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어죽고…팔려가고…수용소 끌려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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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보다 더한 中 탈북생활 참상공개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난민구호사업단(단장 이미숙)은 최근 극적으로 중국에서 강제북송을 피하며 방황하는 탈북난민 여성 12명을 구조하는데 성공했다고 최근 본보에 알려왔다. 구호사업단 임원들은 지난 6월 20일 워싱턴 출장길에 중국 현장에서 12명의 탈북여성 구출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고는 그때부터 서울과 워싱턴 그리고 중국 현지 구조단과의 교신이 시작 됐다고 밝히며 북한 난민 구출을 위해 북한 인권시민연합은 종횡무진으로 구조 활동을 버이고 있다. 본지에 알려 온 탈북여성들의 피눈물나는 사연들을 정리해 보았다.
<김현 취재부기자>

낮에는 정해진 일을 하고, 밤에는 북한난민 구출을 위해 현장과 연락하고, 전화를 돌리는 등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들 구조를 위해 국내외 47개 단체와 개인들이 긴급 모금을 하여 1만 달러 이상 모았다. 이 기금으로 중국에서 방황하는 12탈북명의 탈북여성들을 A,B,C 세조로 나누어 A조는 5명, B조는 3명, C조는 4명으로 나누어, 먼저 A조 여성들을 안전가옥에 옮기고 하룻밤을 재우고는 중국에서 남쪽으로 출발시켰다. 나머지 B조와 C조는 다음 날, 또 다른 장소의 안전가옥에 옮겨놓고, 먼저 떠난 A조가 국경을 무사히 넘는 것을 확인 한 다음 남쪽으로 향했다. A조가 동남아 모국에서 또 다른 국가로 이동할 무렵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이동이 불가능해 며칠 간 그곳에 숨어 있을 때는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한편으로 B조와 C조는 중국 남쪽으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김정은의 중국 방문으로 국경이 봉쇄되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중국에 외빈이 방문하고, 정부 주최의 국제회의가 개최 되면 중국 공안의 검문검색이 심해져 이동이 무척 어려워진다. 잠시 이동을 멈추고 숨을 고른 다음 먼 곳으로 돌아 국경을 잘 넘을 수 있었고, 지난 6월 22일 안전한 동남아 모국에 도착했다. 이어서 A조도 12시 경 무사히 안전한 땅을 밟았다. 이들 모두 안전한 곳에 도착해서는 손을 흔들며 구조단원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구조단원들은 이들이 몇 십 년, 혹은 몇 년에 걸려 자유를 찾았으니 그 기쁜 마음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제 난민 12명 모두 중국공안에 잡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은 10대부터 60대 후반의 어머니까지 사연이 참 기구하였다. 북한에서 90년대 대기근 때 가족이 굶어 죽은 사람도 있고, 중국으로 팔려간 딸을 찾으려 강을 건넜지만, 오히려 그 어머니가 팔려가야만 했다. 아들과 손주를 살리려고 나온 사람도 있고, 중국에서 목사를 만났다고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가족도 있었다. 탈북난민 여성 7명의 사연이다.

1. 백화, 30대 여성, 함경북도 출신
아버지는 16살 때 사망하고 언니가 행방불명되어, 엄마는 언니를 찾으러 정신없이 다니며 중국까지 가게 되었다. 누가 어머니가 중국에 간 것을 보위부에 말해 대홍단 산골 흙집으로 추방당했고, 이때부터 살길이 없어서 장사를 했다.
중국에 물건가지러 갔다가 오면 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2010년 봄에 그들을 따라 나섰다가 중국땅에 숨어 다니며 다시는 북한(조선)에 못 들어가는 인생이 되었다.

2. 최옥화, 여성, 양강도
18살인 딸아이가 2010년에 행방불명되어 조선 전역을 찾으러 다녔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우리 딸이 중국에 있는데 알고 있다고 말해 빚을 내서 딸을 찾으려고 2011년 4월 중국에 나왔는데, 속은 것이다. 중국 땅을 밟자마자 나를 사왔다는 남자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나는 너무 억울해서 내 팔을 깨물어 상처를 냈지만, 소용없었다. 팔려갔다.

3. 금옥순, 50대 여성, 함경북도
중국에 온지 20년이 되었는데도 조선에서의 생활은 한 가지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착한 남편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98년 대기근 때 부모님이 굶어죽고 우리가족도 힘들어져서 아들도 죽을 지경이었다. 이때 남편이 살길을 찾은 것이 중국에 가서 돈벌어 오는 것이다.

4. 박영해, 40대 여성, 함경북도
아버지는 탄광일하다가 병을 얻어 사망하고 엄마, 언니, 동생과 어렵게 살았다. 어떤 사람이 중국에 친척이 크게 공장 지배인한다고 몇 달만 벌어 와서 장사밑천 하라고, 여러 명이 가니 안전하다고 해서 1999년 봄, 직장에 병가내고 떠났는데 나 말고는 한 명 뿐이었다.

5. 30대 엄마와 17세의 딸, 함경북도
아버지는 내가 중국으로 오기 4년 전에 사망하고 엄마 언니 동생이 있다. 어떤 분이 중국가면 큰돈 벌 수 있다고 해서 엄마 몰래 1999년 늦가을 찬 강을 넘었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곳이 산골마을에 팔려 시집가는 것이었다.

6. 은향선, 60대 여성, 양강도
나는 늙은이다. 남편은 일찍 죽고 아들하나 데리고 살다가 아들이 결혼해서 손주(지금15살)를 낳고 무슨 일인지 교화 10년을 갔고 며느리는 친정에서 데려갔다. 혼자 손주 키우며 어렵게 살았다. 아들이 반죽음이 되어 교화생활 끝나고 집에 왔는데 병을 고칠 돈이 없고 손주도 키워야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2011년 가을 중국에 돈벌어 자식들 살리러 왔다.

◈사단법인 북한인권시민연합 북한난민구호사업단
◈단장 이미숙 부단장 엄영선, 김영자 컨설턴트 이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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