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莫强… 8~10만의 특수부대 中核 부대는 그중 수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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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莫强… 8~10만의 특수부대 中核 부대는 그중 수천명

북한 실상 제4부‘군사’(북한군 실태)-1

일본 아사히신문이 올해 ‘북한의 맨얼굴’제하 특집의 제3부인 경제부문 내용을 지난8월10일자 본보(419호)에 소개한바 있다.
이달중순 예정됐던 북핵문제의 6자회담 속개 설속에 나온 제4부(部) ‘군사’(북한군 실태)를 한국, 미국, 러시아의 관점을 섞으며 살핀 내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탱크 등 구식장비를 파괴·게릴라전으로 보충 2년전 해변가 산허리에 터널진지들 구축

<복어전략>

조종석의 부자가 율렸다. “록온 됐다”흥분된 승무원의 목소리. 오전8시경 동해상공. 자위대의 전자정찰기가 공격전의 레이더조사(照射)를 받았다. 상대는 북한인민군의 주력전투기 미그21이다.

99년3월24일 정찰기는 일본영해에 침입한 북한공작선 2척을 감시하고 있었다. 도망치는 공작선은 본국에 도움을 청해 북한군이 미그기 4대를 발진시킨 것. 미그기는 록온한후 본국에 통신했다. “요격태세로 들어갔다.” 방수한 정찰기내 통신원들은 소연해졌다. 얼마안있어 자위대는 고마쯔기지에서 F15전투기를 보냈다. 그러자 미그기는 F15와 조우하기전 본국에 보고했다. “연료가 부족하다”

미그기는 현장에서 떠났다. 왜 공격을 그만두었는지는 불명이다. 그러나 50년대에 구소련이 개발한 미그21과 미.일의 첨단기술을 만재한 F15로는 미사일사정거리, 항속거리 모두 5배이상이나 차가 난다.

“ 히이테크와 골동품의 차이였다.” 한국 국방부관계자는 99년6월 황해에서 일어난 북한과의 해전을 그렇게 회고한다. 한국측에 의하면 북한경비정이 한국군의 고속정에 발포한 것으로 포전이 됐다. 한국 함정은 레이더와 컴퓨터로 자동조준에 맞춰 40mm포나 76mm포를 쏜다. 북한군은 세차게 파도에 흔들리는 갑판위에서 사격수가 눈과 손에 의지해 25mm기관포를 쐈다. 14분간 전투에서 북한측은 어뢰정 1척이 침몰하고 5척이 파손, 100명이상이 사상됐다고 한다. 한국측은 9명이 사상. 북한의 열세는 숨길수 없다. 함정은 거의 구식의 소형함정이고 전차도 50년대이전 구소련제가 대부분이다. 90년대후반에 탈북한 전 공군비행사는 “ 신세대기 미그29조종사라도 연료가 없어 훈련부족이었다”고 말하였다.

8~10만의 특수부대는
얕볼수 없는 존재

그러나 방위청 방위연구소의 다께사다 히데시 주임연구관은 “북한군의 힘은 무기의 비교만으로는 고찰할수 없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조셉 바뮤데스씨가 지적하는 것은 8~10만이라고 하는 특수부대의 존재다. 중핵부대는 그중의 수천명이라고 하는데 세계에 유례없는 규모다. 그 능력의 높음은 96년9월 한국동북부에서 좌초한 북한잠수정의 침입사건에서 입증되었다. 특수부대원등 26명이 상륙, 일부는 자결했지만 15명이 도주. 한국군은 6만명을 동원해 “생각힐 수 있는 최대의 도주범위’에 비상선을 쳤다. 넓이는 도꾜도의 약 3배나 되는 ‘대포위망’이었다. 그런데 거의가 그 그물을 헤쳐나갔다. 사살.체포되기까지 1개월이상 도주해 한명의 행방도 알려지지 않았다. 산몰이에 참가했던 한국군관계자는 “인간같지 않다”고 느꼈다한다.

2000년에 탈북한 전 북한군대위(34)는 말한다. “특수부대의 훈련은 어름이 낀 겨울바다에서 의 원거리수영등 보통이 아나다.” 미군 정보에도 “40kg 장구를 메고 24시간내에 산속 50km를 답파할수있다”고 한다.
북한이 특수부대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전력의 차를 파괴공작이나 게릴라전으로 보충하기위해서다. 전 대위는 말했다. “ 전장에서는 힘이 뒤진다 해도 예를 들어 특수부대가 일본에 몰래 들어와 빌딩을 파괴하는 것 만으로도 효과는 절대적이다.”

한국 국방연구원은 올8월 북한의 경제위기와 군비증강을 에워싼 보고서를 발표했다. 99년까지의 10년사이 북한전체의 경제규모는 절반이하가 됐지만, 군사부문의 낙후는 30%대로 멎었다고 한다. 무기도 한정된 일부만 증강하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울을 겨냥하는 다련장로케트포는 35%, 한국전토를 사정거리로 두는 스컷미사일은 125% 늘었다. 일본을 노리는 노동이나 대포동, 핵의 개발도 진척되었다.

북한은 국력이 쇠퇴하는 가운데 최대의 군사.외교상의 효과를 올리는 수단에 갖고있는 자원을 쏟고 있다. 동 연구원의 백승주 북한연구실장은 그러한 북한의 정책을 ‘복어전략’이라고 부른다. “ 배를 잔뜩 부플려 될 수록 크게 보이게 한다. 그것이 방위책이다.”

<최전선>

집중적무장으로 위협 강조
바닷가에 무수한 동굴진지

새하얀 학이 5마리, 날개를 쉬고있었다. 마른 풀이 늘어선 초원의 정적을 깨듯 버스가 달린다. 북한과 한국을 가르는 비무장지대(DMZ). 한국 강원도에서 북한의 명승 금강산으로 10수대의 관광버스가 나간다. 남북의 합의로 올 9월에 시작한 ‘육로관광’이다. “ 여기는 새들에게는 개발이 미치지않는 낙원입니다.” 한국인가이드가 설명하자 관광액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에게는 긴장의 땅입니다마는”
도로옆의 경계소에서는 한국병사가 소총을 겨누고 움직이지 않는다. 수백m앞에는 북한병이 끝에 칼이 붙은 막대기를 쥐고 남쪽을 째려보고 있는게 보였다.

“ 대화를 하자.” DMZ내 일각에서 확성기소리가 울렸다. 초원에 외로이 낡은 탁구대가 놓여있다. 그것이 ‘대화장소‘의 표적이었음을 북한병사였던 20대남성은 기억하고 있다. 2000년 한국에 망명하기까지 군사경계선의 경비를 하고있었다. 남북의 군인끼리 몰래 접촉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북측의 후방에는 중화기로 무장한 조선인민군 부대가 있었다. 남북의 제복군인들 10~20명씩이 탁구대를 에워싸듯 걸어와 말을 주고받고 하였다. 멀리서는 들리지 않았지만 “ 서로 탐나는 정보를 교환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런 접촉이 1년에 몇번 있었다고 한다.

3발의 총탄이 돌연 벽에 와 박혔다. 올 7월17일새벽 DMZ내 북한경계소로부터의 총격이 군사경계선을 낀 이쪽 한국군 초소를 습격한 것. 한국측도 기관총으로 응전. 군사경계선에서의 남북간총격전은 2001년이래였다.
경계선의 남북 2km씩이 DMZ이지만 결코 글자그대로의 비무장은 아니다. 남북 모두 경계선부근에 지뢰를 설치. 북측은 2천볼트에서 1만볼트까지 4줄의 고압선이 처져있다고도 한다.

DMZ의 지하를 뚫은 터널이 이때까지 모두 4개 발견되었다. 서울에 가장 가까운 곳은 북으로 50km의 파주에 있다. 미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길이는 약 1.6km. 폭은 약 2m로 1만명의 부대가 1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루트였다고 한국측은 보고있다.

한반도정세의 분석을 담당했던 워싱턴거주의 전 미군정보장교는 말한다. “ 북한은 상식외의 일을 한다. 비행기의 격납, 이륙이 가능한 지하시설도 만든다. 한국전에서 미군폭격의 무서움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2001년 한국에 망명한 남성(50)은 함남에서 지하기지가 되는 터널을 파는데 종사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팠다. 지금도 자랑할수 있는 훌륭한 것이다.” 터널 길이는 수백m였다. 참모, 작전과, 간호실등 작은 방으로 나뉘어 바다에 연한 산허리에 많이 팠다는 것이다.

“불바다”위협은
계산된 원고 읽기

“여기서 서울은 멀지않다. 전쟁이 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된다.” 94년3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간의 실무자접촉에서 북한의 박영수단장의 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한국측 대표자였던 송영대 전 통일원차관은 “ 박단장은 준비된 원고를 읽고있었다.”고 회고한다.

폭언으로 들리는 북한의 발언은 실은 그 효과를 주도하게 계산해서 발한 것이다. 북한군은 DMZ부근에 화포를 중점 배치해 그 수는 다련장로케트포등 수천문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 전쟁이 되면 서울에는 1시간당 50만발의 포탄이 내린다는 추계도 있다. 북한이 탄도미사일개발에 힘을 쏟는 것은 ‘최전선’의 위협을 한국에서 일본, 미국으로 넓히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핵억제력과 운반수단의 물리적실험을 힐 용의가 있다.” 올8월 북경에서의 6자회담때 김영일 외무부상이 소리를 높일 때도 그의 손에는 사전에 준비된 원고가 있었다.

<핵 . 미사일 >

미사일 ‘장거리’화에 온갖 수단
명중도 높이려 폭탄소형화 주력

“로케트개발을 도와달라.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싶다.” 92년여름 구소련시대부터 미사일의 엔진개발에 종사해온 러시아인기술자는 평양소재 미사일관련 연구소에서 그렇게 부탁받았다. 그보다 조금전 다른 러시아인기술자로부터 “평양에 좋은 일자리가 있다.” 라는 말을 듣고 살펴보려고 평양에 와있었다. 보수는 러시아에서의 10배이상에 해당하는 월 1,5oo달러가 제시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소련제 단거리미사일을 개량하고 있었는데 긴 거리를 날게하는 기술은 없었다. 좋은 조건에 끌려 5년계약으로 일하기로 승낙했다. 허나 실현되지 못했다. 다시 평양으로 가려던 참에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러시아당국에 저지당했다. “당국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겁냈을 것”이라고 이 기술자는 말했다.

그래도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의 개발을 단념하지 않았다. 6년후의 98년8월 <대포동>의 발사실험을 하고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3단식의 장거리를 시험할수 있기까지 기술이 발전했으리라고는 미국도 “몰랐다.”(럼스펠드 미국방장관)고 한다.

북한의 무기는 구소련제가 주력이지만, 미사일의 직접공여는 거의 없었다. 구소련제의 단거리미사일 ‘스컷’을 이집트로부터 입수해 개량을 거듭했던 것이다. 러시아의 군사전문가들은 자금은 이란이 내서 만들어진 물건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다른 중동각국등에도 팔려 외화벌이에 사용되었다.

현재 북한에는 한국전토가 사정에 들어가는 스컷(사정거리 300~500km)이나 일본열도가 거의 들어가는 ‘노동’(동 1300km)이 배치되고 ‘대포동1’(동 1500km)에 더하여 미국본토도 겨냥하는 ‘대포동 2’도 개발중이라 한다.

그렇지만 명중정도(精度)가 낮다는 결점이 있다. 전 러시아국방부 중앙과학조사연구소장인 우라디밀 도보르킨씨는 “지금의 수준이라면 보통탄두로서 별로 큰 위협이 되지않는다. 핵을 개발해 핵탄두의 획득을 목표삼은 것은 그 결점을 메꾸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한다.

93년가을 러시아의 군인이나 과학자가 비밀리에 북한에 초청되었다. 핵시설이 집중된 영변에서는 과학자만이 어느 시설에의 출입이 허용되었다. “미완성의 기폭장치가 있었다. 협력을 요구받았는데 힌트를 주는데 그쳤다.” 동행한 군인은 후에 과학자로부터 그런 고백을 들었다. 북한은 65년 소련의 기술로 영변에 연구용원자로를 설치했으며 그후는 주로 소련에서 배운 북한과학자들이 신설이나 개량에 종사해왔다고 한다.

평화이용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90년대초 핵무기에도 이용할 수 있는 풀루토늄의 추출의혹이 강해졌다. 94년의 <미북 틀합의>로 북한이 핵개발의 동결을 약속해 일단 위기는 지나갔다. 허나 핵시설은 이미 군의 손에 넘어갔었다. ‘합의’후 영변에 갔던 전 미국무부 북한담당관 케네스 키노네스씨는 “ 핵관련 기술자는 군이 골라서 전문가로서 육성하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한반도는 지금 다시 핵위기에 빠져있다. 작년10월 고농축우라늄에 의한 북한의 핵개발의혹이 다시 부상했다. 이 개발에는 파키스탄의 관여가 의심받고 있다. 과거의 핵.미사일개발에는 중국의 기술도 사용되었다는 견해도 뿌리 깊다. 모스크바교외의 두브나에 있는 원자력연구소는 56년 설립이래 세계각국의 과학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도 그 단골이다. 알렉세이 시사캔부소장은 북한대사관원이 받아들여달라고 요청해올 때마다 “ 여기는 평화목적의 연구를 하는 곳이다”라고 말하는데 언제나 애매한 미소만 돌아오더라고 회상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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