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씨, 방미외에 방일도 추진
방콕 APAC정상회의를 계기로 6자협의의 ‘공’이 다시 북한쪽으로 넘어간 분위기속에서, 임박한 황장엽씨의 방미는 지대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뿐아니라 국정원의 보호를 박차고 나온 황씨는 그간 일본방문과 지도층과의 면담도 적극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져, 북한문제의 허실에 가장 정통한 황씨의 활동무대와 그 행보에 새삼 세인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8월이후 日정부 중진에 서한 탈북자수용할 난민촌 건설도 제의
황장엽씨는 지난3월경 일본의 보도사진가 야마모또 고오이찌씨와 접촉을 가졌었다. 당시 국정원은 그의 ‘보도’아닌 ‘황씨의 일본초빙 준비’차 면담을 용인한 것. 두 번째 접촉에서 황씨는 그의 눈앞에서 일본정부의 관방 부장관 아베 신조(현 자민당 간사장)씨에게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과 함께 자신의 초청을 요청한 서한을 써서 맡긴 것으로 밝혀졌다.
서한의 구체적 내용은 일본의 한 주간지에 의해 지난7월 밝혀지기도 했는데 그 내용은 ‘한미일3국민주주의동맹의 강화와 단결’ ‘만약 북한이 무모하게 전쟁을 도발하면 무자비하게 반격해서 단기간에 정권을 붕괴시킨다’ ‘인권옹호를 기치로 삼아 북한을 고립시킨다’ ‘중국과 러시아를 북한으로부터 떼어낸다’ ‘경제원조의 단절’등을 제안하였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몽고에 국제기관이 ‘난민촌’을 건설해 탈북자를 난민인정하면, 탈북자가 급증해 내부붕괴나 내부포기를 유발시킬수 있다”는 주장이 많이 언급됐다고 야마모또씨는 단독인터뷰 기사(SAPIO 게재)에서 증언하였다.
그간 경위는 여하간에 방일초청(뒤의 일본관계 인터뷰 내용처럼)은 불발되었다. 8월1일 국정원의 특별관리대상에서 제외된 황씨는 먼저 방미를 추진, 수차례 지연 끝에 10월하순 방미가 확정되는 과정에서 야마모또씨와 단독인터뷰를 갖기에 이르렀다.
김정일정권을 무너뜨리면 납치도 핵도 자연히 해결된다
_ 이 인터뷰는 (2000년에 미디아와의 접촉이 금지된 이래) 귀하가 처음 받는 것이지요.
* 나는 이때까지 인터뷰를 받은 적이 없고 받을 생각도 없었다. 최근 일본 주간지에 내 수기라고 칭하는게 나왔지만 인터뷰가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말한 것을 적당히 한(구성한)것이 아니겠는가.
_ 국정원의 특별관리를 벗어난 것으로 미국이나 일본에서 김정일타도를 호소할수 있게 되겠군요.
* 그렇지요.
_ 6개국협의와 겹치는 것도 있고하여 한국정부는 아직도 귀하의 방미를 연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귀하가 미국에서 얘기하고 싶은건 어떤겁니까.
* 현재로선, 김정일체제를 힘으로 제거할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다만, 미국은 북한의 군사적위협과 관계가 없는 만큼 어떤 방법으로 북한에 대응해 나갈 셈인지, 거기에 어느만큼의 동요나 불투명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라고 하는 것은, 미국은 핵문제만 문제삼아 김정일을 공격하려 한다. 핵문제는 물론 중요하다. 다만, 이것은 전술적인 문제밖에 안되며 김정일을 타도할 확고한 이유가 되지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방미때에 “전쟁을 하지않고서 민주주의의 적인 김정일을 쓰러뜨린다”라는 근본적인 대의를 부시정권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된다.
_ 6개국협의에 즈음해 미국은 “핵개발을 포기하면 정권을 보증하고 경제원조도 생각한다”라는 자세였는데.
* 6개국협의는 북한, 그리고 그이상으로 중국의 속셈대로 나갔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미국, 일본, 한국으로부터 경제원조를 획득하고, 또한 중국과 러시아와 북하의 동맹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국가이익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경제원조를 약속하기까지는 6개국협의에서 북한에 강경자세를 계속 취하게 할 것이다. 거기에 미국도 일본도 응해서는 안된다. 거꾸로 미일이 중국에 압력을 가해 중국의 양보를 끌어내는게 중요하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한국까지도 중국. 북한에게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_ 핵문제와 교환조건으로 경제원조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 그래요. 북한에의 경제원조는 군수공장을 되살아나게해 핵.미사일개발을 도와주는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은 망명이래 줄기차게 내가 주장해온 것이다. 우리들이 싸울 상대는 누구인가. 이것을 명확히 해야한다. 최대의 문제는 김정일독재정권인 것이다. 이것을 배제하면 핵.미사일문제도 일본에서 주목되고있는 납치문제도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다.
여기서 얘기는 일본이 취할 대응에 관하여 옮겨간다.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황씨의 제안, 특히 난민촌문제는 인터뷰에서도 “ 두만강과 압록강은 북한에게 베를린장벽이다”라는 표현으로 지론을 피력했는데 아베 부간사장에게 보낸 서한은 바로 <김정일정권타도의 로드맵>이라 말할수 있다. 문제는 이 서한, 그리고 병행해서 납치의련(북조선에 납치된 일본인을 조기에 구출하기위하여 행동하는 의원연맹)에 보내진 ‘황씨의 국회초청’요청이 어떻게 처리되었느냐 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요청은 ‘일부 정치가의 사정’에 위해 짓눌리고 말았다. 납치의련은 7월2일 황씨의 국회초치를 요구하기로 결정, 자민당국회대책위와 의논했지만, 회답은 “시기 상조”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납치의련의 한사람은 핵심을 찌른 지적을 했다. “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잘못하면 북한과 한국을 자극하게돼 외무성루트로 하고있는 납치피햐자 5명가족의 귀국이 좌절될지 모른다는 것. 다만 그이상으로 큰 것은 황씨에게 일본서 털어놓는 것으로 전에 국교정상화협상등에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뇌물공작으로 농락된 정치가의 실명이 튀어나와 정국이 대혼란되는 것을 겁냈기 때문이다.”
이 분석은 참으로 정곡을 짤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라면 북한문제 해결의 중요증언을 자기보신 때문에 짓뭉개버렸다는 데 지나지않는다.
일본의 핵무장선언은 북한을 봉하는 수단이 된다.
일본정부의 대응에 관하여 황씨는 어떻게 느꼈는가. 인터뷰로 돌아간다.
_ 일본정부의 회답은 귀하의 국회증언을 “시기상조”라고 해왔어요.
* 내가 일본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해서 김정일을 타도하는가 라는 방책이므로 그 장소가 국회여야할 필요는 없다.
_ 북한제라고 생각되는 무각인의 금괴가 방조한 고 가네마루 신(전 자민당부총재)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은 알고있으리라 샐각되는데…
*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요구하려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물론 북한이 일본 정치가에게 그런 공작을 한 것은 충분히 생각되지만, 나는 가네마루씨나 다른 정치가의 접대를 하지않았다구요. 정치가에의 공작이나 납치문제가 일본에서 중요한 문제인 것은 이해하지만, (어떻게 접대했느냐, 어떻게 일본인을 납치했는가 라는)상세한 설명을 요구하는것만이 목적이라면 내가 일본에 갈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물며 기쁨조가 어쨌다 이랬다 등의 일을 듣는 것 같은 사람들과는 관계하고 싶지가 않다.
_ 일본정부가 “시기상조”라고 하는 또하나의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황씨초빙은 납치피해자가족의 귀국에 지장이 된다는 것인데요.
* 납치문제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인권에 관한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있는 김정일에 대해 왜 슬슬 기는가. 일본 외무성은 왜 원조와 맞바꾸어 가족을 되찾으려 하던가, 민주주의국가가 아닌 중국에 특사를 보내 북한과 수면하에서 협상을 하곤 하는가. 민주주의국가로서 당당히 자신의 입장을 말하려 하지않는다. 옛날 일본인의 자존심은 어디에 가버리고 만것일까.
_ 6개국협의에서의 일본의 대응을 어떻게 느꼈는지요.
* 중국을 북한으로부터 멀리하게 하는 일의 중요성은 이미 말했죠. 그 수단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일본의 핵무장화(선언)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묵인한다. 북한은 일본이 약체라는 걸 전제로 강경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다.(북한이 다루기쉽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본이 강하게 나가면 김정일로서도 이때까지 처럼 강경수단으로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_ 방일이 실현된다면 귀하는 무엇을 말할것입니까.
*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말해야 할 것은 김정일정권타도의 구체적방책이다.(이미 아베씨에 보낸 서한등에서 그 내용은 전하고있지만) 더욱 구체적이고 또한 최신의 북한정보는 탈북자들을 통해 나에게 들어온다. 여기(한국)서 얘기할 수는 없는 점을 이해바란다. 하지만 일본에서 아베씨를 비롯 마음있는 사람들과 솔직하기 얘기할 수가 있다면 그때는 꼭 말하겠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황씨는 인본어에 능숙하며 북한시대에도 방일하였다. 또 97년2월에 망명한 장소는 북경이었지만, 정말은 그 직전까지 체재하고 있던 일본에서 망명할 셈이었음을 본인도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장을 통역을 끼지않고 얘기할수 있으므로 황씨자신도 “방미보다 방일쪽을 우선하고 싶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했었다. 방일해서 김정일정권 타도를 호소하는 일은 80세의 황씨에게 남겨진 “최후의 집념”이라고 해도 관언이 아니다. 북한에 남겨둔 가족전원을 숙청당한 황씨의, 아무것도 말할수 없었던 3년간의 답답한 심정은 측정할 길 없다. 황씨가 8월1일을 기해 입을 열 결단을 한 것을 일본정부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