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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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제68주년에 ‘소년병사’ 출간

소년병 출신 변덕인(83, 참전소년병전우회 미주지회장)회장

올해 6‧25 전쟁 68주년에 소년병 출신 변덕인(83, 참전소년병전우회 미주지회장)회장이 자신의 참전 기록을 담은 회고록 ̒소년병사̓를 펴냈다. 본보는 지난 2013년 6월 보훈의 달을 기념해 당시 변덕인 회장의 6‧25 전쟁 참전사(본보 884호, 06-16-2013)를 특집으로 보도한바 있다. 당시 변 회장은 6‧25 전쟁 휴전 60주년을 맞아 그동안 집필한 자신의 소년병 이야기를 탈고했었다. ̒소년병사’를 펴낸 변 회장은 “소년병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전우들의 숭고한 정신을 역사에 남소년병사기고 싶다”면서 “우리 남아있는 국민에게도 소년병 역사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 변덕인 회장은 1935년 9월 황해도 봉산에서 대지주의 막내로 태어났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 당시 변덕인 회장은 황해도 사리원 제1중학생으로 전쟁 중에도 학교는 수업을 계속 하고 있었다. 그해 12월 7일 사리원 집 마당에 수북이 쌓인 눈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변 회장의 아버지는 국도 길에서 북진했다 후퇴하는 국군 차량에 손을 들어 아들도 함께 태워 줄 것을 사정사정 부탁했다. 그 국군차량은 6사단 소속 3/4톤 차였다. 이렇게 떠난 그의 피난길이 영영 부모를 다시 못 볼 이별이 되고 말았다. 천신만고 끝에 12월 10일 저녁 국군이 서울 남대문 길목에 그를 떨구어 주었다. 서울 거리에서 헤메다 공비로 오인되어 철도 경비원에게 체포된 것이다. 결국에는 철부지 소년(만15세 4개월) 임을 알고 난 후에 그의 신병을 서울지구 병사구 사령부(지금의 종합청사 자리)에 넘겨져 이 날부터 어린 중학생은 병사구 사령부 취사장 가마솥 아궁이에 풍구질하고, 청소하고, 주먹밥을 배식하는 육군 무등병(?)이 되었다.

그는 1951년 1월 중순 보병 7사단으로 전속 명령을 받고 전선으로 출발 전날 손톱, 발톱, 머리털을 깎아 「유물 봉투」에 넣고 군장을 새로 지급 받았다. 전선으로 출발하는 새벽 아침 각 사단에서 보충병을 인수하기 위해 트럭이 연병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간 탄 트럭은 전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는 보병 7사단 3연대 2대대 6중대 소총병으로 일선에서 싸워야 했다. 소금국 주먹밥을 먹고도 2년 6개월 동안 키는 6cm나 자랐다. 1953년 7월 27일 양구 전선에서 휴전을 맞았다. 이렇게 해서 15세 중학생은 소년병 군인으로 징집된 것이다. 그가 펴낸 ̒소년병사̓에는 6‧25 전쟁사에 알려지지 않는 많은 귀중한 전사들이 수록되어 있다. 1950년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같이 국가존망의 위기를 맞았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충정으로 무장한 애국 청소년․소녀 1만여 명(추산)이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갔다. 당시 나이가 14~17세에 불과했던 중학교 2,3,4학년 남녀학생들이었다. 이들이 바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애국소년ㆍ소녀병들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제3권(2006. 12월) ‘소년병의 애국충정’이란 제목의 다부동 전투기록에는 “어린 학생 및 소년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최후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참전 하기 위해 당시 나이가 14세에서 17세 이내로 병역의무 없는 상태에서 쓰러져가는 나라를 지키겠다며 부르지 않았것만, 입대 군번을 받고 져야할 의무도 없것만, 최전선에 배치되어 장렬하게 피를 뿜으며 싸웠다”면서 “18세 이상의 동원령에 의해 소집된 학도병과 같이 최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수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국가는 징병의무 적령미달로 미성년인 이들에게 군번과 계급을 부여하고 정규군으로 입대 참전시켰다. 자ㆍ타의에 의해 정규군이 된 소년ㆍ소녀병들은 최후방어선인 다부동전투를 비롯해 여러 전투의 최일선에 참전해 전사자가 3천여 명(확인된 전사자 2,268명)이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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