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7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발표,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북측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인공기 소각 유감’의 발언이 있은 이후 북한은 돌연 입장을 바꾸어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석하기로 긴급 결정하였다.
따라서 우여곡절 끝에 남한땅을 밟은 218명의 북측 선수단과 한나라당 간에 도착지연 책임을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이 펼쳐지고도 했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미처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인공기 소각 유감’의 발언으로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일부 네티즌들과 언론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어느 나라 태통령인지 모르겠다”며 설전이 오가는 등 이래저래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19일 노무현대통령의 유감표명과 이에 화답한 북한의 유니버시아드대회 참가 결정을 접한 조-중-동의 반응이 예상했던대로 노대통령 비판 일색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반응이다.
지난 19일 아침까지만 해도 “결코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북한에 사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던 이들은 지난 20일 아침 사설을 통해 “북한의 U대회 참석을 다행스런 사태발전”이라고 긍정평가하면서도, “왜 정세현 통일부장관만 사죄표명을 하면 됐지 노대통령까지 사죄를 했느냐”고 문제삼고 나왔다.
북한의 U대회 참석에 호의적인 일반여론을 의식한 듯 전날처럼 ‘사죄’ 자체를 문제삼지는 못하면서도 노대통령 권위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고 나선 모양새다.
동아일보
동아일보는 지난 19일 ‘U대회 불참, 北불신 자초한다’는 사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었다.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북한에 사죄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유니버시아드 불참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을 깊게 할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북한의 전술에 말려들거나 끌려가서는 안된다. 정부가 할 일은 당당하게 대회참가를 촉구하는 것이다. 북한이 분별없는 주장을 계속한다면 ‘북한 없는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옳다.” 결코 북한에 사죄를 해선 안되고, ‘북한 없는 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일자 동아일보의 ‘대통령 유감표명 적절치 않았다’는 제목의 사설은 그 논리가 교묘히 바뀌었다.
사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보수단체들의 인공기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 초상화 소각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됐다. 대회를 공들여 준비해온 대구시민들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다”라고 적었다.’북한 없는 대회’를 치러야 한다던 주장이 ‘다행스러운 일’로 변모한 것이다.
‘북한에게 사죄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라던 주장도 슬그머니 바뀌었다.
사설은 “북한이 굳이 정부의 ‘사죄’를 요구한 의도는 보혁갈등을 부추겨 또다시 남한사회를 흔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알면서도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해야 했을까”라며 “통일부 장관이 ‘문제 발생에 유의한다’며 사실상 유감을 표명한 만큼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다고 우리는 본다”고 주장했다. 결코 북한에 사죄를 해선 안된다던 주장이 “통일부 장관이 유감을 표명한만큼 대통령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다”로 바뀐 것이다.
동아일보는 “북한의 대회참가로 남북관계가 더 두터워질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뭔가 트집을 잡을 때마다 들어주는 선례를 만들어서는 건강한 남북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노대통령도 5월 방미때 ‘앞으로는 북한이 하자는 대로만 따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로 글을 끝맺었다. 말 그대로 일관된 논리의 부재(不在)이자 전형적 트집잡기다. 동아일보는 그러나 사설과는 달리 스포츠면에서는 ‘돌아온 北…활기띤 U’ ‘남북화합의 무대 열렸다. 함박웃음’이라는 제목의 북한 참가 환영 기사들로 도배했다. 전형적인 사설과 기사의 ‘따로놀기’이다.
중앙일보
중앙일보도 희안할 정도로 동아일보와 동일한 논리의 변질을 보여주었다.
중앙일보는 지난 19일 ‘참석 설득하되 매달리진 말라’는 사설을 통해 “정부는 대북 설득을 당당하게 하되 ‘어떤 형태로든 공식 사죄하라’는 북측의 협박에 넘어가 북한의 대회참석 유도를 위해 비공식적으로 ‘사죄’해선 안된다”며 “정부는 또 남북 경협합의서의 발효를 지연시키는 북한의 연동전술을 두려워해선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20일자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할 일인가’라는 사설은 논리가 교묘하게 바뀌었다.
사설은 “노무현대통령이 북한의 사죄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해선 다행스러운 사태발전이다”라고 적었다. 사설은 이어 “대통령도 말했듯이 우리 정부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왜 나서서 사과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유사 사태가 발생하면 그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북한의 대회 참석을 유도하고 6자회담의 분위기를 좋게 조성하기 위해 고심에 찬 결단을 내렸더라도 통일부 장관의 유감표명으로도 충분한 사안이었다”고 주장했다. ‘결코 사죄를 해선 안된다’던 주장이 ‘통일부장관만 유감표명을 하면 됐지 왜 대통령까지 했느냐’로 바뀐 것이다. 중앙일보는 “북한의 남남갈등 조장전략은 일대 성공을 거두었다.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놓고 좌우세력의 찬반이 당장 격화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보수파를 때리고 친북세력을 북돋우는 북한전략에 힘을 실어준 결과가 됐다. 아무리 남북관계의 순항을 염두에 두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북한의 사과요구 전술은 기가 막히게 적중해 그들의 뜻을 이루었다”고 사설을 끝맺었다.
중앙일보는 여기서 그치 않고 스포츠면 관련기사를 통해 “조직위는 희색, 시민들은 냉랭”이라는 북한의 U대회 참가 결정에 대한 대구의 스케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동아-중앙과는 달리 지난 19일에 관련사설을 싣지 않았다. 따라서 20일자 ‘인공기 태운 국민 대통령이 비난하나’라는 사설은 조선일보답게 일관된 논리로 전개됐다.
사설은 “노무현대통령이 민간단체가 주최한 광복절 집회에서 인공기와 김정일 초상화가 불태워진 것과 관련해 유감을 표시한 것은 북한의 억지주장에 한국의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것이나 다름없다”로 시작됐다. 사설은 노대통령이 성조기와 인공기를 비교한 대목을 지적하며 “대통령 말속에 담겨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마치 우리에게 미국과 북한이 동등한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다. 아무리 남북대화를 하고 화해협력을 추구한다 해도 북한은 엄연한 주적일 수밖에 없고, 미국은 이런 안보위협에 함께 맞서는 한국의 동맹국이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시해야 했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이 정부의 대북-대미 인식과 정책이 언제까지 이런 유의 표류를 거듭할 것인지 걱정스러울 뿐이다”로 끝을 맺었다. 이는 전날의 ‘노무현, 적장 김정일에게 굴복하다’라는 제목의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이다. 이같은 조중동과 대조적으로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 등은 노대통령의 ‘결단’을 높게 평가하며 U대회의 성공적 개최 및 남북관계 개선을 기원하는 사설을 실어 좋은 대조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