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미국경제에 대한 종속이 계속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국계 국제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가 ‘신용등급 조정’을 무기로 한국의 정치, 경제에 내정간섭에 가까운 주문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이 한국 정부의 정치적 자주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국경제의 대미 종속은 21세기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외국인 투자자’라는 드러나지 않는 세력을 통해 한국의 금융 및 증권시장을 손안에 쥐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는 전체지분의 51%를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금융기관인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무려 67%에 이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시가총액 기준으로 거래소 상장주식의 35.4%를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5년 전인 1998년의 17%보다 2배로 늘어난 것이다. 코스닥 시장도 1999년의 7.4%에서 2002년 말에는 10.5%로 늘어났다.
[한국 주식시장 미국 예속 심화 ‘파병’ 결정 등 큰 영향력 발휘]
한국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을 각각의 독립된 개체로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월가의 분위기를 방향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한국증시는 이미 미국시장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계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는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해 한국 주식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신용등급 조정’을 무기로 한국정치에까지 강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다.
무디스 사의 한국담당 총책임자인 톰 번 국가신용담당 부사장이 지난 4월7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동북아 경제포럼’에 참석, “한국과 미국이 북한 핵과 관련해 공동전선을 취하지 않을 경우 국가신용등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신용등급 평가에 있어서 북한이 근본적인 우려 요인이며 북한 핵 개발 등으로 안보상황에 문제가 생기면 신용등급 평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미국쪽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을 경우에는 한국의 신용등급 하향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북한이 걸리게 되면 모든 것이 얽히게 된다”면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한-미간 분열을 발생시키고, 북한이 한-미간 분열을 확대시키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북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 핵에 대한 무디스의 이 같은 시각은 미국 부시행정부를 비롯 공화당내 보수 강경파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
중앙대 제성호 교수는 “북한 해법을 놓고 그동안 노무현 정권과 미국과의 입장차가 드러나면서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설과 주한미군 철수 등 한국에 대한 정치, 군사적 압력을 내놓았던 것”이라며 “지난 2월 무디스의 신용등급전망 하향조치가 바로 무디스라는 신용평가기관을 통해 미국의 한국의 경제적인 압박 카드를 내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디스는 전 세계의 국가나 기업이 발행하는 채권의 약 90%에 대해 신용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 기관이다. 따라서 무디스가 국가의 신용등급을 한 등급이라도 떨어뜨리면 한국의 경우 당장 수억 달러 이상의 외채 이자를 물어야 한다. 이들의 등급 조정으로 국내 증권금융시장이 출렁이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을 정도다.
문제는 이 무소불위의 경제권력 기관이 다른 신용평가기관과 달리 정치적이면서도 미국 정부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평가’의 일관성이 없다.
단적인 예가 지난해 1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엔론의 분식회계 건이다. 무디스는 엔론사건이 터진 후 주가가 대폭락하고 있었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엔론이 파산을 신청한 다음날에야 비로서 채권을 다섯 단계나 하향 조정했다.
미국 국가신용도와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줬던 9.11테러 당시에도 무디스 등 신용평가기관은 침묵했다. 단지 일부 항공사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한단계 낮췄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국내에서 SK 글로벌의 분식회계가 터졌을 때 무디스는 곧바로 SK의 채권 신용등급을 두 단계나 하향 조정했다.
정부는 지난 6일 조윤제 청와대 경제보좌관을 뉴욕과 워싱턴 등지에 보냈으며, 10일부터는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대규모 정부 투자유치단이 뉴욕과 런던에서 한국 투자설명회를 갖는다. 노 대통령의 5월 방미에 앞서 국내 보수계 인사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도 대거 미국으로 건너간다. 월가 투자가들과 무디스를 달래기 위해서다.
대안연대회의 정승일 정책위원(베를린자유대 경제학박사)은 “지난 97년 경제위기이후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외국투자자 최우선’ 정책이 경제 주권마저 외국에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도 “한국경제가 미국식 발전모델에 너무 경도돼 있다”면서 “우리식으로 미국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업과 금융을 하루빨리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마이뉴스 제공]
[한국경제에 ‘몽둥이’ 드는 선수들만 바뀌었다]
사진설명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 무디스 사의 한국경제 실사단이 1월21일 오후 은행회관에서 전윤철] 경제부총리와 만나 한국경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국 경제의 대미수출 비중은 1960년대의 50%에서 2002년에는 20.1%로 떨어졌다. 교역측면에서 한국이 미국에 의존하는 관계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미국의 영향권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 경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영향권에서 보다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더욱 교묘하고 치밀한 장치를 통해서다. ‘외국인 투자자’라는 드러나지 않는 세력을 통해 한국의 금융 및 증권시장을 틀 안에 쥐고 있고 신용평가기관을 움직이며 경제 시스템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는 경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까지 옭죄고 있다.
삼성전자를 예로 들어보자. 삼성전자는 대한민국의 대표기업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의 주인은 누구인가. 현재 삼성전자의 지분의 51%는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다. 대주주의 지분은 10% 초반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금융기관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민은행도 마찬가지다. 외국인들의 지분율은 무려 67%에 이른다.
[외국인 투지 지분 증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말 현재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거래소의 35.4%, 코스닥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인의 거래소주식 보유비중을 보면 1998년 17.9% 수준에 머물렀으나 1999년 21.6%로 높아졌고 2000년에는 30.1%로 훌쩍 뛰었다. 2001년에는 36.62%까지 치솟았고 2002년 말 36.0%를 기록했다. 한국증시의 월가 예속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개인투자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코스닥 시장에서도 외국인의 지분율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외국인의 시가대비 코스닥 주식비중은 1999년 7.4%에서 2000년 6.8%로 주춤했으나 2001년에는 10.3%로 두 자릿수에 올라섰다. 지난해말 현재 10.5%를 기록했다.
증시 예속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정보우위 현상으로 더욱 심해진다. KDI의 2002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기관 투자가들은 미국의 전일 주가 상승(하락)에 따라 한국 증권거래소에서 순매수(순매도)하는 반면 한국의 투자자는 개인과 투신사 등이 체계적으로 반대성향의 매매패턴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외환위기나 9.11테러 등 큰 사건을 계기로 미국-한국 주식시장간 상관관계가 점점 높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국증시는 갈수록 외국인의 손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2001년 말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인 적이 있다. 당시 증시에서의 화두는 미국 증시와의 차별화 즉 ‘디커플링’(de-coupling)이 가능할 것인 지였다. 삼성전자 주가는 40만원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종합주가지수는 930선을 웃돌며 1000포인트를 눈앞에 보는가 했다.
반면 미국 증시는 잇단 회계 스캔들이 불거지고 경기침체가 나타나며 약세를 면치 못했다. 정작 외국 기관 투자가들은 미국 증시가 하락하자 더 좋은 한국주식을 사는 게 아니었다. 한국 주식을 팔아 환매자금 마련에 바빴다. 펀더맨털이 미국보다 양호하기 때문에 한국증시는 다를 것이라는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외환시장의 흐름을 통해서도 한국 경제가 미국의 예속에서 점점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은 쉽게 드러난다. 미국의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서다. 80년대 초까지 흑자기조를 유지하던 미국 경상수지는 레이건 행정부(1981~89년) 이후 적자로 전환됐으며 90년대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국면이 지속되자 경상수지적자기조는 장기화했고 그 규모 역시 심화되고 있다. 2001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GDP의 3.9%에 이르는 수준이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미국 경상수지적자 확대 가능성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정책당국의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없는 한 향후 5년 동안 미국 경상수지적자가 GDP대비 5~ 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또 미국 경상수지 적자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달러화의 가치 하락이 불가피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이는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시키고 또 환율하락은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불안정해지며 환 위험 관리에 대한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미국 경상수지적자의 확대는 외환시장의 잠재 위험이 될 뿐 아니라 보호무역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여지를 키우고 있다. 최근 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해 미국 상무부가 상계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보호무역주의 분위기는 미국 통상정책의 입안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미국의 입김은 결코 다른 시장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본질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단기적인 차원에서 한국경제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척도는 한국정부가 발행한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 가산금리다.
올해 1월말~2월초까지 120bp 수준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외평채 가산금리는 3월 중순 200bp내외로 상승하였다. 북핵문제가 심각해지며 우리나라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태국의 가산금리 수준을 넘어섰고 말레이시아 수준까지 육박했다.
우리경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확대됐다는 의미다. 가산금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4월 중순 만기인 10억 달러 규모의 외평채를 차환 발행하지 않고 일단 상환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의 외화차입 시 `벤치마크로 삼기 위해 계획이던 외평채 발행은 무기 연기됐다.
[원/달러 환율 불안정]
외평채 가산금리를 상승시켰던 직접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뒤에는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있었다. 무디스는 2월11일 돌연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두단계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북한행동 및 국제사회의 대응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제시하면서 만일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등급상향 가능성 보다는 등급하향 가능성을 증대시킨다는 것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3월 10일 대통령 외교보좌관, 국방부 정책실장,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통일부 통일정책 심의관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서둘러 미국에 급파했다.
정부대표단은 도날드 그레그, 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미대사 등 한반도 전문가와 살로몬스 미스바니, 골드만삭스 등 뉴욕 국제금융기관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최근 북핵문제에 따른 한국경제의 영향과 관련해 설명했다.
또 S&P, 무디스 등 신용평가회사의 담당자를 만나 설득했다. 이에 무디스는 다음날인 12일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을 종전처럼 A3로 유지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급한 불은 껐다.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라크 파병안이 결정된 후 외평채 가산금리가 속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반전여론이 높았던 3월중순 이후 외평채 가산금리는 160bp대에서 정체됐으나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안이 통과되자 무섭게 하락하며, 8일 현재 130bp로 내려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을 통해)한•미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북핵문제를 물고 늘어졌던 무디스는 한국의 파병안을 이끌어낸 셈이다. 이쯤되면 무디스를 그냥 신용평가 기관으로 볼 수 없다.
전쟁발발 일보직전까지 갔던 94년 1차 북핵위기 때 무디스는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A1이라는 최고수준으로 유지한 바 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북핵위기는 아직 긴장도가 94년 수준이 아니다. 긴장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94년 같이 북한공격을 위해 항공모함 등 미국 전투력이 한반도에 집결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디스의 미국정부와의 유착도 논란이 돼 왔다. 지난해초 엔론의 부실은폐 및 이익 허위증식 행위가 밝혀지면서 엔론 주가가 대폭락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론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무디스가 엔론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치한 것은 엔론이 파산신청을 한 다음날인 12월초의 일이었다. 객관중립적 평가를 공언하고 있지만 실제는 미국의 국익과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무디스, 북핵 들춰 파병안 유도?]
또 9.11테러로 미국 국가 신인도와 산업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을 때 무디스 등 신용평가 기관들은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재평가 작업을 일체 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결국 한국경제는 미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존도는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개발 초기에는 미국의 직접적인 지원금이 당근이 됐고 80년대 들어서는 무역대표부가 실력을 행사했다. 90년대 들어서는 IMF(국제통화기금)를 통해 한국경제를 흔들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장을 통해 한국경제를 컨트롤하고 있다. 그 뒤에는 신용평가기관이 버티고 있다. 10일부터 경제부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대규모 IR팀이 런던과 뉴욕에서 한국경제 설명회를 갖는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관계를 감안한다면 이번 한국 IR은 단순한 세레모니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
[오 마이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