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2월20,21,22일 본보의 자매지인 LA매일신문에서는 이른바 당시 집권당인 민자당 대통령후보인 김영삼후보에게 30년전 버려진 숨겨놓은 딸이 있다고 대대적으로 폭로하여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매일신문에서는 인륜과 천륜을 져버린 민자당 대통령후보의 사생활에 대한 부도덕성을 공격하며 대통령후보로서의 사실과 진실을 국민 앞에 밝힐 것을 촉구했다. 민자당측과 김영삼후보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이는 전혀 사실이아닌 일부 부도덕한 세력들의 정치적 위해를 가하기 위한 음모라고 반박하며 매일신문의 기사를 전재하여 보도한 한국의 인사이드 월드 발행인 손충무씨를 고소하고 검찰은 사실여부에 관계 없이 손씨를 전격 구속하는 일대 파란을 몰고 왔다. 그후 김영삼씨는 대통령에 당선 되었고 숨겨논 딸의 진실은 철저히 은폐 된 채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졌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그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 했다.
숨겨논 딸의 진실 공방전에 종지부를 찍을수 있는 당사자들이 전격적으로 표면에 나서며 김영삼씨를 상대로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하기위해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본보의 취재로 확인 되었다. 아직까지 미혼인 숨겨논 딸은 현재 법무부 장관인 강금실 변호사와 역시 현 청와대 사정비서관인 양인석 변호사 두 변호사를 선임 사건을 의뢰 함으로서 본격적인 2라운드의 진실 공방전이 예고 되고 있다. 대통령의 버려진 딸은 뿌리를 찾겠다며 친자확인 소송을 제기 한다고 하고 YS는 사실이 석연치 않은 다른 의도가 있다며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본지는 이에대한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김영삼씨의 숨겨논 딸에 대한 전모를 다시 취재 그 전모를 밝혀 보도한다.
(편집자 주)
현 법무부장관인 강금실 변호사와 사정비서관인 양인석 변호사를 선임한 선임계와 소송위임장에는 원고 이경선,주현희(일본명 가오리) 피고 김영삼 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서명날인과 도장이 선명히 찍혀있다. 원고중 이경선은 가오리의 모친이며 김영삼씨의 옛 애인이고 주현희(가오리)는 바로 김영삼의 숨겨논 딸의 이름이다. 세인에게 주현희보다 가오리로 더 잘알려진 문제의 이름은 일본말로 쓰여진 위임장에서 “나는 1962년 11월12일 한국에서 태어 났으며 이름은 주현희, 일본이름은 香織(가오리) 입니다. 나는 호적에 어머니로 되어있는 이경선에게 전적으로 사건의 위임을 동의하며 이를 증명합니다”라고 되어있고 주소는 바로 웨스트LA 근처인 번디(Bundy.상세한 주소는 밝히지 않음)로 되어있어 그동안 가오리양은 LA에서 거주하고 있었음이 확인 되었다.
강금실 양인석 변호사는 2000년 상도동으로 보낸 내용증명에서 “주현희씨가 김 전 대통령의 혈육인 점을 송사를 통해 확인 해달라고 하나 법률적 판단 이전에 합의로 해결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그 취지를 알린다”고 전제하고 주현희의 어릴 때 사진과 소송 위임장 사본 등을 상도동으로 보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3년이 지나도록 사건이 미뤄 지고 있다. 소송의 당사자격인 가오리 모친 이경선씨는 상도동으로 편지를 보내 불편한 심경을 토로 했다. 이 편지에서 “가시는 곳마다 찾아 뵈려고 했으나 경호원들의 제지가 심해 만나 볼수 없었다”고 하면서”대통령으로 있을 때 정보기관 고위인사인 K씨를 통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점에 대해 고맙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주간동아의 한 기자는 상도동으로 전화를 걸어 사실 확인 취재를 했으나 상도동측 관계자는 “그들의 반응을 보고 대응 하겠으며 사실여부는 알수 없으나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6월8일자 주간지에서 보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지난 6월 중순 가오리는 한국을 방문, 김영삼씨와의 전격적인 담판을 위해 귀국 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2일만에 일본으로 돌아가 당사자들 간에 모종의 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영삼과 노무현의 미묘한 관계로 진전
노무현 (盧武鉉) 대통령과 그를 정치인으로 만들어준 김영삼 (金泳三, Y.S) 전 대통령 사이에 미묘한 사건으로 인해 물밑 힘 겨루기가 시작 되고 있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Y.S 전 대통령은 지난 6월10일 도쿄에서 산케이 신문(産徑新聞)과 가진 인터뷰에서 “노무현 은 대통령 준비가 안된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Y.S는 노 대통령을 겨냥 “그는 정치가가 되는 것을 끝까지 싫어 했으며 장래에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은 애당초 없었던 사람이다. 그는 시민 운동을 했던 재야 변호사 였는데 정치를 하도록 내가 설득 했으며 선거 자금도 내가 제공 했던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Y.S가 작심 하여 외국 언론에 노무현을 깎아 내리며 자신이 노무현의 정치 대부임을 강조 한 것은 최근 노 대통령 측근들이 Y.S의 도덕적 약점을 입수 상도동을 향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데 대한 Y.S의 불편한 심기가 표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Y.S 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노무현이 Y.S를 찾아가 자신을 지지해 주도록 호소 했으나 Y.S는 끝까지 노무현을 지지 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후 노무현 대통령이 친북.반미적인 말을 마구 하자 Y.S는 “노무현은 말을 아껴야 한다.”는 등 충고의 발언을 한바 있다. 그래서 노무현 측근들과 상도동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불만의 선이 그어져 있었으며 언젠가는 폭발할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그러다가 Y.S가 도쿄에서 외국 언론을 통해 작심 하고 노무현에게 쓴 충고를 했다.
지난 6월 6일에 판매되기 시작한 한국의 동아일보사가 발행 하는 주간 동아 (제388호,2003.6.12자) 에는 “Y.S 전 대통령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리나” 하는 제목의 기사가 2페이지에 보도 되어 흥미를 끌었다.
노무현 정권 법무장관, 청와대 사정 비서관이 Y.S 상대 친자 확인 소송 대리인 변호 맡아
주간 동아 기사는 이렇게 시작 되고 있다.
“제 아버지가 맞습니까?아닙니까?재판장 께서 확인해 주십시요. 41년을 아버지 없이 살아온 한 미혼 여성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대로 친생자 확인 소송을 통해 자신이 Y.S가 숨겨놓은 딸임을 확인 받고져 소송을 진행 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Y.S의 딸임을 주장 소송을 의뢰한 주인공은 현재 미국 LA에 살고 있는 J 여인” 이라고 보도 했다.
그런데 문제의 J 여인은 2000년 까지 워싱턴 인근 Va. 맥클린에 살고 있던 주현희 (周賢喜) 여인임을 본사 취재팀은 오래전 부터 확인하고 비밀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일본 이름은 가네꼬(金子 香織) 가오리이다. 주현희 라는 중국 이름과 가네꼬 가오리 일본 이름등 2개의 국적과 2개의 이름을 가진 그녀가 지난 1962년 11월12일 서울에서 김영삼 당시 야당 국회의원과 남편을 잃은 미망인 이경선 (李慶仙)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알려져 있다.
가네꼬 가오리 여인이 Y.S의 숨겨 놓은 딸이 라는 사실이 세상의 화제로 처음 떠 오른 것은 지난 1988년 대통령 선거 때 였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사진 시사 주간지 Friday 잡지는 당시 은퇴한 한국 영화 배우 이빈화씨의 수영복 차림 사진 1페이지와 그 옆에 Y.S 사진을 함께 게재 하고 “한국 야당 대통령 후보 Y.S 딸이 일본 이름을 갖고 미국에서 유학중이며 그 딸은 영화배우 이빈화씨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크게 보도 했었다.
이 잡지를 당시 Y.S 반대편 당의 후보자들인 김대중 노태우 캠프가 대량 구입 선거 판에 돌림으로써 국내에 알려 지게 되었으며 Y.S 캠프는 “정보부의 추잡한 흑색 모략”이라고 부인 했었다. 그러나 그 보도는 분명히 오보였다. 이빈하씨의 딸이 아닌 이경선씨의 딸이 잘못 알려진 것이 였다. 그러다가 지난 1992년 본보의 자매지인 일간 매일신문이 2월20일 21일 23일 3회에 걸쳐 “민자당 대통령 후보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김영삼 대표 최고위원에게 미국에 숨겨놓은 사생아 딸이 한명 있으며 그녀의 이름은 가네꼬 가오리”라고 폭로 했다.
LA 매일신문이 3회에 걸쳐 보도 한국 인사이더월드 주간지 보도 파문
매일신문이 3회에 걸쳐 가오리의 슬픈 이야기를 대대적으로 보도 하자 당시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 했던 이종찬 박태준 등 반대 후보자들이 매일신문을 구입, 한국에서 복사판을 대량으로 만들어 선거판에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또 김대중 과 정주영 측에서도 12월 대통령 선거판에 뿌리기 위해 대량 인쇄를 준비 하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된 주간지 인사이더월드 취재팀이 뉴욕 도쿄 LA를 돌아 취재를 하고 92년 5월에 그런 사실을 4페에지에 걸쳐 크게 보도 했었다.
이 기사가 보도 되자 당시 민자당과 Y.S측은 이인제 변호사를 소송 대리인으로 내세워 발행인겸 편집인 손충무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발 했으며 검찰은 조사도 없이 불법적으로 발행인 손충무씨를 긴급 구속 해 버렸다.
다급해진 민자당과 Y.S 측은 “허위 사실” 이라는 대변인 성명을 발표 하고 다른 언론사들이 보도 하지 못하도록 촌지 봉투를 돌렸다.
그러나 손씨가 매일신문 보도 기사와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취재한 증거를 제시하고 허위가 아님을 주장 하자 검찰은 상당히 초조해 했다. 그런 사이 손씨의 긴급 체포사실을 알게된 손씨의 어머니가 충격을 받고 쓰어져 끝내 회생 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 했다.
검찰의 부당한 체포로 사람이 죽게 되고 여론이 나빠 지자 당황한 Y.S측은 황급히 고소를 취하하여 손씨는 21일 동안 부당한 구속을 당하고 무죄로 석방 되어 어머니 장례를 간신히 치루었다.
그후 Y.S의 대통령 당선으로 그 사건은 소리 없이 꼬리를 감추는 듯 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Y.S 측근들이 거액의 돈을 주어 가오리와 그의 어머니 이경선 여인을 미국으로 보내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맥클린에 살도록 만들었다. 당시 그들 모녀를 미국으로 피신 시키도록 주선한 사람은 미국 정부 기관에 근무 하는 K씨 였으며 그들을 보살펴 준 사람은 맥클린에 살고 있던 Y.S의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져 있었다. 미국으로 옮겨온 그들 모녀는 “ Y.S 측근들의 도움으로 아쉬운 것 없이 부유하게 살았으며 대사관 직원 같은 사람들이 그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가오리와 이경선 여인을 잘아는 주변 사람들이 전하고 있다.
딸 가오리 결혼 앞두고“아버지 찾겠다”
노무현 측근들에게 소송 의뢰 맡겨 파문
세상 사람들 머리 속에 잊혀져 가던 그들 모녀는 2000년 여름 가오리의 결혼 문제가 진행 되면서 신랑측에서 신부될 사람의 아버지를 따지고 나왔다. 가오리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Y.S의 친 딸임을 확인 시켜 달라고 매달리고 결혼 문제는 파혼 하기에 이른다. 이에 쇼크를 받은 가오리 모녀는 LA로 이사를 왔다.한편 가오리는 그때부터 진짜 아버지를 찾기 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녀는 어머니를 소송 대리인으로 선정 친생자 확인 소송 위임장을 써 주었다.
이경선 여인은 2000년 11월 양인석 (梁仁錫) 변호사 강금실 (康錦實)변호사를 찾아 친생자 확인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 했다.
이 소송을 의뢰 받은 두명의 변호사는 Y.S에게 소송 위임을 맡았음을 알리고 재판을 하지 않고 법정 밖에서 원만 하게 수습을 할수 있도록 권유 하는 내용 증명서 편지를 함께 보냈다. 그러나 Y.S 측에서 강력하게 거부함으로써 본안 소송을 준비 중에 있다가 16대 대통령 선거 때에 두 변호사는 노무현 당선을 위해 노력 했다.
노무현 당선후 강금실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됐고 양인석 변호사는 청와대 사정 비서관으로 발탁 되었다.
그런데 묘하게 Y.S에 대한 비밀을 노무현 측근 실세들이 알게 되었으며 지난 3월부터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는 Y.S를 상대로 한 친생자 확인 소송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 했다.
한편 Y.S측은 노무현 측근들이 자신을 상대로 한 친생자 확인 소송을 맡고 있는 사실을 상당히 불쾌 하게 생각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때에 주간 동아 기사가 보도 되고 그 기사 속에 소송 대리인들이 노무현 최 측근 실세들 임이 확인 되었다.
Y.S와 측근들은 친생자 소송 정보가 외부에 알려진 배경에 대해서 “그런 정보를 언론에 흘려준 사람들을 대부분 알고 있다.”고 주장 하고 있는데 그들은 노무현 측근들이 계획적으로 정보를 언론에 흘려 Y.S를 흠집 내기로 생각 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시기에 와세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Y.S도 도쿄에 도착 했으며 노무현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인석, 강금실 두 변호사가 상도동 측에 보낸 내용 사실 증명서와 워싱턴에 살고 있는 가오리 주변 친지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경선 여인이 Y.S를 처음 만난 시기는 1960년 5·16 혁명 후이다.
당시 Y.S는 군사 정권에 의해 정치 정화법에 묶여 정치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친구들과 어울려 요정을 돌며 술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지인의 소개로 남편과 사별한 미모의 이 여인을 알게 되었으며 이 여인과 2년 이상 비밀 동거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으며 Y.S의 반대에도 딸을 낳았는데 Y.S가 병원을 방문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여인은 동립산업을 운영하던 함모씨의 두번째 부인이었으며 그 사이에 1남을 두었다. (한때는 이 사람이 YS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언론에 취재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사실이 아니며 가오리와는 아버지가 달랐다.)
한편 Y.S가 63년부터 다시 정치 생활을 시작 하게 되자 정보부의 미행이 계속 되어 더 이상 이여인 집에 드나 들 수가 없게 되자 이 여인은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재일 거류민단 단장인 윤달용씨와 재혼, 일본으로 건너 갔다.
그러나 서울에 두고온 딸을 일본으로 데리고 올수가 없어 중국 화교 여권을 구입 딸을 주현미 라는 중국 여인으로 만들어 일본으로 데리고 왔으나 일본에 영주 할 수가 없어 윤달용씨가 음악을 하는 친구에게 부탁 피아니스트인 부인이 가오리 여인을 양녀로 입적시켜 가오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가오리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까지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하게 됐으며 고등 학교 시절 Y.S가 자신의 친 아버지 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한편 가오리가 일본에 체류 할때 Y.S가 도쿄에 도착 하면 이 여인이 가오리를 데리고 호텔로 찾아가 Y.S에게 인사를 간 적이 몇 차례 있었다고 한다.그런 복잡한 관계를 갖고 있는 가오리가 이번에 자신의 친 아버지를 찾겠다고 나섬으로써 화제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YS와 가오리 두 부녀의 치열한 혈육 공방전의 진실 게임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한마디로 가오리에 대해 지극히 동정적이다.
모든 인간이 모든 것에 정직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 일수 있다. 대통령도 인간이기에 감추어진 사생활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혈육 문제에서 만큼은 진실이 뒤따라야 한다.
김영삼씨에게는 2남3녀가 있다. 공식적인 가족관계 프로필이다. 그러나 그 공식에 문제가 있음이 이제 표면으로 나오고 있다. 이제 김영삼씨에게는 2남3녀가 아닌 2남4녀로 호적을 변경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