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 부동산 남문기 회장, 불굴의 투지로 간암을 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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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인생 여정 이력
제2의 도전 결실 맺나

남문기지난 4일 오후 4시 코리아타운 8가 뉴스타부동산 본사에서 만난 남문기 회장은 예외없이 ‘밝은 미소’로 기자와 반갑게 만났다.
“한국에 가서 요양을 하게 되는데 국내 여기저기서 용케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지인들과 함께 산등성이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솔솔하다”면서 “이번에 가서 마지막 수술로 완결하고 돌아와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활동도 본격적으로 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는 명실상부한 해외 750만의 대표 단체이다. 24년전 그와 함께 해외 지도자 선배들이 만든 단체이며 세계한인회장 대회를 탄생하는데 주요역할을 했고 세계한인회장 대회의 안정적 운영을 돕기위해 8년이라는 쉽지않은 공백기를 거쳤다.

그리고 그 공백기를 마치고 2010년에 워싱턴에서 제2의 도약을 위해 총회를 했고 새로운 해외 한민족의 미래와 단결된 자발적 민간 주도의 해외 한민족의 구심체로서 역할을 수행해 나가기로 방침을 굳혔다.
그는 지난 8월 미주동포후원재단이 연례적으로 개최하는 올해 ‘자랑스런 한국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상식에 축하객으로 참석한 각지역 한인회장들을 초청해 캘리포니아주내 세코이야 국립 공원을 함께 즐겨보는 시간도 가졌다. 많은 단체장들은 “간암으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리를 지난 2012년에 들었는데…우리보다 더 많은 웃음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니…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민간주도 해외한민족 구심체 역활

LA한인사회에서 <남문기 회장>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남문기를 모르면 간첩이다” 라는 우스개 소리도 돌았다. 1980년대 단돈 300불을 들고 이민해 미주 최대 한인부동산회사를 일군 입지전적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부동산 왕국”을 건설했다. 그는 다른 기업인들과는 달리 매일 엄청난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SNS를 통한 소통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보통 부지런하지 않고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국내용 스마트폰과 미국용 스마트폰을 통해 SNS소통을 매일 왈성하게 벌이고 있다. 이메일 한 가지라도 소화하기가 힘든데 그는 현재 국내외 인사 이메일 주소만도 4만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카카오톡 14,000명, 트위터 11만명 여기에 개인블로그 8개, 페이스북 친구 5,000명, 카카오톡을 통한 50여개의 그룹 채팅을 하고 있다. 이같은 SNS소통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정신과 신체적 기능이 유연하고 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의 부지런함이 재산이다. 부지런하려면 건강이 뒷받침해야 한다.

남 회장은 지난 2002년 미국에서 간암 수술 이후 2012년 12월 건국대학교 병원에서 이건욱박사로부터 두 번째 수술을 받고 지난해 4월 건국대병원에서 세 번째 수술을 받았으며 지난해 성공적 간암 수술 요양을 위해 예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날 죽을 위기를 두 번이나 겪고 나면서 ‘배려하는 삶’ ‘같이 하는 삶’ ‘이바지 하는 삶’에 대한 생각을 더 깊이 하게 되었다. 그래서 건강을 관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한편으로는 뉴스타부동산 회사도 더 활성화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이번에 수술을 마치고 강원도에서 요양을 하게된다. 양일권 목사가 지도하는 건강관리수련에 나선다. 혼자서 하는 요양이 아니다. 그가 요양에 나서면 국내 친지들이 알고서 그가 요양을 하는 곳을 찾아온다. 그러면 함께 산등성을 오르내리며 담소를 나눈다. 산을 오르며 가끔 환자들이 적어논 ‘나의 수명은 오직 6개월 뿐이다’라는 글을 발견하면 그는 예외없이 그 글귀 아래나 옆에 <님은 살 수 있습니다. 힘내세요>라는 글을 쓰곤 한다.

6개월 시한부 인생에서 탈출

그는 지난 2011년 7월, 한나라당 재외국민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한국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내에서 대한민국 국적자만이 당직을 맡을 수 있다는 당규를 들어 논란이 있었고, 그해 8월에 시민권을 포기했는데도 논란이 그치지 않아 10월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동안 LA 한인회장, 미주한인회총연합회회장, 미주상공인총연합회회장 등 여러 단체장직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거명되었고 보통 3선 국회의원들이 맡고 있었던 재외국민위원회 위원장 자리에 임명 되었는데 한국 정서가 이를 수용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때 국내 정치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는 ‘살아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2012년 당시 간암이 발견되었고 이건욱 박사라는 집도의를 만나는 바람에 그는 꺼지려는 생명의 불을 다시 지필 수 있었다. 그후 2-3년 동안 LA에서는 ‘남문기의 뉴스타부동산이 망해간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하지만 그는 뉴스타부동산을 일궈나갈 때 집념으로 남모르게 그의 건강관리를 지켜나갔다. “제2의 뉴스타부동산 활성화”를 목표로 다시 왕성한 활동을 벌여 나갔다.

지난해 4월 세번째 성공적인 수술을 마친 후에 9월부터 바로 그는 ‘성공신화’ 특강을 계속했으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해 축사도 했다. 지난 8월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는 오후 10번 프리웨이에서 코리아타운으로 가기위해 내리는 버몬트 길에 남미계 여인이 꽃을 팔고 있었다. 여인은 폭염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차창으로 본 뉴스타부동산의 남문기 회장은 뉴스타에서 제작한 양산을 그 여인에게 주었다. 뜻밖에 양산을 받은 여인은 폭염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무쵸 그라씨아스!”

웃음과 미소를 잃지 않는 생활철학

이처럼 남 회장은 어디를 가나 ‘뉴스타부동산’을 심는다. 그 다음 자랑이 대한민국 해병대 출신 이라는 것이다.
남 회장의 성공 철학 8가지 중에 <삶을 대하는 자세>가 있다. 그는 <삶에 대한 자신과 애착, 그리고 긍정적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남 회장이 좋아하는 글 중에 공자 말씀이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착한 사람을 가려 그 행동을 따르고 악한 자를 가려 내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 말 의미대로 ‘착한 일을 하게되면’ 그의 건강도 더 좋게 되리라는 믿음 속에 살아 갈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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