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 주인공 ‘에이드리언 홍’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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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왕조 척결이 최종 목표다”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을 007작전보다 더 민첩하게 한 리더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Adian Hong Chang)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FP통신은 스페인 법원이 이번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이 ‘에이드리언 홍’(Adrian Hong)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기반을 두고 오랜 기간 “반북 활동을 해온 인물”이라고 했다. 본보 인명 자료에 수록된 에이드리언 홍은 인권에 기초를 둔 활동가이다. 그가 명문 예일 대학 시절인 2004년 약관 20세에 창립한 LiNK(현재 대표 송한나, Liberation in N. Korea)는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탈북자를 구출했다. 그는 말보다 행동하는 인권운동가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인권을 위해 수많은 기관 단체들이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미국에서 한인 대학생을 주축으로 전세계에 지부를 구축한 탈북자 북한인권 단체는 LiNK가 유일하다. 에드리언 홍이 LiNK를 창립한 첫해에 미국, 유럽, 한국 등에 지부만 70개가 될 정도로 그의 지도력은 뛰어 났다.이번에 북한 대사관 기습사건 보도를 보고 그를 잘 아는 한 인권운동가는 “될성 바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며 “앞으로 북한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인물”로 평가했다. 북한 왕조체제의 붕괴를 목표로 활동하는 에이드리언 홍은 현재 35세 청년이다. 북한 독재정권의 세습자 김정은의 나이도 35세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에이드리언 홍은 지난 2015년 1월1일에 그의 트윗에는 이런 글을 올렸다. “아아, 신천지(新天地)가 목전(眼前)에 전개(展開)되도다. 위력(威力)의 시대(時代)가 거(去)하고 도의(道義)의 시대(時代)가 내(來)하도다.” 에이드리언 홍의 한국명은 ‘홍으뜸’이다. 선교사인 부모의 투철한 정의감을 어려서부터 배운 홍은 명석한 두뇌로 명문 예일 대학에 진학했다. 역사와 법률을 전공으로 선택한 그는 북한의 실상을 알고부터 삶이 달라졌다. 홍은 “북한은 주민들에게 봉사하고 주민들을 보호하려는 정부를 가진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잔혹한 전체주의 정권이며 극도로 허약한 관계인 왕실과 신하 계급이 통치하는 정권이다. 주민의 복지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지난 2004년 3월 예일대 캠퍼스에서 미국내 300여 개 대학의 한인학생회 대표들이 참가하는 KASCON(미주한인학생총회, Korean American Students Conference)가 열렸다. 이 KASCON은 1987년 프린스턴대에서 시작되었는데 미국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예일, 컬럼비아, 코넬, 프린스턴, 루터스, 펜실베이니아, 웨스트 포인트, 브라운, 시카고 등에 재학하는 한인 학생 들이 한자리에 모여 ‘뿌리’와 정체성’을 논의하는 컨퍼런스이다. KASCON은 매년 한번씩 각 대학을 순회하며 개최되는데 2004년 총회장인 홍이 재학한 예일대에서 열렸다. 당시 북한인권문제가 총회 의제로 올라왔는데 그를 포함해 많은 학생 대표들은 큰 감동을 받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에이드리드 홍동포사회에 북한인권을 다루는 단체가 있긴 하지만 젊은 학생이나 청년들이 직접 참여해 활동할 수 있는 단체는 없었다. 그는 처음에는 동료 친구와 함께 노트북과 비디오를 갖고 다니며 북한 인권문제를 알리려고 했는데 시작을 해 보니 한달만에 40여 개의 단체가 조직됐고 2004년 12월에는 70개의 지부가 생겼다. 유럽에서 유학하는 한인 학생들도 참여하면서, 프랑스 파리에서도 시작되었다. 북한민주화 목적으로 한 LiNK설립 8개월 만에 70개 지부로 폭발적인 확장세를 벌였다. 그가 LiNK를 결성한 계기는 첫째 북한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것이었다. 당시 일주일에 두번 꼴로 이를 위한 행사를 했다. 워싱턴 미 의회에서 세미나를 주최하면서 탈북 난민문제에 대해 브리핑 했다. 그래서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인을 대상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2004년 12월 5일 LA와 뉴욕의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 탈북 난민 62명을 북한으로 강제 송환한 것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도 주도했다. 그는 당시 한국 방문에 앞서 중국까지 다녀왔는데 북중 국경에서 숨어 있는 탈북 고아들을 발견하곤 이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2004년 말에 LiNK의 대표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사회에서의 LiNK의 역할에 대해 알고 싶었다. 한국 단체가 LiNK를 어떻게 받아주고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지 알고자 했다. 그는 일제강점시대에도 미국에 있는 한인들이 조국을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었다. 안창호, 이승만, 서재필 같은 분들이 미국에서 독립운동과 모국 후원을 많이 했는데 그런 식으로 미주동포들이 미국에서 조국을 위해 많을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초창기 LiNK활동 자금은 모금을 위해 T셔츠와 케이크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학부모들이 100달러 정도씩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충당하면서 모든 대학생들이 자원봉사정신으로 하도록 격려 했다. 당시 LA사무실은 학부모 한 분이 후원으로 내 준 것이고 뉴욕사무실도 건물 한쪽을 지원받았다.

‘LiNK 초창기 70개 지부’

LiNK는 정치적으로는 중립이다. LiNK와 연계를 원하는 단체들도 있지만 미국에서도 정치적 입장 을 분명히 드러내면 절반의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립을 지키기 때문에 많은 단체들이 가입하고 있는 것이다. 단체의 이름이 ‘링크’(북한해방, liberation in North Korea)’ 이라서 당시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암시하고 있고 단체 내에 그것을 원하는 회원들도 많지만 너무 정치적으로 나가면 인권문제가 희석될 수 있어서 고민했다. 물론 중립이라고 하지만 기본이 안 되는 단체와는 일을 함께 안한다는원칙이었다. 당시 그는 “미국에도 ‘멍청한’ 단체가 많기 때문이다”면서 “특히 한국의 특정조직과 연계된 유학생들은 북한문제에 대한 탈북민들의 증언이 거짓말이라면서 우리의 활동을 반대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LiNK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한국의 기성세대나 동포 1세들과의 대화가 어려웠다. 그는 “그들은 우리와 대화하기 보다 자신들의 경험과 해온 일을 일방적으로 말할 때가 많다”면서 “한국 에 와서 보니 단체들간에 대립이 심한 것을 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그는 “미국에 한인들이 200만 정도 되는데 말로는 다 관심이 다 있다고 하지

▲LA카운티에 본부를 둔 LiNK사무실에 봉사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

▲LA카운티에 본부를 둔 LiNK사무실에 봉사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

만 실제로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돈이 많고 성공을 한 사람들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원을 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래서 더욱 우리 학생들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학생들도 힘과 잠재력은 엄청나지만 아직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은 북한인권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계속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006년에는 중국을 통해 탈북자 구출 활동을 할 당시 베이징에서 2명의 직원 및 6명의 탈북자와 함께 체포되어 선양의 감옥에 갇혔다가 후에 3명의 링크 직원은 미국으로 추방 당하기도 했다.

미국에 돌아온 홍은 대북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한 유엔 총회 투표가 예정된 가운데 2006년 11월 13일 유엔 한국대표 부 앞에서 노무현 한국정부의 대북 인권결의안 기권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LiNK가 주최한 이날 시위에서 시위대는 한국 정부의 잇따른 대북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제라도 북한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앞으로 있을 유엔 총회의 대북 인권결의안 투표에서 기권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당시 LiNK의 홍 대표는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이 북한인권 결의안에 기권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면서 “대북 인권결의에 한국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표시토록 하기 위해 시위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당시 홍은 “유엔대표부 관계자와 만나 대북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물었으나 아직 한국 정부의 지침이 나오지 않았다는 말만 들었다면서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한 만큼 심각한 북한인권 문제를 더이상 회피하지 말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당시 북한인권을 위한 ‘통곡의 기도’ 행사에 홍은 LiNK대표로, 수잔 솔티 회장은 북한 자유 연합(North Korea Freedom Coalition)대표로 참여했다. 이 행사는 당시 손인식 베델교회 목사 등이 주축이 된 KCC가 주도했다. 그후 홍은 2008년 LiNK와 관계를 정리한 뒤 2015년부터는 북한의 급변을 준비하는 ‘조선 인스티 튜트(Joseon Institute)의 대표로 일하는 등 북한 인권 관련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홍을 잘아는 미국의 한 인권운동가는 “조선 인스티튜트가 아마도 이 모든 일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 체제 변경 시도’

홍은 전략자문회사 ‘페가수스’ 대표로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고 북한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하는 활동을 벌였다. 2015년에는 뉴욕에 기반을 둔 ‘조선 연구소’는 “북한 정권교체 후, 전환 (transition)에 대한 실행 가능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북한의 좀 더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웹사이트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2016년 3월 캐나다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과 탈북자’를 주제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해 북한은 안팎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압박을 받고 있으며 북한에 급격한 변화가 임박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AFP 통신은 홍 창이 대사관 침입 사건의 배후로 자처한 ‘자유조선’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홍이 ‘자유조선’(구 ‘천리마 민방위’)를 만든 리더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상학 북한인권단체총연합 상임대표는 최근 “에이드리언 홍은 현재 자유조선 이전에 천리마 민방위, 자유조선 대표를 맡고 있는 리더”라면서 지난 2017년 김한솔 구출 과정을 기획 주도 하면서 ‘자유조선’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박 대표는 “김한솔을 데려오면서 그때 이름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만들어진 겁니다.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에서 피살됐을 당시죠.”라며 현재 ‘자유조선’ 구성원은 20~30명 정도로, 상당수가 재미, 재영 탈북자라고도 전했다. 일부에서는 홍은 김정은 정권 타도를 위해 임시정부 선언과 무장투쟁까지 주장할 정도의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홍은 수년간 북한 망명정부격인 자유조선 수립을 추진해 왔고, 수차례 김정남에게 지도자가 돼 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 2017년 1월 홍이 김정남을 만났고, 그해 2월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은 북한 요원들에 의해 맹독성 물질에 암살당했다. 자유조선은 김정남 암살 직후부터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보호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에 설립한 북한 임시정부라며 여기에 홍은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홍은 지난 2009년 미국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회인 ‘테드’(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와의 인터뷰에서 ‘취미생활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샌디에이고 차저스’(미국 풋볼 팀 현 LA 차저스)를 위해 응원하거나 악담하며, 멕시코 음식을 먹고 고전영화를 즐긴다”고 말하면서 멕시코와의 인연을 언급하기도 한 바 있다. 2017년 8월부터 휴면 상태인 것으로 보이는 이 단체의 웹사이트에는 “북한의 급박하고 극적인 변화를 위해 준비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전반적인 흐름이 김한솔을 구출 한 ‘천리마민방위’와 이를 연속한 ‘자유조선’과 연계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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