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미국의 방문을 환영하며 첫 방미외교 일정을 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정권 강경파들과의 연쇄 면담이며, 둘째는 세일즈 외교이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두 가지 모두 전시효과 내지는 정치적 쇼맨쉽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것을 통해 우리 국내정치에서 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북한 핵문제와 경제문제에 실질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현 정부 외교팀에 몸담고 있는 고위관료 중 유일한 미국통은 바로 반기문 외교안보보좌관이다. 물론 한승주 주미대사도 현장에서 지휘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대사는 주미대사로 선임 된지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어떤 큰 역할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반 보좌관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유종일 윤영관 이종석 서동만 등의 경우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에 조예가 깊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국내 정치역학 관계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는 사람들이다. 반 보좌관을 포함하여 이들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미국의 시민여론이 갖고있는 엄청난 힘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시에 보여주었던 부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만 생각하면 이들은 그야말로 세계 제일의 호전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베트남 소녀와 이라크 소녀의 한 맺힌 절규를 듣게되면 어느새 눈물 흘리고 반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휴머니스트로 변신하게 된다. 걸프전의 영웅으로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았던 부시 1세를 냉정하게 낙선시키는 그런 사람들 역시 미국 시민들이다. 이번 노 대통령의 방미 일정을 살펴보아도 미국 시민사회의 여론을 움직일만한 그 어떤 프로그램도 들어있지 않다.
부시 대통령의 위세가 워낙 기세 등등하여 어떻게 해서든 그를 안심시키고 우호적인 스탠스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오직 그것만 보이는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의회 중심으로 움직이는 국가이다. 현재까지 대통령제를 해온 국가들 중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탄핵 소추가 실현된 사례는 오직 미국 밖에 없다. 비록 당사자들의 사퇴와 사과로 끝내 탄핵 의결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앤드류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등이 이로 인해 큰 곤욕을 치루었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국제정치 구도하에서 부시와 공화당을 움직일만한 세력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바로 미국의 시민사회야말로 유일하게 부시와 공화당의 호전외교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세력이다. 그런 그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외교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물론 사대주의의 잔재 속에 아직까지 살아온 우리들이기에 부시와 공화당만 보이고 미국 시민사회는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교팀 인선을 제대로 하라고 그토록 국민들은 부르짖었던 것 아닌가.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이 외교팀 내에 단 한명도 없었단 말인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노 대통령이 부시를 만나고 체니 럼스펠드 라이스 등을 개별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더라도 이들의 기존 정책이 바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 면담의 효과는 오히려 우리 국내정치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설득했고 하소연했으니 노력한 걸 인정해달라는 수준의 이야기 밖에는 안 된다. 오만한 부시와 미국 의회지도자들의 농간 때문에 상하원 양원 합동연설은 어렵다고 치더라도 하다 못해 예일대(혹은 프린스턴대) 연설, 백악관 출입기자단 초청 간담회, CNN과의 특별대담, 워싱턴포스트 혹은 뉴욕타임즈 특별기고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로 유능한 외교팀이였다면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양원의 합동연설을 반드시 관철시켰어야 했다. 요즘 같은 때야말로 정말 그것이 필요한 적기란 말이다.
노 대통령이 의회 연설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한국민들의 절박하고도 안타까운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호소하고 한국과 미국이 우방이라는 것을 단지 최고지도자 차원이 아닌 한국민과 미국민의 오랜 협력의 역사를 통해 호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의 외교 안보팀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꼈던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복잡한 국내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한반도 평화문제를 원만하게 풀어보고자 만사를 제치고 미국으로 달려오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런 반쪽자리 방미 프로그램을 제시해야겠는가?
노 대통령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어려운 것인지 알고도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서방 선진국들의 경우 주미대사관에서 정무를 담당하는 고위직 외교관 중 가장 우수한 사람을 미행정부 담당이 아닌 미의회 담당으로 선임한다. 그러나 우리의 외교관들은 백악관과 국무부에 눈도장 찍기 바쁘지 의회담당은 서로 기피하려고 한다. 그러니 우리 대미외교가 몇 십년이 지나도 이 모양이다.
의회담당 외교관들이 클린턴, 부시2세, 게파트, 고어 등이 대통령 혹은 고위인사가 되기 한 10년 전부터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놓았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크게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그런데 의회 시절에는 신경 쓰지도 않다가 대통령만 되면 허둥대니 부시가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어려운 방미 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을 보며 너무도 안타깝고 답답하여 하는 말이다.
*자비원 지안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