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민의 이민사…책자 영상자료 출간 경상도 사나이들의 ‘꿈과 사람 그리고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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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산타아나스는 무엇입니까’

아메리카 대륙에 ‘경상도 마을’ 꿈꾼다

통일신라 시대 때 당나라 동해안 각지에 설치된 신라인들의 거주지를 ‘신라방’이라 불렀다. 1천여년전 그곳에는 주로 교역하던 상인들이 많았으나, 견당사라고 불리는 사신단, 학문을 익히러 간 숙위학생(유학생), 불법을 배우러 간 구법승, 그리고 경제적 난민과 정치적 망명객도 상당수 머무른 것으로 알려진다. 한마디로 현재 LA에 존재하는 ‘코리아타운’과 비슷한 것이다. 예전 신라 땅에 살아온 미국 땅의 대구-경북인들이 최근 아메리카 드림의 역사를 담은 ‘당신의 산타아나스는 무엇입니까’라는 스토리북 형식의 이민사 자료집의 출판기념회를 마련 하면서 “미국속의 경상도 만세”를 소리 높혀 외쳤다. 1세기를 훨씬 지난 미주한인 이민역사에서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미주한인 이민사가 출간 되었지만 특정한 도민의 이민사를 책자와 영상 자료로 출간하기는 경상북도가 최초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경상도마을“저는 안영대입니다. 여기서는 제임스 안 이죠. 1941년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서 태어났습니다라고 스토리북에서 안영대 전 OC한인회장은 고향 뿌리를 소개하면서 미국 이민을 오게 된 동기를 소개했는데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영남대학 시절 캠퍼스에서 첫 눈에 반한 여대생을 “불란서 인형”이라고 꼬셔 7년간 연애를 했는데, 어느날 가족따라 미국으로 이민가버리는 바람에 망연자실. 하지만 경상도 사나이를 잊지 못해 미국에서 나온 그 여성(당시 영주권자)과 결혼을 하는 바람에 나중 꿈에 그리던 1971년 미국 비자를 받게 됐다.

굴곡진 삶 걸어 온 ‘안영대’의 소박한 꿈

당시를 회고한 안영대 전 회장은 “어떻게 여자가 초청해 남자가 미국에 이민 할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며 “누구라도 영주권을 받으면 여자도 남자를 데리고 갈 수 있는거야. 나는 이건 아닌데. 남자가 어떻게(여자 호적으로) 들어가냐? 미국이란 나라는 여자도 남자를 초청하게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처럼 쫄아서 미국 땅을 밟은 안 전 회장은 경상도 기질을 살려 OC한인회장, OC한인상공회의소장 등으로 포함한 한인사회 봉사활동과 미국에서 최초로 ‘코리아 바비큐 뷔페’ 식당을 차려 29년째 한 장소에서 잘 운영하는 성공적인 비즈니스 맨으로 입지도 다졌다. 물론 자녀들도 잘 길렀다. 아들은 한국에서 근무하고 딸은 OC에서 검사로 활동하고 있다. 부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 산다는게, 참…시민권이 100개 있어도 조국은 한국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고향은 언제나 가고 싶은 곳이다.

안영대 전 회장의 이야기처럼 미국 땅LA,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하와이 등 미대륙 서부 3개 지역에 정착한 경상북도 이민자들의 이주 역사, 고향에 대한 기억과 의미, 동포들의 생동감 있는 역사, 사건 등 생애 이야기를 골고루 담은 책이 바로 ‘당신의 산타아나스는 무엇입니까’ (작가 김슬기, 사진 김사라, 기획<사>인문사회연구소) 라는 스토리북이다.
이 책자는 ‘해외동포 정체성 찾기 사업’을 목표로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와 사단법인 인문사회 연구소(소장 신동호)가 지난해로 8년째 진행시키고 있는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이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이민사 자료집이다.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 프로젝트 일환

▲미주 경북도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주 경북도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같은 경북도의 해외동포 인적네트워크 구축사업은 지난 2010년부터 ‘중국 경상도 마을’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뿌리내려 살고 있는 경북 출신 해외 동포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경북도와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매년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별첨 ‘중국속의 경상도 마을’ 기사 참조) 이 프로젝트는 처음 ‘중국속의 뎡상도 마을’(2010), ‘사할린 강제징용 동포’ (2011), ‘파독광부와 간호사’(2012), ‘우즈페키스탄 고려인’(2013), ‘중국 베트남 인도니시아 인도 경북인’(2014), ‘브라질 경북인’(2015), ‘일본 자이니찌 경북인’(2016) 등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12월 경북도에서 발간한 미주 경북인들의 스토리 ‘당신의 산타아나스는 무엇입니까’라는 책자는 총 546 페이지에 1903년 사탕수수 농장 노동이민부터 시작된 미주 한인들의 이주사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삶, 그들이 이뤄낸 아메리칸 드림 등 LA지역 5명을 포함해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경상북도 출신 30여명의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중 LA경북인으로 ‘LA한인의 자부심과 긍지’(김시면 전 LA한인회장), ‘나한테 오면 기본이 30년’(이용규 회장), ‘남의나라에 산다는 것’(안영대 전OC 한인회장, 예천), ‘불난 자리에 불꽃이 핀다’(이돈, 경주), ‘사표 수리전에 와버린 미국’(이재권 장로) 등의 오럴 히스토리가 담겨있다. 지난해 경상북도의 ‘세계시민으로 사는 경북인 2017’ 프로젝트로 진행된 취재는 미주 대구경북 향우회(회장 윤중희)의 협조를 받아 3주 동안 LA, 샌프란시스코, 하와이까지 총 3개의 지역을 방문 해 자료를 모았다. 한편 지난 6일 오후 5시 30분 타운내 중식당 만리장성에서 ‘당신의 산타아나스는 무엇입니까’ 미주 출판기념회가 경북도 LA사무소(소장 김경호)와 미주대구경북향우회(회장 윤중희) 주최로 구술자 등을 포함해 1백 여명의 축하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몰랐던 사실과 알아야할 자부심

이자리에 참석한 엄진섭 초대 미주대구경북향우회장은 “향우회 창립 25년만에 보람있는 경상도민의 이민사 자료집이 나와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윤중희 대구경북향우회장은 “향우회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문사회연구소가 한인 이민 올드 타이머들을 만나는데 최선을 다해 도왔다”며 “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미국생활을 잘하고 있는 우리들의 얘기가 담겨있다”고 밝혔다. 이재권 향우회이사장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몰랐던 사실, 알아야할 내용 등을 함께 나누게 되어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인들은 ‘화랑정신’ ‘선비기개’ ‘호국사상’의 역사와 조국 근대화 정신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데 이번 ‘당신의 산타아나스는 무엇입니까’ 출판기념회를 계기로 “살아있는 경북인”을 다시 한번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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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말과 생활풍습을 지키며…’

중국에 ‘경상도 마을’ 300여곳 있다

일제 강점기 탄압과 굶주림을 피면하기 위해 중국으로 이주한 수많은 조선족들은 주로 길림성, 흑룡강성, 료녕성 등 동북 3성에 정착했다. 2013년 현재 중국조선족 190여 만명 중 경상도 출신은 40여 만명으로 추정되며 그중 아직도 경상도 말과 생활풍습을 지키며 사는 중국내 <경상도마을> 이 300여곳에 이른다. “중국의 경상도 마을”로 대표적인 지역은 아라디 촌으로 길림시에서 북으로 37㎞ 떨어진 곳에 있다. 길림성 최대 도시 옌볜이 함경도에서 건너온 동포들 위주로 형성된 곳이라면 아라디는 경상도에서 건너온 동포들과 후손들이 모여 산다. 경상도 사투리와 풍습, 문화가 그대로 보존된 중국 속의 경상도다.

경상도 사투리와 풍습, 문화 그대로 보존

아라디는 주민 70%가 경상도 출신으로 구성된 조선족마을이다. 이 마을은 1927년 정의부에 소속 된 조선인 5호가 입주하면서부터 형성됐다. 전성기인 1960~70년대는 외국인들의 견학코스가 될 정도로 조선족 뿐만 아니라, 전 중국에서도 이름난 모범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만주사변(1931년) 이후 만주국을 만들었고,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당시 일본인 신분이던 조선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말을 듣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역을 부과했고, 졸지에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조선인들은 고향을 등지게 됐다. 일본은 이곳을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경상도 주민들을 데려왔고, 늪지와 자갈밭 뿐인 이곳에 버려놓다시피 했다. 사람들은 척박한 땅과 싸우며 첫 겨울을 맞았고, 영하 30도를 밑도는 혹한 속에 절반가량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었다. 1936년부터 1940년 사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은 약 25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중 길림성의 알라디촌, 흑룡강성의 홍신촌 등에는 경상도 사람들이 모여 ‘중국내 경상도 마을’을 만들어 이어오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일본에 속거나 떠밀려 중국으로 내몰려 어쩔 수 없이 국적을 포기해야 했던 이들이 있다. 이들은 결국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중국 55개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으로, 그렇게 중국 사람이 되어버렸다. 현재 중국 내 조선족 인구는 183만명에 이른다. 일본에 의해 중국 내 조선족이 되어버린 그들. 많은 동포들이 지금까지 그들은 조국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제의 강제이주 참상 알린 독립운동 본거지

길림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고속도로 변에 커다란 알림석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알라디촌 조선족민속촌’이라고 적혀 있다. 중국 내 경상도 마을이라고 하지만, 중국 내 다른 마을과 큰 차이가 없다. 양쪽으로 수양버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5분가량 더 달려가자 한옥 모양으로 세워진 마을 출입문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에는 ‘어서 오세요’라는 한글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출입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에는 서까래 등을 올린 10채가량의 한옥이 모여 있는 한옥민속촌이 나타난다.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알라디 조선족 소학교’. 학교 운동장 안으로 들어서자 ‘알라디 조선족민속촌 촌민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한글 현수막이 나붙어 있다. 동네 주민들은 매년 열리는 ‘알라디 민속촌 고추문화 관광축제’ 때면 한창 바쁘다. 대회 준비를 위해 운동장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씨름장’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매년 경기종목에서 씨름을 빼놓지 않고 있는 것. 한복을 차려입고 장구와 꽹과리, 징 등으로 사물놀이를 벌이는 것도 필수요소 중 하나라고 한다.

중국으로 건너온 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이들은 아직도 경상도의 말과 문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 “고춧가리가 모자린다. 버뜩 좀 더 챙기온나.” “미주바리 단디 묶어라. 국물 흐르마 우얄라 카노.”알라디 김치공장에서는 경상도 사투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고추로 유명한 알라디는 ‘민속촌 고추문화 관광축제’ 때 이곳을 찾는 공산당 간부 등에게 한국 전통의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김치를 담가 선물하고 있다고 한다. 아라디 촌에서는 매년 대보름 행사가 열린다. 정월대보름은 중국에서 ‘춘지에(春節)’라 부르는 음력설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겨울이 긴 이 곳은 넓은 실내에서 하루 종일 즐기며 노는 것으로 일정을 잡는다. 대보름 행사는 노인회가 주관이 돼 농악과 윷놀이로 진행된다. 윷놀이 방식은 길림이나 한국이나 동일하다. 윷놀이가 끝난 후에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여흥을 즐기지만 연날리기나 지신 밟기, 동제 등 예전에 행해졌던 전통적인 대보름의 민속은 상당부분 사라지고 없다.

라디 마을 주민들 ‘언제까지… 걱정이 태산

현재 아라디 마을은 민속촌을 건설해 조선족 문화의 독창성을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취업이나 진학문제로 젊은이들이 대부분 외국이나 대도시로 떠나고 있는 형편이라서 조선족의 고유한 민속 문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가 문제점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고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1세대는 거의 다 죽었고, 한국에서 태어나 부모 등에 업혀서야 중국으로 건너왔던 1.5세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 탓에 현재 살고 있는 이들은 한국보다 중국에서 더 오래 살아 이곳이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마음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표현했다. 고향에 대한 기억도 없고, 심지어 중국에서 태어난 이들도 한국 땅에 묻힌 할아버지 이야기에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어렵게 말문을 열자 눈물샘도 열렸다. 깊게 파인 얼굴 주름을 타고 눈물이 길게 흘러내렸다.
(출처:영남일보, 도움말:<사>인문사회연구소 신동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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