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1999년 11월 서울의 연합뉴스가 보도한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 매각 무산”으로 “LA동포 신용불량”이라는 딱지가 붙게 됐다. 이 내용은 다시 LA중앙일보에 톱기사로 게재되어 한동안 코리아타운에서 말들이 많았다. “드디어 이동연이 본국에 가서 일을 저질렀다” 는 비난의 소리도 나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당시 서울시가 관리하던 제주도 중문단지의 여미지 식물원을 LA동포 이동연(52, CGI그룹회장)씨가 미주 내 투자자들과 함께 매입하겠다고 해 놓고는 정작 계약을 지키지 않아 서울시가 이를 파기했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이동연씨를 믿고 투자한 LA동포 실업가들만 막대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씨는 ‘재미동포사회의 모국투자’라는 허울 좋은 구호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자신의 속셈만을 차려오다 끝내 “미주동포 투자는 부도투자”라는 오명만을 남겼다는 것이다. 미주동포의 신용을 여지없이 추락시킨 이동연씨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 동포사회에 이렇다 할 공식적인 해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이동연씨가 자금을 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제주도의 삼일신용금고가 전액투자 하여 매입하려고 하였으며 정계 고위층의 소개로 이씨를 알게 된 삼일측은 정관계에 마당발로 알려진 이씨를 매입 과정시 서울시를 상대로 로비를 하기 위한 로비스트로 고용한 것에 불과 했다.
결과적으로 이동연씨가 제주 여미지 식물원에 투자한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무근이며 이러한 이씨의 말만 믿고 투자한 일부 한인 교포들은 결국 허탕을 치게 된 것이라고 전했었다. 이씨의 행각에 한국의 고위 정관계 인사들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있었으며 실제 알게되기는 서울시에 로비를 한 것으로 밝혀 졌으며 상당한 거액이 로비자금으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한국 검찰의 수사가 불가피 할 것으로 보여 이씨의 여미지 매입 사기사건의 전모가 드러 날 것으로 보여진다.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당시 국무총리)와 고건 국무총리(당시 서울시장)이 개입했다는 의혹투성이인 제주 여미지 매입 불발 사건은 이동연씨의 고도의 계획적인 사기행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는 이와 관련 이동연씨의 제주 여미지 매입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집중 보도한다
성진 기자/sj@ylmedia.com
이동연 긴급 인터뷰 “대부분 구설수는 사실이 아니다. 여미지식물원 매입 불발 사건과 관련해 많은 구설수에 휘말린 이동연씨는 본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루머 등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항간에 나도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정부 고위층 관련 로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어떻게 여미지 식물원을 매입할 계획을 가지게 되었나 -어떤 방법으로 투자를 하고자 했던 것인가 -여미지 식물원과 관련하여 교포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이 있는가 -여미지 식물원 매입이 불발로 그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과 K모 변호사간에 많은 말들이 타운에 나돌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름을 개명한 이유는 무엇인가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달라 |
여미지 사건의 전말
99년 10월에 개장한 여미지 식물원은 원래 삼풍 백화점의 운영자인 삼풍건설의 소유였다. 그러나 지난 95년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가 나자 그 해 6월 유족보상금 대신에 식물원을 서울시에 넘겼다. 95년 당시엔 자산가치가 1천억원대로 평가됐지만 서울시는 5백18억원에 매입했었다. 서울시는 자체가 관리할 수 없어 매각을 추진했으나 7번이나 공매에서 번번이 유찰됐다.
그 후 99년에 이동연씨가 나타난 것이다. 이씨는 CGI(Creative Group International)그룹의 이름으로 ‘재미동포 모국투자’라는 미명하에 서울시에 접근했다. 그는 언론플레이도 구사했다. 당시 서울의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성공한 이민 1세대들은 고국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합니다. 애써 모은 돈을 한국에 투자하려고 해요. 게다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이후 한국에 외화수요가 커진 것도 사실 아닙니까. 제주도는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는 곳입니다”라고 미주동포를 팔았다.
이 신문은 “이 회장은 이민1세대들의 바람이지만 제주도의 잠재적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여미지 식물원은 더없이 훌륭한 투자대상이라고 말하면서 제주도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여미지 식물원 인수에 나섰다고 말했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씨는 “인수가 끝나는 대로 1백40억원 정도를 더 투자해서 관광명소로 꾸밀 계획 이예요” 라며 한 술 더 떴다.
그러나 이씨의 이러한 인터뷰는 와전된 것이었다. 이씨는 마치 자기가 주도하여 여미지식물원을 매입하는 것처럼 말했기 때문이다. 삼일신용금고측은 이씨를 표면에 내세워 매입하는 것처럼 하고는 자신들은 뒷전으로 빠졌다.
서울시는 매수 희망자로 나선 CGI사의 이동연씨와 매각협상을 벌였다. 원래 계획은 8월31일까지 이 식물원을 이동연씨가 주도하는 CGI그룹에 매각한다는 것. 한동안 일은 순조롭게 추진되는 것으로 보였지만,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갑자기 이씨가 3개월간의 계약체결 연기요청을 해온 것이다. LA에서 시도하는 투자계획이 예정대로 진척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를 받아들여 계약이행 추가예치금 3억원만을 입금토록 하고 연 8%의 이자액을 탕감해 줬다. 이것이 특혜시비에 휘말렸다. “왜 외국기업에 꼭 매각해야 하는지 의혹이 간다”는 소리도 나왔다.
또 환경 단체들은 “차제에 식물원 매각을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영남대 조경학과 김용식교수는 “당국에 의지가 없는 것이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정부나 제주도가 매입해 관리하는 방안은 왜 고려조차 하지 않는가. 여미지 식물원은 국익 차원에서도 그냥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서울시가 한국감정평가원에 의뢰한 감정평가서에 식물에 대한 자산평가가 누락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가진 2000여종에 달하는 식물에 대한 가치평가를 빼고, 부동산과 시설에 대한 평가만으로 매각가격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사실 삼풍백화점 사고 전까지 여미지 식물원의 자산가치는 1,000억원대로 알려져 왔는데, 이동연씨의 CGI그룹과 계약할 때는 517억원으로 줄었다. 이것도 특혜시비에 올랐다.
이 같은 환경단체와 학계의 매각 반대주장에 대한 당시 고건 서울시장의 입장은 “대안이 없다. 외자유치와 시 재정확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서울시는 여미지 식물원 매각을 추진하면서 관련 정부 부처인 환경부와 협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 또한 특혜시비에 올랐다.
왜 고건 시장은 환경단체와 학계의 반발에도 꼭 팔아야 한다는 쪽으로 주장했을까. 여기에는 JP가 관련됐다는 설이 서울과 LA사회에 나돌았다. 애초 여미지 사건은 이동연씨가 끌어 왔으나 서울시에 압력을 행사한 것은 LA투자자의 한 사람이 평소 가까웠던 JP에게 손을 썼다는 것이다. 이씨는 당초 이 식물원을 517억원에 매입키로 하고 계약이행 예치금 13억원과 매수요청서를 냈으며 99년11월30일까지 매수액의 10%를 계약금조로 내기로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는 미주 동포들이 “미주교포 투자자 협의회”를 결성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뜻도 비췄다. 그는 계약이 파기되기전 그해 6월15일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씨의 소개로 고건(현 국무총리) 서울시장을 만나 연말 안에 인수절차를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전했었다.
고 시장은 이 자리에서 행정부시장을 동석 시켰고 시장의 지시를 받은 부시장은 즉시 여미지 식물원 담당 과장을 이씨에게 소개해 주면서 여미지 매입계획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씨와 함께 매입을 주도했던 한 관계자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김종필씨의 소개로 고건 시장을 두 번 만났으며 고 시장의 지시로 담당 과장을 소개 받은 것은 사실이나 김종필씨와 고건시장은 단순히 배려 차원에서 소개만 시켜준 것이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라고 말하며 “98년초 이씨로부터 중요한 사람이 한국에서 왔는데 만나자고 해서 가보니 삼일신용금고 대표 일행이 있었으며 이때 여미지 식물원 매입계획을 알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CGI그룹의 로비설 의혹
이씨는 당초 8월 31일까지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 계약체결을 시점으로 발생하게 되는 중도금 및 잔금(46,543백만원) 에 대한 연리 8%의 이자율에 대해서는, 인수예정사인 CGI그룹에서 가산 납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초 약정과는 달리 이씨는 3개월간의 계약체결 연기를 서울시에 요청했다. 이에 양측 사이에서는 유예기간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씨는 계약체결 시 발생하게 될 중도금 및 잔금에 대한 연8%의 이자율 적용 문제가 투자자들과의 협의과정에서 드러났다는 이유였다. 이를 검토한 서울시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연기 처리하여 주어 현실적인 이자손실액을 감수하게 됐다. 서울시는 이씨의 연기요청에 재입찰에 부한다 해도 낙찰가능성이 희박하고 제반 여건상의 이유를 들어 연기제안을 무조건 수용했다. 결국 인수예정자인 CGI그룹측에서는 계약이행 추가예치금 3억원을 입금하면서 연8%의 이자액을 탕감 받게 된 것이다.
당시 이씨는 LA에서 생각대로 투자자들이 모여 들지 않았기 때문에 배수진을 치고 연기 요청을 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실은 삼일신용금고가 자기자본비율(BIS)을 맞추지 못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 매입자금을 동원 할 수가 없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일신용금고는 감독원의 행정처분으로 1999년 말 폐쇄 조치되어 문을 닫았으며 이때도 이씨는 구명을 위해 정관계에 로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씨의 로비로 서울시는 즉각적인 매매계약 연기제안을 수용·허가함에 따라 미계약 상태의 원점으로 회부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서울시의 조치는 특혜시비를 불러 왔으며 특히 공청회 등을 통한 정책결정의 향배를 재조정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거세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약속기일인 99년 11월30일까지 내기로 한 추가 계약금 51억7천만원을 납부하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계약이행 예치금으로 지급했던 13억원은 고스란히 서울시 금고에 귀속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씨는 한푼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이 계약 납부금은 이동연씨가 낸 것이 아니라 삼일신용금고측이 납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수명의 교포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주겠다는 명분으로 자금을 끌어들였고 삼일신용금고 측으로부터 로비자금 명목으로 3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지원 받는 등 자신의 금전적 손해 없이 이런 행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씨의 말을 믿고 투자한 한 교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투자라는 것이 그렇지만 막상 이렇게 되고나니 속상했었다”며 착찹해 했다.
이동연씨의 언론 플레이
이씨는 처음 매각협상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본국 언론을 상대로 홍보 플레이를 벌였다. 이씨의 언론 플레이는 천하가 다 아는 유명한 일이다. 그는 한국의 신문 기자들과의 친분관계를 유지하며 시기 적절하게 그들을 잘 이용했다.
이씨는 과거 박철언 김동길 이명박씨 등과 같은 유명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이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99년 매각이 무산되기 4개월전인 그해 6월 한국경제신문은 ‘초대석’란에 “제주 여미지 식물원 인수 ‘이동연 CGI 그룹회장’”이라는 제목에서 이미 인수가 확정적이라는 식으로 소개 했다.
더 나아가 “제주도 여미지 식물원이 새 주인을 맞는다. 새 주인은 재미교포기업인 CGI그룹.”이라는 소제목으로 아예 여미지 식물원 신임대표가 하는 말처럼 이어 나갔다.
이씨는 LA와 서울에서 여미지 식물원을 “동양 최대”를 넘어 “세계 최고” 식물원으로 부각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캐나다의 “벤처가든”이나 미국의 “헌팅턴 라이브러리” 같은 테마파크로 가꿔 나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식물원 한 곳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시티워크”와 같은 거리를 만들고 야간 개장하는 천지연 폭포와 연계해 밤시간에도 개장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미국 내 테마파크 전문가팀을 제주에 보내 구체적 개발전략을 만들 계획이며 나아가 해양스포츠와 골프 등을 즐길 수 있는 종합 레저파크를 제주도에 건설하겠다고까지 선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동연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인터뷰 기사 참조) 각종 로비설은 사실무근이고 특혜시비 등과 같은 문제 또한 사실과 다르다고 전했다.
이동연은 누구인가?
지난 78년 미국에 온 이동연(51)씨가 여미지 인수 건으로 서울을 드나들면서 언론에 자신의 이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51년 서울생, 부산신학대학 미 LA침례신학대 심리학석사 및 교육학박사과정 수료, 미주 태평양시대 위원회 회장, LA상공회의소 부이사장, 남가주 해외무역협회 이사, 한인가정 상담소 이사, CGI그룹 회장>
그는 목회 활동을 하다 자선활동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85년부터 여성의류제조업체인 CTE사를 설립하며 사업을 시작했으며 연간 매출액은 6천만달러에 달한다고 소개했었다.
그리고 섬유산업에서 성공하자 업종을 원사 섬유기계 유통 등으로 늘려 CGI그룹으로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여미지 인수건과 관계해 관광 단지 개발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와 함께 단체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 “언론 플레이를 잘하는 사람” “자기 과시욕이 많은 사람”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LA에 거주하면서 한국을 자주 드나 들었던 편이다. 한동안 LA에서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서는 새 프로젝트라며 언론사를 부지런히 돌아 다니고 투자자들을 물색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과거 그는 한국에서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면 정치인을 미국에 데려와 자기과시와 함께 새로운 비즈니스를 모색하는데 이용했다. 그 중의 정치인이 국민당을 했던 金동길 교수, 또는 노태우의 양자로 불린 박철언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뿐 아니라 현재의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에리카 金 변호사와의 관계는 LA한인사회 모두가 알 정도로 유명하다.
이씨는 평소 “오늘날의 에리카는 자기가 만들어 준 것인데 최근에 와서 자기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수년 전 처음으로 한인사회에 ‘새인물’로 떠올랐을 때 접근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파트너가 되어 활동한다고 하면서 함께 한국을 드나들다가 여러 번 주변 사람들의 가십에도 올랐었다.
실제로 에리카 김 변호사가 한국에서 ‘나는 영원한 한국인’이라는 자서전 성격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 기념회에 20여명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이 참석시킨 등 막강한 힘 과시를 했으며, 이러한 배경은 모두 이동연씨의 주도로 이뤄 진 것으로 알려져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말들이 많았었다. 또한 이들은 도산기념사업을 한다고 떠들고 다녔으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고서는 그 일을 중단하기도 했다. 당시 도산의 맏딸인 안수산 여사는 이들의 행태에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씨는 그동안 영어이름을 ‘제임스’라고 사용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 들어 데몬(DEMON)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개명이유를 묻는 주변사람에 이씨는 “제임스라는 이름의 사기꾼이 있어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