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5억 달러 대북송금은 현대 정몽헌 회장의 대출지원 및 송금편의 요청을 받은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박지원 문광부장관·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의 ‘3인 협의’ 및 ‘대통령 보고’를 거쳐 김대중 대통령의 ‘묵인’ 아래 이뤄진 것으로 <오마이뉴스>에 의해 6월1일 확인됐다.
대북송금이 임동원·박지원·이기호 3인의 ‘협의’ 및 ‘보고’ 절차를 거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묵인’ 아래 이뤄졌다는 사실은 처음 밝혀진 내용이다. 또 5억 달러 대북송금은 현대라는 기업을 ‘매개’로 당시 현대의 ‘7대 경협사업’과 거의 동시에 병행 추진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는 국정원의 ‘국가공작 인가’를 받아 추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 혹은 국정원장의 인가를 받은 국가공작사업을 사법의 잣대로 처벌한 전례는 외국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일이어서 특검수사 결과에 대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 현대그룹이 북측에 송금한 금액은 총 5억 달러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최근 특검에서 직간접으로 조사받은 대북 송금 관련 핵심 4인(임동원·박지원·이기호·정몽헌)의 진술을 2인의 당사자에게서 ‘크로스 체크’(이중 검증)하고 관련 변호인들과 국정원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로 드러났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29일 1차로 “국정원 편의 제공 하에 2억 달러 대북송금” 사실을 처음 보도한 데 이어, 2월9일 2차로 “현대, 7대사업 독점계약 대가 5억 달러 송금” 사실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2000년 5월 3∼4회‘3인 회의’후 역할분담
대북송금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핵심 인사는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이기호 전 경제수석과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그리고 김보현 국정원 3차장(당시 국정원 5국장) 등 5인이다.
이 가운데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을 제외한 4인은 공개 혹은 비공개로 특검 조사를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이 가운데 2인 이상에게서 특검에서 진술한 내용과 수사 진행상황 등을 직접 확인했다.
핵심 인사들의 진술에 따르면, 우선 현대가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비밀리에 ‘7대 경협사업’을 잠정 합의한 정보를 국정원이 처음 입수한 시점은 지난 2000년 5월초이다.
당시 국정원이 입수한 관련 정보의 핵심 내용은 7대 경협사업에 대한 30년 독점사업권과 컨소시엄 참여 개발을 대가로 현대가 아태평화위 측에 사업 대가금조로 5억 달러를 제공키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박지원 문광부장관은 2000년 3월초부터 대통령특사의 자격으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리한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사전접촉을 수행해 그해 4월8일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와 만난 ‘송금핵심 4인방’ 중 2인은 “임동원 원장과 박지원 장관 그리고 남북 경협사업을 관장하는 이기호 수석의 3인은 그해 5월 3∼4회에 걸쳐 이 문제(대북송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논의해 최종적으로 현대의 비밀 대북송금을 ‘묵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 중 1인은 “박 장관은 ‘대북 협상’을 맡고, 이 수석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현대에 ‘대출 편의’를 제공하고, 국정원은 ‘송금 편의’를 제공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5억 달러의 본질은 ‘경협사업 대가금’이지만 정상회담과 ‘연계’
물론 당시 정부는 5억 달러 대북송금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대북송금을 ‘묵인’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데 참여한 핵심 3인 중 한 사람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 진출할 때 총사업 금액의 일정 비율을 ‘리베이트’로 제공하는 것이 관행임에 비추어 북측이 요구한 대가금 5억 달러는 큰 비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더구나 당시 국정원은 현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7대 경협사업’을 ‘매개’로 거의 동시에 병행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한다는 국가공작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국정원으로서는 이미 ‘현대그룹 대북사업 관련 보고서’ 등을 통해 현대의 대북 비밀송금을 ‘지원’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따라서 특검에서 조사받은 핵심 인사들은 “대북송금 5억 달러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정상회담 대가금이 아니고 7대 경협사업 대가금이지만, 국정원이 수행한 ‘국가공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상회담과 연계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핵심 인사들은 또 당시 현대와 7대사업을 합의한 북한의 관점에서 보자면, 북으로서는 현대로부터 약속 받은 ‘대가금’을 가능한 한 빨리 받고 싶었는데, 당시 현대의 자금사정이 어려웠기 때문에 정상회담과 ‘연계’해서 받아내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핵심 인사들의 이같은 진술을 종합하면, ‘7대 경협사업 대가금 5억달러 대북송금’은 당시 정상회담을 추진한 남북한 당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사업을 보장받으려 한 현대라는 ‘3자의 이익’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2000년 5월말께 DJ에 보고
한편 ‘송금핵심’ 4인 가운데 2인은 “2000년 5월에 현대의 대북송금을 ‘묵인’해 현대의 대북사업을 지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박지원 임동원 이기호 3인은 그해 5월말쯤에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김 대통령으로부터 ‘묵시적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는 김 대통령이 대북송금이 실정법 위반임을 알고서도 남북평화와 국가이익이라는 통치행위 차원에서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지난 2월 14일 대북송금 의혹 관련 대국민 성명에서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었다”면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추진과정에서 현대측의 협력을 받았습니다. 현대는 대북송금의 대가로 북측으로부터 철도, 전력, 통신, 관광, 개성공단 등 7대 사업권을 얻었습니다. 정부는 평화와 국가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실정법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했었습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문제가 된 이상, 정부는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든 책임은 대통령인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재 특검 수사에서 드러난 이 사건의 진상은 “현대가 정부(국정원)의 ‘묵인’과 ‘송금 편의’ 제공하에 당시 동시에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과 ‘연계’해서 ‘7대 경협사업 대가금조로 총액 5억 달러를 비밀송금했다”는 애초 <오마이뉴스> 기사의 핵심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도 인간이기에 누구의 지시나 영향을 받는 것은 싫다. 같은 행위라도 자발적인 의사결정이 좋다. (특검을 바라보는 정치세력이나 언론 등) 좀더 사려 깊은 분들이라면 어차피 특검법이 제정됐고, 적법하게 수사진이 구성되어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켜보는 것이 당사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 아니냐.”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특검팀의 김종훈 특검보는 최근 특검 수사를 놓고 정치세력과 언론 등에서 내놓는 의견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란 의지를 밝히면서 “대북송금 자금이 ‘대가성’이면 처벌하기 위해 적용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의견을 2일 오후 밝혔다.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김 특검보는 최근 특검수사팀의 수사방향과 처리를 놓고 일어나는 논란에 공식적인 입장 표명보다는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특히 김 특검보는 대북송금액 5억 달러를 놓고 <오마이뉴스>(6월 1일자 보도) 등 일부 언론이 ‘대가성’ 돈이라고 보도한데 대해 사법처리여부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밝혀 주목된다.
“대가성이란 말은 국가공무원에게 돈을 주는 것 같이 ‘뇌물’이라면 죄가 성립하지만 대북송금이 ‘대가성’이라 한다면 처벌 법규 적용을 어떻게 해야할지…. 송금을 A(남북경협)이든 B(남북정상회담)의 대가든 처벌할 법적 근거 자체가 마땅치 않다. 보통 관념에서 (공무원의 경우라면) 적용법규는 있지만 이번 상황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또한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로 논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 같은 답변에 대해 김 특검보는 “전적으로 저의 사견이며 분쟁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특검을 보는 시각을) 한번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정쟁의 장으로 되지 않을 것고, 수사과정을 놓고 정쟁을 반복한다면 적절치 않다는 견해”라고 밝히며 특검팀은 정치적인 입장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특검수사 조기종결 희망, 사법처리 최소화 변함없어
특검수사 1차 결과 발표를 20여일 앞두고 ‘조기종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특검보는 “조기종결은 저희(특검팀)와 여러분(기자들)의 희망 아니냐”면서 물리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김 특검보는 ‘조기종결’이란 말이 나오게 된 데에 “일단 1차 수사결과 발표에서 끝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해야 일이 완결되지 연장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면서 “수사를 못했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위해 그런(1차 발표때 종결) 희망을 담아 최소한의 시간에 끝내려고 한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덧붙여 “어찌보면 특검수사팀이나 여러분이 고생하는 것에 비해 (국민의 관심에) 밀려나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었냐”면서 “무엇(정치권이나 외부 압력)에 영향을 받아 수사를 조기종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연 1차 수사결과 발표 내에 수사를 끝낼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또 다른 쟁점이 되고 있는 ‘사법처리’ 문제에 대해 김 특검보는 “사법처리 최소화는 계속 천명해왔던 것으로 새로운 관점이나 쟁점으로 부각됐던 것은 아니다”라며 “두 사람(이근영, 이기호씨) 사법처리 이후 (논쟁이) 가열될 것을 예측했었다”고 말했다.
한편 송두환 특검과 김종훈 특검보는 이날 대법원 법조팀장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먼저 수사의 ‘조기종결’과 ‘사법처리’ 최소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이기호씨의 경우 개인의 사익을 위해 한 행동이 아닌데도 구속한 것은 배후(DJ)를 보고 한 것이 아니냐는 의미의 질문에 “수사 시작할 때 ‘선입견 없는 수사하겠다’고 했었다”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어느 가설 하나 버리지 않고 있다”고 답해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국민이 알 권리’ 측면에서 벗어나 수사를 하지 않았으며, 특히 정치세력에 영향을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서 우려 섞인 말을 전제해 정파적으로 이해를 표출하는 부분(정치권의 논평)은 거꾸로 그들의 언사로써 달성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담아내면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이 김 특검보의 생각.
이 부분에서 김 특검보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라 강조했으며, 이어 특검을 보는 시각을 한꺼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달라질 것이라며 정치권 등에서 특정 시점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꾸로 그들의 행동을 제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법처리를 최소화하는 것은 국민적 공감대가 아니었냐. 우리(특검팀)도 사회와 국가, 정치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소신과 생각이 있다. 그분들(영향력을 끼치려는 세력들)만큼 권한과 정보가 덜할지 몰라도 (특검팀 사람들은) ‘순수’한 생각을 더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걱정과 우려의 수준에서 넘어선 것들을 구별해야 한다. 의사개진과 그 도를 넘어선 것은 구별해 달라. 어디까지 사견이다.”
김종훈 특검보는 “근자에 와서 ‘특검’이라 밝히며 의견을 표명하는 모든 분들(노무현 대통령을 포함)에게 드리는 말”이라며 당부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참여정부 출범 100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남용과 부당대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대북송금 특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특검 수사가 남북관계를 원천적으로 훼손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 특검보는 “이번 논쟁은 대출과정을 문제삼아 내린 조치로 생겼지만 어떻게 추가조치를 하든 (처음에도 말했듯) 앞으로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생각하며, (그런 것에 휘말릴수록) 진상을 규명할 시간이 줄어 들어간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수사의 마지막 결론에선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특검보는 “판사는 판결문으로 얘기하지 않냐”면서 “(이번 수사가)최종까지 밝혀질지 의문이며, (결과를) 보수적으로, 아주 최소화한다면 남는 것은 공소장 뿐”이라고 밝히고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사견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