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성 토마스정 윤병욱 3인 공동회장 각개약진 사사건건 마찰·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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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성 토마스정 윤병욱 3인 공동회장 각개약진 사사건건 마찰·갈등·분열양상
‘이민100주년기념남가주사업회’…임원들 제사보다는 잿밥에만 눈독

올해 한해 동안은 “이민100주년기념”이 화두였다. 미 전국적으로 각 지역에 ‘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가 구성되어 나름대로 다양한 사업을 벌였다. LA지역에서는 ‘이민100주년남가주기념사업회(대표회장 윤병욱)’가 역시 지난 1년 동안 각종 사업활동을 진행시켜 왔다.


이 기념사업회는 지난해부터 미주한인사회를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벌였으며 ‘로즈 퍼레이드 한인꽃차 참가’ 행사 등을 포함해 ‘이민100년사 출간’ ‘애국선열추모제’ 등등의 행사를 개최했다. 이제 2003년을 마감하면서 이민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는 한인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활동해왔는지 평가할 시점에 왔다.

기념사업회는 ‘이민100주년의 정신’을 계속 증진시키기 위해 오는 1월13일은 ‘코리안 데이(Korean Day)’로 정하고 ‘미주한인이민의 날’로 기념한다고 한다. 본보는 앞으로 3회에 걸쳐 이민100주년 남가주기념사업회의 공과를 평가해본다.

로즈퍼레이드 꽃차 참가 한인 큰 자부심 성과 탑승자 둘러싸고 언론사끼리 꼴불견 추태 연출

원래 남가주기념사업회는 2001년 1월 창립총회를 개최했으며 대표직에는 서동성 변호사를 실행위원장으로 선출해 시작됐다. 그러다가 2002년 초에 조직강화라는 이유로 3명의 공동회장 제도를 두게 됐다. 공동회장에는 서동성 실행위원장을 포함해 나라은행의 토마스 정 이사장, 한미동포재단의 윤병욱 전이사장 등 3명이 추대됐다. 이 중 대표회장에는 표결로 윤병욱씨가 선출되고 나머지 2명은 공동회장으로 결정됐다.

이 같은 3인 공동회장제는 나중 파벌을 가져오는 원인을 제공하게 됐다. 초창기 서동성 변호사를 중심한 임원들과 나중에 참여한 윤병욱 회장이 불러들인 임원들간에 마찰이 심해져 끝내는 서동성 변호사를 중심한 임원들이 물러나는 사태를 가져왔다. 이들이 갈라진 가장 큰 원인은 기념사업회를 운영하는 목적과 이념이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

서동성 회장측은 기념사업회 운영을 초기이민사회의 연구와 이를 2세들에게 전하자는 학술문화적인 활동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윤병욱 회장측은 타단체들과의 공동협력으로 다양한 행사를 펼처 나가자는 방향이었다. 그러나 이들 양자간의 마찰과 알력이 너무나도 커저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거의 이루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치 이씨조선 시대의 당파싸움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이 같은 기념사업회 내부의 파당으로 남가주기념사업회는 “실패한 기념사업회”라고 판정할 수 있다.

한국꽃차 행사가 면목 세워

남가주기념사업회는 초기시절에는 기금확보에 문제가 있었으며 홍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3인 공동회장제를 도입하면서 추대된 토마스 정 공동회장이 10만 달러를 기부금으로 출연하면서 기념사업회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특히 토마스 정 회장은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참가’를 기념사업으로 정하면서 한인사회에 “이민100주년기념사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기념사업회는 ‘로즈 퍼레이드 한인축제위원회(총회장 토마스 정)’를 조직해 독자적으로 집행케 했다. 실지로 지난해 ‘이민100주년기념사업’은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참가’ 준비행사로 일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로즈 퍼레이드’에 ‘이민100주년기념 한국꽃차’가 참가한다는 사실은 한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했던 것이다.

특히 ‘로즈 퍼레이드’는 새해가 시작되는 1월1일에 개최되는 전세계적인 축제행사이기에 ‘2003년이 시작되는 날에 한국꽃차가 참가한다는 사실은 의의가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인사회에서도 자연 관심이 고조됐다. ‘로즈 퍼레이드’에 한국꽃차가 참가하기는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가 열린 해 이후로 처음이었다. 따라서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참가캠페인을 앞세운

기념사업회 모금활동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라디오 코리아 방송(회장 이장희)은 지난해 7월과 11월에 “장미 한송이 보내기 운동”이라는 주제로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모금방송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한인사회로부터 크나큰 호응을 받았다. 어머니봉사회, 주부클럽, 다문화협회 등 봉사단체들도 가두모금에 나섰다.

한국꽃차는 한국을 상징하는 국보 1호 남대문과 수문장, 무궁화꽃, 한국전통 무용수 등등으로 단장한 특색을 지니면서 선두 부문에는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가는 한인이민단을 태웠던 겔릭호를 상징했다. 또 이 꽃차에는 “이민100년의 영웅들”과 센테니얼 퀸과 프린세스, 새시대를 상징하는 다인종 어린이들 그리고 어린이 합창단 등 30명이 탑승해 연도 시민의 환호에 답했다.

2003년 1월1일 파사데나에서 개최된 제114회 ‘로즈 퍼레이드’에서 한국꽃차는 연도 시민들과 미국과 전 세계로 중계된 TV 시청자들로부터 크게 관심을 모았다. 이 날 한국꽃차는 창의적이며 혁신적 감각이 뛰어 난 꽃차라는 평가로 “Past President Tropy”를 수상했다. ABC, CBS, NBC, KTLA 등도 “한국꽃차는 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꽃차였다”고 평가했다.

기념사업회와 로즈 퍼레이드 한인축제위원회측은 한국 꽃차의 광고 효과가 $3,800 만 달러 가치를 발휘했다고 밝혔다. 특히 LA 지역 60% 주민이 한국꽃차를 시청했다. LA 타임스는 로즈 퍼레이드는 LA지역의 주민 3분의 2이상이 시청했다고 닐슨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무엇보다도 미주사회에 한인사회를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행사는 성공적인 참가로 평가를 받을 만 하다. 꽃차 행사가 없었다면 기념사업회는 명목을 유지할 수 없었다.

파산된 3인 공동회장제도

그러나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행사를 진행하면서 기념사업회는 일부 언론사와 크게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다름아닌 언론사들간의 세력 과시였다. 로즈 퍼레이드 꽃차 탑승자를 두고 언론사들간에 첨예하게 맞붙었다.

첫번째 전쟁은 ‘센테니얼 퀸 선발’ 문제였다. 중앙일보미주본사(사장 박인택)가 ‘센테니얼 퀸’을 선발하겠다고 밝히자 한국일보미주본사(회장 장재민)측에서 반대하고 나섰다. 중앙일보측에서 발끈하면서 계획대로 퀸 선발을 강행했다. 사실 센테니얼 퀸 선발을 막을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타운에서는 한국일보가 미스 코리아 대회를 의식해 ‘센테니얼 퀸 선발대회’를 막으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결국 ‘로즈 퍼레이드 한인축제위원회’에서 표결로 퀸 선발 건은 중앙일보측에 위임됐다.

두 번째 전쟁은 꽃차 탑승자 인원수 배정 문제였다.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에는 이민 100주년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탑승하기로 정해졌다. 한국일보측에서는 꽃차 탑승에서 중앙일보측이 선발한 센테니얼 퀸 5명 중 1명만 탑승시킬 것을 ‘로즈퍼레이드 한인축제위원회’측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인축제위원회에서는 센테니얼 퀸 3명을 탑승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측이 이에 불응하여 행사 당일인 1월1일 센테니얼 퀸 5명이 기습적으로 한국꽃차에 탑승해버렸다. 이 같은 사태에 한국일보측은 분풀이로 축제위원회의 토마스 정 총대회장을 상대로 인신공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중앙일보와 한국일보와의 갈등에서 기념사업회의 일부 임원들까지 서로 패가 갈리는 사태를 야기시켰다. 윤병욱 대표회장과 박상원 사무총장을 포함한 일부 임원들이 한국일보에 동조했으며, 토마스 정 회장과 레이 박 꽃차위원장을 포함한 일부 임원들이 중앙일보측에 동정적이었다.

‘로즈 퍼레이드 한국꽃차’ 행사가 끝나자 남가주기념사업회 내부의 당파적 분쟁은 드디어 폭발했다. 윤병욱 대표회장측은 토마스 정 회장의 ‘로즈 퍼레이드 한인축제위원회’에 대하여 해산하고 잔여재정을 기념사업회에 이관할 것을 요구했다. 윤 회장측이 기념사업회를 완전 장악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또 평소 기념사업회 내부에서 들끓던 분쟁이 야기됐다. 윤병욱 회장을 포함해 안기식 부회장, 박상원 사무총장 그리고 모종태 운영위원장 등이 주축이 되어 서동성 공동회장, 이재권 부회장, 장봉섭 부회장 등과 사사건건 의견대립을 벌였다. 주류와 비주류간의 갈등이었다. 이 갈등은 원칙을 중요시한 서동성 공동회장과 이재권, 장봉섭 부회장 등에 대해 윤 회장측이 술수로 사업회를 이끌어 갔기 때문이라고 한 관계자는 밝혔다.

이 같은 내분에 크게 실망을 느낀 토마스 정 공동회장은 축제위원회 해산과 동시에 기념사업회와는 결별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동성 공동회장도 윤병욱 대표회장측이 좌지우지하는 기념사업회에 실망해 결별하는 수순을 밟게 됐다. 3인 공동회장 제도로 운영된 남가주기념사업회는 ‘로즈 퍼레이드’ 행사가 끝나자 서로가 믿지 못할 정도로 갈등이 깊어져 끝내 3인 공동회장 제도는 파산을 불러왔다.

토마스 정 공동회장과 서동성 공동회장이 기념사업회와 결별하자 윤병욱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2명의 공석 회장에 민병수 변호사와 인기식 부회장을 안배했다. 그동안 추락된 기념사업회의 이미지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한인사회에서 비교적 신뢰를 얻고 있는 민병수 변호사를 영입했다.

그리고 안기식 부회장을 공동회장으로 한 것은 윤 회장측이 자파 세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즉 친정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윤 회장은 3인 공동회장에서 자신과 안 회장 등으로 3분의 2의 세력을 확보한 것이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민병수 변호사는 후회를 하고 있다고 민 변호사와 가까운 사람들이 전하고 있다. 과거 남가주기념사업회에 참여했던 실행위원들이나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기념사업회를 주도해 온 일부 임원들은 신문과 방송에 기사와 얼굴 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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