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1:수출 대금 떼먹기형◀
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수법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현지법인에 수출을 하고, 대금을 받지 않는 것이다. 과거 대우의 김우중씨가 영국법인 BFC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할 때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김 전 회장은 먼저 국내 대우자동차가 (주)대우에 차를 판매하도록 했다. (주)대우는 이를 다시 국외 판매 법인에 외상조건(D/A)으로 수출했고, 6개월 후 자동차 대금을 회수해 대우자동차에 납부하는 방식이었다. 김 전 회장은 이 과정에서 자동차 판매대금을 국내로 송금하지 않고 대우의 영국 법인 BFC로 직접 송금, 비자금을 조성했다.
D/A(무 신용장 방식 수출환어음)의 황제라 불릴 정도였다. 실제 국외에 있는 현지법인과 본사와의 D/A거래는 금융권에서 요주의 대상이다. 본국의 모은행에서 수출입 업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국외 현지법인과의 D/A거래는 요주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면서 “아예 있지도 않은 위장 수출 서류를 위조해 돈을 빼돌리기도 한다”고 밝히며 “아예 몇몇 기업들은 물건만 수출하고 대금 회수는 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 이런 기업들은 감사원에서 실시한 공적자금 감사에서도 적발되기도 하였다.
▶유형2:수출입대금 조작형◀
수출입대금 조작도 지극히 평범하지만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S오일은 지난 99년도 조세 피난처인 라이베리아에 지분 100%로 설립한 현지법인과 홍콩에 있는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수출되는 유류 단가를 조작,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유류 단가를 의도적으로 낮춰 현지법인에 수출한 뒤 외국 법인이 이를 다시 정상가에 팔아 그 차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국외 현지 법인 공장들이 재하청을 주면서 운영비를 빼돌리기도 한다 . 말레이시아에서 소형 전자제품 공장에서 근무하는 K씨에 따르면 “대개 공장들이 일단 한국이나 일본에서 부품이나 원료를 받아 현지에서 물건을 만들어 주로 미국으로 수출한다. 여기에서 일부 탈법이 발생한다. 외국인 전용공단의 인건비가 더 비싸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소규모공장에 다시 재 하청을 준다. 비용이 절반에 불과한 경우도 많은데 회사 장부에는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것처럼 비용을 부풀리고 차액은 먹는 것이다. 현지에서 적자가 난 것처럼 가장해 본 사에서 돈을 받아 이를 빼돌리기도 한다”고 했다. 반대로 수입대금을 과도하게 계산하는 경우도 있는데 100달러짜리를 150달러에 수입하고 차액 50달러를 국외에서 빼돌리는 방법이다.
▶유형3:위장 무역 거래형◀
무역 거래를 이용하는 방법 중 가장 악성인 사례. 실제 발생하지 않은 무역 거래를 마치 발생하는 것처럼 꾸며 돈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한다. 외국의 유령회사로부터 물건을 수입한 뒤 수입대금을 송금하는 방식 또한 과거 대우에서 많이 사용했던 방식. 김우중 전 대우회장은 (주)대우가 영국 런던 노스우드 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로부터 러시아산 알루미늄을 수입, 미국회사에 되파는 중계 무역을 하는 것처럼 위장해 국내 은행으로부터 1000만달러가 넘는 돈을 차입했다. 국내은행들은 (주)대우가 선 담보를 근거로 현금을 노스우드 인터내셔널 계좌로 송금했고, 이 돈은 고스란히 BFC로 입금됐다. 김우중 전 회장은 같은 방식으로 97년부터 99년 사이에 국내금융권에서 총 26억달러를 차입 해 BFC에 송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형4:유령법인 역외펀드 이용형◀
외국에 있지도 않는 유령법인이나 이미 부도난 자회사도 자금도피 수단이다. 유명무실한 외국법인에 투자 명목으로 돈을 빼돌리는 것. K사 대표인 김모씨는 캐나다에 유령법인을 만들고, 외국투자 명목으로 36만달러를 송금했다. 김씨는 K사가 부도가 난 이후에도 국외 이주비 명목으로 추가 송금하는 등 총 95만달러를 유출했다. 이후 김씨는 캐나다로 출국했다.
최순영 대한생명 전 회장은 조세 회피지역인 케이먼 군도에 그랜드 밀레니엄펀드라는 역외펀드를 설립 , 1억달러를 송금했다. 최 전회장은 이중 8000만달러를 실체조차 불분 명한 외국의 4개 회사에 무담보대출로 처리했다 적발됐다. 외국의 조세피난지역에 자회사 형태의 펀드를 설립, 국내에 그 돈을 다시 들여오는 식의 돈 세탁은 벤처기업들이 주가 조작에 이용하기도 한다.
▶유형5:국외법인간 거래형◀
외국법인간 거래를 통해 돈 세탁을 하는 방식은 여러 외국 법인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이 사용한다. 국외 법인 간 거래는 국내 공시 대상이 아닌 대다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이슈가 되었던 현대전자 1억달러 증발 의혹이 대표적인 형태다.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가 지난 2000년 5월 영국법인을 통해 현지 반도체 공장을 1억달러에 매각했다. 이 돈은 현대전자의 미국과 일본 법인을 통해 현대건설 중동자회사인 HAKC에 대출됐다 . HAKC는 7개월만에 이 돈을 손실로 처리했다. 이 회사는 돈을 빌리기 직전 설립, 돈을 빼돌리기 위한 유령회사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돈은 당시 부도 위기에 몰렸던 현대건설을 지원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1억달러라는 거금이 7개월만에 대손상각(돈을 떼인 것으로 간주, 손실로 처리)했음에도 금융당국은 전혀 몰랐다.
이처럼 국외 법인을 이용한 불법과 탈법이 비일비재하지만 금융당국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감사(연결재무제표)를 통해서는 외국법인을 통한 비자금 조성을 막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외 법인 간 거래에서 돈이 국내에 들어오지 않고 외국에서 일어난 거래에 국내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현실도 탈법을 조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불법을 저지르지만 않으면 법적 제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에 대해 국외 법인간 거래는 국내에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단 공시가 되면 사후 불법 행위에 대해 책임 규명이 가능하고 예방효과도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