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le rape me!!! “고모부가 날 성폭행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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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레이프 미(고모부가 날 성폭행했어).” 열세 살 난 정민지양(가명)이 어머니에게 힘겹게 털어놓은 첫마디였다. 민지네 가족은 아버지 직업 때문에 영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지난해 연말을 맞아 잠시 귀국한 민지는 1주일 동안 고모부 집에서 지냈다. 영국에 돌아간 후 예전과 달리 신경질적인 태도를 보이는 민지에게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물어보았고, 집에서 영어를 쓰는 민지는 “Uncle rape me”라고 고백했다. 민지네 가족의 고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건 발생 후 다섯 달이 지난 요즘 이 사건은 법원 1심 재판 과정에 있다. 재판의 결론을 떠나서, 이 사건은 국내 어린이 성폭행 대처 시스템이 선진국에 비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음 부모는 영국의 큰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동네 주치의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주치의는 지체없이 경찰에 연락했다. 이틀 후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집을 방문할 것이다. 옷은 사복 차림이 좋은가, 유니폼이 좋은가? 차는 경찰차가 좋은가, 승용차가 좋은가?” 등을 물었다.
민지네 가족은 방문한 사복 여경의 승용차를 타고 집에서 2시간 거리인 피해자 보호소(Valnerable Victim Suite)에 갔다. 보호소는 방이 2개로 나뉘어 있었다. 방 하나는 소파가 있는 놀이방으로, 피해 어린이가 그곳에서 부모와 이야기하며 놀다가 옆방으로 가 조사를 받게 되어 있었다. 옆 조사실 역시 편안한 2인용 소파가 있었고, 바닥에 쿠션이 깔려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소파 정면에 비디오 카메라의 아주 작은 렌즈가 보였다.

보호실에는 사회복지사 1명과 동행한 여자 경찰관, 보호소 담당 경찰관, 민지와 부모가 전부였다. 조사(면담) 내용은 전부 녹화되었다. 경찰이 민지에게 “부모님이 옆에 있는 것이 좋니?”라고 묻자 민지가 싫다고 답해서 부모는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비디오 테이프는 부모와 아이가 보는 앞에서 봉인되었다.

영국에서 민지네 가족이 경험한 병원-경찰-사회복지사의 이같은 치밀한 협조 시스템은 CPT(Child Protection Team)라고 불리는 어린이 성폭력 전문대책반에서 지휘한 것이다. 영국 런던에만 CPT가 26개나 있다. 영국 전화번호부에는 차일드 라인이라고 해서 CPT와 연결해 주는 전화번호가 따로 실려 있다. 런던의 한 CPT에 전화해 보았다. 백화점 직원 같은 상냥한 목소리의 상담원이 받았다. 영국에서의 조사 과정에서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지에 대한 산부인과 검사가 늦어지자 주치의는 CPT 담당자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다음날 담당 사회복지사가 집을 방문해 사과하며 어린이 산부인과로 안내했다. 지역에서 가장 큰 병원의 뒤편에 분리된 특별 격리 병동이었다. 비빌 번호를 입력하고 안에서 방문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입장을 허가했다.


산부인과 안에는 역시 놀이방이 있었다. 검사 도중 아이가 몸 아래를 보지 않도록 홀로그램을 벽에 쏘아주는가 하면 간호사는 숨은 그림 찾기 책을 주며 말을 시켰다. 의사는 떠나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마음을 달랬다. 이 모든 조사·진료 비용은 무료였다.
민지 어머니가 영국과 한국의 현실 차이를 깨닫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2월14일 서울을 방문한 민지네 가족은 절망했다. 국제 전화로 기껏 사건을 설명해 주었던 담당 형사는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고, 신고한 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진행된 것이 없었다. 성폭력상담소도 민지 가족이 원하는 정보를 주지 못했다. 한참을 헤매던 민지 어머니는 우연히 어린이 성폭력피해가족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을 방문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피해 어린이 부모들을 만나면서 겨우 길을 찾았던 것이다. 피해가족모임의 조언대로 경찰병원을 찾아가 산부인과 검사까지 마쳤다. 영국의 CPT가 했던 역할을 한국에서는 피해가족모임이 대신한 셈이다.

처음 경찰 조사를 4시간 받고 이후에 재조사도 받았다. 가해자인 고모부와 대질 신문을 했던 곳은 격리 보호소가 아니라 여러 경찰과 민원인이 들락거리는 일반실이었다. 구석에 칸막이 하나를 쳐 얼굴만 가린 것이 전부였다. 다음에는 검찰이었다. 검찰청에서 2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또다시 고모부와 2차 대질 신문을 벌였다. 검사는 3월29일 강제 추행 부분에 대해서만 법원에 기소했다. 민지 모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영국으로 돌아갔다. 영국 학교를 오래 쉬면 유급되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지방법원은 민지를 향해 법정에 출석하라고 요구했다. 민지네 가족은 변호사를 통해 출석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5월27일 공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사건 변호를 맡은 강지원 변호사는 검찰총장에게 담당 수사 검사에 대한 부실 수사 감찰을 청구하고, 법원에는 피해자 증인 출석 요구 철회 요청서를 제출했다. 피해가족모임 송영옥 대표는 조사와 재판 과정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이렇게 되자 이 사건은 한국 법원이 어린이 성폭행 사건을 어떻게 취급하려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으로 변했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피고인(고모부)을 5월27일 석방했다.

현재 영국에 있는 민지 어머니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민지는 고모부가 풀려난 사실을 모른다.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가르쳤는데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영국에서 ‘아이의 치료 못지 않게 부모의 정신 건강 회복도 중요하다’며 당국이 보낸 패밀리세라피스트(가족 관계 전문가)와 정기적으로 상담하고 있다.

강지원 변호사는 이 사건을 둘러싼 한국과 영국의 차이에 대해 “건물·시설·인력 부족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더 급한 문제는 사회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마인드다”라고 말했다. 민지 어머니는 일전에 막내 아이가 팔을 다쳐서 병원에 데려 간 적이 있었다. 의사는 아이 몸을 구석구석 조사하면서 부모에게 사고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게 어린이 학대 확인 절차라는 사실은 뒤늦게 깨달았다.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혹시 피해를 숨기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영국 사회와, 성인의 시각에서 ‘혹시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한국 당국의 모습이 어린이 인권에 대한 양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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