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 전국에서 이라크 파병 군인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물결치고 있는데,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서울의 MBC-TV 프로에서 ‘미군에는 머저리들이 많다’라는 느낌을 주는 방송이 터져 나와 이라크 전선에 아들과 딸을 보낸 미주 동포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됐지만 파병 가족들의 심정은 10년 만큼이나 긴 시간의 고통처럼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25일 서울의 MBC-TV가 내보내고 있는 ‘아주 특별한 아침'(사회자: 이재용·최윤영, PD 송일준)이란 프로그램에서 느닷없이 ‘미군 비하’ 발언이 나와 시카고, 뉴욕·뉴저지, 워싱턴DC 지역의 이라크 전 참전 한인미군 가족들이 발끈해 MBC측에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공개사과 요구는 미 동부지역 뿐 아니라 타 지역 한인사회로도 확산되고 있으며 MBC측이 불응할 시 법적 대응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은 MBC ‘아주 특별한 아침’프로에 초청을 받고 나온 연세대(원주 캠퍼스)의 노정선 교수가 사회자와의 대담에서 “미국(군대)은 대부분 고등학교 중도 포기자나 또는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하는 사람이 지원 입대하며, 머리 좋고 공부 잘하면 대학에 남아있지 군대엔 안가도 되고 마리화나 피우다가 잡히면 군대 간다”고 언급했던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뉴욕에서 ‘노란 리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한미민주연합회'(회장 배시영)와 이라크 참전한인미군 가족 모임인 ‘서포트 그룹(supporter group)’은 지난 11일 미군비하 발언에 항의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MBC프로 ‘아주 특별한 아침’에서 미군 비하 발언을 한 연세대(원주 캠퍼스) 노정선 교수, 그와 장단을 맞춘 사회자와 PD 등 관계자들은 물론 노 교수가 속한 연세대, 이 같은 프로그램을 내보낸 MBC 등 모두에게서 “반드시 공개사과를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우리의 자랑스런 한인 자녀들은 미국에 살면서 누구보다 의협심이 강하고 봉사정신이 뛰어나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신념하나로 미국 군에 입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할 훌륭한 젊은이들이다. 노 교수 등의 발언은 한국계 미군 파병 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며 “미국 군은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사람은 받아주지도 않을 뿐더러 입대 신청 시 개인의 전과 기록 등을 반드시 조사한다”고 노 교수 발언이 크게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한미 민주연합회 배시영 회장은 “이번 사건은 단순한 미군 비하가 아니라 200만 재미한인을 잘못 바라보고 있는 일부 한국인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천재지변 등 한국에 각종 재난이 있을 때 마다 미주 동포들은 앞서서 도움을 주고있음에도 교육자가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미주한인을 주류사회에 올바로 알리기 위해 출범한 한미민주연합회가 미주한인을 한국에 바로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 공개 사과 촉구에 앞장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미민주연합회는 납득할만한 공개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항의편지, 전자우편 보내기, 서명운동, MBC 방송사 제작 프로그램 안보기 운동은 물론 MBC 뉴욕 맨하탄 지사 앞 가두시위 계획 등 이러한 운동을 미주 전역으로 확산시킬 방침이다.
뉴욕에 이어 시카고에서도 지난 13일 참전 한인 미군 가족들과 한인사회 지도자들이 모여 대책안을 마련했다. 이날 둘째 아들인 잔 군을 전쟁터에 보낸 金씨는 노 교수가 MBC프로에서 미군과 부시의 정책에 대해 언급했다는 내용을 전해 듣고 이틀 간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金씨는 전쟁에 간 아들을 생각하면서 “노 교수의 말이 너무나 야속하고 억울하고 슬플 뿐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저의 아들은 어릴 적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봉사 정신이 뛰어났습니다. 자라면서는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지요. 저의 아들이 군에 지원한 건 직업을 갖지 못해서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신념 하나로 입대한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金씨는 미국 군대에 대한 실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교수가 함부로 공개 방송에서 언급한 것에 분노를 표시했다. 그녀는 “물론 단지 아들만을 위해 이렇게 분개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요즘 세상에 고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한 사람은 군대에서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입대 신청 시 개인의 전과 기록 등에 관한 사항을 반드시 조사하지요. 아니 이 부문을 차치하고라도 지금 수많은 젊은이들이 세계 평화 유지라는 일념으로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 이 때에 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런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金씨는 “노 교수가 젊은 사람의 의지를 무시하고 파병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지금도 아들 생각만 하면 잠도 오지 않고 그저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 오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노 교수가 공개 사과를 할 때 까지 다른 파병 가족 등과 연계해 법정소송을 하는 노력이라도 불사하겠습니다.”
金씨는 “앞으로 이라크 전쟁 파병 한인 가족 들을 만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뜻 있는 한인들의 많은 참여와 지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워싱턴D.C.와 볼티모어 지역에서도 파병가족을 위한 ‘서포트 그룹’들이 ‘미군 비하’ 발언 대응 회의를 갖고, ‘공개사과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한인들의 ‘MBC규탄서명서’를 접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재 미군에 복무중인 한인 군인들도 이메일을 통해 ‘서포트 그룹’에 감사의 뜻을 전해오고 함께 서명운동 전개, 항의 이메일 및 편지 보내기 등을 통해 미군 비하발언 관계자들의 공개사과 촉구 운동에 함께 할 뜻을 전해오고 있다.
이와 관련 파병한인가정을 위한 ‘서포터 그룹’의 임 위원장은 “뉴욕과 뉴저지는 물론 동참의사를 밝힌 여러 지역 한인들과 공개사과 촉구 운동을 발맞춰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며 “참전 가족들의 뜻에 따라 이번 사건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재 텍사스 휴스턴에서 기술하사관으로 복무하고 있는 한국계 미군 엔젤라 스피글양은 ‘미군 비하 발언’에 대해 노 교수의 무지를 탓하는 글을 언론사에 보냈다.
엔젤라 하사관의 글에서 오늘날의 미군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저는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포트 샘' 육군기지에서 '수술 기사'(Surgical Technician)로 복무하며 계급은 기술 하사관입니다. 저는 군 복무를 하면서 풀 타임 학생으로 간호대학에 다닐 수 있는 프로그램을 최근 받게 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제가 군인으로서 봉급을 받으며 대학에서 간호학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게 해줍니다. 또 졸업후인 2005년 5월이 되면 저는 소위로 승진, 임관하게 됩니다.
저는 27세로 백인 미국인 남성과 결혼했으며 부모님과 두 여동생은 한국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다 5년 전 미국에 왔습니다.
인천 인하대를 다니는 제 동생이 어느날 자신의 교수님이 최근 MBC-TV 프로에 출연해 미군비하 발언을 해 문제가 되고 있는 연세대 노정선 교수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문제가 있고 멍청한 사람들만 군대에 간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그것은 잘못된 지식이라며 아무리 설득해도 동생은 그 교수의 말을 그대로 굳게 믿고 있어 저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육군에 자원할 때 제가 고등학교 이상 학력 소지자임을 입증해야 했고 또 자격시험도 치뤄야 했습니다. 육군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열정과 자신감을 갖춘 군인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최근 부대 주변 나무들에 ‘노란 리본’이 달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이라크전에 참전중인 미군을 존중하고 경애합니다. ‘노란 리본’은 그들을 지지한다는 우리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MBC-TV 프로그램에서 빚어진 미군비하 발언에 대응하고 있는 이라크전 참전한인 가족들의 모임인 ‘서포트 그룹’의 전자우편 주소를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미군에 복무 중인 한국인 현황]
현재 미군에 복무하는 한인은 4,630명(2002년 10월31일 현재)이며 이 중 장교가 861명, 여군도 860명이나 된다. 장교 중에는 대령이 여성 4명을 포함해 11명이나 된다. 전체 한인 장병 수로 볼 때 미국 내 동양계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인들의 미군 입대 수는 전년도 보다 13%가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이 많은 한인군인 중에서 몇 명이 이라크 전쟁에 파견됐는지는 확실한 통계가 없지만 약1,0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한인군인을 포함해 현재 미군에 복무하는 장병 들이 MBC프로에서의 노 교수의 발언처럼 학력 미달 수준과 또는 마약 복용자들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정보장교로 활약하는 한인 이우수(미국명 샤론 프랭크)는 처음 LA의 엘 카미노 고교를 졸업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으며 이후 장교시험을 거처 정보장교로 임관됐다. 그녀의 남편 크리스 프랭크 역시 한 부대에 근무하고 있다. 병참장교로 참전한 오유진 중위는 명문 코넬 대학의 ROTC 출신으로 환경공학과 생명공학을 전공 후 프린스턴 대학 신학원 입학 허가까지 받은 재원이다. 미 육군 82사단 소속인 조용민 중위는 고교 졸업 후 뉴욕 주립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평소 군인 되길 원해 ROTC를 마치고 입대했다.
물론 미군의 장병들이 이들처럼 모두 고학력의 소지자는 아닐지라도 노 교수의 언급처럼 ‘불량한 젊은이’들은 아니다. 대부분의 입대자들은 미국에 충성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입대하는 경향이 가장 많다. 이들 중에는 군대 생활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뤄 보려는 젊은이들도 많다. 한 예로 이번에 포로로 잡혔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여군 제시카 린치 일병은 가까운 미래에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해 교사가 될 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해 당장 대학을 갈 수 없어 일단 군대에 복무하면 나중 대학공부의 혜택을 받을 수가 있어 군대에 도전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