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치기는 오래 전부터 미국과 일본 등지를 대상으로 음성적으로 해왔는데 여행자유화 이후부터는 필리핀, 태국 등 동남아지역에서 유행처럼 진행되어 유럽지역 등으로 확산, 이제는 거의 전세계 한인들이 활동하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환치기의 수법도 다양하다. 수입물품 신고가격을 실제보다 낮게 처리해서 그 차액대금을 여행 경비나 개인송금으로 사용하거나 수입대금을 실제보다 과도하게 지급하는 방법을 통해 외환을 가족명의로 해외에 빼돌리는 것은 물론 위장무역을 통한 환치기는 불법외환거래의 일종으로 대부분은 예전부터 써 왔던 수법들이다.
특히 차명계좌를 이용한 거액의 입출금 거래가 전체 불법거래 의혹 건수의 50% 이상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동안의 불법외환거래 단속 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미다. 실제로 본국 관세청이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미화 1만달러를 5차례 이상 해외에 반출했거나 외화반출규모가 10만달러 이상인 기업 9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불법외환거래 혐의가 있는 기업 46곳을 가려내 정밀조사에 들어갔다. 이런 수치와 수사진행은 이곳의 환치기 규모나 건수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곳에서도 환치기와 관련하여 FBI가 오래전부터 주시해 오고 있다.
외화도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최근에는 원화약세와 북핵문제 그리고 경기침체 현상으로 한국에서 LA나 미국 각지로 거액의 원화가 달러로 바꿔어 들어 오고 있다. 이 같은 돈은 정상적 외환 송금거래로도 들어 오지만 불법적인 환치기 등으로 더 많이 들어 오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재산을 빼돌리려고 마음만 먹으면 통계상 흔적이 잡히지 않게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다 것은 대부분의 재력가들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재산 해외도피가 그만큼 쉽다는 얘기다.
가장 손쉬운 재산 빼돌리기 방법은 남의 이름을 빌려 해외로 송금하는 것이다. 해외송금은 사유에 따라 법적 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리면 한도 이상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외환담당 직원은 “차명송금은 아주 흔한 일”이라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빌려 송금을 여러 차례 계속하면 어지간한 규모의 자금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명송금이 유흥비 정도의 소액도피에 이용된다면, ‘환치기’는 자금규모가 좀더 클 때 쓰는 고전적인 수법이다. 수출대금 등 외국에서 받아야 할 돈을 정상적인 외환계좌를 통해 해외에서 입금 받는 대신 국내에서 원화로 지급하고, 외화는 빼돌리는 것이다. 외국인 보따리장사들과 연계를 맺어 외국에서 달러를 받은 뒤, 국내에서 원화를 지급하는 수법으로 돈을 빼돌리는 전문적인 환치 기업자들도 활동한다.
하지만 환치기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규모가 크면 활용하기 어렵다. 때문에 자금이 거액인 경우는 흔히 외국기업과의 거래관계를 이용하는 수법이 활용된다. 대담하게 이중장부를 작성해 차액을 빼돌리는 것이다.
외화도피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던 대영전자 윤광석 사장의 경우 전자부품을 외국에서 수입하면서 부품가격을 높게 조작해 차액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보그룹 정한근 부회장의 경우는 주식을 해외에 팔면서 주식가격을 낮게 계상하는 수법을 썼다. 외국에서 받은 수출대금 액수를 낮춰 계산하거나, 해외공사에서 비용을 부풀리는 수법도 흔히 이용된다.
아예 거래가 없으면서도 거래가 있는 것처럼 꾸며 대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돌리기도 한다. 금융전문가들은 이 밖에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현지법인이나 지사에 돈을 보내거나, 거기서 벌어들인 수익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수법, 그리고 해외에 마케팅 등을 대행하는 자회사를 운영하면서 거래수수료를 과다하게 책정하는 등의 수법으로 돈을 빼돌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발생한 불법외환거래는 지난해 총 262건이었던 불법외환거래 신고건수가 올해 4월말 현재 320건을 넘어서 버렸다. 수법도 갈수록 대범화·지능화하면서 적발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법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상에 가명 유료사이트를 개설, 이를 통한 외화밀반출 시도 사례 등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좀처럼 발견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00년 10월에 LA와 NY에서 패시픽유니온뱅크와 조흥은행은 직원의 돈세탁 문제로 해고한 사건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송금의뢰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환치기의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음이다. 즉 두 은행 모두 한국에 있는 외환은행과 조흥은행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 본국에서 이런 불법적인 자금을 송금하기 위해 동원된 불법적인 수법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외여행에서 카지노의 늪에 빠져드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인을 주 대상으로 하는 호텔 카지노로 이들을 데려가는 브로커, 노름판돈까지 현지에서 빌려주는 환전조직이 뒤얽혀 사람들을 파멸의 늪으로 이끌고 있다.
카지노에 멍들어 환치기에 빠져드는 개인들
실제 지난해 10월 남편과 이혼한 뒤 임아무개씨(36)는 강남의 사우나에서 만난 일행과 필리핀 여행을 떠났다. 함께 간이들은 ‘머리나 식히자’며 임씨를 마닐라 번화가인 마카티 지구의 헤리티지 호텔카지노로 데려갔다.
간단한 규칙의 바카라 게임에 빠져든 임씨는 이틀만에 가져간 돈을 모두 탕진했다. 임씨에게 같이 간 일행은 선뜻 돈을 빌려 줬다. 순식간에 빚은 2500만원에 이르렀다. 당혹해 하는 임씨에게 이들은 “한국에 전화해 우리가 불러주는 계좌에 돈을 넣으면 이쪽에서 달러로 받아 빚을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임씨는 서울의 집에 전화해 돈을 입금하도록 했고, 몇 시간 뒤 일행은 “돈이 들어왔다”며 임씨를 놓아주었다. 그들은 필리핀 현지 카지노와 연계된 ‘카지노 브로커’였다. 임씨가 발을 들여 놨던 헤리티지호텔은 연예인 주병진·장고웅씨 등이 도박에 빠져들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이렇듯 현지에서 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환치기’ 업자들 때문이었다. 즉, ‘환치기’는 일반적으로 현지 사채업자가 외국환으로 도박 자금을 대준 다음 한국에 귀국해 원화로 돈을 받아 다시 송금하는 수법을 말한다. LA 일원의 카드게임 도박장인 레인보우, 바이스클 등을 비롯 라스베가스 등지에만 한국인을 대상으로10여개 이상 환전소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불법환전소까지 합하면 20개가 넘는다.
환전소를 중심으로 하는 환치기 조직들은 카지노에서 돈을 탕진한 이들 이외에도 해외수출 대금을 몰래 현지로 빼돌려 비자금을 만들려는 사업가들이나, 해외로 재산을 도피하려는 이들의 외화유출 창구 노릇을 하고 있다. 이들 또한 환치기 업자들이 국내 브로커를 통해 개설한 통장에 한국 돈을 집어 넣고, 미주 현지에서 그만큼의 외화로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환치기는 비단 환전소나 금융기관 또는 수출상사 등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사, 유학상담소, 선물점, 택배점 등에서도 일부가 환치기 수법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절되어야 하는 환치기
지금과 같이 경기가 어려울 때에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들이 무역거래나 자본거래를 위장해 외환을 다른 나라에 빼돌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와 관련기관은 감시 감독 체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외환거래가 자유화하는 마당에 이에 상응한 각종 위험관리 시스템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고서는 언제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다. 각종 규제가 얽혀 있는 지금도 외환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복잡한 외환의 흐름을 치밀하게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기구와 제도의 뒷받침은 절대적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의례적인 대책 논의로 끝나서는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더 이상 국부의 부적절한 불법유출이나 확대되는 일이 발생해선 안된다. 또한 개인들한도 카지노에서의 놀음과 유흥을 위한 불법적인 환치기 수단은 자제해야 한다. 순식간에 개인의 파탄뿐만 아니라 국부유출 등의 부작용이 심각한 점을 자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