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LA 콜걸이 되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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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의 매춘 실태가 이제 그 도를 넘어 타운의 심각한 사회적 병태현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제는 광고를 중단한 일간지들을 비롯, 각 주간지들의 지면에 매춘광고들이 도배질되어 매춘을 조장하고 있고 안방에까지 콜걸들이 드나드는 지경에 이르는 등 빗나간 사회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현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국에서 캐나다를 통해 밀입국하여 LA등지에서 콜걸생활을 하던 25세 한 여인이 자신의 육필수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 수기는 주인공의 구술을 받아 제작부에서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주>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물론 스티브를 믿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까지 파렴치하고 더러운 인간인지는 정말로 몰랐다. 자기 한 사람만을 믿고 온갖 고생을 하면서 미국 땅에까지 온 나를 이렇게 철저하게 배신을 때리다니–. 소름이 끼쳤다. 그가 밉다기 보다는 그의 얄팍한 사랑에 속은 내 자신이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소름끼쳤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한참 망설였다. 이제 더 이상 내가 버틸 아무런 힘이 없었다. 갑자기 온몸이 무기력해지더니만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서는 채현이가 어떻게 할지 몰라 내 소매자락을 붙잡고 떨고 있었다. 순간 나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함께 몇 번을 혼자서 맹세한대로 ‘죽기 뿐이야 더 하겠느냐’는 오기가 발동 했다. 오히려 여기서 기가 죽어 저들에게 살려 달라고 애걸한다면 나를 얕잡아 볼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을 돌려 그 사람 들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에게 뭘 원 하는 거예요. 스티브와의 일을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세요. 나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스티브를 따라 왔는데 그가 나를 팔아 먹기라도 했나요” 나는 앙칼지게 그를 향해 독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좋아 네가 원한다면 애기 해주지. 스티브는 너를 내게 1만불에 넘긴거야. 네가 스티브에게 1만불을 차용했고 네가 이런 생활을 원해서 미국까지 데리고 온거 아니야? 같이 가기 싫으면 스티브에게 준 1만불만 내게 주면 돼.알았어?”

그자는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질겅질겅 껌을 씹어가며 씨부렁 됐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단돈 1만불에 나를 팔아 넘긴 스티브를 생각하니 피가 꺼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꿈에 그리던 미국 생활의 첫날의 꿈은 이렇듯이 시작 되었다. 모든 것이 내 불찰이었다. 스티브의 달콤한 행동에 속아 넘어간 내 자신을 탓 할 밖에는 아무도 원망 할 수가 없었다. 사내는 내가 가여운 모양인지 “우리도 나쁜 사람 아니야, 너도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너만 잘 하면 한 달에 2만불 정도 벌 수 있으니 빛 갚고 그 다음에는 네가 알아서 행동 해도 좋아. 그리고 네 옆에 친구는 나 하고는 아무런 일이 없으니 알아서 하도록 하고 나를 따라서 같이 가면 지금 1만불을 줄 테니 알아서 판단해”
사내는 퉁명스럽게 나와 채현이를 향해 은근히 미끼를 던졌다.
“어차피 너희들의 인생이라는 것이 현재로서는 그렇고 그런거 아니냐. 나하고 같이 가도 너희에게는 손해 날 게 없지, 안 그래”
“—-”
우리는 달리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그 사내들도 처음과는 달리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수그러들었고 오히려 우리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처음처럼 화를 내지도 않았고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던져진 주사위다. 죽기 뿐이야 더 하겠나. 가 볼 때까지 가보자. 그 끝이 어디인지 가보는 거야’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어차피 지금까지 험한 인생을 살아온 나 인데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그들의 태도를 보니 우리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 줄수 있을 성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채현이가 느닷없이 그 사내에게 “정말로 1만불을 주는 거예요. 조건이 뭐지요” 채현은 당돌하리 만큼 또박또박 물었다. 채현이도 체념을 한 것 같았다. (나중에 채현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로는 한국에 있을 때 안마 시술소에서 오랫동안 일 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였다)
사내는 채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1백불짜리 한 묶음을 채현이 앞에 던지며 “자, 1만불이고 조건은 네가 버는 대로 천천히 갚아도 돼” 채현이는 1만불을 받아들고 잽싸게 일어서 준비를 하려고 했다. 채현이는 이미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서울에서 알고 온 것 같았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야말로 바보중에 바보였다. 스티브에게 속아서 돈은 돈대로 쓰고 이제는 본의아니게 빚까지 진 신세가 되어버린 내 자신이 그렇게 한심 할 수가 없었다.


운명의 장난

미국에서의 나의 운명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기에 앞서 모든 것이 나의 불찰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지금까지 가시밭길을 살아온 지난 25년이 쉽지만은 않았던 세월. 그 세월을 가슴 한군데 접어 두고 다시 한번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하며 그 사내들을 따라 나섰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제법 그 사내들을 대하는데 여유가 생겼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편하게 마음 먹으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채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체념 한 듯한 얼굴에서 나는 지금 채현의 상황을 읽을 수가 있었다. 가끔씩 둘의 얼굴이 마주 칠 적마다 내게 미소를 보이는 채현의 모습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덥지 않은 사랑에 속았다는 부끄러움과 그 어리석은 사랑을 쫓아 미국 땅에까지 왔다가 이런 험한 꼴을 겪고 있다는 어리석음이 한데 어우러진 한심한 나를 채현이가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거렸다.
사내들은 우리를 데리고 한인타운 인근 한 아파트로 데리고 갔다. 도착해보니 두명의 아가씨들이 한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대강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이 갔다.

“야 이년들아 일어나봐?” 사내는 이불을 걷어 제치면서 아가씨들의 엉덩이를 어루 만졌다.
“아이 오빠 왜 그래? 졸립 단 말이야?” 아가씨들은 너무나 고단한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체면이고 뭐고 아랑곳 없이 가슴이고 엉덩이고 다 내 놓고는 그대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이해해라! 애내들이 새벽5시에 들어와 피곤한 모양인데 그대로 두고 너희들도 짐 풀고 쉬도록 해라” 사내는 우리를 다른 방으로 안내하며 마치 한 식구라도 된 양 친절하게 대 해 주었다. 채현이는 묵묵하게 가방을 풀어 옷가지를 걸었다. 나는 그 때까지 그런 채현이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캐나다에서부터 오늘까지 채현이는 별로 말이 없어 제대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어 그녀에 대해 달리 아는바가 없었으나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서 나 못지 않게 편한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아 보였다.

“채현아, 괜찮니? 정말 괜찮겠어” 나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 보았다. 그러자 채현은 갑자기 나를 쳐다보더니 내 손을 잡았다.
“지숙아, 어쩌겠니? 이것도 팔자 소관이라고 생각하고 두고 보자.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미국에까지 온거야. 나는 돈이 필요해 돈을 벌려고 여기까지 온거야. 너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미안해” 채현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이해나 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그리고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방을 정리 하고 잇었다.

잠시후 사내가 방으로 들어와 내게 5천불을 주면서 돈이 필요 할 테니 쓰라고 했다.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사내도 내게 미안했는지 겸연쩍은 얼굴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말했다. 그런 그 사내가 갑자기 정겹게까지 느껴졌다. 나도 내 자신을 알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소개하면서 “ 내 이름은 박 동태인데 앞으로 오빠라고 부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야기 해. 오빠가 다 알아서 해 주께. 이제 한 식구가 되었으니 친하게 지내자. 아까 손 찌검 한거 미안 하구” 사내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을 나갔다. 채현이와 나는 그 사내의 순진한 모습을 보고 둘이 쳐다보며 웃었다. 처음으로 웃어보는 웃음이였다. 그동안 너무나 초조하게 보낸 탓 인지 서로 단 한번도 웃어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걸생활 시작하다

LA 콜걸이라는 것도 서울과 다를 바 없었다. 손님이 전화 오면 정해진 장소로 가서 손님 만나 돈 받고 섹스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콜걸들의 정해진 수순이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서울은 보통 호텔이나 여관으로 가는데 여기서는 하우스나 아파트로 가서 안방에서 섹스를 한다는 것이 였다. 어떤 경우는 부인이 밤일을 나간 사이 콜걸을 불러 들여 안방 섹스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개가 한인타운 인근의 호텔이나 모텔을 이용하는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는 전화를 받고 가보면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이 신문광고를 보고 전화를 한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가게로 불러들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일을 시작한지 2주일이 되었다. 처음과 달리 이제 제법 익숙하게 적응 해졌다. 우리는 손님이 전화가 오면 오빠들이 라이드를 해 주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데 무슨 007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한다. 혹시 모를 경찰의 함정수사를 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LA경찰의 인원이 모자라 매춘을 단속하지 않는다는 정보까지 있어 마음 놓고 영업을 한다는 것 이였다.

보통 화대는 한번에 200불인데 대다수의 손님들은 300불 정도를 준다. 나는 어떤 날은 하루에도 4번 이상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일을 시작 한지 한달 도 되지 않아 빚을 정리 했으나 이미 익숙해진 콜걸 생활을 쉽게 정리 할 수가 없었다. 3백불 받아서 오빠(포주)들에게 1백불을 주는데 오빠들은 신변보호까지 겸해 따지고 보면 손해나는 장사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한달 만에 빛을 갚고도 돈이 남았다. 매일같이 열심히 일하며 오로지 돈을 모으는데 전력을 다 했다. 믿을 것은 돈 밖에 없었다. 오로지 돈만이 나를 지켜 준다는 신념으로 낮이고 밤이고 일을 했다. 콜걸생활은 낮과 밤이 없었다. 전화가 오면 새벽이든 한낮이든 가릴 것 없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라스베가스에까지 원정을 가기도 했다. 때론 손님들의 에스코트까지 하기도 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춤 추고 놀아주면 1천불을 받기도 했다. 점차 단골 손님들이 많아졌다. 오빠들은 이제 내 눈치를 보아가며 장사를 해야 했다. 때론 오빠들과의 잠자리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콜걸생활은 1년 동안 계속 되었다. 돈도 제법 모였다.

이제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일을 했고 악착 같이 돈을 모아 장사라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 뿐이였다.
지난 세월을 가슴에 묻어두고 나는 그렇게 LA콜걸 생활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처음 생각과는 달리 어느 정도 돈을 모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불법체류자의 신분도 문제지만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육신과 정신을 다시 모아 새로운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맹세와 달리 서울의 모든 것이 새삼 그리운 것은 나도 어쩔수 없는 나약한 여자이기 때문인가 보다.

(지면 관계상 이번호로 끝맺게 됨을 이해 바랍니다. 제보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 되지 못한 점을 이해 바라며 한인타운에 독버섯 처럼 기생 되어있는 매춘 조직의 실태는 기회가 되는대로 집중취재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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