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권 통일논리/반 체제 인사 귀국
불법 유출 국민회관 史料 기증 댓가 방한 허가 說‘도산 사업회’가 초청 주도
최근 해외반체제인사들의 한국방문뉴스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지난동안 해외에서 민주화 투쟁으로 귀국치 못했던 사람들을 초청하는 케이스였다. 독일의 송두율 교수와 LA의 선우학원 박사도 포함됐다. 그런데 송두율 교수는 “북한 노동당 김철수였다”로 확인되는 바람에 기소여부가 단연 뜨거운 뉴스거리였다.
한편 LA의 김운하(뉴코리아 발행인)씨 부부도 한국을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운하씨 부부는 이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이 아니라 도산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의 초청으로 알려졌다. 김운하씨는 국민회관의 자료 일부를 불법으로 도산기념사업회에 기증한 의혹을 받고 있다. 그 댓가로 김씨는 한국방문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한국방문을 위해 서영훈 도산기념사업회장이 한국정부 고위관계자와 만났고,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지난 6월 국사편찬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만열 도산학회장이 여러 기관에 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타운에서는 “김운하씨가 친북인사인데 어떻게 서울을 가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한편에서는 “그가 전향을 했다는데 사실이냐”며 문의하는 사람도 많다. 본보는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김운하씨를 집중 조명해본다. (성진 취재부기자)
공산주의 증거없지만 과거행적 문제 91년 부터 본격적 친북활동 88년부터 전금 여행사 운영 「방북단 주선」 각종 세미나서 北 지지
한국방문 김운하씨
지난 2001년 7월 13일 MBC-TV는 라는 프로에서 김운하씨를 인터뷰했다. 이 방송은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의 김씨의 반독재투쟁사를 소개했다. 김씨는 당시 LA에 중앙정보부(현재 국정원) 요원이 5명이나 상주했다며 “ 미국내에 주재하는 한국 중앙정보부원들이 시민권자는 물론이고 한국인 영주권자, 체류자, 유학생들을 공갈협박하고 이들의 허가 받은 집회를 폭력으로 제지하려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기자를 하다가 LA에 정착한 김운하씨는 박정권 당시 미국의회 프레이저위원회에서 박 정권의 해외동포 탄압사례를 증언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시 김운하씨는 한 중정 요원으로부터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라는 최후 통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첫째는 비판을 중지하고 한국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것, 둘째는 신문을 팔거나 폐업하는 것, 셋째는 보복을 당하는 것이었다.
김운하씨는 이 통첩을 무시하자 중정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았다고 비난했다. 그 결과 친척, 친지들이 멀어져 갔고 신문사 직원들은 사직했으며 새로운 직원도 구할 수 없었다. 김운하 부부는 자신들만의 힘으로 그 신문사를 꾸려나가야 했다. 당시 이 신문사에 지금의 장태한 교수(UC리버사이드대), 촬스 김(KAC사무총장)씨 등이 자원봉사로 일했다고 한다. 김운하씨의 말대로 그가 공산주의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의 과거 행적으로 정보계통과 언론계에서는 “친북활동자”로 규정해왔다.
김운하, 김충자씨 부부가 언제부터 “친북인사”로 불리게 된지는 분명치 않다. 한국의 한겨레신문. 대한매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을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는 오래전 부터 그를 “친북인사”로 보도해왔다. LA에서도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역시 김씨 부부를 “친북인사”로 보도해왔다. 그는 72년에 이민와 74년에 ‘신한민보’를 인수해 반독재, 반정부 기사를 게재하고 이와 관련한 행사를 주도하면서 자연히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LA총영사관 등에서 “친북”으로 분류하면서 자연히 동포사회에도 이 같은 인식이 퍼져 나갔다. 그러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고 해외동포들의 방북이 허가되자 88년 전금여행사를 인수해 북한 관광단을 모집,동포들의 방북을 주선하면서 친북성향이 두드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LA에서 개최된 ‘북한 바로알기’세미나에서는 6·25 북침설과 고려연방제 지지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91년 1월3일부터는 일본 조총련계로부터 북한조선통신을 수신해 ‘미주 조선통신’을 창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친북활동에 나섰다. 김씨는 이 통신을 통해 김일성의 신년사를 게재하고 북한의 정치 선전 창구역할을 수행해왔다.92년 2월에는 ‘김정일 선생 51돌 생신축하회’를 열어 축하 연설을 하고 ‘조국 떠난 멀리서’라는 시를 낭독하기도 했다. 93년에는 북한 도서 3만 권을 수입,전시회를 열었다. 그 해 10월 김씨는 노동당 창건일에 방북 했다. 그리고 김씨는 94년 4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 탄신 82돌 축하회’를 개최했으며 같은 해 7월 “김일성 사망” 뉴스가 발표되자 LA 사무실에 빈소를 설치하고 장례식에 참석차 방북 했다. 95년 이후 김씨는 전금관광여행사를 통해 북한교역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한겨레 신문은 95년3월3일자에서 김운하씨의 대북경제활동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남북경협에서 ‘미동포사회가 유력창구로 떠오르고 있다’는 제목에서 라고 보도했다.
김씨는 북한에서 김정일 비서의 통치가 시작된 95년부터 97년까지 해마다 2월에 ‘김정일 생일 축하 사진전’을 개최했다. 이 사진전과 관련해 충돌사건도 일어나 미국경찰이 출동하는 등 국내외로 보도가 나가기도 했다. 97년 2월 북한 김정일의 활동상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자 6·25참전 동지회 등 한인단체 회원들이 몰려가 전시회 중단을 요구하며 몸싸움을 벌여 경찰이 개입하는 등 소위「김정일 소동」이 벌어졌다. 김운하씨는 부인 김충자씨가 운영하는 전금여행사 사무실에서 산업현장 시찰 등 김정일의 최근 활동을 담은 컬러사진 50여점과 금강산 등 북한 풍경을 담은 10여점의 사진 등으로 「김정일 장군 탄신 55돌 축하사진전」을 열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6·25참전 동지회와 재미이북도민회, LA한인회, 재미한국청년연합회, 자유민주민족회의 미서부지회, 재미한국수훈자회, 일천만이산가족 재미추진회 등의 관계자 30여명은 전시회장에 찾아가 사진전 취소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김정일 우상화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이어 전시된 김정일의 대형 홍보사진을 뜯어내고 이를 말리는 주최측과 심한 몸싸움을 벌여 격앙된 분위기를 빚었다. 주최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출동했으나 불상사는 없었다. 이 소동은 연합통신을 통해 서울의 일간지 등에 보도됐다.
김씨는 북한선전활동에도 관심을 보여 95년부터 ‘향도의 태양 김정일 장군’이라는 책자를 반입,언론과 동포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96년 10월 북한 잠수함 사건이 발생하자 “훈련중 좌초한 것인데 한국 정부가 이를 무장 공비 남파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김운하씨 부부는 97년 전 천도교교령인 오익제씨 월북사건으로 다시 한번 친북활동이 국내외로 크게 알려졌다. 안기부는 이와 같은 사실 등을 들어 이들 부부가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이라고 밝혔다. 당시 중앙일보,한겨레,대한매일 등도 안기부 발표를 인용해 “김운하씨 부부는 재미 북한공작원”으로 보도했다. 한겨레 신문은 97년 8월22일자에서 안기부가 오씨를 베이징까지 동행한 김충자(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전금관광여행사 대표)씨와 그 남편 김운하(신한민보 발행인)씨를 “북한을 각각 50∼30회 이상 방문한 사실이 있는, 미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북한 공작원”이라고 규정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97년 9월13일자에서 오익제씨 월북사건을 수사중인 국가안전기획부는 오씨가 출소한 미전향 장기수들의 북송을 추진한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이 기사에서 “오씨는 또 미국 LA 전금여행사 대표 김충자·김운하 부부외에 월북한 최덕신씨의 장남인 재독교포 최건국(55)씨, 실향민단체인 효도회 회장 장승학(68)씨를 통한 베이징(북경)대 최응구(60·조선족) 교수 등 3중으로 북한과 연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방북한 횟수는 김운하씨가 50여회 이상,김충자씨가 30여회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독교신자인 김운하씨는 불교에도 관심을 가져 법명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러한 김운하씨 부부는 3년 전부터 북한방문을 중지해왔다. 그대신 미국의 여러 주를 여행하면서 남북한 미술품전시회를 개최해왔다.
목적은 전시회 수익금 일부를 현지 한인동포단체들에게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LA이외 타주의 한인단체들과 연결을 갖기 시작했다. 또 이들은 2002년부터 LA의 한인단체들과도 조심스럽게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회관복원운동이 일어나자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와 연결을 맺었다. 당시 도산기념사업회내에서 국민회관복원추진위원장을 맡은 이만열씨와 마산고교 동문이라는 관계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이만열씨는 김운하씨가 중요한 독립운동사료를 소장하고 있는 것을 알고 비밀히 이를 기증받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김운하씨는 독립운동자료를 기증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친북활동”을 면제받는데 도산기념사업회가 다리를 놓아 줄 것도 요청한 것으로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한편 도산기념사업회는 홍명기 회장이 주도하는 복원위원회에 김운하씨를 실행위원으로 추천하면서 김운하씨가 LA한인사회에 “친북”의 탈을 벗고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으로 주위에서는 보고 있다.
김운하씨 부부는 10월 초 한국을 방문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민회관복원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그들이 서울 도산기념사업회 초청으로 10월 초순에 방문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국민회관을 소유하고 있는 한인교회측의 한 관계자는 “이들의 방문에 안수산 여사 일행과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도산 유족들이 강한 불만을 도산기념사업회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이 관계자는 “도산 유족들은 국민회관 사료를 불법반출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씨와의 동행을 상당히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김운하씨 부부의 한국방문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선우학원 박사나 송두율 교수의 방문과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김운하씨 부부는 아직까지 자신들의 과거 “친북활동”에 대해 언급이 없다. 그들이 “친북활동”을 중지했다는 언급도 없다. 국민회관복원위원회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서는 김씨 부부는 ‘북한과 관계가 없다’는 제스처만 보였다는 것이다.한편 타운의 한 친북인사는 “그들은 북한을 방문할 수 없다”면서 “그들은 북한에 대해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의 한국방문은 여전히 미스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