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미주 중앙일보 잔혹사 집단해고사태 되풀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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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집국장 상무 주요간부 7명포함 28명 해고…뉴욕도 15명

부활절 대학살극 ‘그들은 저승사자였다’

중앙일보미주법인(대표 박장희)이 지난달 26일 LA지사 이종훈 상무와 이원영 논설실장 등 중요 고위 간부진 7명을 포함해 직원 28명과 뉴욕지사 15명 등을 전격 해고 내지 예정하고 있어 언론계를 비롯해 미주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이같은 대량 해고사태는 미주중앙일보 창간44년 역사에 처음 있는 사건이다. 타운에서는 이번 집단해고 사태에 대해 “부활절 대학살 극” 이라고 말할 정도로 참혹한 해고 사태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집단 해고사건는 지난 2009년 10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박인택 전 사장 자살이 시발점으로 전임 임광호 사장 시절에 고계홍 전 사장의 측근들을 전격 해고 시킨 “로컬 직원 학살극”에 이은 최대 참사라는 점에서 미주한인사회가 공분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짚어 보았다.         <특별취재반>

중앙일보건물지난 주 해고된 미주중앙일보 중요 간부진은 이종훈 상무,이원영 논설실장, 김미숙 광고본부장, 이정우 판매본부장, 조병환 조인스 아메리카 미디어 본부장, 김장섭 기술본부장 등 6명으로 현재 LA지사의 핵심 경영 요원들로 거의 중앙일보를 위해 청춘을 불사르며 수십년간 혼신을 다했지만 결국 해고라는 꼬리표를 달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 해고된 이종훈 상무는 2009년에 편집국장, 2011년 광고국장 2013년 사업국장 등 중앙일보 LA지사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후 2015년에 상무 이사로 승진했다. 이원영 논설실장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논설실장을 맡았다. 김미숙 광고본부장은 광고 분야에서만 20여년을 근무해 언론사 광고업계에서 “대모”라고 불리울 정도로 전문가였다. 이정우 판매본부장은 광고본부장을 지내고 OC총국에 근무하다가 최근 다시 판매 본부장을 맡았다. 조병환 조인스 아메리카 미디어 본부장은 지난 2008년에 서울 본사로부터 발령을 받아 LA로 부임한 유일한 이번 해고사태의 한국파견 직원이었다. 이번 해고사태는 편집국장과 사업본부장을 제외하고는 중앙일보 LA지사의 고위직 핵심요원을 대부분 해고 시킨 것이라 충격과 파장이 크다.

새 사장 교체 때마다 해고사태 되풀이

지난 주말부터 퍼져나간 집단해고사태 소문을 들은 타운 인사들간에는 “어떻게 그같은 일이 벌어지는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중앙일보가 해도 너무 한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앙일보 LA지사는 매년 한차례씩 인사이동을 단행하여 왔으며, 특히 사장이 교체될 경우 매번 대규모 인사이동과 해고 사태가 관례화 되다시피 해왔기에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신임사장 부임직후에 이뤄진 이번 집단해고 사태는 한마디로 경악할 수준의 메가톤급의 회호리였다. 지난 수년간 미국의 경기침체와 타운경기 불황으로 재정수직 악화가 가중되어 인건비를 줄여야 하는 지경에 까지 도달했지만 LA와 지사에서 40여명을 동시에 해고시킬 정도로 경영이 악화됐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해고참사는 지난 2월 본사에 약 10여명 정도 명단을 올렸으나 본사에서 경영상을 이유로 해고숫자를 늘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대학살극의 총체적 지휘는 서울 중앙그룹의 홍정도 사장이고, 실무책은 LA 중앙일보 박장희 대표와 NY중앙일보의 조원식 대표인 것으로 보인다. LA중앙일보는 중앙일보 미주법인 산하 10개 지사 중 맏형격이다. LA지사는 남가주를

▲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

▲ 홍석현 중앙그룹 회장

관장하면서 실제로는 모든 콘텐트를 미 전역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LA지사는 오렌지카운티 총국과 샌프란시스코 총국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LA동부지국(지국장 황인국)과 샌디에이고 지사는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중앙일보 본사는 지난해까지는 중앙미디어네트워크에서 총괄하는 언론이었는데, 올해 1월 2일 부로 명칭을 중앙그룹(회장 홍석현, 사장 홍정도)으로 바꾸었다. 중앙그룹은 범 삼성계 미디어 그룹이다. 1963년 중앙일보 창간을 위한 신문발간 준비위원회 발족을 모태로 하여, 2011년 4월에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박장희 미주법인 대표는 지난해 12월1일 에 발령을 받았다. 이날 뉴욕중앙일보 대표에는 LA중앙일보 경영지원실장을 맡았던 조원식 실장이 발령됐다. 신임 박 대표는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을 거쳐 유펜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 중앙일보 재무기획실장·경영지원 실장·경영총괄 등을 역임했다. 조 대표는 성균관대를 나와 한국중앙일보 인력개발팀장 등을 지냈다.

고계홍 전사장 측근 직원들 싹쓸이 해고

중앙일보 LA지사는 지난 2016년에도 대규모 감원을 추진해 명예퇴직부터 실시해오다가 전격적인 해고조치에 들어갔었다. 당시 구조조정은 지난2015년 초 새로 부임한 임광호 사장이 재정적인 이유로 고참급 로칼 간부들을 대거 사표처리 한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집단 해고 배경에는 소위 전임 고계홍 사장 사단으로 분류되는 현지출신 간부들을 정리하고 본국 출신들을 대거 발탁하려는 저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해고된 간부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정리해고 된 고위간부들은 ‘임 사장이 로컬을 너무 모른다’고 말하며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하루 아침에 해고 통지를 받았다’고 분개했다. 당시 편집국 고위간부와 샌프란시스코 총괄국장 등 약 10명을 비롯해 타부서 인원까지 합치면 두 자리 수였다. 당시에도 기자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대학살극’ ‘잔혹사’로 불리워졌다.

당시 편집국 고위직 구조조정 대상자들은 전임 사장인 고계홍 씨 계열 간부급으로 알려져 해고 조치에 따른 실력행사

에 돌입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당시 중앙일보 LA지사 측은 해고된 간부들에게 3~5개월 치의 급료를 차등 지불키로 했다. 당시 LA중앙일보의 구조 조정은 표면상 미디어 디지털 개발 확장에 따른 정책이라고 알려졌다. 미주중앙일보는 지난 2014년 9월 22일에 창간 40주년을 기념해 신문 1명에 [창간 40주년] <중앙일보, 이름을 걸고 최고를 만들겠습니다>라는 큰 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을 게제했다. <여기 미주 중앙일보사의 전직원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전쟁을 벌입니다. 깊고 넓은 기사, 최상의 독자 서비스,최고의 광고효과를 위한 치열

▲ 홍정도 중앙그룹 사장

▲ 홍정도 중앙그룹 사장

한 논쟁은 스파크가 되어 독자 여러분들에게 희망과 나가야 할 방향을 인도하는 불빛이 된다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라는 기사에 전직원 356명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빼곡히 적어 넣었다. 아마도 그때까지가 미주중앙일보의 전성기였다. 실제로 2001년에 사장으로 부임한 고 박인택 사장은 “타도 미주한국일보”라는 가치를 내걸고 매우 공격적인 운영을 실시했다. 박 사장은 타운의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언론사 사장들이 평소 권위주의에 있는 것과는 달리 서민적인 행보를 보여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2008년까지 미주 중앙일보는 크나큰 신장세를 보여 경쟁지 미주한국일보를 육박해 나갔다.

박인택 사장 미주중앙일보 고속성장 마련

그 이후 타운에서 “미주중앙일보가 미주한국일보를 제쳤다”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기가 침체화하자 미주중앙일보도 경제위기를 피할수 없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중앙일보가 어떤 회사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2009년 6월 7일 ‘고 박인택 사장 자살 사건’이다. 지난 2001년 이후 박인택 사장 체제하에서 미주중앙일보는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부임 4년만에 숙원이던 경쟁사를 앞지르는 성과도 올렸다. 멀티미디어 구축을 위한 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중앙일보의 다양성 있는 사업도 다이나믹하게 창출해 나갔다. 독자들도 광고주들도 중앙일보를 다시 보게 됐다.

따라서 박인택 사장은 역대 미주중앙일보 경영진 중에서 가장 실적이 우수한 사장으로 평가 되었다. 당시 미주중앙일보는 LA에서 하루 150면 발행으로 가장 많은 지면을 발간하는 한국어 일간지였다. 그러나 지난2008년 중앙 라디오를 출범시키면서, 곧이어 불어닥친 예기치 못한 글로벌 경기 침체로 라디오 방송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가 않았다. 신문도 어려운 형편에 방송라디오 영업은 더 힘든 과정이었다. 경기침체가 올 줄을 예상 못하고, 확장 사업을 벌여 온 것이 크나큰 부담이 되어 지난 동안 이룩한 성과도 흐리게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된 것이다. 매번 실사되는 감사가 끝나면서 한바탕 폭풍우처럼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 앉게 되는 박 사장의 입지는 더할 수 없이 급속히 쫄아들었다. 2009년에 들어와서도 감사는 계속되고 곧이어 대규모 감사가 다시 예고되었다. 특히 2009년은 중앙일보 미주 진출 3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다. 불과 3년전만 하더라도 2009년의 창사35주년은 박인택 사장에게 ‘월계관’이 준비되는 영광의 해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미주중앙 일보의 영광은 사라지고 박인택 사장에게는 감사반의 또 다른 칼 끝을 기다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박인택 사장 감사 직후 ‘자살’ 극단의 선택

이때 청천벽력의 비보가 타운을 울렸다. 미주중앙일보를 키웠던 박인택(58) 사장이 자살했다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중앙일보 미주본사(LA사장 김용일)는 각 언론사에 짤막한 성명서를 배포했는데 그 내용은 “박인택(58) 미주본사사장이 지난 7일 오전 자택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58세. 고인은 성균관 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해 중앙일보 입사 이후 시카고, 뉴욕 지사장을 거쳐 지난 2001년부터 미주중앙일보 본사 사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박종우씨와 선영, 윤영자매를 두고 있습니다”였다. 중앙일보측은 ‘회사장으로 거행한다’고 했지만 유족측은 고인이 생전에 다녔던

▲ 고 박인택 전 사장

▲ 고 박인택 전 사장

성삼한인천주교회 에서 거행했다. 당시 장례미사가 끝난 후 이 자리에 참석한 중앙일보 미주지사 관계자들과 전직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울분을 터트렸다. 뉴욕, 워싱턴DC, 시애틀, 시카고, 애틀란타 지국 등 각지에서 온 관계자들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중앙일보 본사에 대한 강한 분노를 드러 냈다.

특히 박 사장과 함께 일했던 P모 전직 간부는 “XXX들, 가만 안두겠다. 두고 보자”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또 다른 전직 직원은 “박 사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 했었다. 당시 본보(제 693호, 2009년 6월14일자)는 ‘박인택 사장의 죽음은 자살이었다’고 보도하였는데, 선데이저널을 본 타운의 많은 동포들 사이에서는 “중앙일보 박인택 사장이 단순히 숨진 것으로 알았는데 자살이었다니 놀랐다”면서 “왜 이런 사실을 중앙일보는 은폐를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당시 본지 취재진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2007년부터 박 사장에 대해 감사를 벌여온 중앙일보는 그가 자살하기 직전인 지난 6월 4일 전문 변호사까지 동원해 박 사장을 궁지로 몰아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박 사장은 회사 측이 자신에게 민·형사 소송 등 법적대응을 내세워 제거하려는 속셈을 파악하고 자신의 결백을 어떤 형태로든 밝히려고 작정했다가 결국 그는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자료와 함께 유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해고가 확정되거나 예정인 직원들은 중앙일보 회사를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양측이 어떤 조건으로 해결책을 구사할 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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