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은 숨은 1인치 기사]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자살은 박정부 파워게임 희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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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군인 ‘모진 놈들 옆에 있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기무사령관을 역임했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12월 7일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 지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이 같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전 사령관의 빈소와 발인식 현장에는 여러 정치인들이 다녀갔는데, 이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박근혜 정권 1년차인 2013년 때다. 당시 본지는 이재수 중장이 육사 37기 동기이자 고교 동창인 박 회장을 등에 업고 군 내부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 내용을 최초로 보도했다. 당시 보도는 본국 문화일보를 비롯해 여러 언론들이 받아쓰며 크게 화제가 됐다. 이 전 사령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직접적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 때문이란 말이 많지만, 그만큼 그는 지난 정권에서 군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가 세월호 유족을 사찰했는지가 유무죄인지 여부를 떠나서, 그가 군내 파워게임에 한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기무사령관이 되게 된 것도, 물러나게 된 것도 결국 박지만 회장의 권력의 희비 곡선과 궤를 같이 했다고 볼 수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장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처음 세간의 관심을 받은 것은 2013년 10월 기무사령관에 임명되면서부터다. 당시 인사가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2013년 4월 기무사령관에 임명됐던 장경욱 전 중장이 임명 6개월 만에 교체됐기 때문이다. 기무사령관이 6개월 만에 교체된 일은 전에는 없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2013년 4월 본지는 당시 육군 인사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박지만 회장이 군 인사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박 회장의 육사 37기 동기는 2013년 상반기 인사에서 대거 진급했다. 당시 이 전 사령 이외에도 김영식 합동군사대 총장이나 박찬구 신연합방위추진단장 등이 모두 박 전 회장의 동기였다.

당시 이 전 사령관의 중장 진급은 크게 주목받는 뉴스가 아니었다. 하지만 본지 보도처럼 박 회장은 군 인사에 영향력을 점차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장 진급 불과 6개월 만인 2013년 10월 기무사령관으로 발탁됐다. 전임자인 장경욱 사령관이 기무사령관이 된 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지만과 친해서” 라는 소문이 돌았다.

박지만과의 우의가 결국 毒

당시 6개월 만에 경질된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도 인사에 불만을 토로했다. 장 전 사령관은 당시 본국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2013년) 4월 군 인사를 놓고 야전에서 불만과 비판이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와 여러 경로로 파악해 보니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며 “그래서 이런 인사가 다음부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취지로 청와대에 보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만당시 장 전 사령관이 비판한 인사는 앞서 얘기했던 박 회장 동기들이 대거 승진했던 인사를 말한다. 그 인사에 대해 장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비판한 것이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관진 전 장관이었다. 당시 장 전 사령관은 “장관의 독단 등을 견제하는 것은 기무사의 고유 임무이며 이번에도 관련 규정과 절차를 지켜 그 직무를 수행한 것”이라며 “과거 사령관들도 그렇게 (청와대 보고를) 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군 장성 인사 발표 전까지 대통령비서실장 등에게 두세 차례 그런 취지의 보고를 했다”며 “(김 장관이) 여러 가지로 잘하는데 인사 관련 불만이 제기되니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청와대가 기능과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얘기가 (기무사령관으로서) 못할 소리인가”라고 청와대를 정면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군의 인사 문제를 살피고 견제해야 할 청와대의 군 출신 인사들도 과거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을 다수 진급시켰다”며 “이는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것이고 이런 일들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장 전 사령관이 경질된 자리에 들어온 것이 이 전 사령관이었고, 결국 장 전 사령관의 경질 이유는 이 전 사령관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란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4년 10월 갑자기 기무사령관에서 경질됐고, 두 달 뒤에는 군복까지 벗었다. 당시 한민구 국방장관이 청와대로부터 경질 통보를 보고 깜짝 놀랄 만큼이나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그때도 박지만 이름이 거론됐다. 군내에서는 ‘대통령 측근간 알력 다툼에 희생됐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고 친동생인 박 회장과 절친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박 회장과 이 전 사령관은 중앙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 동기다. 박 회장은 이 전 사령관이 구속영장 기각 전후로 두 차례나 만나 이 전 사령관을 위로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사령관은 박 회장에게 “검찰 조사과정에서 ‘윗선을 불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윗선은 ‘박근혜와 김관진’

당시 권력다툼의 불똥이 자신에게 튀었단 것은 이 전 사령관 본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 전 사령관은 자신의 지인에게 남긴 유서에서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글을 남겼다. 그는 “사령관 재임 중 단 한 번도 대통령 독대는 물론이고 어떠한 대면보고도 하지 않아 어떤 정치적인 상황에도 관심 갖거나 연루될 필요가 없었던 위치에 있었다”고 밝혔다.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

이어 박 회장과의 관계 때문에 받은 오해에 대해서도 “대통령 친동생과 고교·육사 동기라는 이유로 부임 초부터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고 세월호 사고 이후 어수선했던 시기에 정윤회 미행설 보도로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관계자들과 서먹한 관계가 형성돼 있었다”고 썼다. 이 전 사령관이 언급한 ‘정윤회 미행설’이란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의 전 남편인 정씨가 대통령이 친동생인 박지만씨를 미행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기사의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남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이 2013년 말 정체불명의 사내로부터 한 달 이상 미행을 당했으며, 박 회장은 미행 배후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전남편인 정윤회씨를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은 물밑에 있던 비선실세의 실체가 처음으로 공개된 사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었을 때 비서실장(선임보좌관)을 맡았던 정씨가 공식직함을 맡지 않은 이후에도 국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는 문건이 보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또한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도 등장했다. 문건 파동 당시 박관천 경정은 청와대 권력 지형에 대해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본지는 2007년 대선 때부터 꾸준하게 최태민, 최순실, 정윤회 등의 이름을 보도했는데, 정작 대통령 집권 2년 차에야 이런 이름들이 구체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정씨의 문건 파동으로 박 전 대통령은 혈족인 박 회장보다 정씨와 최씨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박 회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당시 문건 작성 배후에 박 회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박 회장은 정씨 문건 파동과 관련한 검찰수사 당시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015년 1월 5일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한 검찰수사 결과 “정윤회 문건은 박관천 경정이 풍문을 과장해 짜깁기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이 전 사령관과 박 회장의 말을 종합해보면 기무사령관직을 맡을 당시 세월호 사고뿐만 아니라 청와대 내 비선 간 권력 다툼과정에 이 전 사령관이 박 회장과 친분 때문에 승진도 못하고 급기야 1년 만에 직을 내려놓는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박 회장 또한 대통령의 친동생이었지만 비선실세 파워에 밀렸음을 알 수 있다.

끝까지 윗선 안 불고 극단적 선택

파워게임으로 인해 권력핵심부에서 밀려났지만 박 회장은 이후에도 꾸준하게 이 전 사령관을 챙겼다. 박 회장은 그가 민간인 신분이 됐을 때 자신의 회사에 사외이사로 천거해 이 전 사령관을 챙겼다. 탄핵 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30일 국정농단 사건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출발하기 직전 박 회장 부부가 박 전 대통령을 만나러 갔을 때도 이 전 사령관이 동행했다. 최근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 때, 박 회장이 변호사 선임을 돕겠다고 했으나 그가 사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전 사령관은 2014년 4월부터 7월 사이 기무사 대원들에게 세월호 유가족의 정치 성향 등 동향과 개인정보를 수집, 사찰하게 하고 경찰청 정보국으로부터 진보단체 집회 계획을 수집해 재향군인회에 전달토록 지시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지난 11월27일 이 전 사령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해 이틀 뒤인 29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지난 12월 3일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서 구속 위기를 벗어났다.

조사과정에서 이 전 사령관은 “나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7일 오피스텔에서 투신에 숨졌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5년이 다 돼 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며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으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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