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세월호 7시간 의혹 제기…일본 기자 무죄 나온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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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은 모든 굴욕
대일외교 설계자였다

김기춘박근혜 정부는 그 어느 정부보다도 대일 외교에 있어서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돈 100억원을 받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 합의를 했으며, 위안부 합의 때문에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판까지 지연시키는 등 철저하게 일본에게 유리하게끔 외교 정책을 폈다. 그 중심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있었다. 과거 본지는 김 전 실장의 친구가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주일대사로 부임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결국 그 이면에는 위안부 협상을 비롯한 각종 대일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세월호 7시간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산케이 기자 재판에도 청와대가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선데이저널 취재 과정에서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은 세월호 7시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이 정윤회와 함께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 일본 기자에 대해 검찰이 유죄로 기소했으나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건으로,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그대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기소한 혐의는 인정되나 무죄를 선고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폈는데, 본지 취재 결과 당시 청와대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런 논리를 직접 법원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정부가 독립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무조건 일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노력했던 것이고, 그 총체적 설계자가 바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었던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본지는 세월호 7시간이라 불리는 박 전 대통령의 2014년 4월 16일 오전 동선과 관련해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 지국장의 명예훼손 재판을 꾸준히 추적해왔다.
가토 전 지국장은 2014년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증권가 관계자 등을 인용해 “박 전 대통령이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에 ‘비선’ 정윤회씨를 만났고, 정씨와 그의 장인이던 고 최태민 목사가 박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내용을 적었다.

검찰은 보수단체 등의 고발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그해 10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여성 대통령에게 부적절한 남녀관계가 있다는 등의 허위사실을 적시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의 기소를 두고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논란이 국내외에서 불거졌다.

1년여 뒤인 2015년 1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허위사실을 적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적 존재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언론의 자유를 우위에 둔다는 점을 적용했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의 명예가 걸린 중대한 사건을 법원이 이상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이례적으로 항소하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가 ‘죄는 있지만, 언론자유가 우선한다’는 논리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게끔 하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는 것으로 조율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었고 본지도 이 문제를 제기했었다.

유흥수 주일대사 임명 내막

그런데 최근 본국에서 박근혜 시절 법원이 각종 정치적 사안을 가지고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데, 이 문제 역시 거기에 포함되고 있다는 말이 법원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당시 이 사안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던 위안부 합의 문제와 맞물려 매우 민감했던 것으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직접 이 문제를 챙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10억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 협상을 타결하려는데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유흥수 새누리당 전 주일대사

▲유흥수 전 주일대사

본지 취재 결과 김기춘 전 실장은 이를 위해 자신의 친구를 주일대사로 보내는 무리수까지 뒀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이자 오랜 친구였다.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는 유흥수 새누리당 고문을 주일대사로 임명했는데, 그는 당시 이미 77세의 고령이었다. 게다가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이 한반도 주변 4개국 대사에 임명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일본 언론들역시 유 대사의 일본 대사 임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직업외교관으로는 풀기 힘든 한ㆍ일 문제를 청와대와 가까운 정치인 출신이 돌파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일본 언론들이 환영했던 것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한일 문제는 철저하게 일본이 유리한대로 흘러갔다. 일본이 10억엔을 내는 수준에서 위안부 문제가 풀렸다. 반세기 넘게 양국 걸림돌로 작용했던 문제가 10억엔이란 돈으로 풀렸으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또한 일본 정부에 있어서 부담이 됐던 강제징용 문제도 뒤로 미뤄졌다. 이번에 드러난 문건을 보면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 추진하고 있던 위안부 문제 합의 등을 고려해 강제징용 재판을 뒤로 늦추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청와대가 전범기업 측 대리인을 맡았던 김앤장 변호사와 협의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을 공관으로 불러 재판 진행 상황과 향후 처리 방향을 협의했다.

이날 회동에는 당시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정종섭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동에서는 강제징용 재판상황 등 관련 논의가 오갔는데 당시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 합의를 위해 협상을 진행하던 상황에서 이를 고려해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재판 결과가 나올 경우 협상이 틀어지거나 국민들이 반발하는 등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2차 회동이 이뤄진 뒤 1년 뒤인 2015년 12월에 위안부 합의 타결을 발표했다.또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강제징용 재판 결과가 뒤집혀 나올 경우 예상되는 피해자와 국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대책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김 전 실장이 법원에 압력을 넣은 타이밍이다. 2014년 10월이면 유 대사가 일본 대사로 간 직후였다. 즉 김 전 실장이 유 전 대사와 긴밀하게 협의하는 가운데 국내 문제들을 조율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이다.

▲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후 지난 2015년 12월 17일 무죄를 선고 받은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관련 기사가 일본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18일자 1면을 통해 '언론의 자유 보호'가 됐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되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후 지난 2015년 12월 17일 무죄를 선고 받은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관련 기사가 일본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18일자 1면을 통해 ‘언론의 자유 보호’가 됐다는 내용으로 대서특필되고 있다.

검찰, 무죄선고에 항소도 안 해

본지 취재에 따르면 가토 다쓰야 전 국장의 명예훼손 재판 역시 일본 정부의 항의 – 청와대 – 법원을 거쳐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 강하게 항의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사생활에 의혹을 제기한 가토 지국장을 가만히 놔둘 수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법원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릴지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었다.

결국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허위사실을 적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은 아니었다며 양측 모두의 입장을 반영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공적 존재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언론의 자유를 우위에 둔다는 점을 적용했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법원이 허위사실이란 판단을 내려줌으로써 체면치레는 했고, 대신 일본과의 관계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당시 이를 위해 김 전 실장과 법원이 긴밀하게 협의했고, 법원은 청와대와 이런 논리를 공유한 후 사건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나섰다고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검찰의 움직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이에 항소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법부에까지 압력을 가하며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야말로 우리 국민의 정서에 가장 민감한 부분인데 이것을 100억원에 마무리하기 위해 일본 대사도 비서실장 측근으로 앉히고, 재판도 좌지우지한 파렴치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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