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성 비망록엔 사라진 동경 비자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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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지점 수천억 부정대출
해외비자금 판도라 열릴까

이팔성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 이팔성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변수가 터져 나왔다. 바로 MB가신이라고 불리던 이팔성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비망록을 통해 MB의 추악함을 꼼꼼하게 드러낸 것이다. 지난 8월 8일 본국 법원에 따르면 검찰은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특정경제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17차 공판에선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MB에 대한 검찰 수사 및 기소 후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 가신이라고 할 수 있는 측근의 비망록이 공개되는 건 이날이 처음이다. 여기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인사 및 금전공여를 둘러싼 경위, 당시의 심경 등이 날짜별로 소상히 담겨있다. 한편 MB정권의 금융가의 마피아로 불리던 이팔성 전 회장의 특별지시로 우리은행 동경지점에서 수천억원의 부정대출 및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 이 돈이 MB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돼 이 사건의 실체적 몸통인 이팔성 전회장이 비망록과 별도로 진실의 입을 열지 귀추가 주목된다.
리차드 윤(취재부기자)

이 전 회장이 비망록을 검찰에 제출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전 회장은 MB와 관련해 의심되는 각종 비자금 조성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선데이저널>은 이미 수차례에 걸쳐 이 전 회장이 MB수사 관련해서 왜 중요한 인물인지, 그가 연관된 사건들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보도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비망록은 단순히 이미 공소가 제기된 MB 사건 이외에도 MB의 해외비자금과 관련해서도 단초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팔성 전 회장 재직 시절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졌던 것은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본지가 꾸준히 취재해온 파이시티 사건도 있었고, 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은행 일본 도쿄지점에서도 수천 억 규모의 부당대출 및 비자금 조성과 관련 동경지점장 자살 사건의 의혹이 규명될지 여부도 비상한 관심사다.

MB에 돈 건네 준 내용 소상히 적혀

검찰이 공개한 이팔성 전 회장의 비망록은 2008년 1∼5월에 작성된 것이다. 이때는 MB가 당선인 신분이거나 대통령 취임 직후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2011년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나 사위 이상주 변호사 등을 통해 이 전 회장으로부터 22억5천만원의 현금과 1천230만원어치 양복을 뇌물로 받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산업은행 총재, 금융감독원장 등의 자리나 국회의원 공천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이 전 대통령 측에 청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총 41장 분량의 비망록에는 이 전 회장이 인사 청탁을 위해 이 전 대통령 측과 접촉하고 금품 등을 건넸다는 내용이 소상히 담겼다. 이 전 회장은 2월 23일자에 “통의동 사무실에서 MB 만남. 나의 진로에 대해서는 위원장, 산업B, 국회의원까지 얘기했고 긍정 방향으로 조금 기다리라고 했음”이라고 적었다. 진로로 적혀 있는 부분을 놓고 이 전 회장은 검찰에 ‘금융위원장, 산업은행 총재, 국회의원’을 의미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의 기대와 달리 KRX(한국거래소) 이사장, 금융감독원장 자리에서도 연이어 내정되지 않자 “MB가 원망스럽다.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취급하는지…”며 허탈한 감정을 적기도 했다. 그는 이상득 전 의원을 만나는 자리에 “1. KDB(산은), 2. 우리”라고 인사 청탁 내용이 적힌 메모지를 가져가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전 회장은 비망록에서 이상주 변호사가 금전적 지원에도 자신의 인사 문제를 도와주지 않는다며 화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는 “왜 이렇게 배신감을 느낄까. 이상주 정말 어처구니없는 친구다. 소송해서라도 내가 준 8억원 청구 소송할 것이다”고 적었다.

유명 정장 디자이너를 삼청동 공관에 데려와 이 전 대통령에게 정장을 맞춰준 내용도 비망록에 담겼다. 그런데도 자신의 인사청탁이 잘 이뤄지지 않자 이 전 회장은 “MB와 인연 끊고 다시 세상살이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괴롭다. 옷값만 얼마냐”고 적기도 했다.

2008년 5월 이후 본격적인 범죄 주도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이 전 회장이 MB에게 끝까지 앙심을 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비망록이 마지막으로 작성된 2008년 5월의 바로 다음 달은 6월 이 전 회장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은 더 이상 작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6월부터는 이 전 회장이 MB가 자신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앉혀준 대가로 보다 본격적인 범죄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MB정권 시절 각종 비리에 연루됐다. 대표적인 사건이 파이시티 게이트다. 파이시티 사업은 이정배라는 시행사업자가 추진하던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 재개발 사업에 정권 실세들이 우리은행과 포스코를 앞세워 이를 빼앗은 걸로 기록된 사건이다. 당시 포스코는 박영준 전 차관이 좌지우지 했고, 우리은행은 이팔성 전 회장의 입김 아래 있었다. 지난 2012년 4월 29일자 <선데이저널>은 양재동 파이시티 사업을 둘러싸고 포스코건설과 우리은행 간 맺어진 비밀양해각서를 입수, MB가신들이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사업권까지 빼앗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이명박당시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파이시티’ 개발사업의 공동시행자인 ㈜파이시티와 ㈜파이랜드 전 경영진은 2011년 11월 25일 사기와 업무방해 등 혐의로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에 대한 고소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접수했다. 이정배 파이시티 대표 등은 고소장에서 “우리은행과 포스코건설이 파이시티 사업권을 인수하기 위해 비밀협약서를 체결했고, 경영진 의사와 관계없이 파이시티를 파산시켰다”고 주장했다. 또한 “2010년 초 대우자동차판매 등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채권은행인 우리은행으로부터 200억원에 모든 사업권을 양도하라는 협박을 받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같은 해 8월 채권은행단이 일방적으로 법원에 파이시티의 파산을 신청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법원이 파산신청을 기각한 뒤 파이시티에 대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가 진행됐다.

본지는 이정배 전 대표가 파이시티 사업으로 구속된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도 꾸준히 취재해왔는데, 이 전 대표는 MB정권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검찰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본지는 2012년 이명박 정권 말 파이시티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대통령 캠프에 돈이 전달됐다는 진술이 나오자 검찰 측에서 이를 진술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고 선을 그었다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당시 이정배 대표는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최시중 박영준 등 MB 최측근들이 사업허가와 관련해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사업권까지 탈취하려했다는 진술이 나오자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장이었던 최재경 변호사(박근혜 정부 마지막 민정수석)를 비롯한 중수부 간부들이 적당한 선에서 서둘러 수사를 무마했던 것이다. 최 전 수석은 2007년 대선 당시 BBK 사건과 MB에게 관련해 면죄부를 주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한 검사였다.

우리은행 동경지점장들 잇따른 자살 왜?

이팔성 전 회장 재직 시절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졌던 것은 단순히 파이시티와 관련해서만은 아니었다. 본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은행 일본 도쿄지점에서도 수천 억 규모의 부당대출 및 비자금 조성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지난 2014년 우리은행 전 일본 도쿄지점장 김모씨(56)가 자살한 일이 있다. 당시는 감사원과 금감원 등에서 우리은행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다.

특히 김씨가 도쿄지점장으로 재직할 당시 이팔성 전 회장이 수차례 일본을 오가며 김씨를 만난 사실이 당시 확인됐다. 이 전 회장은 2009~2012년 176차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이 가운데 일본 출장도 여러 차례 있었다. 우리금융 계열사 임원을 대동한 방문 이외에도 혼자 주말을 이용해 당일 또는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회장의 일본 출장 시점은 도쿄지점 부당대출로 검사 대상에 오른 백모 전 우리은행 부행장(현 우리P&S 대표)과 자살한 김씨가 지점장으로 근무한 시기와 일치한다. 김씨는 이 전 회장과 같은 고려대-한일은행 출신인 데다 ‘이 전 회장 측근’이라는 설까지 돌고 있어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일본 출장을 모두 도쿄로 간 것은 아니고, 김씨와 무관하게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인사를 만나러 간 적도 있다”며 “도쿄지점장을 지낸 백 전 부행장이나 김씨는 같은 한일은행 출신일 뿐이지, 개인적인 인연도 없어 (지점장) 발령 전까지 (인사 내용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한인사회에서는 우리은행을 통해 MB 비자금이 일본으로 흘러들어왔단 말이 파다했다.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 금융당국에서 조사했지만 결국 유야무야 끝났다. 몇몇 실무자들이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결국 수 천억원에 달하는 부당대출금액은 어디로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 돈은 여전히 그 종착지점이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정황은 이팔성 전 회장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MB가 재판을 받고 있고, 이팔성 전 회장의 비망록이 발견된 지금. 과연 검찰의 칼날이 사라진 수천억원의 돈과 이명박 일가의 해외비자금 실체를 밝혀낼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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