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날’ 창시자이며, 코리아타운 번영회(‘한국의 날 축제재단’ 전신) 회장을 지낸 진 킴 한국명 김진형 씨가 80년대 초반이후 LAPD 허가담당 커미셔너와 LA 카운티 노인복지국 커미션의 부위원장으로 10여년 넘게 일해 오면서 많은 한인들의 각종 사건을 바라보며 느꼈던 점을 책으로 출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우리, 한국인에게(We, Korean)’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무너진 한인들의 준법정신을 바로 잡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진형 LAPD 커미셔너는 옆에서 바라본 대부분의 한인 범법자들이 강력 범죄로 체포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주로 기본적인 사항을 무시한 음주운전, 상표도용 등 잡범으로 잡혀오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 같은 책을 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 커미셔너는 6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와 한글간판을 달아주는 등 70년대 코리아 타운을 올림픽 가에 정착시키고 ‘코리언 퍼레이드’를 창시, 주류사회에 한국을 알리는데 그 누구보다 일조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한편 다음달 5일 칠순(七旬)을 맞아 타운 내 윌셔 래디슨 호텔에서 고희(古稀) 잔치를 벌이는 김진형 커미셔너를 만나 보았다.
박상균[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자서전 성격의 책 출간하고 칠순(七旬) 맞은 진 킴 LAPD 커미셔너
LA 카운티 고등법원 형사법정에는 한달 평균 100건 정도의 한인 범법자들의 재판이 진행되는데, 매춘, 마약사범, 상표도용, 절도, 사기, 가정폭력 사범, 공갈폭력 사범, 음주운전, 심지어는 강도, 총기 사범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한인의 파렴치한 매춘 사건을 미국인 사회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인인 내 심정을 본국 동포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본문 중에서>
LAPD 커미셔너를 10여년 넘게 지내 온 진 킴 (한국명 김진형) 씨가 한인들의 결여된 준법정신을 꼬집는 자서전 성격의 책을 본국에서 출간해 눈길을 끈다.
“아직 한인들에게는 한국에서 배어 있던 못된 습관들이 남아있는 것 같다. 사소한 법을 어겨 붙들려 오는 한인들이 많다. 특별히 살인 등 강력범죄 비율은 그 어떤 커뮤니티보다 낮은 것이 사실이나, 정말 부끄럽게도 음주운전 등 파렴치범에 관해서는 그 비율이 높다”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김 커미셔너는 “지난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특히 매춘관련 사범이 적발되면 90%가 한인들로서 정말 낯부끄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며 따갑게 꼬집었다.
김진형 커미셔너는 “유독 한인타운에 있는 업소들이 실내에서 금연하기로 되어 있는 법을 알면서도 어기는 것은 법규를 알면서도 담배를 피워대는 흡연자들의 탓도 있다”며 일부 한인들의 무감각해진 준법정신에 일침을 가했다.
Korea Festival Parade 창시자
김진형 커미셔너는 실질적인 올드 타이머로서 과거 올림픽 가, 웨스턴 가, 버몬트 가 지역 60곳에 달하는 업소에 한글간판을 달아주는 등 초기 코리아 타운 건설에 힘써 왔다.
김 커미셔너는 “70년대 당시에는 길을 지나치다가 동양인만 봐도 한국인이냐 물을 정도로, 혹 길을 가다가 같은 동포를 만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워 하던 시절이었다. 문득 이에 착안해 어려서부터 서예를 배운 내가 한인들이 많이 모여있던 올림픽 가 주변에 한글로 써진 간판을 써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지나치다가 정겨운 한글간판을 보면 얼마나 반가울까라는 맘에 한 곳씩 두 곳씩 만들어주다 보니 61곳이 넘게 되었고, 나름대로 이 지역이 훗날 코리아 타운으로 정착하는데 일조한 것 같아 기쁘다”고 당시 한글간판을 달아주던 시절에 대해 회고했다.
김진형 씨는 평양출신으로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국제 관광공사 비서실과 동경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중 뜻이 있어 68년 페퍼다인 대학원 종교학과로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을 와 청소부, 통조림 공장 직공 등 갖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고생을 하다가 71년 올림픽 가에 한국서적 센터를 개업했고, 앞서 언급한 코리아 타운 ‘한글간판’ 달아주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한인 커뮤니티 봉사활동에 앞장 섰다.
LA 시의회는 81년 김 씨가 제안한 코리아 씨티 프로젝트 안을 받아 들여 올림픽 가, 웨스턴 가, 버몬트 가에 이르는 지역을 코리아 타운의 경계로 삼기도 했다. 이는 결국 81년 8월 11일 LA 시의회가 이 지역을 ‘KOREA TOWN’이라 명명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74년 11월 4일에는 사재 5천 달러를 쾌척, 제1회 LA 코리언 퍼레이드를 창시하여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위상을 알렸고, 커뮤니티의 화합과 단결을 이끌어내는 이민 역사의 큰 발자취를 남겼다.
김 커미셔너는 “처음에는 무관심하던 주류사회 정치인들도 한 두해가 지나 코리언 퍼레이드가 정착하자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오픈카에 오르게 해달라며 연락을 취해 왔다”며 뿌듯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81년 10월 30일에는 LA 시의회로부터 코리아 타운 파출소설립에 관한 승인을 얻어내는 데 힘써 한인타운 중심부인 8가와 놀만디 코너에 두 명의 경찰관이 순찰, 상주하는 등 치안유지를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또한 이곳에 한국어 통역관이 상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처음 5년간 본인이 이끌던 코리아 타운 번영회에서 통역관의 급여를 부담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이 빛을 발해 86년 이후에는 통역관의 급여가 시 예산으로 편성되는 등 LA시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냈다.
첫 부인과 사별한 김진형 커미셔너는 김은회(68) 씨와 재혼했고 슬하에는 우주항공사에서 스페이스 엔지니어 스페셜리스트로 근무하고 있는 장남 김기현 씨, 워싱턴 D.C.에서 몽고메리 카운티 법원 판사로 재직 중인 김국현 씨를 두고 있다.
부인 김은회 씨와 공교롭게도 생일이 같은 김진형 씨는 다음달 5일 칠순(七旬)을 맞아 고희(古稀) 잔치를 타운 내 윌셔 그랜드 호텔에서 갖는다. 이 자리에서는 부인인 김은회 씨의 은(銀)자와 김진형 씨의 진(鎭)자를 빌려 은진회(銀鎭會)라는 장학재단을 설립해 여섯 명의 고학생들에게 각각 1,000달러 씩 장학금을 지급하는 행사도 있을 예정이다.
김진형 커미셔너는 갓 이민 오거나 미주지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충고의 한마디도 곁들였다.
“과거 이민 1세대들이 미주지역으로 건너올 때는 가난한 조국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시절에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국심에 불타 미주 지역에서 꿋꿋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일부 젊은 이민자들이 일종의 고급병(?)에 빠져 비싼 차, 비싼 아파트를 렌트해 살아가는 등 절약정신이 부족해졌음을 느낀다. 잔소리 같겠지만 오랜 세월 살다 보니 미국 생활에 있어 사치는 금물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웃어 보였다.
김진형 씨는 내년으로 임기가 끝나 커미셔너 직을 그만두게 되면 “이민 1세대로서 후진양성을 위해 힘쓰는 올드 타이머가 되고 싶다”며 장학회 사업을 꾸준히 계속할 뜻을 강력히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