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과 같은 구도에서는 지역주의를 깰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지역주의 타파를) 호소하고, 국민·정치인·학계 등이 참여하는 특별 기구를 만들어 몇 년 동안 연구한 뒤 내년 17대 총선이 아닌 2008년 18대 총선에서부터 적용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지역주의 타파가 현실 가능성이 있다. 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당정분리’ 원칙 때문에 ‘나는 모른다’고 하면 안된다.”
침묵을 깨고 오랜만에 입을 연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과 신주류의 최근 행보에 대해 비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추 의원은 5일 오후 국민대 ‘목요특강’에 연사로 나와 신당에 대한 입장, 지역주의 해결 방법, 신·구주류의 대립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이날 강연은 ‘바람직한 정치 지도자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오후 2시20분부터 4시30분까지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추 의원은 강연 말머리에서 “요즘 정치가 무엇인지 회의가 든다”며 “계속 (민주당에서) 신당을 만든다고 떠들어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라며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이 ‘배척(exclusion)’이 아니라 ‘포용(inclusion)’이라고 주장하면서 영국 사회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며 우회적으로 ‘통합론’을 폈다.
또한 그는 “요즘 민주당을 보면 신당 얘기를 하면서 너무 시끄러워 (내가) 밖에서 말을 한다고 해도 신이 나지 않는다”며 “(신·구주류 간에) 서로 극단적인 말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일격을 가해 상처를 줄까’ 하는 태도여서 요즘 민주당 의원 모임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고 신상 발언을 했다.
추 의원은 최근 신당 논의를 둘러싼 신·구주류의 갈등에 대해서 “상대방을 뒤에서 밀면, 그 사람이 돌아서서 때리게 돼 있다. (현재의 신·구주류 갈등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꼭 그런 꼴이다. 개혁이 절박하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권자인 국민들이 이해하고 참여하게끔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며 신주류가 (신당과 관련해) 이미지·이벤트 정치를 하려 하니까 구주류로부터 반격을 받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 의원은 ‘한총련 합법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노 대통령이 5·18 직전에 미국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과 만나 ‘남북경협은 핵 문제와 연계한다’ ‘북한에 추가적인 조처를 한다’는 데에 모두 예스를 하는 등 미국 일방주의에 다 응해줬다. 그런 뒤 광주에 좋은 얼굴로 나타나니까 (한총련) 학생들이 저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오히려 (5·18 기념식에) 고건 총리가 참석하고, (노 대통령은) ‘지금 내가 광주에 가기가 미안하다’라고 했으면 좋지 않았겠느냐”고 유감을 표시했다. 추 의원은 “그렇다고 한총련 합법화가 물 건너갔다고 하는 것은 비약”이라며 “때를 봐서 여러분의 바람이 관철될 수 있도록 (한총련 합법화를) 건의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추미애 의원의 이날 강연에서 밝힌 지역주의 해결책과 신당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신당 논의 자체가 잘못 됐다. 조금은 계산적이다. (신당이 추구하는 정치개혁) 목표가 지역구도 깨는 것이라고 한다.
(2000년 4·13 총선에서 민주당이) 영남 60석 가운데 한 석이라도 얻으려고, 김중권(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고향인 울진에 내려보냈다. 개표 결과 17표로 졌고, 재검표 결과 11표로 줄었다. (그렇게 해서) 그 분이 (영남에서) 한 자리를 한다고 지역구도 깨지나? (그 사람에게) 민원만 몰린다. 민원정치·구태정치가 된다. 그런 인위적인 지역구도 깨기는 안 먹힌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북 송금 특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그대로 공포한 것은 한나라당에게 준 선물이 맞다. 유인태 정무수석이 거짓말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 결과) 부산에 가면 대통령이 잘했다고 한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그 쪽에서 지지가 높다.
그러나 그걸로 인기를 얻어 (내년 총선 때) 영남에서 의석을 얻을 수 있나? 나는 어렵다고 본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요구 사항이 올라온다. 설령 인기를 유지해 (영남에서) 서너 석을 얻는다고 전국정당이 되나? 아니라고 본다. (영남에서 당선된) 그들에게 민원만 몰려 민원정치·구태정치가 된다.
그렇다면 대안이 뭐냐? 노무현 대통령이 어찌하건 간에 당대(임기중)에 지역구도는 안 깨진다. 안 깨지면 깨도록 노력해야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당명부제가) 국회에서 논의조차 안 되고 있을 정도로 (제도개혁에 대한) 벽이 두텁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호소해야 한다. 내년 17대 총선에서는 힘이 없어서 안되겠지만 18대 때에는 새롭게 해볼 수 있다. 2008년은 특히 대선과 총선이 겹치는 해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모두 임기를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노 대통령의) 지지 세력은 특검을 수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지지 세력에 반대되는, 영남과 한나라당에게 선물을 주려고 (특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지지 세력과 영남권) 양쪽의 지지 모두 얻을 수 없는 우를 범했다. 영남권에 직접적으로 국회의원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면, 그들은 보수적으로 똘똘 뭉친다. 그렇게 되면 (지역주의 타파도) 성공하지 못하고, 얻을 것도 없다.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국민이 참여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흔히 신주류, 구주류라고 나누는데, 그건 언론이 만든 용어다. 나는 어느 쪽에 남을 것인가? 나는 대선을 기준으로 하면 신주류다. (선택을 해야 한다면) 나 혼자 남아서라도 민주당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건 무슨 주류인가? 본류다. (신주류-구주류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언론이 갈등·대립시키는데, 실제로는 영국 토니 블레어가 말한 ‘포용 정책’을 써야 한다. 아무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메인스트리밍, 모두를 다 포용해야 한다는 사회학적 운동이 있다. 나는 메인스트리밍 운동을 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