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특집] ‘100년의 약속’ 어떻게 재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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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의 진정성 깨닫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더이상 없다’

<백년의 약속>이란 노래는 가수 김종환이 불러 인기를 모았는데 “백년도 우린 살지 못하고 언젠가 헤어지지만, 세상태극기이 끝나도 후회없도록 널 위해 살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다. ‘백년’은 인생에서 가장 완성을 이루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백년을 지난다는 것은 좀처럼 힘들다. 요즈음 “100주년”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는데, 바로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이다. 국내에서는 수년전 부터 3·1 운동 100주년기념사업회가 여러개 조직되어 왔으나, 미주에서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준비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3·1정신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명분이나 과시적으로 추진하는면도 엿보여 ‘이 (100주년)행사가 끝나도 후회가 없을지~’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자신들과 주위를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국내에서는 수년 전부터 2019년 3월 1일을 <3·1운동 100주년>으로 기념사업을 준비해 왔는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포함시키는 작업이 첨부 강화되었다. 우리의 헌법전문에 ‘우리 대한 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이라는 명분으로 내세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도 함께 하자는 캠페인을 추진시키고 있다. 문 정권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려던 대한민국 건국절(1948년 8월 15일)을 못마땅했다.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문 정권은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부정하려는 속셈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추진하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게 되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다름아닌 ‘이승만 박사’ 라는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감추려 할 것인가. 3·1운동 100주년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는 그 역사적 사명에 비추어서 한 단체가 주동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3·1운동은 애초부터 한민족 전체가 나선 독립운동이었다. 1919년 당시 동경에 있던 유학생들만이 시작한 것도 아니고,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민족대표 33인 만이 한 것이 아니고, 파고다공원에 모인 시민들만이 외친 것이 아니다.

행사주최 기득권둘러싸고 이해단체 대립

서울(당시 한성)과 주요 도시에서 전국 각지로 퍼저나간 시민운동이었다. 미주에서 3·1운동은 특별하다. 한국에서 1919년 3월 1일 전국적인 만세운동이 그 다음해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이 바로 1920년 3월 1일 중가주 다뉴바 다운타운이었다. 그런데 LA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범동포 차원이 아니라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이사장 권영신)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은 관련 한인단체 대표자

▲유관순 열사

▲유관순 열사

들을 모았으나 자신들의 계획(?)대로 이끌어 나갔다. 이 바람에 일부 동참했던 단체들은 ‘우리가 들러리냐’라는 불만이 싸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 미주3·1여성동지회(회장 이연주)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중요한 몫을 할 수 있는 단체인데 이들을 소외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LA한인회를 중심으로 범동포준비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회기념 재단 측은 자신들이 기득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LA 한인회를 비롯한 한인 단체들은 지난달 8일 한인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1 운동 및 임시 정부 100주년을 맞아 LA 한인회,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미주 3·1 여성동지회, LA 평통 등을 포함한 단체들이 함께 모여 범동포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자리에서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 범동포준비위원회는 대회장에 LA 한인회(회장 로라 전)가 맡았으며, 준비위원장에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이사장 권영신)이, 그리고 집행위원장에 한인역사박물관(관장 민병용 관장)이 각각 맡았다. 범동포준비위원회는 ▲2월 8일 LA 한인회와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이 주최하는 2·8 동경 독립 선언 100주년 기념식을 시작으로 ▲3·1 운동 100주년 LA 시의회의 축하 결의안 통과 행사(2월 27일) ▲3·1 운동 100주년 기념 연합 기념식과 축하 연합 음악회(3월 1일) ▲3·1 운동 100주년 기념 만세 재현 행진(3월 2일) ▲차세대 초청 3·1 운동 100주년 기념 토크쇼(3월 9일)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사진전시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같은 범동포준비위원회는 한인 단체들이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협동심을 갖고 한인 차세대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전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대회장인 로라전 LA 한인회장은 “범동포준비위원회는 3·1 운동 정신을 기리고 미국에서 자라는 한인 자녀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행사를 준비할 것”이라며 “특히 주류사회 홍보에 주력하기 위해 다민족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LA 범동포준비위원회는 이번 범동포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LA 한인사회의 후원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범동포단체들이 한마음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거국적인 독립만세 시위 운동인 3·1운동은 미국 등 해외 언론에서 3·1운동이 강대국 식민지였던 약소국들의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세계사 적 사건으로 기사화했다. 뉴욕타임즈는 처음 1919년 3월 13일, 15일, 17일자에서 AP통신을 인용해 “조선인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운동이 널리 퍼져나갔으며 4만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오사카와 중국 베이징 발로 된 AP통신을 인용해 “독립선언문에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000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시위를 일본이 무력으로 진압하고, 4만여명을 체포 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또한 3·1운동과 관련하여 미국 선교사들도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미국인들에게 전해졌다. 이밖에 3·1운동 보도는 샌프란시스코의 이삼일운동그재미너 신문(San Francisco Examiner), 프랑스 파리의 앙탕트(Entente), 영국의 모닝포스트(Morning Post), 중국 상하이의 민국일보 등에서도 잇달아 보도가 나왔다. 뉴욕타임즈는 1919년 3월 18일자에서 일본의 만행에 대한 기사를 미국 선교사들의 입을 통해 전하면서 일본에 의해 왜곡된 한반도 실상을 보도했다. 특히 비밀리에 미국으로 전달된 암스트롱 목사의 메모는 한반도의 실상을 보다 자세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인 선교사들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유혈사태는 일본군의 민간인에 대한 사격에 의해 시작되었고, 한국인들은 그저 자유를 원하고 있을 뿐이라는 소식을 전하였다. 뉴욕타임즈는 미국인 선교사들의 고발을 지속적으로 보도하였다.

이같은 미국 선교사들의 증언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주었다. 일본의 입장에 반하는 증언이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지속되면서 일본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많은 기사들을 통해 3·1독립운동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의해 강요된 새로운 체제가 아닌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 일본은 지속적으로 한국인들은 능력이 없어 3·1운동과 같은 대규모 사건을 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해왔었다. 하지만 한국에 거주하던 선교사들은 한국인들의 조직력과 실행 능력 그리고 일관성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오랫동안 한국에 거주했던 미국인들과 영국인들은 3·1독립운동의 전국적 규모와 이를 기획한 한국인들의 능력에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암스트롱 목사와 외국인들의 증언은 3·1독립운동과 한반도의 현실에 대한 진실을 미국인에 전달했다. 이 내용을 뉴욕타임즈가 여러차례 보도하면서 일본의 왜곡된 증언은 더 이상 미국인들을 속일 수가 없게 되었다.
한편 백과사전 브리태니카에는 3·1 운동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된 한국의 민족 독립을 위한 연쇄적 시위는 “삼일 독립운동”(Samil Independence Movement)이라고 불리고 있다. 3·1 독립운동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바로 전국에 퍼졌다. 1년만에 일본 경찰이 3·1운동을 억압하기까지 전국적인 시위건 수만도 1,500건 이상이며 약 200만 명의 한국인이 참가했다. 일본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약 7,000명의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16,000명이 부상당했다. 715개의 민간 주택, 47개의 교회 및 2개의 학교 건물이 화재로 파괴되었다. 체포된 사람만도 약 46,000명이고, 그 중 약 10,000명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루었다.>

3·1운동은 세계가 경탄

3·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18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그리고 전후 처리를 위한 파리강화회의가 열릴 참이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이 때를 놓치지 않았다. 파리 강화회의에 신한청년당의 이름으로 한국 대표를 급파했다. 1919년 1월 18일 파리강화회의가 개막한 사흘 후인 1월 21일에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급서했다. 국내외적 상황이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종교계와 학생들이 독립운동 준비에 나섰다. 때마침 2월 8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종교계에서 천도교와 기독교가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의 종교 지도자들을 아울러 민족대표를 꾸렸고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 온 학생들은 일사분란하게 독립시위를 준비 했다.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는 이른 새벽에 학생들이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시작되었다. 정오 무렵부터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들은 속속 탑골공원에 집결했다. 반면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였다.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을 갖고 경찰에 그 소식을 알렸다. 곧 헌병과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시각 수천명이 운집한 탑골공원에서는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윽고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서울 시내는 만세소리로 가득 찼다. 만세시위는 사전 준비대로 평양·진남포·안주(평남), 선천·의주(평북)·원산(함남) 등 6개 도시에서도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평양에서는 오후 1시에 장로교, 감리교, 천도교가 각각 교회에서 독립 선언식을 마치고 시내로 나와 연합시위를 벌였다. 기독교계 학교 학생들도 함께 만세를 불렀다. 진남포에서는 오후 2시에 감리교와 감리교계 학교 교사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천도교인과 노동자들도 참여했다. 안주에서 오후 5시에 일어난 만세시위는 기독교 청년지도자들 이 주도했다. 선천에서는 장로교계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정오에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거리로 나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3·1운동은 도시에서 시작되어 농촌으로

천도교인들도 가담했다. 의주에서는 오후 2시 30분에 기독교인과 기독교계 학교 학생들이 주도하고 천도교인이 연대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원산에서는 오후 2시 에 장로교인과 감리교인이 연대해 만세시위를 벌였다. 기독교계 학교 학생들도 함께 했다. 이처럼 서울을 포함해 7군데 도시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들은 연대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7군데 모두 최남선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날 혹은 당일 날 전달받아 낭독했다. 3월 1일 서울을 포함해 7군데 도시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다음날부터 인근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3월 1일부터 14일까지 2주간 전국에서 일어난 276회의 만세시위 중 70%를 웃도는 197회가 평양 등 북부 지방에서 일어났다. 3월 중순을 넘어서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중남부 지방에서 주로 일어났다. 3월 하순에 다시 북부지방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지면서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만세시위의 절정기를 이뤘다. 매일 50~60여회에 이르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1운동은 도시에서 시작되어 농촌으로 번져갔다. 도시에서는 종교인과 학생들이 만세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학생들은 시위를 모의하고 주도했으며 등교를 거부하는 동맹휴학을 전개 했다. 노동자들은 동맹파업으로 동참했다. 상인들은 상점 문을 닫는 철시투쟁을 벌였다. 농촌 시위는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장터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번화한 거리에서 독립 선언식이 거행되었고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옛날부터 농민항쟁에 자주 등장한 횃불 시위, 봉화 시위도 일어났다. 이처럼 3‧1운동은 도시나 농촌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시위를 주도했고 동참했다. 민족의 일원으로서 누구든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하고자 했던 자발성은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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