업, 1961년 도미, 1967년 남가주대(USC) 졸업, 19
69년 남가주대(USC) 대학원 석사, 한양대에서는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제이킴엔지니어링 설립, 199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이아몬드 바 시 시의원, 1991년 다이아몬드바시 시장, 1992년 캘리포니아주 제41지구 연방하원의원 당선, 1999년까지 3선 연임하는 동안 한인동포로서는 최초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7년 워싱턴 한미포럼을 설립하여 한미 FTA가 성사되는데 기여했고, 2011년 한국서 사단법인 김창준 미래 한미재단 설립, 2012년엔 김창준 정경 아카데미를 설립해 한미정치 선진화에 앞장 서고 있다. 현재 한국 대통령실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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