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외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국민회관사료 불법반출사건’과 관련해 사료의 주인이 ‘코리안 커뮤니티(한인사회)’라는 해석이 나와 주목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본보가 입수한 20년 전 국민회관 관련 캘리포니아주 법원 판결서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한편 LA한인사회는 불법반출된 국민회관 사료에 대한 환수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여론과 한국과 미국정부가 불법반출에 대한 진상을 조사해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본보 취재진이 입수한 판결문(C-297-554)에 따르면 지난 1984년 4월26일 캘리포니아법원(로스엔젤레스 카운티 상급법원)의 잭 크리카드 판사는 국민회관과 관련된 분쟁소송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합의서를 검토하고 “국민회관이 역사적 유적지로서 한인사회를 위해서” 관리유지 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판결문은 국민회가 1978년 9월20일 회관건물을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당시 담임 우상범 목사)에 매각한 것을 인정했으나 국민회관과 유물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1984년부터 ‘99년 동안’(2083년)까지 교회는 국민회관과 유물에 관해 “철거,매각,임대,양도,이전 등 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특히 ‘국민회관에 있는 유물과 사료등도 99년동안 그대로 회관내에 보존되어야 한다’면서 ‘교회는 국민회관이 미주한인이민사의 역사적 기념 유적지라는 사실을 인식해 건물 소유주로서 한인사회를 위해 제반 사료보존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문은 밝히고 있다.
합의서에는 교회가 건물의 소유권은 있으나 “국민회관은 한인사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차별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야 한다’고 규정됐다. 판결문과 부속 합의서를 보면 국민회관과 유물 등 사료가 미주한인사회의 역사적 유적지로서 “특별히 캘리포니아주의 한인사회를 위한 것”임을 여러 조항에서 강조했다.
이 합의서에는 ‘역사적 건물 보존’ ‘한인사회에 조건 없이 개방’ ‘국민회관 역사적 유물 보존’이라는 별도 제목까지 제정해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 같은 판결문에 대해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회관과 유물이 한인사회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의 판결문과 부속 합의서를 분석하면 국민회관의 복원사업은 교회나 김운하씨의 허락이 없어도 한인사회가 원하면 언제든지 가능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운하씨와 교회측은 제각기”우리의 동의 없이는 국민회관을 보수할 수 없다는 것이 판결문 내용이다”라고 주장해오면서 지난 20여년 동안 국민회관의 보수 등 개선작업에 제동을 걸어 온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주장 때문에 복원사업은 지연되어 왔으며, 국민회관복원위원회(회장 홍명기)가 교회측과 김운하씨를 지난해 복원위원회 실행위원으로 받아드린 후에야 보수공사가 가능할 수 있었다. 애초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이사장 서영훈)나 국민회관복원위원회는 기초적인 판결문 내용도 확인 없이 자신들의 욕심과 주장으로 한인사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11월 국민회관복원위원회 구성을 두고 흥사단측이 참여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아무런 법적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번에 밝혀졌다.
또 김운하씨와 교회측 그리고 흥사단측은 국민회관의 사료들에 대해 자신들만이 연고권이 있는 것으로 주장해왔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국민회관과 유물들은 한인사회를 위해서 보존해야”라는 내용에 대해서 이들은 고의로 밝혀 오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문 내용만 강조해왔다.
전문 10개 조항으로 된 판결문에서 잭 크리카드 판사는 김운하씨가 개인적으로 발행하는 신한민보(New Korea)가 대한인국민회의 법통성을 지닌 ‘신한민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향후 8년 동안 김운하씨의 출판물(신문,공문,로고 포함)에 명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판결문에 따르면 1974년 이전의 ‘신한민보’ 발간에 관련된 일체의 장비와 자료에 대해서도 김운하씨는 전혀 권리가 없고 국민회의 자산임을 판시했다. 다만 김 씨는 자신의 신문제작에 필요 시 이들 자료를 복사할 수 있다는 권리는 부여 받았다. 그러나 복사하더라도 모든 비용은 김 씨가 부담해야 한다고 판결문은 명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김운하씨는 자신이 발행했던 신한민보가 미주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어 온 대한인 국민회의 기관지 ‘신한민보’의 법통성을 이어받은 것으로 주장해왔다. 판결문에 나타난 내용을 보면 그의 신문은 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그는 한인사회를 속여가며 신문을 발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한인사회의 대부분 동포들은 김씨가 발행한 신한민보가 1905년 11월 22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됐던 ‘신한민보’의 전통을 이어 받은 것으로 알아왔다.
한편 서울 도산기념사업회에 국민회관사료를 불법 기증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金운하씨가 다음달 도산기념사업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씨는 과거 친북활동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그 동안 한국입국이 거부되어 왔다. 일부에서는 도산기념사업회가 김 씨로부터 국민회 등과 흥사단의 독립운동자료기증의 대가로 그의 한국방문을 주선한 것으로 보고있다. 만약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국민회관사료 불법반출사건’은 불순한 정치적 동기도 작용해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도산기념사업회의 국민회관 흡수작전
장기적 계획안 추진 기증 빌미 불법 반출
국민회관 史料 어떻게 빼돌렸나!!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는 국민회관과 유물들을 수중에 넣기 위해 오래전부터 장기계획을 세워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민회관을 복원한 다음 이 회관을 기념관으로 변모시켜 자신들이 계속 운영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이 같은 계획을 진행하면서 국민회관의 사료들을 여러 방법으로 수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일차적 계획이 김운하씨가 지니고 있던 자료를 “기증”이란 형식으로 불법적으로 수집했던 것이다.
이 같은 계획을 위해 도산기념사업회의 이만열(국사편찬위원장) 국민회관복원추진준비위원장이 지난동안 치밀한 작전을 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회관의 소유주인 교회를 움직이기 위해 교회 신도 중 자신의 친척을 통해 교회 분위기를 사전 파악했다. 이 교회 친척은 제직회의 일원으로 나중 교회내 국민회관담당 운영위원회 7인위원에 포함됐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본보 특별취재반이 입수한 도산기념사업회의 공문들과 관계자들의 증언에서 나타났다.
(특별취재반)
“이만열씨는 국민회관 소유주인 교회에 내통자를 두었다”
서영훈 회장, “김운하씨를 복원 위원회에 강력 추천” 입장
도산기념사업회는 지난해 4월 10일자(문서번호 도기사 제 0223호)로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를 관리하는 미국장로교 한미노회 김경서 목사 (참조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에게 보낸 공문에 따르면 복원 후 운영계획까지 설명해 놓았다. 이 계획에 따르면 “복원사업이 본격화되면 복원추진위원회를 재편성하여 ‘국민회관 보존관리위원회’(가칭)를 만들어 향후 보존과 유지관리 등의 일을 맡게 한다.”면서 “2차 사업으로 박물관, 기념관, 도서관, 회관 등을 주변에 신축하여 LA한인의 요람으로 만든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들은 LA한인사회와는 전혀 논의하지 않고 도산기념사업회와 가까운 흥사단(미주위원장 백영중)이나 리버사이드도산기념사업회(회장 홍명기) 또는 김운하씨 등 극히 제한적인 관계자들과 협의해 자신들의 방침대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애초 도산기념사업회는 국민회관 복원문제와 관련 LA동포사회에 대하여 “사업주체가 LA동포사회가 된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는 한인사회에 대한 홍보용이었으며 실제는 도산기념사업회가 뒤에서 조종해 자신들이 복원사업의 주체임을 나타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국민회관복원위원회를 정식 발족시킬 때 서영훈(도산기념사업회장), 金창원(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총회장),백영중(흥사단미주위원장),안수산(3.1여성동지회고문)씨들과 동양선교교회(임동선목사), 영락교회(박희민목사), LA한인회(하기환), 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서동성), 한우회(金영태) 한미박물관(박기서,민병용), 광복회(배국희)관계자들을 명예회장,고문,자문위원 등으로 위촉해 마치 한인사회 각계가 참여하는 것 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인사들이 위촉을 수락하지 않았다. 특히 복원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실행위원회에는 홍명기 회장을 포함해 잔 서, 촬스 김, 김영빈, 미셀 스틸, 최종호(도산기념사업회사무국장),김운하,흥사단, 교회 등 9인으로 정했다. 여기에서 김운하씨,흥사단, 교회 대표 등 3인은 원래 “홍명기 계열”이 아니다. 홍명기 회장은 9인 실행위원회에서 6표 +α (김운하)라는 다수표를 장악해 복원위원회를 좌지우지 하게 됐다. 이 같은 실행위원회 구성은 도산기념사업회의 장기계획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짜여진 것이다. “LA한인사회가 주체가 된다”는 것은 한낱 구호에 불과했다. 복원위원회나 실행위원회를 발족시키기 위해서는 한인사회의 동의를 거치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 행태였다. 복원위원회의 홍명기 회장은 LA한인사회의 검증없이 지난해 10월 10일 플라자호텔에서 서울에서 도산기념사업회 서영훈 회장에 의해 복원위원회를 대표하기로 내정을 받았다. 이 같은 과정을 보면 서울에서 도산기념사업회가 LA의 국민회관복원위원회 대표도 정하고 국민회관의 장래문제도 도산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결정된 것이다. 홍명기 회장은 서영훈 도산기념사업회장의 대리인인셈이다.
지난해 3월3일자 (도기사 제 0217)로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로 보낸 도산기념사업회장 서영훈 명의의 공문에 따르면 분명히 “사업의 주체는 LA현지 인사들로 조직하고 도산기념사업회는 본국에서 적극 지원하는 후원회가 되고자 합니다”로 명기했다. 또 이공문에서는 “김운하씨가 참여해야”라고 밝혀 김운하씨를 적극 뒷받침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김운하씨로부터 국민회관자료를 기증받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인다. 또 이 공문에서 “북원후 국민회관을 순례지와 학습장으로 개방하며”라고 밝혀 한인사회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계획을 일방적으로 추진시켰다. 이 같은 계획은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기 적어도 8개월 전에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이만열씨는 도산기념사
업회가 회관을 독점 운영권을 행사하는 언급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 5일 “복원문제를 협의키 위해 2001년말 처음 우리교회를 방문했던 이만열(당시 복원추진준비위원장)씨는 교인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면서 “이씨는 국민회관을 복원한 다음 운영권까지 언급해 교인들의 비난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당시 이만열씨는 교회가 복원에 동의하면 1년치의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다는 언급에 교인들이 항의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이만열씨의 언급은 도산기념사업회가 단순히 복원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복원 후에도 계속 영향력 즉 운영권을 갖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지난 6월 도산기념사업회는 ‘대한인 국민회 북미총회회관 전시 설계 기본안’을 배포했다. 이 계획도 LA한인사회의 여론수렴 없이 서울에서 일방적으로 기획제작되어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복원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전시기본안을 받아보고 의아스러웠다”면서 “어떻게 이런 중요한 전시계획이 한인사회의 여론수렴도 없이 도산기념사업회 마음대로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현상을 보면 도산기념사업회는 복원후 회관을 자신들이 운영해 회관내 중요사료들을 마음대로 관리하려는 의도로 보여지는 것이다.
지난해 4월10일자로 도산기념사업회가 교회측에 보낸 공문 내용 중 (마)항에는 “국민회관이 복원되어 일반에게 개방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회관 및 부대시설(주차장등)의 사용료와 공과금등을 소유주(교회)가 요청해오면 쌍방합의에 따라 연간 사용료를 지급할 수 있다(소유주의 요청이 없을 경우라도 사용주는 교회 운영에 필요한 기부금을 기부할 의사가 있다)고 적었다. 이런 내용은 한인사회와는 협의치 않고 일방적으로 도산기념사업회가 국민회관의 사용주로 되겠다는 의도를 강하게 나타낸 증거이다. 이 같은 공문에는 서영훈 도산기념사업회장과 이만열 복원준비위원장의 서명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