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90년 중반「스위스 UBS」 은행에 수천만불 비자금 은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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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90년 중반「스위스 UBS」 은행에 수천만불 비자금 은닉 사실 포착

Asia 증권시장의 풍운아 마쯔오카 히데오(박준홍) 미스테리 大 추적“신탁자산 관리 리스트에 재벌 2세들 줄줄이 있다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49세) 씨. 그는 80년대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일본 증권시장에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 했던 인물이다. 특히 그는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재벌가와 유명가 집안의 2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재산 해외도피에 깊숙이 관여 된 것으로 알려졌고, 그들의 해외도피 자금을 관리해 온 것으로도 확인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재용·조희준·박준홍 ‘三角 커넥션’

이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 이건희 회장 아들인 이재용 상무를 비롯해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아들인 조희준 씨 등 한국의 재벌기업 관련자들이 관련된 정황이 포착되고 있어 본보는 철저추적에 나설 예정이다.

1995년 당시 스위스 UBS 은행으로부터의 수억엔 송금 건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하고 추적 취재 중이다. 조희준씨와 거래를 할 당시 이재용 씨는 2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경위로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스위스 UBS 은행에 예치할 수 있었는지 미스테리다.

또한 국민일보 회장에 취임하기 직전인 지난 96년 경 일본 주식투자사 경영에 참여했던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도 수백억 엔대를 주무르며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점 등이 의문으로 남아 있다.

도대체 이재용과 조희준, 그리고 조희준과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본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이재용 씨가 무슨 연유로 수억엔이라는 거금을 조희준 씨에게 투자를 하게 되었으며, 당시 조희준 씨가 투자한 투자사의 대표 취체역이었던 마쯔오카(박준홍 씨)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혹이 생겨난다.

본보는 그 진상을 철저히 추적하기 위해 마쯔오카 씨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나 베버리 힐스에서 철저히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마쯔오까(박준홍) 씨는 본보의 추적을 피하며 외부와 연락을 두절하고 있다. 과연 무슨 이유로 지난 4-5년간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을까?

본보 특별 취재팀은 그가 침묵하고 있는 새로운 차원의 진실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기로 했다. 그가 천문학적 재산을 축적해 비밀은행 등의 신탁구좌를 통해 자금을 은닉하고 있는 주요 이유는 그가 지난 20년간 관리하고 있는 비밀신탁 구좌의 자금 중 일부분에 한국의 재벌자금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철저하게 ‘고객 비밀보호’ 차원에서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요한 것은 마쯔오카 씨가 관리하고 있는 이들의 자금규모 역시 엄청난 규모라는 점이며, 이에 본보는 수천억 원 대를 넘나드는 이러한 해외 비밀 신탁자금 형성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지 보다 세부적인 추적작업을 펼치기로 했다. 아울러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 ‘마쯔오카의 비밀신탁 고객 리스트’에는 더 많은 본국의 정치인 및 재벌, 그리고 유명인사의 비자금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 이를 집중 추적키로 한다.

<특별취재팀> www.sundayjournalusa.com

한국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 아들 조희준씨 日주식 투자회사에 수억엔 송금 열쇠 쥐고있는 박준홍씨 외부와 단절

마쯔오카(박준홍) 씨는 자금관리에 있어서 최첨단 신탁자산 관리기법과 세계최고의 Law Firm들을 고용하여 제공하는 완벽한 고객비밀 유지 시스템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재벌 등 유명 인사들이 해외로 자금을 도피시키거나 은닉시키는데 용이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세계경제의 금융공황이 서서히 사작되던 시점에 본국의 재벌2세나 유명인사의 자제들이 해외로 자금을 은닉하기 위한 돌파구로써 마쯔오카 씨와 손을 맞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보는 마쯔오카 씨가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는 주식투자 신탁구좌에 삼성가의 황태자인 이재용 씨,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씨 등의 자금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을 긴급 확인하고 이를 철저히 추적 중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보 취재팀은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씨를 수소문해 수 차례의 정식 인터뷰 요청과 취재협조를 요청했으나 현재까지는 전면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무엇 때문에 진실을 당당히 밝히지 못하고 이같이 인터뷰 등 본인이 수면 위에 부상하는 것을 꺼리는지 그 이유가 오히려 궁금했다.

국제금융인으로서 고객의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겠다는 그의 도덕적 책무의식은 가히 높이 평가할 만하나, 국가나 사회의 중대한 진실을 밝히자는 본보의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다.

이에 본보는 그의 천문학적 자금의 파생이익을 통해 가능했던 지난 20여년 간의 초호화판 사치생활을 집중 추적하고, 아울러 그의 성장과정 또한 짚어보기로 했다. 이 추적을 통해 그가 철저한 금융 자본가이며 본인에게 경제적 고통이 닥치는 한이 있더라도 수년 뒤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자금의 은닉’과 고객 비밀보호를 위해 철저하게 ‘이중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금융사업에 나서기까지…

지난 호에 이미 기사화 했듯이 박준홍 씨가 새로이 창업한 ㈜서울계기는 일본 주거래선인 도요타 자동차, 미요다 전기, 오사카 미터공업, 니혼덴소 등 일본 대기업들의 지원과 기술지도로 경기도 수원에 공장을 다시 건설했다.

그 후 박준홍 씨는 당시 삼익상선 전무이사로 재직하고 있던 오태환 씨를 찾아가 동업을 요청했다. 오태환 씨는 박준홍 씨의 외삼촌인 이응섭 씨의 경기고, 서울대학교의 5년 후배였고, 건설재벌 삼익주택 그룹 회장인 이종록 씨의 사위이기도 했다.

이 같은 박준홍 씨의 요구를 수용한 오태환 씨는 본인이 소유한 ㈜삼익항공과 삼익주택의 계열사인 ㈜삼익가구를 통해 출자에 참여해 ㈜서울계기의 공동 소유주로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된다. 또한 ㈜서울계기는 당시 전두환 5공 시절에 “시간 거리 병산제”라는 새로운 택시요금 규정이 개정되자 이에 힘입어 택시미터 업계에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후 경영난에 빠지자 박준홍 씨는 ㈜서울계기의 소유 주식지분을 ㈜삼익항공의 오태환 사장에게 완전 양도한 후 1985년 일본 오사카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주식선물 시장의 Major로 떠오른
마쯔오카 그리고 미국생활


오사카로 귀환한 뒤 박준홍 씨는 양 아버지인 모 일본 금융재벌기업 회장의 도움으로 지난 86년 본인 소유의 기업과 거래가 있던 몇 개의 중소투자 기업을 합병해 PHT 신탁이라는 지주회사를 영국령 조세 피난지역에 설립하게 된다.

이때서부터 박준홍 씨는 ‘마쯔오카 히데오’라는 일본명으로 개명하고 본격적으로 투자신탁업에 뛰어 들었다.그는 이 PHT 신탁이라는 투자신탁회사를 기반으로 Asia 최대의 주식 선물거래자로 성장하게 되었고,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트레이딩을 통해 수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려 명실상부한 주식선물 거래의 국제적 Major로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승승장구 일로를 걷던 지난 89년 마쯔오카 씨가 소유하고 있던 홍콩 현지법인의 편법주식거래로 인해 대형 금융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그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개인자산 및 법인자산의 손실을 입고, 바로 그 해 경영상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회사의 대표취체역 회장직을 사임한 후 미국으로 장기외유를 떠나기에 이른다.

마쯔오카 씨는 1989년 당시 세계적 오페라 가수였던 전희영 씨를 만나 결혼을 했다. 전희영 씨는 지난 85년 미국 루치아노 파바로티 국제 콩쿨을 비롯 International Major 콩쿨들을 약 90%이상 석권한 당대 최고 오페라 가수였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녀는 ‘한해에 가장 많은 국제 콩쿨을 수상했던 음악가’로 영국 음악 기네스 북에 올라있는 놀라운(?) 인물이기도 하다. 과거 1986년에는 세계 최고의 성악가로 선정되어 P.Boni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0년 바로 그 해 9월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 후 회사명을 영국령 법인국적을 가진 ㈜한신 홀딩스로 개명, 다시 증권투자업에 복귀했다. 1995년까지는 일본 금융시장의 호황으로 재기에 성공하며 엄청난 부를 확보할 수가 있었다.

1996년 일본 금융시장의 불황이 시작되면서 마쯔오카 씨의 잘 나가던(?) 국제 투자군단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매일 수천만 달러에 이르는 현금유동성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한국 재벌2세와 유명인사들과의
거래시작


바로 현금유동성위기가 찾아오던 때쯤인 1996년, 한국의 일간지인 국민일보 전 대표이사인 조희준(일본명 : 오바야시 다이찌) 씨와 함께 Future Investment Company(FIC)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96년 후반부터 마쯔오카 씨와 FIC는 조희준 회장을 비롯한 한국의 재벌2세들의 자금과 미국의 대형 Fund사, 일본의 대형 기관 투자가 등의 자금을 동원, ㈜코아 석유를 비롯한 일본 대기업의 대규모 주식매수작업을 시작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조희준 회장의 자금 속에 삼성 이재용 상무를 비롯한 한국재벌들의 자금도 상당부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본 취재팀이 마쯔오카 씨에게 수 차례 이 사실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으나 그는 철저하게 함구로 일관하고 있으며, 일체 모든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하고 있다.

당시 FIC와 해외 대형 펀드사들은 마쯔오카 씨의 진두 지휘아래 일본의 석유 Major인 ‘코아 석유’의 주식을 무려 1천 500만주 이상을 매입하기에 이른다. 이는 당시 싯가로 환산할 때 약 1억 5천만 달러(US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지금까지도 국제 금융가에는 한때 기업인수 합병의 귀재였던 마쯔오카 씨가 미국의 대기업인 Caltex의 소유나 다름없던 석유 Major를 상대로 이 같은 무모한 도박을 시도했는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오바야시(한국명 조희준) 씨가 FIC의 소유지분을 마쯔오카(한국명 박준홍) 씨에게 양도하고 서울로 귀국함으로써 두 사람의 동업관계는 청산이 되었다. 이후 마쯔오카 씨가 홍콩과 유럽 등지로부터 동원한 5억 달러(US 달러) 이상의 주식매수 자금이 과연 어떤 고객들로부터 조달되었는지는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

분명히 누군가 큰 손의 자금이 흘러 들어왔을 것이라는 관측이 당시 우세했다.
지난 97년 후반 마쯔오카 씨는 국제 증권시장에서 최후의 종말을 맞게 된다. 그가 동원한 5억 달러(US 달러)를 하루 아침에 날려 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 거래 속의 진실은 실제로 5억 달러를 손실한 것이 아니라, 고도의 금융기법으로 손실처리 후 해외로 은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현금 유동성 위기로 파산에 몰렸던 마쯔오카 씨가 어떻게 5억 달러라는 대규모 손실 이후 즉각 일본 내 N 대형 골프장의 과점주식지분을 35%나 사들일 수 있었냐는 것이다.

본보의 취재결과 아직까지도 이 골프장의 실제 소유주는 마쯔오카 씨로 밝혀지고 있다. 이 자금중 일부가 한국의 모 재벌 기업에서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본보는 철저 추적, 기사화할 예정이다.]

지난 2001년을 기준으로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비밀은행에 예탁되어 있는 마쯔오카 씨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신탁자산은 약 미화 2억 달러($200,000,000) 정도로 추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금융자산이 증권 투자사의 신용구좌 대출 담보용으로 설정되어 있어 현재의 주식시장 상황에서는 매각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마쯔오카 씨가 투자했던 닛케이 225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주식 선물지수의 폭락으로 1억 달러 이상의 금융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초호화판의 방탕했던 사생활

지난 93년부터 마쯔오카 씨는 부인인 전희영 씨와 인생관과 성격차의 이유를 들어 현재까지 별거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90년부터 92년까지 신병치료 차 병원과 성당에 다녔던 것으로 일본에 있는 측근들은 전했다.

이어 측근들은 “마쯔오카 씨와 전희영 씨의 불화와 별거의 실질적인 이유는 지난 91년 이후 마쯔오카 씨에게 생긴 일시적 성불구 상태의 후유증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마쯔오카 씨는 홍콩에서의 대형 금융사고의 여파로 심한 충격을 받았고, 이후 마쯔오카 씨는 일본과 뉴욕 소재 병원에서 재활치료에 전념, 완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마쯔오카 씨는 잦은 폭음과 무절제한 생활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으며, 일본의 긴자, 록본기 일대의 고급클럽과 고급 요정가에서도 마쯔오카 씨는 가장 큰 고객이자 유명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긴자의 고급클럽 등은 일회 주대가 미화 수천 달러를 호가하는 일본 최고의 사교 클럽들이었고, 그는 이 클럽들을 수년간 빈번하게 출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1년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긴자 소재 최고급 호텔인 긴자 세이요 호텔과 도라노몽 소재의 오꾸라 호텔에 지불한 호텔비와 주대 등으로 수백만 달러를 사용한 것이 일본 금융당국에 의해 드러나 이후 특별조사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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