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 기념 무궁화 꽃 1919송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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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만세’를 코리아타운에서 외친다’

삼일운동오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3월 2일(토) LA 한인타운 한복판에서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기념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일제 만행과 대한독립의 역사를 차세대 한인들은 물론 주류 사회에 ‘3·1운동정신’을 알리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기념 퍼레이드에 많은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범동포 준비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기념 퍼레이드 대미에는 3·1운동 발생년도 1919년을 상징하는 무궁화 꽃송이 1919송이로 장식된 기념판과 100주년을 상징하는 100송이도 전시된다. 무궁화 꽃송이를 만드는 작업은 지난 2월 초순부터 김은진 종이꽃예술 작가의 지도로 오은영(전KOWIN/LA회장)한인 봉사자를 위시한 연인원 3백여명의 봉사자들이 매일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한인회관에서 손수 만든다. 지난 16일 토요일은 일요일 새벽까지 밤샘 작업도 펼쳤다. <성진 취재부 기자>

지금 LA한인회관에는 밤 11시에도 불이 켜있다. 1층 한인회 사무국 옆방에서는 색종이로 무궁화 꽃을 만드는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바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만들어진 무궁화 송이 더미 한 옆에는 새로 만들어야 하는 여러 색의 종이들이 잘려져 있다. 무궁화 한 송이를 종이꽃으로 만드는 시간은 한 사람이 적어도 30분을 넘는다. 적당히 접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정성을 지니고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다. 이 무궁화 꽃송이들로 한반도를 상징하는 지도로 장식해 오는 3월 2일 3·1운동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가 끝나는 자리인 윌셔와 옥스포드 광장에 세워질 100주년 기념판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 기념판은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을 기념하기위해 총 1919개의 무궁화 꽃송이로 한반도 (분홍색 꽃송이)와 바다(푸른색 꽃송이)를 채우고 따로 100주년을 기념하는 100송이의 무궁화가 만들어 진다. 이 무궁화로 약 8m(높이)×3m(폭)자리 한반도를 상징하는 무궁화 지도를 만든다.

무궁화 꽃을 만드는 이름 없는 영웅들

또 그 자리에서 무궁화 지도와는 별도로 우리의 염원을 적을 ‘소원의 글’(Wish List)도 달기로 준비 중이다. 100년 전 망한 조국을 찾기 위해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남가주한국학원 주말학교 어린이들이 꽃송이를 만들며 기뻐하고 있다.

▲남가주한국학원 주말학교 어린이들이 꽃송이를 만들며 기뻐하고 있다.

앞으로 올 100년을 위해 희망을 적어 보여준다. 이 무궁화 꽃송이 만들기 봉사를 이끌고 있는 오은영 회장은 “무궁화 꽃송이를 만들며 100년전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들을 기리게 된다”면서 “또한 나라꽃 무궁화를 만들면서 조국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오 회장은 “매일처럼 나와 봉사하는 분들이 없었다면 이번 일은 결코 이뤄질 수 없었다”면서 “이들이 바로 이름 없는 봉사자이며, 이름없는 영웅들이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이같은 무궁화 꽃송이를 만들기 위해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적게는 5명 많게는 수십명이 참여하고 있다. 특히 3·1운동을 혼을 이어가는 미주3·1여성동지회(회장 이연주) 소속 청소년부 학생들은 지난 10일 일요일 오후 자신 들의 모임 시간에 김은진 작가를 초청하여 무궁화 꽃송이를 만들었다. 이를 지도한 3·1여성동지회의 그레이스 송 부회장은 “우리의 미래와 함께 무궁화를 만들면서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을 배워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미주3·1동지회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김오옥 단장은 김오옥(미주3·1 여성동지회합창단)단장은 LA에서 멀리 떨어진 라구나 우드에서 동생까지 함께와 밤이 새도록 수지 흥씨, 수잔 강씨, 린 김 사장(부동산업)까지 합세하여 무궁화꽃을 만들었다. 미주3·1동지회의 김현숙 부이사장은 무궁화꽃을 만드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점심과 저녁까지 제공했다.
남가주한국학교의 주말학교 학생들도 김은진 작가의 지도로 무궁화 꽃송이를 만들며 모국의 3·1운동을 배우기도 했다. 이화여대 동문을 포함한 맨하탄 노인 아파트 동포들도 한인회관에 나와 꽃송이를 만들었다. 일부 봉사자들은 거주지가 멀어 재료를 들고 집에가서 만들어 오기도 했다. 무궁화 꽃송이를 위한 종이꽃예술(페이퍼 플라워 아트)을 지도하는 김은진 작가는 “이같은 공예는 모든 종류의 종이를 자르고 물에 담그고 두드리고 펴는 섬세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공예”라며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했다.

‘나라꽃으로 3·1절 100주년 기념’ 대한민국 지도

페이퍼 플라워 아트의 모든 재료는 한국에서 들여오고 무궁화 꽃 한송이 당 30여 분이 넘는 집중 작업이 필요한 공예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아름다운 무궁화로 채워진 대한민국 지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작가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종이 아트의 특성상 애국심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14일 발렌타인 데이(HAPPY Valentine’s day)에는 무궁화방에 모인 봉사자들의 섬섬 옥수로 만든 무궁화 꽃송이가 속도를 내고 많이 많이 만들어 졌다. 지난 주까지 약 1500송이의 무궁화가 제작되었는데 꽃들이 겹쳐지는 부분을 감안하여 분홍계열의 1200송이는 한반도를 이루고 나머지는 바다로 장식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는 오는 3월 2일 오후 1시 30분 윌셔 블러바드와 놀만디 애비뉴 미주3·1에서 시작된다. 이어 오후 2시부터 3·1운동을 연출한 ‘유관순 공연’을 시작으로 윌셔 불러버드를 따라 옥스퍼드 애비뉴까지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이번 퍼레이드에는 미주3·1여성동지회 회원들을 포함해 참가자들이 유관순 열사 복장을 착용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다. 뿐만 아니라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동안 사물놀이 팀과 형형색색의 각 무용단들이 다채

▲미주 3·1여성동지회 청소년 회원들이 무궁화 꽃송이를 만든다.

▲미주 3·1여성동지회 청소년 회원들이 무궁화 꽃송이를 만든다.

로운 공연을 펼치며 행진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후 2시 20분 퍼레이드 구간 중간 지점에서 일제 만행의 잔혹함을 알리는 공연이 열린다. 퍼레이드가 끝난 2시 45분부터는 윌셔 불러버드와 옥스포드 애비뉴에 설치된 야외공연장에서 모듬북과 댄스, 무용 등의 공연들이 열릴 예정이다. 야외 공연장에서는 종이로 만든 무궁화 꽃송이로 대형 한반도 지도가 만들어져 설치된다. 이 무궁화 꽃송이는 3·1운동이 시작된 해 1919년과 같은 숫자 1919개의 무궁화를 만들어 장식된다. 이번 기념 퍼레이드는 차세대 한인은 물론 주류사회에 일제 만행과 3·1절 역사를 알리고 단합이라는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보다 많은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3월 2일 LA 한인타운에서 펼쳐지는 3·1절 기념 퍼레이드는 단체, 개인 할 것 없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문의: LA 한인회 사무국 전화 323-73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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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 체결 이후 우리 민족은 나라를 잃고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 했다. 지금도 우리는 이날을 ‘경술국치’라 부른다. 당시 국권 상실의 슬픔은 새로운 국가건설을 향한 꿈을 꾸게 만들었다. 그 나라는 절대 권력이 아닌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같은 내용은 안창호의 유품에서 발견된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대동단결선언’은 국민주권설을 주장하며 주권행사의 의무와 권리가 국민에게 있음을 밝히고 독립된 조국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임시정부와 같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선언문은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박용만, 윤세복, 조소앙, 신석우, 한진교 등 14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1917년 중국 상해에서 작성됐다. 이 선언은 주권불멸론과 융희황제의 주권포기론을 근거로 국민주권설을 정립해 독립운동 이념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언의 내용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신한민보(新韓民報)’등 해외 한인들의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나라 건설’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노령, 상해, 한성에 기반을 둔 개별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11일 대통합을 이뤄냈다. 한성정부의 정통을 잇고 연해주의 대한국민회의는 임시의정원과 통합하며 설치장소는 상해로 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이로써 하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대한민국임시헌장’을 개정해 1919년 9월 ‘대한민국임시헌법’이 공포됐다. 이 헌법 전문에서 ‘3·1운동의 자주 독립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을 건설한다’는 점을 밝혔다. 초대 임시대통령으로 이승만의 당선이 선포됐다. 상해의 ‘독립신문’에 신내각인 초대 국무위원 명단도 발표됐다.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장 이동녕, 외무총장 박용만, 군무총장 노백린, 재무총장 이시영, 법무총장 신규식, 학무총장 김규식, 교통총장 문창범, 노동국총변 안창호 등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26년 9월 임시대통령제를 폐지하고 국무원제를 채택했다. 이후에는 위원내각제가 정부형태의 주류를 이뤘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일본군에 쫓겨 1945년 8·15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중국 상해, 항주, 장사, 유주 등을 거쳐 중경으로 옮겨가며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다양한 방법의 저항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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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은 이승만’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3·1만세운동은 평양 원산 등 북쪽으로 확산되었으며 3월 10일 이후에는 시위가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 중남부 지방으로 확대 돼 전국적 규모로 확산됐다.
이 과정에는 교사와 학생 등 지방 사회의 지식인들이 역할이 컸다. 이들은 선언서 등의 각종 유인물과 시위 경험을 각 지역에 전파했다. 비밀결사와 결사대를 조직해 시위를 조직하고 주도했다. 3·1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청년과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민족의 주체역량으로 독립을 쟁취할 것을 주장했다. 운동은 3월 중순 이후 농촌 지역으로 확산됐다.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중운동으로 발전됐다. 운동이 발전될수록 투쟁 목표가 구체화되고 조직화 됐다. 비폭력적인 만세시위운동에서 계획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으로 진전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일제는 3·1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화성 제암리, 천안 아우내, 정주 곽산, 남원 광한루, 익산 이리 등 전국 각지에서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는 등 학살을 저질렀다. 시위자들을 체포홰 가혹한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 3·1운동은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다. 나라 안팎에 민족의 독립의지와 저력을 보여줬다. 3·1운동으로 표출된 독립의 열망과 의지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임시정부 수립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3·1운동이 국내·외로 확산되는 가운데 3월과 4월에 걸쳐 곳곳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이 가운데에 실제적인 조직과 기반을 갖춘 곳은 연해주, 한성, 상해에서 각각 수립된 임시정부였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3·1운동 직전인 2월에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중심이 돼 노령임시정부를 수립했다. 3·1운동 직후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은 상해로 집결했다. 4월 10~11일 임시의정원 회의를 개최하고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국내에서는 13도 대표들이 인천 만국공원(萬國公園·현재의 자유공원)에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결의했다. 이후 4월 23일 국민대회를 열고 한성임시정부의 수립을 알렸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독립운동을 체계화·조직화· 활성화 할 수 있었다. 3·1운동과 정신을 기념하는 3·1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때부터 국경일로 지정해 기념했다.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헌장이 공포됐다. 이 공포문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이라는 문구로 제1조가 시작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가 확립된 순간이다. 3·1 운동의 결과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시기 동안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광복 이후의 국가상을 그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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