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쿠테타가 발생하자 당시 위컴 8군 사령관은 “한국 사람들은 들쥐와 같아 누가 선봉에 서면 그 사람을 무조건 따라 간다.” 면서 쿠테타를 방관했다.
이 때 8군 사령관 위컴 대장은 ‘brat’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brat을 그 때 ‘들쥐’로 번역한 것은 당시 한국 언론의 영어 실력이었다. 위컴이 사용한 brat은 미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슬랭으로 그 뜻은 장난이 심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골목 대장, 말썽 꾸러기, 버릇 없는 아이 등으로 사용한다. 그 당시 위컴이 사용한 brat은 골목에서 노는 아동들이란 뜻이었다.
오늘날 국제 사회의 brat 김정일에게 누가 그의 손에 핵무기를 제공했는가 ? 미국 언론은 김정일 망나니가 핵공갈 카드를 내 놓고 한반도에서 핵 전쟁 운운 하는 망발을 하자 과연 그런 brat에게 누가 핵무기를 손에 쥐게 했는가 하는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럼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여기에 미국 언론에 등장한 책임론을 소개한다.
만일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기습 공격으로 폭격하면, 북한은 남한 수도권 2100만 한국인과 주한 미군 37,000명을 목표로 방사포 포격을 한다고 공갈을 치고 있다.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 미국측 추산에 의하면 수백만 남북한 인구가 희생 될 수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실전에서 전개될 경우 죽는 사람은 누구의 실수로 그들이 죽어야 하는 지 알아 둬야 할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
미국 언론은 김정일의 오늘날 핵카드를 있게한 배경 인물로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목하고 있다. 1994년 북한 핵 시설을 폭격하지 않고 북한과 핵동결을 한 처사는 클린턴의 실수라는 비난이다. 이렇게 되자 클린턴은 다음과 같이 변명하고 있다.
김정일 Brat이 핵카드를 들고 나오자 미국에서 인기있는 프로그램 CNN의 “Larry King Live”에 지난 2월 6일 나온 클린턴은 “자신이 대통령 재임 중 북한이 1994년 핵동결 협정을 무시하고 계속 핵무기를 연구 개발 한 것을 전혀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밀자 그 다음 2월 11일 FOX News에 출현한 Dick Morris는 전 직속 상관 클린턴이 그런 거짓말을 하는 데 아연 질색하였다고 비난했다.
모리스는 클린턴 시절 백악관에서 안보 참모로 일 한 사람이다. 그는 클린턴은 재직중인 1998년에 이미 북한이 핵무기를 지하에 있는 연구실 (영변에서 동북 쪽으로 100리 떨어진 곳에 건립)에서 연구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폭로 했다. 그는 계속해서 클린턴 재임 시절인 1998년 8월 18일 자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나온 기사를 클린턴이 읽지 않았을 리 만무하며 그런 기사를 읽고 CIA에 확인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 것을 믿겠는가 라고 반문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보 분석가들은 김정일 망나니는 약 15,000명의 핵 개발 연구원을 동원하여 지하에 설치된 비밀 연구소에서 핵 개발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체결한 1994년 핵동결 협정을 위반한 명백한 증거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출처 NewsMax.com)
월남전에서 해군 조종사로 참전하여 포로가 되어 7년간 고생을 한 아리조나 주 출신 상원의원 John McCain은 2003년 2월 12일 NBC Today Show에 출연하여 “우리 미국이 200만명을 굶어 죽게하고 20만명이 강제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는 그런 정권과 1994년 손을 잡았다. 이것은 클린턴의 최대 실패작이다”(Greatest Failure)라고 클린턴을 비난했다. (NewsMax.com)
당시 클린턴은 김정일에게 핵동결 조건으로 두개의 경수로 건설과 중유, 쌀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런 유화 정책은 김정일에게 시간과 돈을 제공하여 핵무기를 들고나오는 결과를 갖다 주었다. 궁지에 몰리고있는 클린턴은 드디어 4월 9일 플로리다 대학에서 행한 초청 연설에서 “부시 정부는 북한을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부시는 “Shoot-first-ask-question-later” (먼저 치고 후에 뭐냐)하는 스타일의 카우보이라고 비난하며 자기가 1994년 북한과 체결한 협정은 합리적 계산의 결과 라고 자기 옹호를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협정 준수는 고사하고 계속 핵무기를 개발하고 말았다.
[김 대중 전 대통령]
북한 김정일에게 핵무기를 손에 쥐어 배후 인물로 미국 언론의 다음 번 화살은 김 대중 가슴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언론(NewsMax)은 남한의 소스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김 대중 정부는 “햇볕 정책”을 들고 나와 재임 기간 중 (1998-2003) 김 정일에게 2조원 (17억불)을 퍼주었다. 그 대가로 남북 정성회담 쇼를 했고 그 결과 김 대중이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김 정일에게 뇌물을 주고 노벨상을 받은 셈이다.
김정일은 이 돈으로 카자흐스탄에서 미그기 (MIG 21) 40대와 잠수함 1척을 구입했으며 중국에서는 8000개 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축출하는네 필수 화학 자료인 tributyl phosphate 20톤을 구입하였으며 파키스탄으로부터는 플루토늄 생산에 필수 기재인 Gas Centrifuges와 Ring magnets를 구입하였다. (출처 전 미 CIA Woolsey국장 LA Times 기고)
결과적으로 김대중의 햇볕 정책과 클린턴의 유화정책은 김 정일 망나니에게 핵 카드를 들고 나오게 만든 후원자들이다.
김대중은 독일이 통일 된 것이 서독의 대동독 화해정책의 결과라고 착각을 하고 햇볕 정책을 들고 나왔으나 그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독일이 통일된 것은 소련의 붕괴로 자동적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결과이다. 독일을 통일 시킨 배후 인물은 고르바초프이지 브란트 수상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가 노벨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북 강경 정책을 썼다면 이미 북한은 빈곤으로 붕괴되었을 것이다.
[故 정 주영 회장]
김정일 핵카드 후원자로 미국 언론의 표적이 되는 또다른 사람은 현대 그룹 정주영 회장이다.
정주영회장은 말기에 노망 현상을 보였는지 1998년에서 2005년까지 김정일 주머니에 9억 4천 2백만불을 제공하기로 하고 금강산 관광권을 따냈다. 물론 그 배후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이 도사리고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정주영 덕에 금강산을 다녀왔다. 그러나 북한의 방사포 포격으로 한국민들이 희생된다면 그 관광객들은 북한에게 방사포 한발을 제공한 사람들이다. 자기 돈으로 북한에 방사포 포탄을 사주고 그 포탄에 맞아 죽는 꼴이다.
정주영 사망 후 아산 재단은 김대중 방북 직전에 한국 산업은행에서 불법 융자한 돈 2억불을 김정일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정주영의 성공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부산물이지 결코 정 주영 머리의 산물이 아니다. 그는 일생을 뚝심 하나로 사업을 하여 온 무지랭이다. 그는 죽기 전에 고향에 대한 향수로 북한 진출을 희망했으며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소 한마리를 훔쳐 상경하였다고 김정일에게 소 떼 1000 마리를 조공으로 바쳐 김정일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개성 공단 개발권과 금강산 관광권을 따내었다. 결과적으로 정주영의 북한 진출은 김대중에 노벨상 수상과 김정일에 핵카드를 주는 결과를 낳았다. 김정일이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의리를 고인이된 정주영 회장에게 지키는 길은 핵카드를 포기하고 정주영 계산대로 산업 국가로 발 돋움 하는 것이다.
2월에 등장한 불안한 노무현정부는 대북정책을 햇볕정책 계승 노선인 “Unconditional Engagement with the North”를 들고 나왔다. 과연 부시가 이 정책에 동조할 것인가 지극히 걱정이 앞선다. 혹시 훗날 노벨상 대신 한반도 적화통일 공로상을 받는 김 정일 후원자가 나오지 않기 바란다. (4월 12일 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