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감히 민킴을 건드려…”리틀 홍, 민 킴 인사발령 등 섣부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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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은행 홍승훈 행장 사퇴 파문… 그 내막과 진상추적?

“네가 감히 민킴을 건드려…”리틀 홍, 민 킴 인사발령 등 섣부른 행동이 ‘禍’ 자초

「벤 홍의 전횡과 독주 아무도 막을 者 없다」… 나라은행은 벤 홍의 私 금고

지난 1999-2000년 나라은행은 러시아의 해커 2명으로부터 은행 컴퓨터 네트워크가 침범 당했다. 이들 해커는 나라은행 이외에 택사스에 있는 센트럴내셔널 뱅크의 네트워크도 침범했다. 이바노프와 골스코브로 불리는 이들 2명의 해커는 미국의 다른 금융회사에도 침범해 약 30만명의 크레딧카드 회원의 신용정보를 빼내기도 했다. 아직까지 나라은행 측은 피해를 당한 구체적 상황을 밝히지 않았다. 나라은행은 비밀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이다.


이번 홍 행장의 전격사임은 나라은행의 부실대출 및 조직장악 등의 실패에 기인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미 보도한 것처럼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궈라”는 말처럼 홍 행장은 새롭게 나라은행 조직 정비와 새로운 경영계획을 세우기 위해 경영상태 등을 진단하는 과정을 추진했지만, 그의 뜻대로 쉽게 풀리지 않는 가운데 민 킴 전무가 담당하고 있었던 대출부분에서 부실화 징후를 포착하게 되었다. 당시 홍 행장은 벤자민 홍 이사장과 민 킴 전무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차원의 일환으로 민 킴 전무를 승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좌천 시켰었고, 그들의 보이지 않는 관계를 정리하면서 일선 직원들까지도 칼을 대게 되었다.

반면 이런 홍 행장의 조치는 오히려 벤자민 홍 이사장을 자극하게 되는 상황으로 몰리면서 급기야 벤자민 홍 이사장은 좌천된 민 킴 전무를 1주일 만에 경영일선으로 다시 복귀토록 하였다. 또한 홍 행장을 전격 사임 시키면서 자신은 임시 행장으로 등극하면서 ‘홍승훈 행장 3개월 천하’로 만들어 젊은 행장의 앞날을 망치는 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한인계 은행들에게 가장 심각하고 고질적인 병폐가 바로 이사진과 경영진의 마찰이다.대다수의 이사회는 사사건건 경영진의 정책이나 결정에 관여하면서 그들의 입맛대로 은행이 굴러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90년도 한미은행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최근 벤자민 홍 임시행장은 자신의 사무실을 나라은행 본점 5층 건물로 옮기면서 나라은행의 모든 최고 의사 결정권자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해 금융권에서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였다.

성 진 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황지환 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한미은행 행장시 이사들에 당한 수모 전철 밟지 않으려 이사진부터 ‘장악’
글로발 은행과 합병때 물먹은 「벤 홍」PUB 인수에 눈독 사활건 한판승부

은행내분 중심은 벤자민 홍

한인계 은행들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는 이사회와 경영진 간의 마찰이다. 물론 나라은행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나라은행내 이사회와 경영진 간의 마찰의 중심에는 벤자민 홍씨가 항상 있었다. 당시 벤자민 홍씨가 행장이 되어 나라은행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 은행 내 파벌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 행장이 한미은행장으로 있을 1990년, 그 해 12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정기감사가 실시됐다. 감사결과 은행 지출비용 중 이사들에 대한 접대비나 관련 경비가 커뮤니티 뱅크 수준에서는 과다하게 지출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이 같은 감사결과가 일간지에 보도되어 이사회는 물론 한미은행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는 결과를 나타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이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홍 행장파와 반대파 간에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누가 이 사실을 신문에 알렸느냐’였다. 이사들은 벤자민 홍 행장 측을 의심했다. 평소 이사들의 전횡에 대해 못 마땅해 온 벤자민 홍 행장 측이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것이 이사회의 분위기였다.
이사회는 사태수습을 위해 91년 4월 3일 긴급이사회를 개최하여 난상토론을 벌인 결과 한인사회에 사과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4월 5일 벤자민 홍 행장과 안응균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물의에 대해 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대 한인사회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홍 행장과 안 이사장은 정부당국의 감사 결과를 극히 축소하면서 이사들이 함부로 돈을 썼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과다한 접대비를 받은 이사들은 그 비용들을 모두 은행에 반환하는 것으로 이 사태는 일단 봉합됐다. 이 사태를 계기로 벤자민 홍 행장은 이사회의 기를 죽여 임기를 3년 연장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사 2명도 퇴출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렇다 한 문제들을 두고 이사회의 내분은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또 퇴출된 2명의 이사는 93년도 주주총회에서 다시 이사로 복귀했다. 이들 이사들은 벤자민 홍 행장에게 화살을 겨누기 시작했다. 홍 행장도 위기를 느꼈다. 다시 한번 이사회와 전면전을 벌여야 하는 사태가 점점 다가 오고 있었다.

4.29 폭동 이사진 내분 부채질

92년 4.29 폭동은 은행업계에도 시련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1981년에 설립된 글로벌 세이빙스가 은행들 간의 경쟁 때문에 마지막 자구수단으로 합병을 모색하게 됐다. 당시 한인 은행계는 가주외환은행이 1위이고, 한미은행이 2위, 그리고 글로벌은 5위였다. 한미은행과 글로벌의 합병모색은 한인사회에 큰 관심을 몰고 왔다. 왜냐하면 한인 은행 간의 합병시도가 처음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미은행의 벤자민 홍 행장은 글로벌의 하동용 행장과 교섭에 들어갔다.

홍 행장은 한인계 은행에 나오면서 새로운 시도로 각광을 받아왔는데 그는 최초의 합병에도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 했다. 약 4개월 동안 교섭을 진행시켜 그 해 8월 20일에 홍 행장과 하동용 글로벌 행장 간에 370만 달러 인수가격으로 양 행장이 서명식까지 마쳤다.

그러나 홍 행장이 또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려는 이 합병은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 무산되는 창피를 당했다. 한미은행이 합병을 할 정도로 은행 경영이 개선되지 못했다는 결정을 받은 것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커뮤니티 뱅크로서 한미은행이 지역사회 금융서비스를 해야하는 ‘지역사회 재투자법(CRA)’에 미달했다는 것이었다. 한미은행이 지역 내 한인들에게만 집중 서비스하고 라티노나 흑인들에게는 무관심했다는 이유다. 이렇게 해서 벤자민 홍 행장의 합병시도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이때 홍 행장은 은행합병의 실패를 교훈삼아 합병문제에는 남다른 생각을 지니게 됐다.

4.29 폭동은 한인은행들의 내분도 폭발하는 계기를 가져왔다. 이사들 접대비 과다지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 한미은행의 이사회와 경영진 간의 내분은 한동안 가라 앉았지만 다른 은행들이 내분에 휩싸이자 다시 터져 나왔다. 그 해(1992) 나라은행의 전신인 미주은행에서 이사회 축소문제로 내분이 일어났으며 다음해인 1993년 6월에는 중앙은행이 이사회와 경영진 간의 마찰로 찰스 김 행장이 경질되자 전무 등 17명 직원이 집단사표를 내는 한인 은행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김 행장은 동반 사임한 직원들을 이끌고 미주은행으로 들어가 은행이름을 나라은행으로 고쳤다. 이러는 과정에서 한미은행 이사회에서는 새로 복귀한 이사 2명등이 주도해 벤자민 홍 행장 축출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미은행 이사회는 94년 1월에 4월까지의 행장 임기인 홍 행장의 퇴출을 미리 결정지었다. 쫓아낸 것이다. 이것이 홍 행장과 한미은행과의 영원한 원수지간의 시작이었다.

한미은행과의 영원한 라이벌

한미은행에서 토사구팽 당한 벤자민 홍 행장은 나라은행 측에서 내분이 일어나자 그쪽으로 선회해 95년에 나라은행 행장으로 재빠르게 옮겼다. 나라은행 이사진은 중앙은행에서 퇴출당한 찰스 김 행장을 받은 지 불과 10개월만에 쫓아내는 기록을 만든 것이다. 나라은행에서 행장 쫓아내는 버릇은 이때부터 술수가 붙었다.

한미은행에서 이사회로부터 냉대를 당했던 벤자민 홍 행장은 나라은행에 오면서 이사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큰 정성을 쏟았다. 직원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도 상당한 공을 드렸다. 우선 이사회의 토마스 정 이사장의 환심을 사는데 초점을 모았다. 홍 행장은 정 이사장이 모교로부터 박사학위를 받은 일리노이 주까지 몸소 갔다 와서는 언론에 소개하기도 했다. 한미은행 시절부터 눈 여겨 점 찍은 민 킴 지점장을 나라은행으로 불러들여 자신의 아성을 구축하는데 노력했다. 이러는 사이에 은행합병 바람이 다시 불어왔다. 은행가의 소문에 빠른 홍 행장은 자신이 한미은행 당시 합병을 시도했다가 무산된 글로벌이 여러가지 규제 때문에 운영에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알았다. 한인계 은행들이 글로벌과 합병하려고 침을 흘리고 있었다.

벤자민 홍 행장은 한미은행 측이 틀림없이 글로벌 은행 합병을 시도할 것으로 알고 선수를 쳤다. 그는 96년 말부터 글로벌 은행의 하 행장과 접촉했다. 여기서 또 한번 벤자민 홍 행장은 실패를 맛보게 됐다. 나라은행이 글로벌 은행과 합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증자를 한 다음에 합병교섭을 했어야 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한 글로벌 은행의 이사회는 나라은행의 벤자민 홍 행장과의 합병교섭을 무산시켰다. 벤자민 홍 행장으로서는 글로벌 은행 합병교섭에 두 번째 실패였다. 더 쓰라린 것은 그 다음의 결과였다. 자신과 원수지간인 한미은행이 글로벌 은행을 성공적으로 합병한 것이다. 한미은행이 한단계 성장하게 된 것이고 오늘날 한인계 은행으로 No.1 은행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미은행은 글로벌 은행을 합병하면서 글로벌의 전직원을 고용승계 함으로써 직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이제 한미은행은 명실상부한 한인계 은행들 중에서 최대 최고의 은행으로 성장했다. 나라은행도 착실한 성장을 이루어 한미은행 다음으로 2위에 올라섰다.

PUB매각이 나라은행 뒤흔들어

2003년 여름에 들어서 텍사스의 론스타 은행이 한국외환은행을 인수함으로써 미국에 있는 현지 법인체인 퍼시픽 유니온 뱅크(PUB)의 매각 사태가 온 것이다. 평소부터 PUB에 눈독을 들여 온 한미은행과 나라은행 등이 매입 의사를 보인 것이다. PUB를 합병하는 은행이 진정으로 한인계 은행의 왕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미은행과 나라은행은 각기 사활을 건 싸움이 되었다. 벤자민 홍 행장으로서는 일생 마지막 도전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미은행과의 영원한 라이벌에 어쩌면 종지부가 될 지도 모르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나라은행은 아시아나 은행과 합병했으며 새로운 나라은행 사령탑에 아시아나 은행에 있던 홍승훈 행장이 취임했다.

따라서 홍승훈 행장에게 PUB 매입의 과제가 주어졌고, 새로운 나라은행의 경영구도 및 새로운 조직 구성 등을 해야 하는 쉽지 않은, 풀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었다. 두 가지 모두 그에게는 놓칠 수 없는 것들이다. 우선 그에게는 새로운 경영구도를 짜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야만 PUB 매입 전쟁에도 나설 수 있기 때문. 홍승훈 행장은 나라은행의 재정상태와 대출상황 등 전반적인 은행 상태를 진단하고 싶어했다.구체적인 사항들을 알아야만 새로운 은행 경영계획을 세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 킴 전무 등 경영 고위직 부서가 벤자민 홍 행장과 깊게 연결되어 부실 대출 등의 몇 가지 중요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홍승훈 행장은 지난 10월 31일 민 킴 전무 등 고위직 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의 주목적은 벤자민 홍과 민 김의 고리를 자르는 것이며 은행의 부실 대출상황을 파악키 위한 것이었다. 신임행장으로서는 이와 같은 조치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벤자민 홍 이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무실을 나라은행 본점 5층에 자리잡았다. 그 사무실 밑에 나라은행이 있고 신임 홍승훈 행장실도 있었다. 다시 말해 벤자민 홍 이사장은 행장직을 물러나서 이사장을 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은행 경영에 간섭하며 홍 행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토를 달았던 것이다.

벤자민 홍 임시 행장은 이사회에서도 막강한 자리에 이미 올라 있었다. 마치 상황은 구한말 대원군과 고종간의 상황과 비슷했다. 대원군은 사사건건 고종의 어전회의를 간섭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라가 잘 굴러가기는 틀렸던 것이다. 그런데 신임 홍승훈 행장은 한가지를 몰랐었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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