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야토스 사하 인터뷰 방글라데시 LA총영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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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의 영원한 친구이다”

지금 코리아타운은 온통 ‘방글라데시 타운’ 구역 설정 여부 투표로 열기가 고조되어 가고 있다. 김완중 LA총영사도 타운 대표자들과 간담회를 개최하면서 대응책을 가진바 있다. 그런데 정작 정작 ‘방글라데시 커뮤니티는 어떠한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방글라데시 커뮤니티는 지난 11일 방글라데시 최초의 정지궤도 통신 위성 인 방가반드(Bangabandhu)-1호를 플로리다주의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 발사장에서 성공적인 발사로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 위성 발사는 방글라데시 역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축하행사가 벌어졌다. 더구나 이 위성은 방글라데시의 국부로 알려진 초대 대통령 및 수상을 역임한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Sheikh Mujibur Rahman)의 별명을 따서 발사 했는데 앞으로 최소 15년간 임무를 지속할 예정이다. 지난 16일 본보 기자가 LA주재 방글라데시 공관장인 프리야토스 사하 총영사(Priyatosh Saha, Consul General of Bangladesh)를 만나 보았다. 그리고 리틀 방글라데시도 돌아보았다. <성진 취재부 기자>

코리아타운 인근 윌셔 블루버드와 크렌셔 블루버드에 위치한 빌딩 3층에 자리잡은 방글라데시 총영사관은 소박한 사무실이다. LA부임한지 2년이 됐다는 사하 총영사 집무실에는 들어서니 벽에 방글라데시의 독립의 영웅 국부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사하 총영사도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나라의 국부이다”며 “그 옆에 사진은 현재 총리인 셰이크 하시나로 바로 국부의 장녀이다”라고 소개했다. 독립 영웅 라흐만은 대학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투신해 결국 방글라데시는 독립을 쟁취했으며 라흐만은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3년 뒤 구테타로 가족과 함께 암살되는 비운을 맞았 는데 당시 장녀인 셰이크 하시나는 영국에 있어 암살을 묘면했다. 그녀는 후에 정계에 투신해 오늘날 아버지를 이어 총리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한국을 방문 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구역 문제 논란에 무반응

사하 총영사는 기자가 최근 코리아타운과 리틀 방글라데시 구역 문제로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하자,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우리는 LA한인사회와 친근한 관계를 원한다” 면서 “한인 비즈니스계가 코리아타운을 성공적인 타

▲ 코리아타운 3가와 알렉산드리아 코너에 방글라데시 표지판이 있다.

▲ 코리아타운 3가와 알렉산드리아 코너에 방글라데시 표지판이 있다.

운으로 건설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LA한인 비즈니스계에서 방글라데시에 투자하기를 원한다”면서 “방글라데시 정부는 외국 기업이 방글라데시에 진출할 경우 15년간 면세 정책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방글라데시가 ‘아시아에서 자랑스러운 독립국가’임을 강조하며 “교육면에서 특히 여학생 교육 등 인권신장에 노력하고 있으며 천년 개발목표 등에서 여러 성과를 이루고 있어 많은 국가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방글라데시 독립 후 몇 주 만에 대한민국이 자국의 독립을 인정해 주어 방글라데시는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방글라데시의 투자환경에 대한 자료와 관광안내 자료를 듬뿍 안겨주면서 “LA 코리아타운에 널리 알려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LA총영사관의 전임 이기철 총영사와는 우호관계를 지녀왔다며 앞으로 LA한인사회와의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바랬다. 방글라데시인들은 1960년부터 LA에 이민하기 시작했는데 현재 약 6,00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전체 인구 수는 약 2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90년도 중반까지 3가 거리에 단 2개의 벵갈 식당이 있었는데, 그후 계속 유입이 되어 지난 2010년에 현재 3가와 알렉산드리아에 ‘리틀 방글라데시’ (Little Bangladeshi)표지판이 처음으로 부착되었다.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에는 우리의 LA한인회처럼 ‘LA방글라데시 연합회’(BUFLA, Bangladeshi Unity Federation of Los Angeles, 1133 S. Vermont Ave. #20, LA, Ca 90006))가 있다. 이 연합회 사무실은 코리아타운 내 벌몬트 애비뉴와 11가에 있다. 지난 3월 31일 방글라데시 독립 47주년을 맞아 3가 거리에서 연례 ‘제 12회 방글라데시 데이 퍼레이드 엔드 패스티벌’(12th Bangladeshi Day Parade & Festival 2018)도 벌였다. 이날 퍼레이드는 3가와 놀만디 애비뉴에서 시작해 버몬트와 버질 중학교까지 진행했다.

방글라데시는 어떤 나라?

방글라데시는 1971년 3월 26일, 벙거번두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방글라데시 국부가 약 20년 간의 투쟁 끝에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했다. 수 주 후에 대한민국은 방글라데시를 승인했다. 방글라데시의 국화는 수련이고 동물은 유명한 벵갈 호랑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방글라데시의 좋은 친구이자 개발 파트너였다. 한국과 방글라데시 간의 쌍방 무역이 약 20억 달러에 달한다. 한예로 BNS 방가반두는 방글라데시 해군의 2천톤급 호위함이다. 한국의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하여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해외에 수출한 전투함이다. 인천급 호위함으로 방가반두는 배수량 2천톤, 헬기탑재, 라파예트급 호위함의 스텔스 디자인 등이 인천함과 유사하다. 이러한 경제 협력과 방위, 인권 신장과 문화 협력이 이미 많은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은 방글라데시 독립 50주년이 될 2021년까지 중ㆍ소득 국가로 발돋움하

▲ 한인사회와 우호를 다짐하는 프리야토스 사하 총영사

▲ 한인사회와 우호를 다짐하는 프리야토스 사하 총영사

고자 하는 방글라 데시 정부에 한국이 중요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한국은 1970년대 초부터 방글라데시에 상당한 협력과 지원을 해왔다. 양자 관계는 무역, 투자, 기반 시설 개발, 인적 자원 개발, 과학 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해왔다. 한국은 방글라데시의 보건, ICT, 교육, 수자원 처리, 에너지 및 교통 등 주요 우선 분야에 경제 및 기술 협력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EDCF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ʼs Fund)와 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라는 두 기관을 통해 방글라데시에 무상 원조 및 보조금 형태로 지원한다. 2017년 현재 방글라데시는 약 1 조 달러의 기부금을 받았으며 이는 EDCF가 지원하는 파트너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방글라데시는 Exim Bank of Korea를 통해 EDCF로부터 2017-2020년까지 최대 5억 달러의 대출을 받을 것이다.

방글라데시 ‘카르나풀리’(Karnaphuli)강을 가로 지르는 두 번째 철도 도로 교량 건설과 160개의 ‘우파질리아’ (upazila) ICT 교육 및 교육을위한 자원 센터와 같은 몇 가지 우선 순위가 높은 프로 젝트에 자금을 지원한다. 새로운 협약은 2015 년 11월에 체결 된 이전 협약을 대체하여 2015년에서 2017 년 사이에 최대 3억 5천만 달러의 대출을 촉진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는 8건의 총 5449만 달러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90년대 이후 우리나라와의 실질 협력관계가 심화됨에 따라 북한과의 관계는 점차 소원화되는 추세이고 특히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관련 사안에 대해 국제무대에서 우리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통일문제는 한국의 문제로서 외세의 간섭없이 7‧4공동성명에 입각하여 평화적으로 해결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인구가 1억 5천만 여명으로 1㎢에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을 정도로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다. 이 나라는 인도를 사이에 두고 파키스탄과 마주 보고 있는데 원래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는 하나의 인도였다. 그러나 불교와 이슬람 종교로 인도와 갈라졌다.

 

한국-방글라데시 쌍방 20억 달러 교역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1905년, 영국은 벵골 분할령을 발표하면서 인도 북동쪽에 있는 벵골 즉, 방글라데시는 영국의 통치에 가장 거세게 저항한 곳이었다. 1947년에 인도는 독립을 했다. 인도국민회의와 이슬람 동맹이 각각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려 했기 때문 분란이 발생했다. 인도의 독립을 이끌었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든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종교를 가리지 말고 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외쳤지만, 암살당하고 말았다. 결국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으로 나뉘어졌고 다시 인도를 사이에 두고 파키스탄이 동벵골이 있던 곳의 동파키스탄과 인도 서북쪽에 있는 서파키스탄으로 나뉘었다. 인구는 동파키스탄이 훨씬 더 많았지만, 정치는 서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 간에는 또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벵골어를 쓰던 동파키스탄에선 대학생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반대 운동을 벌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벵골 지역의 동파키스탄인들은 서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마침내 1971년 동파키스탄이 독립해 방글라데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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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타운 표정은…

코리아타운 열기와는 전혀 다른 표정

코리아타운 3가와 알렉산드리아 애비뉴 코너 동남쪽 편 가로둥에 ‘Little Bangladesh’(리틀 방글라데시)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지난 2010년부터 표지판이 부착되어 있다. 이 표지판이 있는 북동쪽에 조그만 상점이 있다. 한인 상점이 있다. 그곳에 방글라데시 델리 마켓이 있다. 지금 이슬람 달력으로는 ‘라마단’(Ramadan) 즉, 금식의 달이다. 미국에서는 5월15일부터 6월 14일까지다. 이 기간동안 일출부터 일몰시까지 금식은 물론 금욕을 하는 등 신앙생활에 매진하는 기간이다. 방글라데시 타운에도 대부분이 이슬람을 신봉하고 있어 지금 ‘라마단’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 22일 기자가 상점 안에 들어가보니 편의점 시설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방글라데시시장는 ATN방송이 케이블 시스템을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마침 점심 식사를 하는 방글라데시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트럭 운전사라고 밝힌 벵갈인은 기자가 ‘지금 이 방글라데시 타운을 두고 투표를 하는 행사가 6월에 있는데…’라고 하자 그는 “아니 ‘리틀 방글라데시’ 표지판이 있는데…무슨 투표냐?”고 되묻는다.

기자가 다시 ‘지금 이 지역은 코리아타운 지역구인데, 방글라데시 주민의회에서 새로 방글라데시 타운 구역을 설정 해달라는 제의로 6월에 주민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더니, 이 트럭 운전사는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라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자가 “혹시 지금 어디에 사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리버사이드에 살고 있다”라고 답했다. 지금 코리아타운 한인회는 물론 한인 교회나 각 대형 마켓들에서 ‘코리아타운을 지키자’며 투표를 위한 등록 캠페인이 한창인데, ‘리틀 방글라데시’ 타운 한복판에서는 한인타운 캠페인 같은 분위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이 ‘라마단’ 기간이라 대부분이 조용했다. ‘라마단’은 우편등록 마감일인 6월 12일을 지나 실제 투표일 5일 전인 6월 14일에 끝난다.

일반적으로 ’라마단’기간에는 오로지 신앙에만 전념해야 하는 관례로 다른 행사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예민한 기간이라 이 기간에 외교인이 이슬람 신도들에게 불필요한 접근을 할 경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코리아타운 버몬트 애비뉴와 11가에는 BUFLA(Bangladesh Unity Federation of Los Angleles)라는 단체가 있다. 우리네 한인회와 같은 LA방글라데시연합회이다. 지금 우리 한인회에서는 투표 등록으로 열성인데 그곳은 조용하다. 23일 오전 10시 방문했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코리아타운을 지키자”며 시민연대가 주동이 된 ‘한타모임(Hantamoim.org)에 가면 “6만 표가 필요합니다”라는 구호가 떠 있다. 지난 14일 오후 4시 한인회관에서 열린 ‘방글라데시 타운 분리안 반대를 위한 시민단체 모임’에서도 ‘저쪽(방글라데시)에서는 3만명이 (투표에)나온다고 하니 우리는 그배로 적어도 4-6만표는 모아야 한다’는 분위기로 모임을 이끌어 나갔다.

그로부터 기자의 뇌리에는 계속 의문점(?)이 ‘도대체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투표장에 나오는가’였다. ‘리틀 방글라데시’에 도대체 얼마나 그들이 살고 있는가? 여러가지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캘리포니아주내에 많아야 5만명 이내이고 LA일원에 많아야 3만명 정도라고 한다. 더 이하로도 볼 수 있다. 2010년 센서스에서 캘리포니아주에 방글라데시인이 10,665명이었다. 2015년 인구통계에 LA는 미국내 방글라데시 인구수 5위로 1만명 정도이고 당시 뉴욕은 8만명으로 추산됐다. 2016년 Migration Policy Institute 통계조사에서 미국전체 377, 000명이고, 캘리포니아주에 5만명으로 추산했다. 지난 주 방글라데시 타운 곳곳을 방문하여도 코리아타운처럼 투표 등록 캠페인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심지어 투표 안내지 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이라면 방글라데시 분리안에 찬성표(Yes)가 많을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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