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기, 백영중 도산 올인작전 “뿌리는「島山」 가지는 「倒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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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기, 백영중 도산 올인작전 “뿌리는「島山」 가지는 「倒産」”

홍팀 (홍명기) 국민회관 한판승부 백팀 (백영중)

‘홍명기’와 ‘백영중’은 LA한인사회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들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있으나 서로 다른 면도 많다. 두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1950년대)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다. 이들은 한미사회에서 모두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상당한 재력을 지닌 비즈니스맨으로 기부활동도 하면서 한인사회 단체활동에도 정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한 수상경력도 많다.

서로간에는 성격이나 대인관계에 차이가 있다. 최근 뉴스면에서 볼 때 홍명기 회장이 백영중 회장보다는 다소 많이 평가 받아왔다. 홍 회장이 관여하는 단체가 많았기 때문이다. LA한인사회에서 홍 회장은 지난 99년부터 리버사이드 도산동상건립운동을 이끌고 남가주한국학원재정위기때 거액을 기부해 일약 한인사회에 알려지게 됐다. 이와는 달리 백 회장은 80년대부터 미주류사회에서 높이 평가받는 기업인으로 알려져 온 인물이다.


특히 두사람 모두 ‘도산의 사상’을 받드는 사업활동을 이끌어 오면서 최근 뉴스의 하이라이트를 받아 왔다. 그러나 도산 안창호를 기념하는 양대 단체의 대표로 있는 이들은 오는 9일에 새롭게 문을 여는 국민회관의 운영권을 두고 서로가 주도권을 잡기위해 첨예하게 맞붙어 동포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이 같은 암투는 어제 오늘이 아니라 지난 수년간 벌여 오다가 최근 국민회관복원을 계기로 최후결전을 앞두고 있어 주목이 되고 있다. 백영중 회장은 흥사단을 배경으로, 홍명기 회장은 도산기념사업회를 배경으로 하여 “올인 작전”으로 나가고 있다.

두 단체의 뿌리는 도산이다. 이를 두고 한인사회는 “도산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다. 국민회관은 오랬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지난해 11월 국민회관복원위원회(회장 홍명기)가 결성되면서 새단장을 하게됐다. 국민회관의 복원에 대해 복원위원회측은 2001년 8월 11일에 제막된 도산 동상 제막식을 계기로 추진이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민회관의 보존운동은 70년대부터 흥사단을 포함해 국내의 독립기념관, 보훈처 등 관련 기관단체들이 끊임없이 추진해 온 결과이다. 그러다가 이민10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 등이 거론되면서 복원문제가 LA한인사회에서 중요과제로 부상했다. 한편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회장 서영훈)는 자체적으로 ‘국민회관복원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이만열(현 국사편찬위원장) 도산학회장을 위원장으로 선정했었다.

두사람 닮은 꼴… 50년대 유학 성공한 기업인

도산 사상 계승 인물로 주목…
양대 도산단체 설립 주도권 싸고 첨예대립

백영중씨 복원위원장 행세


이 당시 선수를 친 사람은 백영중 회장이었다. 백 회장은 지난해 2월4일 ‘400만 달러를 투입해 국민회관을 복원’하겠다고 언론에 발표했다. 백 회장은 한국정부와 도산기념사업회 등의 협력을 받아 흥사단이 주체가 되어 국민회관 복원사업을 포함해 주변 일대를 성역화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소요되는 기금은 흥사단 보유기금 50여만 달러를 포함해 개인기부금과 한국정부나 관련단체들의 후원을 받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1달러 모금운동’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의 서영훈 회장도 LA를 방문해 복원문제를 논의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한인사회는 백영중 회장이 철강회사의 회장으로서 그의 재력 등을 보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백영중 회장의 ‘400만 달러 복원계획’이 발표된 후 1주일쯤인 2월10일에 서울 도산기념사업회의 이만열씨가 복원추진준비위원장이란 타이틀을 들고 LA에 와서 자신들에게 복원사업을 허가해 달라고 교회 등 관계자들과 접촉했다. 지난해 3월24일 서영훈 도산기념사업회장도 LA에 와서 백영중 회장및 교회 관계자들과 만나 복원사업을 위해 10만 달러 지원계획을 밝혔다. 이후부터 백영중 회장에게는 ‘국민회관복원추진위원장’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누가 붙였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복원사업에 대해 당시 소유주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측이 담임목사 부재 중이고 노회측과의 갈등으로 활동이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지난 해 9월18일 백영중 회장은 USC 동아시아도서관에서 당시 마크 리들리 LA시의원과 만나 국민회관 복원에 대한 시당국의 협력을 요청했다. 이때쯤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측에서도 복원사업을 결정하고 자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한인사회의 복원사업에 협력키로 했다. 이에 따라 백영중 회장은 자신이 10만 달러를 기금으로 출연할 것이라며 흥사단에서 10만 달러,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에서 10만 달러 도합 30만 달러로 복원기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는 복원추진위원회를 도산기념사업회. 흥사단,교회, 한인사회 중립적인사 등으로 구성할 것이라며 “2003년 1월 13일에 기공식을 갖고 8월15일까지 복원을 완료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백 회장은 서울 도산기념사업회측과 마지막 조율을 위해 지난해 10월 초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까지는 복원사업을 백영중 회장이 주도할 것으로 한인사회는 알고 있었다.

홍명기씨로 돌연 결정


그러나 지난해 10월 14일 서울로부터 날아온 소식은 복원사업 준비관계자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었다. 국민회관 복원위원회 회장에 백영중 회장이 아닌 홍명기 회장으로 위촉됐다는 것이다. 들려 온 소식은 서울의 플라자 호텔에서 10월10일 서영훈 도산기념사업회장과 백영중 회장 그리고 홍명기 회장 등의 조찬모임에서 백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홍 회장을 추천했다는 내용이었다. 홍 회장은 이자리에서 계속 백 회장이 복원위원회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LA에 돌아 온 백 회장과 홍 회장은 한국문화원에서 긴급기자회견이라는 명목의 자리에서 홍 회장이 복원사업을 맡게 됐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여기에서 한인사회가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다. 어떻게 복원위원회 대표를 서울의 호텔 식당에서 마음대로 정하는가이다. 그 과정이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겨지고 있다. 그리고 한국문화원으로 기자회견장을 선택한 것도 전례없는 경우였다.

서울에서 백 회장이 갑자기 사퇴를 한 동기도 역시 아리송하다. 갑자기 복원위원회장으로 위촉된 홍 회장은 지난해 11월12일 옥스포드팔레스호텔에서 복원위원회 결성대회를 열었다. 홍 회장은 9명 복원위 실행위원 중 흥사단 1명, 교회 1명으로 하고 나머지 7명(홍명기,金운하,촬스 金, 미셀 박,金영빈,최종호,잔 서)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인물들로 구성했다.

홍 회장이 좌지우지하는 위원회로 만든것이다. 그러자 흥사단측이 복원위원회에 반발하면서 참여를 거부하고 나섰다. 흥사단 임원들은 11월 20일 LA에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홍명기씨의 복원위원회를 재구성하라고 요구했다. 흥사단은 성명서에서 서울의 서영훈 회장과 이만열씨 등이 짜고 복원위원회를 자기들 의도대로 구성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성명에 서울의 도산기념회측도 10매에 달하는 해명서를 LA 한인언론사와 흥사단측에 보내 반격에 나섰다. 본격적으로 흥사단과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가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이 같은 분쟁에 대해 한인사회에서는 “도산을 위한 단체들이 서로 싸움질만 하니 한심하다”며 분노와 비난이 이어졌다. 그래도 이들 당사자들은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양보 없는 갈등을 부채질하며 나갔다.

백영중 회장은 누구?

평안남도 성천 출생인 백영중 회장은 연세대 재학중 1956년에 흥사단 장학생으로 선정되어 미국에 왔다. 그는 오레곤 주립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철강분야에 투신한 그는 팩코(Paco Engineering Co.)회사를 창립해 80년에 빔을 개발해 일약 미국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82년에는 “올해의 아시안 비즈니스맨’으로 선정됐으며 94년에는 아시안경제인대표로 백악관을 방문해 빌 클린턴 대통령과 만나 환담했다. 그는 95년에 미국경제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해 가족과도 만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백 회장은 97년에 아칸소주에 대형 철강빔 공장을 건설한 후 99년에는 미제2의 종합철강회사인 뉴코 스틸과 합작해 미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해 “올해의 기업인 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서전도 출판했고 연세대 등에 기부금도 기증하기도 했다. 현재 커뮤니티 활동으로는 전미주를 관장하는 흥사단 미주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명기 회장은 누구?

서울 출생인 홍명기 회장은 지난 1954년에 유학생으로 와서 콜로라도 대학과 UCLA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다. 특수 페인트를 발명한 그는 86년에 듀라코트 회사를 설립해 미국 페인트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 4.29 폭동후 한인사회 참여의식을 느껴 인랜드 한인회 초대회장을 맡아 커뮤니티 활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 후 1999년에 리버사이드 도산기념사업회의 회장을 맡아 2001년에 도상동상을 건립해 국내외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2000년에 재정위기에 처한 남가주한국학원을 살리기 위해 10만 달러를 기증하는 등 위기를 넘기는데 공헌했다. 2001년에는 LA평통 제10기 회장을 맡았고 2002년에는 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명예회장에 추대됐으며 지난해 말 국민회관 복원위원회 회장에 추대됐다. 특히 그는 2002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한인사회를 위해 많은 기부활동을 해 온 그는 지난해 ‘밝은미래재단’을 설립했다.

백 회장의 반격작전

이후부터 홍 회장측의 복원위원회는 서울 도산기념사업회측의 지시에 따라 복원사업을 밀고 나갔다. 한편 홍 회장은 국민회관이 복원되면 복원위원회는 해체되고 자신은 더 이상 관여치 않고 복원에만 충실하겠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그러나 복원사업이 완성단계에 들어가자 홍 회장은 자신이 국민회관의 운영관리를 계속 맡을 것을 교회측에 암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흥사단측도 국민회관의 관리는 자신들이 맡아야 한다며 교회측과 한인사회 관계자들에게 접근해 나갔다. 특히 최근 LA총영사관에서 복원후 관리문제를 협의하는 자리에서 홍 회장은 자신은 복원으로 임무가 끝난다는 의사를 비추었으나 그의 인척이며 복원위 사무총장인 잔 서는 복원기념식이 열리는 9일에 참석자들의 의견을 청취해 새 회장을 선출해 그 사람 중심으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것이 복원위의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홍 회장은 자신의 인척 잔 서를 시켜 자신이 계속 국민회관의 운영권을 잡을 속셈이라고 주위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한편 홍 회장은 복원된 국민회관 앞에 리버사이드 도산 동상의 복제본을 세울 것이라고 지난 2월(한국일보 2월4일자 보도)에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번 9일 복원기념식 때 동상이 약속대로 세워질 것인지 주목된다.

홍 회장측이 계속 국민회관 주도권을 잡을 속셈을 간파한 흥사단측은 회관의 소유주인 교회측에게 접근했다. 최근

흥사단의 한 임원은 흥사단이 교회측에게 일정액의 기금을 기부하겠다며 회관의 운영권을 양도할 것을 교회측에 제안했다. 이들 흥사단 뒤에는 백 회장이 있다. 현재 백 회장은 흥사단 미주위원장을 맡고 있어 흥사단이 회관 운영권을 가질 경우 백 회장이 지휘권을 갖게 될 것은 당연하다.

흥사단측이 교회측에게 일정액의 기금을 수년 동안 지급할 용의가 있다는 것은 백 회장이 이를 허가했다는 의미이다. 왜 다시 백 회장은 국민회관의 운영권에 도전하고 있는가. 왜 1년전에는 당연히 그에게 주어질 복원위원회장 자리를 건강상 이유로 사퇴했는가에 한인사회는 의문을 품고 있다.

한편 홍 회장측은 복원기념식을 앞두고 갑자기 지난달 21일 복원위원회를 소집해 공청회 안건을 들고 나왔다. 공청회에서 국민회관의 앞으로의 운영관리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공청회라는 수단을 통해 홍 회장이 계속 국민회관을 관리하겠다는 속셈”이라면서 “서울의 도산기념사업회와도 한 통속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산을 존경한다”고 평소 말하는 백 회장이나 홍 회장은 이렇게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암투를 계속해왔다. 지금도 서로가 도산 관련 모임에 나와 웃으며 악수하지만 뒤 돌아서면 자신들의 단체를 앞세워 명분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시기에 만약 도산이 왔다면 과연 이 싸움을 보고 무엇이라고 할까.

도산은 이런 말을 남겼다. “동지를 믿어서 속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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