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회장 투신쇼크, 어디까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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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방북선물 1억불” 가이드라인설


비운의 정몽헌 회장이 간지 벌써 2주여. 그런데도 파장은 진정되지 않고 있다. 본국 일부언론은 당초의 타살설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미필적 고의”의 살인설까지 제기하는 등 세론은 아직도 흉흉하다. 거기서 부각되는게 <정치>에 이용되고 농락당한 끝에 세 불여의하면 헌신짝 처럼 버림받는 한국적 기업인의 슬프고도 애처로운 모습이라고 하겠다.

요즘의 설왕설래에서 선렬(鮮烈)하게 부각되는 상징적인 두 장면이 있다. 하나는 2000년 3월 하순 북경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예비협상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같은해 3월 중 서울 서초동 일원에서 벌어진 현대 비자금 200억 운반에 얽힌 미스터리다.

먼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의 견인차역을 해낸 정몽헌 회장의 동태를 살펴보자. 북한의 단일협상 창구로 등장한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박지원 전 문화공보부 장관과의 싱가폴 예비접촉도 현대의 적극적인 ‘거간’과 ‘중재’로 이뤄졌던 것인데, 뒤이은 3월 17~18일 상하이에서 시작된 제1차 예비협상과 동 23일 북경서의 2차협상 그리고 4월 8일 3차협상에 이르기까지 먼저 박지원 전 장관을 만나고 난 후 따로 찾아간 정몽헌 회장과는 호텔 스위트 룸에서 독대하는 이중플레이를 했었다.

문제의 23일. 당시 베이징의 장성 쉐라톤 호텔에 묵었던 박지원 특사는 차이나월드 호텔 회의실에서 송호경과의 2차협상에 임했다. 송호경의 예의 “정부 몫” 5억불 요구와 초청주체 명기문제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김보현 국정원 3차장(당시 5국장)이 정몽헌-이익치 회장을 불러서 “일국의 장관을 협상테이블에 모셔다 놓고 이럴수가 있느냐”며 ‘거간’ 노릇을 똑바로 하라고 질책했다. (그전까지 국정원 측은 정 회장 등이 회담장에 얼씬거리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했었다.)

송호경 부위원장이 “소련한테 30억불씩 주면서 동포끼리 5억불정도는 줘야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보고를 받고, 김대중 대통령이 “반세기만에 남북이 만나는데 북한주민 선물용으로 1억불은 줘야하지 않겠나”고 말해 4월 8일의 3차협상서 타결은 이뤄졌다.

북측은 따로 정 회장에게는 “사업용”으로 줄기차게 10억을 요구하고 7억으로 낮추기도. 정 회장은 2억을 고집하다 3억, 그리고 나중 통신권 30년 보장조건에 4억으로 낙찰되는 곤욕을 치뤄야했다. (3억 5천억+평양체육관 건립+정부몫 1억 대납인데, 당초 DJ 정부는 북한에 SOC 20~30억불지원을 예정했으나 북측이 현금을 고집했다 한다)

이상이 특검의 수사결과에 관한 개요라면 제2무대는 대검중수부의 수사내용이다.

2000년 3월 현대상선 무교동 본사에서 사과상자 크기의 서류박스에 3.5억 단위로 채워진 1만원짜리 현찰 200억이 압구정동 아파트 주차장과 이면도로등에서 김영완 씨 측에 건네졌고 김씨는 자신소유의 6인승 밴 등에 옮겨싣고 평창동 자기집 지하 홈 바까지 운반했다. 007 작전을 방블케한 이 운반작전에는 4차례에 걸친 전달과정에만 연인원 10여명이 동원되고 그중에는 택배회사 직원도 있어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진술했다는 것인데, 총무게 2t에 만원권 지폐를 땅에 깔면 서울에서 광주까지 간다는 이 거액이 어떻게 현재 구속 중인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전달되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거액은 현대의 비자금으로서 4.13 총선 전 민주당 측에 전달돼, 정치자금화 됐다는게 검찰의 추론이다. 소위 대북송금사건의 부산물로 문제화됐던 150억+알파사건 중 알파관련이다. 당초 박지원 전 장관이 “남북 정상회담 추진용”으로 현대에 요구한 150억원은 정몽헌 현대회장이 1억짜리 CD 150매로 만들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 하여금 박 장관에게 전달한 것인데, 박 전 장관이 “받지않았다”는 소위 ‘배달사고’ 설로 옥신각신하다 무기중개상 출신 김영완 씨가 해당액수를 미리 대주고 후에 CD를 돈세탁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대북송급 5억불 사건의 부산물인 150억 사건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실토로 발각이 났지만, 150억의 부산물격인 ‘알파’ 사건은 대검중수부가 150억을 밝혀낸 특검이 넘겨준 자료에 따라 계좌추적 하던중 50, 70, 100, 200억등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자금의 용처를 캐내려고 정몽헌 회장을 마구 다구친 소위 ‘고강도수사’ 결과로 표면화되었다.

대북송금사건의 재판과, 150억 사건의 대검수사, 그리고 빈번히 다녀와야 하는 북한여행, 다시 또 알파사건 혐의로 검찰출두 등 아버자代부터의 정경유착 사슬 속에서 정 회장의 악전고투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똑똑하고 꼼꼼하나 소심한 그에게 난세를 헤쳐갈 과단과 뚝심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게다가 ‘왕자의 난’ 이후 그룹이 약체화하고 해체된 것과 다름없는 형편에서 선친이 펼쳐놓은 대북 경협사업의 선두에 선다는 것자체가 무리였다. 동기는 여하간에 DJ 정부를 움직여 남북 교류시대를 연 것까지는 좋았지만(북한이 핵개발에 열중한 내막까지는 몰랐다치더라도), 생색 한번 못 내고 오히려 경제적 출혈만 가중되는 등 기업기반은 파산 직전에까지 몰리는 사업부진에다 집 한채도 안 남는 빈털털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치권은 어떤가. 민주당의 왕실세 권 모 씨의 “도와달라” 한마디에 거금 200억을 만들어줘 패가망신의 씨를 뿌려놓고 만것이었다. (DJ측 총선 완승을 기대했다 해도 과대한 규모였다) 그리고 정치권의 생리며 끈질긴 승부근성을 모른 데서 그의 비극은 싹튼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가 150억 CD를 박 전 장관에게 건네준 건을 이익치 씨가 고했다고 하지만, 박 전 장관은 ‘배달사고’ 등으로 여유있게 시간을 벌더니 이번 정상배(政商輩) 김영완 씨가 은신 중인 미국에서 써 보낸 ‘진술서’ 때문에 또 걸렸다. 그런데도 지금껏 부인하고 있다. 김영완 씨가 와서 대질해 봐야 결과를 알수있게 될 것 같다. 정치인의 목숨이란 이토록 질기다.

의리를 지키려다 ‘가혹수사’ 끝에 200억을 건네 주었다고 정 회장이 자복한 이번 정치자금 헌금의 경우 권씨는 지금 여유있게 앞날을 낙관하고 있는 형편이다. 혐의를 받은 “특가법상 알선수재’의 유일한 근거는 정 회장이 “권씨로부터 …받았다, 감사하다”고 했다는 진술내용뿐이기 때문이다. 김영완 씨가 검찰과의 1차 흥정에서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보냈다는 진술서에도 권노갑 씨 문제는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 그토록 기세등등하여 정 회장을 사지로까지 몰았넣었던 검찰이 지금 당황망조, 김영완 씨를 구슬려 귀국케하려는 회유작전에 목을 매고 있는 웃지못할 촌극을 벌이고 있는 것.

검찰은 김씨가 자진귀국해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경우 정상을 참작,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입장을 김씨 측에 전달했으며 선처방안에는 불구속 수사방안도 있다는 것.

그러나 김씨는 앞서처럼 검찰이 아무리 불구속수사를 약속했더라도 정작 국민여론이나 정치권의 압박을 받으면 검찰 약속은 ‘공수표’가 되겠기에 응할 것 같지가 않다. 검찰은 또 하나의 압박수단으로 그가 미처 빼가지못한 유동재산 즉, 대여금고 속의 예금통장, 주식, 채권, 수표등 약 200억 어치를 압류하고 있다는데, 그 재산이 탐나 감옥으로 자진해서 걸어들어갈 위인같지도 않다. 김씨가 계속 응하지 않을 경우, 검찰은 일을 벌여 놓고도 제 때에 마무리 짓지 못하는 추태를 드러내 크게 망신을 당하는 입장에 처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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