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케네디 암살 40주년… 그는 죽지않고 영원히 미국인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케네디 죽음은 미국 종말의 ‘전주곡’… 죽음이후「상심과 향수」 남아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케네디가 전국민이 시청 하는 텔레비전 생중계 속에 총탄에 쓰러진 지 22일이면 만 40년이 된다. 케네디 40주기를 맞아 미국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텔레비전 특집과 각종 학회, 전시 등이 열리고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의 업적 외에 알려지지 않았던 온갖 음모와 추문까지 쏟아내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온 미국인을 매혹시켰던 46세의 젊고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그는 케네디가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4명의 대통령 중 하나였다고 평가하면서 “그가 구사하는 수사법과 연설, 그가 사용한 언어는 미국인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대학의 피터 쿠즈닉 교수는 “케네디의 암살은 미국의 종말의 시작이었으며 그 사건 이후 미국은 급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시각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케네디 암살사건 조사를 맡은 워런 위원회가 내린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 행’ 결론, 1978년 의회의 재조사 결과 밝혀진 ‘공범 증거, `음모 이론을 입증할만한 설득력 있는 증거가 없다’는 1988년 법무부의 수사종결 선언이 남긴 것은 아직도 계속되는 의혹이다. 당시 ‘극보수파’라는 평판을 얻고 있던 댈러스시에서는 케네디 대통령 방문을 하루 앞두고 케네디를 현상 수배범으로 그린 ‘반역 혐의 수배자’라는 전단이 나돌았으며 방문 당일 댈러스 모닝 뉴스는 대통령이 법무장관에게 공산주의자들을 살살 다루라고 명령한 이유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미국 진상위원회’의 전면광고를 실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건이 일어나자 댈러스 시는 ‘대통령을 죽인 도시’라는 손가락 질에 시달렸고 주민들은 곳곳에서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대접을 받았다. 많은 댈러스시 주민들은 케네디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를 의식적으로 무시했으나 시는 1970년 필립 존슨이란 조각가에게 위촉해 딜리 광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가묘를 세우고 블록 전체를 ‘존 F.케네디 추모광장’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흰 콘크리트로 제작된 9m 길이의 질박한 기념비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방문객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
역대 대통령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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