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김’ 美 연방하원의원 LA코리아타운 방문의 저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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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도 미국대통령 될 수 있는 꿈을 꾼다”

한인으로서는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최초의 한인계 연방하원 의원이 된 한인 2세인 앤디 김(36, Andrew Kim, Member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이 의원으로서는 처음 LA코리아타운을 방문해 자신을 지지해준 동포사회에 감사를 표하며, 한편으로 후원모임도 개최한다.  지난달  3일 워싱턴 연방의회 116차 회기에서 역사적인 의원 선서를 한 앤디 김 의원은 한인계로서는 역사상 김창준 의원에 이어 두번째 한인 남성의원이다. 그는 의원 선서를 마치고 최초로 역사적인 법안을 공동 제기했는데 바로 ‘부패방지 및 공정선거법 개정안’(Anti-Corruption and Fair Elections Reforms)이었다. 지난 40여년동안 실시해온 선거법이 많이 부패해졌으며 시대를 지나오면서 금권과 권력으로 피폐해진 것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김 의원은 캠페인 시절에도 이 부패한 선거분위기를 타파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김 의원이 이번에 LA코리아타운을 방문하게 된 것은 평소 민주당을 지지한 피터 & 지희 허(Peter & Jihee Huh)회장 부부를 포함해 데이빗 류(David Ryu)LA시의원, 로버트 안(Robert Ahn), 캐롤 엔 유진 최( Carol & Eugene Choi), 크리스토퍼 허(Christopher Huh), 폴 엔 제인 김(Paul Huh and Jane Kim), 폴 김(Paul Kim), 스티브 강(Steve Kang), 로스 김(Rose Kim), 글로리아 이(Gloria Lee), 벤 박(Ben Pak), 웨이드변(Wade Pyun), 존 이(John Yi), 애나 엔 제프 발데즈(Ana & Jeff Valdez)등이 준비를 해왔다. 이날 모임에 하비에르 베세라 주 검찰총장, 주디 추 연방하원의원, 마크 다카노 연방의원, 길 시스네로스 연방하원, 테드 루 연방하원의원 등 민주당계 가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김 의원 후원회는 오는 22일(금)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코리아타운 Westmor Banquet Hall(607 Western Ave. 3F, LA)에서 개최되는데 후원금은 일반 250달러, 지지자 500달러, Friend 1,000달러, Host Committee 2700달러, Host Chair 5400달러이며 헌금 수표에는 Andy Kim for Confress라고 하면 된다. 김 의원의 공직자로서 신념은 봉사 정신에 있다. 그는 봉사정신이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등 양당 대통령 시절을 통해 국가안보분야를 책임졌던 인물로 누가 대통령이든 국민과 주민을 위한 봉사를 으뜸으로 삼았다.

김 의원은 지난해 출마를 통해 첫 번째 TV광고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대통령 밑에서 국가 안보 담당관으로 봉사했다” 라는 점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지난 7일 조윤제 주미한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는 자신이 “미연방의회에서 유일한 한국계 의원임을 자각하며, 미국과 한국간의 동맹강화와 우호관계를 증진시키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배경재 의회 상임위원회로서는 연방 스몰비즈니스 위원회로 배정 받았다. 전국적으로 한인들이 많이 관여하는 스몰 비즈니스이기에 앞으로 많은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선거에 출마하면서 ‘아메리카의 드림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36세의 젊은 나이에 워싱턴 의사당에 입성한 그를 보면서, 한인사회는 21세기 중에 한인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꿈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고아 출신에 소아마비를 앓았던 김 의원의 아버지 김정한 박사(72)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최고의 명문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 공학 박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한편 빈농 출신의 간호사였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회봉사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김 의원은 부모를 닮는 것이 자신의 꿈과 희망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부친 김 박사는 “앤디가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약한 사람, 약한 국가를 돕기 위해 정치를 하고 싶다’는 꿈을 꺾지 못했다”며 “주민에게 약속한 대로 기업 후원금은 받지 않고 개인 후원금만 받아 풀뿌리 선거를 치르며 진정성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처음으로 미 정치계에 발을 들여 논 초년병이다. 김 의원은 정서나 사고방식이 사실상 미국인이다. 한국어도 서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지지해 준 한인 사회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평범한 한국인 이민자의 아들이 미 연방의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든다”면서 “의회에서 이러한 가치를 지키고 한국계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 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봉사는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

김 의원은 뉴저지주 말튼에서 한인 아버지 김정한 박사와 간호사인 어머니 김 여사 가정에서 태어난 한인 2세다. 2004 년 명문 시카고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나중 그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으로 명문 옥스포드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 국무부에서 일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데이비드 페트 레이어스(David Petraeus) 장군의 고문으로 존 알렌(John Allen) 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2009년 9월 국무부의 이라크 전문가로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했다. 2011 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5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 주둔 2명의 미군 사령관 2명인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장군과 존 알렌(John Allen) 장군의 민간인 군사문제 참모였다. 그는 30세 약관 시절인 2013년에 국방부에서 미국의 이라크 문제를 주도했다. 이어 2015년 8월까지 백악관에서 오마바 대통령을 보좌 하면서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이라크 담당국장(Iraq’s Obama’s National Security Council)을 지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2003년 당시 처음에는 나도 반전 시위자였으나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면서 “무엇이 가장 책임있는 방식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기자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테러단체에 대한 군사전문가전문가로 활동했다. 그의 이력서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일했다. 2004년 시카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김은 ‘헨리트루먼 장학금’으로 USAID에서 4개월을 보냈다. 나중 USAID의 아프리카국에서 분쟁 관리 전문가 연구를 위해 로즈 장학금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연구했다. 전직 동료들은 김 의원이 철저한 근무자세로 활동했으며, 특히 미국의 국가안보의 전문가로 활동했다고 소개했다. USAID의 코니네 그라프(Corinne Graff)는 “앤디 김 (Andy Kim)과 분쟁관리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다른 USAID 요원들이 수행한 작업은 취약한 미국의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요한 임무 였다”고 말했다.

“성실한 공직자 표상”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극적인 선거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의 선거구는 65만 명의 유권자 중 백인이 85%, 한국인은 불과 300여 명인 지역구에서 ‘트럼프 측근’인 2선의 공화당 현역 의원 톰 맥아더(58)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다 최후 승자가 되었다. 그는 지난해 선거 캠페인에서 약값 인하, 사회 보장 확대 등의 공약을 내세워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의료·사회 복지 방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아마비를 앓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 의원은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이념적 편가르기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슈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미국 전역의 한국인 커뮤니티에선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고등 교육,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 한국계 미국인들의 복지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이 지난해 선거에서 승리한 뉴저지주 제 3 하원선거구(New Jersey’s 3rd district)는 미전국에서 첨예하게 벌어진 30개 선거 지역 중에서도 전국민의 주목을 받은 지역의 하나였다.

김의원이 상대한 톰 맥아더와의 경쟁은 비록 두 사람 사이의 격돌이었지만 실상은 오마바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싸움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이나 정치 분석가들이 지적했다. 김 의원은 오마바 시절 백악관 안보담당분야의 보좌관이었고 톰 맥아더 의원은 트럼프의 보험 정책 입안자 였기 때문이다. 김 의원의 승리는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 65

▲김의원이 가족들과 즐기고 있다.

▲김의원이 가족들과 즐기고 있다.

만 유권자 중 백인이 85%, 한국인이 300여 명에 불과한 선거구(뉴저지 3선거구)에서 3선에 도전하는 공화당 현역 의원과 맞붙어서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상대인 톰 맥아더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건강보험 개혁안인 ‘트럼프 케어’를 설계한 중진 의원이었다. 지난해 선거 캠페인 기간 중 김 의원은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열열한 지지를 받았다. 당시 정치분석 여론조사기관인 쿡정치보고서 (Cook Political Report)에 따르면 앤디 김 의원이 출마 한 뉴저지의 제 3 연방하원의원 선거구는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가장 첨예하게 시소 게임을 벌이는 전국 30개 지역 중 하나였다. 그 선거구는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두번이나 승리한 곳이다.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원 유권자들보다 약 12,000명 이상 많다.

“미국이 주목한 앤디 김”

막판 역전극으로 승기를 잡은 김 의원은 “당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공통 분모를 찾고, 그들의 관심사를 대변하고자 했기에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선거는 김 의원에게는 진땀을 빼는 열전이었다. 지난해 11월 6일 밤샘 개표가 진행되어 7일 오전 1시가 다 돼 갈 무렵 개표가 99% 이뤄졌을 때 앤디 김 후보의 득표율은 48.9%. 3선에 도전하는 맥아더 후보(49.8%)에게 2,315표(0.9%포인트) 뒤졌었다. 그 시간에 앤디 김 후보는 승리 파티장 단상에 올라 “미국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모든 표를 개표하고 승리를 가져오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행사장을 일단 빠져 나갔다. 그의 선언대로 7일 밤 선거사무소 연단에 다시 올라 지지자들 앞에서 이번에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의 선언대로 8일 오전 2시 현재 앤디 김은 49.8%를 득표해 맥아더 후보 (48.9%)에게 2, 612표 (0.9%포인트) 차로 앞섰다. 역전의 승기를 잡은 것이다. 상대 맥아더 후보는 “힘든 싸움이었다. 끝까지 결과를 볼 준비가 돼 있다”며 패배를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재자와 임시 투표 7000여 표가 아직 남았다는 것.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김 의원에게 미소를 지었다. 미주 한인사회에는 약 250만 명의 한인이 있으나 미주류 정계 진출은 미흡했다. 지난 20년간 단 한명도 상,하원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하면서 따라서 주류 사회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한국계 미국인이 정치적으로 미 정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 나라를 잇는 가교가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앤디 김 의원은 북한 인권 문제와 통일 문제 등에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지난 중간 선거의 선전은 한인 사회도 연방 무대에 진출할 정도로 성숙했고, 미국 주류 사회에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어 앞으로 더 많은 제2의 앤디 김 의원을 많이 배출하는 기대를 낳고 있다. 현재 그는 부인 카미 라이 김(Kammy Lai Kim)과 두 아이가 있다.
앤디 김 의원에 대한 문의와 연락처는 아래와 같다.
✦문의: Andrea Dolan/Deputy Fin-ance Director/ Tel 862-266-9517/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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