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혼 건수는 총 14만5천여 건.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8백40 쌍이 결혼하고, 그 절반인 4백여 쌍이 이혼 도장을 찍었다. 2쌍이 결혼하고 1쌍이 이혼하는 시대. <시사저널>은 가정의 달을 맞아 지난 5월7일 미디어리서치와 함께 전국의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이혼 실태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절반 가량이 ‘2쌍 결혼, 1쌍 이혼’ 실태를 절감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우려 탓인지 예상보다 보수적인 답변이 많았다. ‘어떤 경우에도 이혼은 안된다’는 비율이 39%였고, ‘배우자가 외도하더라도 가정을 지키려 애쓰겠다’는 응답자도 70%나 되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대별·성별로 인식 차이가 컸다. 젊은 세대와 여성의 자유로운 사고 방식은 앞으로 가정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고한다. 20대의 78%는 ‘이혼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불문하고 여성들은 67%가 ‘경우에 따라 이혼할 수 있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은 54%. 젊은 세대의 생각이 그렇다고 해서 최근 급증한 이혼 추세를 그들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오히려 이혼을 주도하는 것은 중년 부부이다. 지난해 이혼 가구의 절반은 적어도 10년 이상 살다가 헤어진 부부였다. 15년 이상 살다 헤어진 경우도 30%에 달했다. 결혼한 지 4년 이내에 헤어지는 젊은 부부 비율은 27%로, 10년 전 36%와 비교할 때 비중이 오히려 떨어졌다. 이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석 변호사는 여성의 의식 변화와 함께 1991년부터 전업 주부에게도 30~40%에 이르는 재산 분할권을 인정한 것이 맞물려 이와 같은 추세가 가속화했다고 분석한다. 몇년 전부터 아예 여성이 먼저 이혼 소송을 거는 비율이 높아져 지난해에는 64%에 달했다.
여성이 주도하는 이혼 세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이른바 ‘황혼 이혼’은 말 그대로 폭증세이다. 20년 이상 살다 헤어진 부부를 황혼 이혼으로 볼 때(원래는 50세 이상 부부의 이혼), 10년 전 6%대이던 황혼 이혼율은 지난해 15.7%로 늘었다. 올해는 5쌍 가운데 1쌍이 황혼 이혼을 할 것으로 보인다. 황혼 이혼의 원조 국가인 일본(16.9%, 2000년)마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대로라면 한국이 2008년쯤 미국을 제치고 이혼율 1위에 도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은 1970년대에 이혼이 급증했다가 1980년을 정점으로 하락 추세인 데 반해,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가속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결혼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 기혼자 중 절반 가량이 이혼을 고려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남성 45%, 여성54%). 특히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는 여성이 3배 이상 많았다(여성 9.2%, 남성 2.9%). 이유는 성격 차이(66%), 배우자 가족과의 불화(14%), 경제적인 이유(11%), 배우자의 부정(3.7%) 순이었다.
특히 배우자 가족과의 불화를 호소한 여성은 설문 조사에 응한 여성 응답자의 18%나 되어 ‘시댁과의 갈등’ 때문에 고민하는 여성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처가와의 관계 때문에 이혼을 고려했다는 남성도 8%로 나타나 변한 세태를 엿보게 한다. 워낙 증가세가 가파른 탓인지 황혼 이혼에 대한 인식은 찬반이 팽팽했다. 절반 가량이 ‘이기적인 동기가 많다’고 응답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성별에 따라 태도가 갈린다. 남성은 60%가 황혼 이혼이 이기적이라고 답한 반면, 반대로 여성은 59%가 정당하다고 답했다. 또 50대는 70%가 이기적이라고 답했고, 반대로 20대는 70%가 정당하다고 여겼다.
이혼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천차만별이었다. ‘얼마나 힘들까 연민을 느끼게 된다’는 반응이 43%로 남녀 모두 가장 흔한 감정이었다. 성별 차이가 두드러진 대목도 있었다. 남성의 30%가 이혼자에 대해 ‘결혼 생활의 실패자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고 응답했다. 같은 대답을 한 여성은 그 절반이었다. 이는 이혼 위기를 겪으면서 남성이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정신과 전문의들의 경험을 뒷받침한다. 남성들이 더 이혼자를 야박하게 평가하고, 그 잣대로 스스로를 재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배가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혼에 대한 적극 지지 표시로 볼 수 있는 ‘용기 있다’는 답변에 표를 던진 여성은 22%. 기혼 여성인 가정 주부조차도 5명 가운데 1명은 이혼에 대해 ‘용기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느끼는 남성은 여성의 3분의1에 불과했다.
현재 이혼 가구의 70%가 미성년 자녀를 두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자녀를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는 응답이 59.7%로 대체로 자녀를 중요 변수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들은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도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44%로 더 수용적이다. 모성애에 호소해 이혼을 막아보겠다는 생각은 점점 부질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니 인터뷰
부모 이혼 아픔 이겨내고 밝게 자라는 장희록 양
“엄마·아빠도 행복할 권리 있어요.”
“아예 도를 닦았군.” 친구들이 장희록양(15·사진)에게 던지는 말이다. 학교에서는 그녀에게 ‘또래 상담사’로 나서라고 말한다. 이혼한 엄마와 살고 있는 희록이가 이렇게 ‘별종’ 대접을 받는 이유는, 너무 씩씩하고 밝아서다. 어딘지 어둡고 구김살이 있으리라는, 이혼 가정의 자녀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을 뛰어넘은 모습이다. 희록양은 학교 친구는 물론이고, 엄마가 한 부모 모임을 주도해 그 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그 곳에서 희록양은 의젓한 상담사 구실을 해낸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아요. 이혼이 자기 탓이라든지, 엄마 아빠가 자기를 버렸다든지…. 사정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죠.” 희록이는 자기와 같은 처지의 이혼 가정 자녀를 만나면 ‘부모님도 자신들의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 여전히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다’라고 말해준다.
처음에는 우울해 하던 친구들이 몇달 뒤 ‘네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얘기할 때가 가장 기쁘다고 한다. 희록이가 헤어진 아빠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아빠가 얼마나 딸을 아꼈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조근조근 일러주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으며, 엄마도 아빠도 너를 사랑한다고. 중학생이 되자 엄마는 직접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생각 나면 전화를 걸 수도 있지만 솔직히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요. 나쁜 감정도 없어요. 아빠도 행복할 권리가 있고, 지금 우리 모두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