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 문제-긴급특집 2] 성서에 나타난 동성애 이슈의 본질은…?

이 뉴스를 공유하기

‘동성애가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성애에 대한 크리스천들의 견해는 기독교 교파, 또한 교역자‧성직자‧평신도 등 개개인에 따라 크게 다른 의견을 보여왔다. 동성애에 대한 관용은 20세기 들어서 개신교에서 먼저 시작됐다. 1916년 ‘게이’들을 위한 교회가 세계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생겼다. 게이를 처음 성직자로 임명한 것은 1964년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교단에서다. 레즈비언은 1977년 영국 성공회에 처음 성직자로 임명됐다. 미국 최대교단인 미국장로회 역시 2007년 동성애자의 성직을 허용했다. 동성애는 지금 미국 사회 전반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주제의 하나이지만 특히 종교계에서 생존이 걸린 논제로 각 교단이나 교파간에도 논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동성애에 대한 옳고 그름은 성서에서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성경‘동성결혼’에 대한 로마 가톨릭 교황의 권고는 “No !”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2016년 4월 8일 사랑과 성, 결혼에 대한 교황의 권고를 담은 ‘사랑의 기쁨’(아모리스 래티티아)을 발표하면서 “동성애자의 결합을 일반 결혼과 마찬가지로 보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가정과 결혼에 대한 신의 계획을 볼 때 일반 결혼과 어떤 유사점도 없어 이를 받아들일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교황의 권고는 동성애자들에게 교회의 문을 개방하자는 진보주의자들의 바람과 달리 가톨릭 교회의 원칙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이라는 교황의 권고에서 2014년과 지난해 두 차례 세계주교 대의원회의(시노드)를 통해 이혼과 재혼, 동성애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가족 문제에 가톨릭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논의하고 나서 나온 것이다. 원래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에 대해 열린 시각을 보여준 최초의 교황이다. 지난 2014년 시노드(주교회의)에서는 사제의 판단에 따라 이혼이나 재혼을 한 신자들에게 영성체 허용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동성 결혼에 대해서는 이성 결혼가 비교할 근거가 전혀 없다며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보고서에서 급진적 변화를 바라는 진보주의자의 주장과 달리 동성애 자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교회의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다시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4년과 2015년 시노드에서 논의할 때에도 동성애자들의 결합이 결혼과 가정에 대한 신의 계획과 비슷하다는 어떤 근거도 없었다”면서 “그러나 성적 취향에 근거한 부당한 차별 등에는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이혼자나 교회의 허가 없이 재결혼한 사람들의 영성체 허용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과 사랑이 요구된다’고만 언급했다. 이는 일부에서 희망하듯 사제들이 개별 상황을 판단해 영성체 참여를 허용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가톨릭은 동성애 No !’

가톨릭 교회의 보수주의자들은 이혼자나 재혼자의 영성체 참여를 받아들이면 결혼에 대한 기본 원칙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해왔다. 동성애에 대한 반대 입장을 지니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죄라고 여기고 있으며, 사회에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서주의적으로 동성애에 반대하는데, 이성애적 가족 이야 말로 신이 창조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동성 결혼은 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성애 관계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종종 동성애 자체를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도 본다. 특히 보수주의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는 주로 성경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신명기가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고 보며, 또한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무지개깃발 때문에 몰락 했다고 해석 한다. 그 외에 로마서 1장 26-27절과 고린도전서 6장 9-10절, 디모데전서 1장 10절, 유다서 1장 7절 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이같은 구절들은 해석의 여지가 엇갈리는 로마서 1장 26절을 제외하면 모두 남성간의 동성애만을 금지 하고 있으며, 로마서 1장 26절의 경우 이성간 항문 성교 내지 그 이외의 비삽입성교를 금지한 구절이라는 설과 여성 간 성행위를 금지한 것이라는 설이 엇갈린다고 보는 신학자들도 있다. 이에 반하여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에 대한 성경 구절이 잘못 번역되었거나 현대와 달리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당시 시대상을 감안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 기독교 신학자들 또한 보수주의 기독교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원본에 가까운 히브리어 또는 그리스어로 쓰여진 초기 성경을 받아 들였으나 여러 구절의 번역과 해석에 있어 상충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그들은 고대에 잘못 번역된 문장들이 후대에 그대로 복사되거나 후대 번역자의 주관적인 편견이 작용되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해당 성경 구절들은 동성애를 금지하는게 아니라 동성간 강간 행위나 이교도적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현대 성경 번역본에도 그대로 실려있는 노예제를 긍정하는 구절이나, 현대적 관점에 맞지 않는 여성에 대한 차별,중세적인 신성모독죄 등을 지적하면서, 이런 것들이 시대에 따라 신학 적 관점이 변화해 왔듯이 성적 지향에 대한 기독교의 입장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 최대 개신교의 하나인 남침례교화 소속 신학대학 알버트 말러 총장은 지난 2010년에 ‘동성애가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논문을 발표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의 논문 취지는 이렇다. 일부 교회들과 교단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중간에 머무르고 있었다. 동성 결혼과 동성애자에 대한 안수 문제는 주기적으로 몇몇 교단의 총회에서 논의 되고 있다. 많은 경우 점차 이 문제가 교단을 갈라서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이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도덕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차별화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대답은 “예”여야 한다. 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성서를 지켜야

성경이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경에 대한 신실함이 교회가 성경의 증인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길은 신학적 망각의 길이 될 것이다. 성경적 권위에 대한 확인이야말로 교회가 이 이슈를 다루는 데 중심이 돼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영감을 받아써진 책이며 무오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5년 주교회의에서 동성애 이슈 토론에서 심각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5년 주교회의에서 동성애 이슈 토론에서 심각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 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다.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회들은 결국 문화적 압력에 무릎을 꿇을 것이고 시대의 영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이해를 맞춰갈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교회라면 다른 선택의 여지 는 없다. 우리는 동정적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 동정적 진실이란 이렇다. 동성애적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신 일이다. 동성애적 행동들은 하나님 자신 의 선언에 의해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이런 표현은 강해 보이지만, 이것은 성경의 말씀이다. 성경의 증언은 명확하다. 동성애는 신에게 반대하는 통탄할 만한 죄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의도와 창조의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모든 죄에는 영원한 결과가 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밖에 없다. 예수는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우리를 구원했다.

우리가 동성애에 휘말린 사람을 대할 때는 반드시 진정한 공감대를 가져야 한다. 그 진정한 공감 대의 핵심은 진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전해야 하는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하고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는 자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해 주는 것은 절대 공감을 살 수 없다. 그들의 거짓말은 사망에 이르는 삯이 된다. 가장 명확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가? 모든 결론은 성경의 가르침 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지난 19세기 동안 교회를 통해 확증 된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야 몇몇 성서학자들이 동성애에 대해 다른 메시지(혹은 매우 다른)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동성애라는 의제 자체가 동성애를 하나의 성적 활동으로 인정받게 하려는 활동가들의 헌신에 의해서 자꾸 부각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그들은 동성 결혼의 합법화와 동성애자 간의 가족 꾸리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어긋나는 모든 의제들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어마어마한 장애물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적 기독교야말로 동성애 의제에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가 될 것이다. 최후의 순간에는 그 저항이 성경 자체에까지 미칠 것이다. 동성애를 정상적인 가치로 만들려고 밤낮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성경의 입장을 무효화 시키지 않고는 완벽한 성공을 거둘 수 없음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결말을 노리는 그들의 입장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최대의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메시지를 왜곡

오늘날 동성애를 완전한 생활의 형태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편견에 가득 찬 소인배 취급을 당하거나 “동성애 혐오자(Homophobic)”이라고 불린다. 누군가 남녀 간의 결혼만이 정상이고 합법 적이라고 주장하면 구시대적이고, 억압적이고, 현대 문화에서 완전 벗어난 사람이라고 맹렬히 공격당한다. 교회라고 이 논쟁에 비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성애 합법화의 이슈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승기를 잡아가자 일부 교회들과 교단들은 이 운동에 동참했다. 심지어 동성애를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소수만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일부 교회들과 교단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중간에 머무르고 있었다. 동성 결혼과 동성애자에 대한 안수 문제는 주기적으로 몇몇 교단의 총회에서 논의 되고 있다. 많은 경우 점차 이 문제가 교단을 갈라서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이제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도덕적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차별화된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대답은 “예”여야 한다. 교회는 동성애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이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경에 대한 신실함이 교회가 성경의 증인이 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길은 신학적 망각의 길이 될 것이다. 성경적 권위에 대한 확인이야말로 교회가 이 이슈를 다루는 데 중심이 돼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의 영감을 받아써진 책이며 무오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다.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회들은 결국 문화적 압력에 무릎을 꿇을 것이고 시대의 영에 따라 동성애에 대한 이해를 맞춰갈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는 교회라면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우리는 동정적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 동정적 진실이란 이렇다. 동성애적 모든 행동 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신 일이다. 동성애적 행동들은 하나님 자신의 선언에 의해 하나님 보시기에 혐오스러운 것이다. 이런 표현은 강해 보이지만, 이것은 성경의 말씀이다. (다음호에 계속)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